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이 순간을 사는 것
전체 치료 기간으로 보면 초기에 해당하는 몇 번째인가의 진료에서 나는
"제가 지금 선생님이랑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우울증을 앓고부터 이 순간에 대한 제 기여도가 한 50퍼센트 정도 될까요, 붕 떠 있는 것 같아요. 여전히 5퍼센트는 죽자는 생각이랑 싸우고 있고 45퍼센트는 딴짓을 하고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요는 지금 하는 일에 100퍼센트 집중할 수 없다는 거였고, 내 인격의 일정 부분들은 다른 시간에서 다른 사건 속 내게 훈수를 두고 있다는 거였다. 이 증상이 별로 심하지 않았던 시절엔 별로 문제 될 일도 없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거라 생각하면서 넘겼지만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게 이런 식으로 평생 살아간다는 건 무리한 일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이 순간보다는 과거나 미래에 있는 거냐고 물었다. 비교적 그런 셈이었다. 살면서 만나는 소리와 냄새와 온도에서 과거의 기억이 살아나기라도 하면 나의 20% 정도는 그때의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로 재생했으니까. 수학에 형편없는 나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온전하