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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비 Oct 04. 2022

07. 삶의 흐름

이제는 내가 갈게요.






서서히 인정하게 되었다. 삶의 모든 순간에는 저마다의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기에 새로운 시작이 존재한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것조차 계절의 순환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붙잡으려고 애쓰는 것은 마치 흐르는 물을 가로막으려 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삶의 흐름 가운데 상실 또한 그러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나는 이 역경을 이겨낸 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전의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삶이 그리워졌다. 일상의 작은 일에도 진심을 담으려 노력하고, 사람들과 자연스레 웃고 떠들던 지난날들이.










그렇게 나는 다시금 삶과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상실은 마치 예고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불쑥 나를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전과는 조금 다른, 긍정적인 시각으로 상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서서히, 아주 조금씩 작은 변화들이 생겨났다.


문득 으레 존재하던 나의 일상적인 것들에 감사함이 차올랐다. 자연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의미 있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기로 살아있음이 보였다. 그건 익숙함에 속아 잊고 있던 삶,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었다.

또 나는 내가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아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가 내릴 땐 비가 내려서, 해가 내리쬘 땐 날이 참 좋아서, 새들이 지저귀고, 초록의 풍경이 아름다워서. 이처럼 지난 과거가 아닌 현재의 흐름에서도 아빠를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었다.

아빠와 함께 했던 지난날만큼 ‘지금 이 순간' 역시 존재하는 그대로 찬란하다고 아름답다는 걸 배웠다. 나아가 지난날의 기억이 존재하기에 지금의 나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로 나의 뜻과는 무관하게 경험해야 하는 사건 속에서 나의 몫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를 바탕으로 성찰하고 성장하는 것,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쥐고 있던 힘을 풀어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

이것들만이 이제 내가 삶의 흐름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나는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지난 일 년 동안의 방황을 책임지기로 결심했다.








첫 번째. 이제는 내가 갈게요.

놀랍게도 아빠는 27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를 마중 나오셨다. 그 어느 곳에 있더라도 아빠는 나의 전화 한 통에 슈퍼맨처럼 달려오셨고, 이는 아빠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 아빠는 나를 마중 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내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비교적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계셨고,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그곳에 찾아갔다. 그리고 함께 즐겨 듣던 음악을 들으며 아빠를 향해 걷는 그 길은 그간 웅크렸던 나에게 놀라운 에너지를 선물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뒤늦게나마 아빠가 나를 마중 나오던 순간에 느꼈을 감정에 공감하게 되었다. 아마 그 시간이 아빠에게는 참 귀하고 소중했을 것이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땐, 그동안 못다 한 말을 차근차근 전하며 또 예전처럼 농담을 건네기도 하며 나의 일상을 공유했다. 비록 보이지 않더라도, 혹은 크게 소리 내어 외치지 않더라도 그저 마음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하는 모든 말들에 귀담아듣고 계실 아빠를.




두 번째. 산책 그리고 커피

나는 상실로 인한 슬픔이 차오를 때면, 아침이 주는 에너지를 만끽하며 자연을 걸었다. 산책길에 바라보는 높은 하늘과 뜨거운 태양은 엉켜진 삶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지난날, 아빠와 나는 진한 커피를 선호하는 티타임 파트너였다. 그래서일까. 작별 후 홀로 마시는 커피는 유독 씁쓸하게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나는 혼자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애초에 내 삶에 문제란 존재하지 않으며, 문제라고 느껴지는 모든 것들은 단지 마음에 엉킨 두려움에 불과하다는 것. 그 두려움을 놓아버린다면, 삶은 언제나 그랬듯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며, 내가 나를 믿어주는 만큼 그렇게 될 거라는 걸 믿기 시작했다.




세 번째. 요가와 명상

요가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수련할 수 있는 활동이다. 요가에 경쟁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선물해준다.

명상 또한 이와 닮아 앞서 이야기한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나를 모르고, 머릿속을 오고 가는 부정적인 생각을 모두 제거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요가와 명상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


나는 요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어느 날, 잊고 있던 사실을 하나 떠올렸다. 그건 다름 아닌 지난날, 아빠의 건강하고 활기찼던 시절과 우리가 나눈 행복했던 추억들이었다.

아빠와 작별 후 나는 당신의 투병 기간들을 떠올리며, 죄책감과 후회를 반복했다. 그때 아빠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걸. 혹은 더 좋은 선택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게 했다.

하지만 아빠는 당신의 건강하고 멋진 모습만을 간직해 주길 바랄 텐데, 왜 그동안 나는 아픈 기억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걸까.


아빠가 내게 자주 해주신 말씀이 있다. 어떤 일이든 마음가짐을 달리하면 손바닥을 뒤집듯 단순한 해결 방법이 존재하며, 많은 일의 시작과 극복의 기초는 ‘웃음'이라고. 

또한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행복들이 존재하며, 그건 마치 하늘을 나는 새의 깃털만큼이나 많기 때문에 애써 행복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나는 그 지혜의 말씀을 떠올렸다.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네 번째. 아이에게 배우는 것

2017년 7월, 나의 첫 조카가 태어났다. 내가 한 아이의 탄생부터 자라나는 성장의 과정을 지켜보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첫 조카는, 그러니까 아빠의 첫 손주는 아빠가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 즈음 태어났다. 그리하여 아빠는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손자를 기다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혹은 손자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할아버지를 위해 빨리 세상에 나타나 준 것 같기도 하다.


그 사랑스러운 아이의 이름은 민호이다. 모든 아이들이 그러하듯 민호에게는 남다른 생기와 에너지가 있다. 나는 깊은 상실의 나락에서도 민호의 두 눈을 바라볼 때면 찬란한 빛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른은 아이에게 걷는 법과 말하는 법,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지만, 아이가 어른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에 비하면 너무도 빈약하다. 

아이는 자연스럽다. 의심하는 방법을 모르는 만큼 기꺼이 삶을 믿는다. 그리하여 아이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사랑한다.


이제 2021년이 되어 민호는 다섯 살이 되었고, 민호의 동생인 이서 또한 태어났다. 

삶의 흐름이라는 경이로움 속에서 사람이 오고 감은 결코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 아이들로 인해 배워가고 있다. 

소중한 나의 조카들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다섯 번째. 내 동생

내가 열세 살 때부터 쭈욱 함께 한 반려동물이 있었다. 그 작고 귀여운 강아지의 이름은 ‘뽀뽀'이다. 뽀뽀는 나의 하나뿐인 동생이자 우리 가족의 자랑이었다.

뽀뽀는 내 인생 최고의 파트너였다. 나는 엄마 몰래 뽀뽀와 함께 방에 들어와 '나쁘지만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었고,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 아래에서 함께 부모님을 기다리며 낮잠을 잤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땐, 현관문 앞에서 언제까지나 나를 기다리던 그 아이. 덕분에 나는 '아무도 없는 집'의 적막함을 단 한순간도 느낀 적이 없었지만, 그와 반대로 뽀뽀는 그 적막함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워갔을 것이다.


뽀뽀와 아빠는 서로를 정말 아끼고 사랑했다.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을 당시, 나는 뽀뽀가 아빠를 한참 동안이나 기다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아이는 대체 왜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2020년 9월, 뽀뽀는 아빠가 계신 곳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고백하건대, 내 삶에서 뽀뽀가 있어 견딜 수 있던 나날이 수없이 많다. 함께 한 18년의 세월 동안 주는 것 하나 없이 받기만 한 나는 아마도 그 아이를 영원히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겠지. 

그러나 참 다행인 건, 아빠와 뽀뽀는 지금 함께일 거라는 것이다. 서로가 있어 조금 더 편안할 수 있기를. 

그리고 언젠가 우리,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여섯 번째. 사람의 가치

상실의 터널에서 무너진 지난날 동안 실처럼 가는 마음이 생채기를 낼까 봐 주변인을 포함하여 가족에게조차 내 마음의 틈을 온전히 보이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나를 묵묵히 지켜봐 준 그들로 인하여 나는 다시금 일어설 수 있었다. 나아가 적극적이고 따뜻한 태도로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관계’ 없이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없듯, 서로의 존재로 인해 완전히 존재할 수 있다. 

한 사람과 대화를 하고, 생각을 교류하고, 서로의 시간을 함께 하는 그 순간마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내가 타인에게 남긴 그 흔적이 먼 훗날 돌아봤을 때 행복한 기억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반가운 것은 없을 것이다.

아빠와의 작별에서 배운 바가 하나 있다면, 모든 존재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또한 흐름이다. 모든 것이 흐르고 변화함에 사람 또한 든 자리와 난 자리가 반복된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이다.


여전히 나는 만남을 반가워하고 이별을 두려워하지만 그로 인해 관계로부터 도망가지는 않을 것이다. ‘관계’ 없이 나는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는 없을 테니까. 

이 자리를 빌려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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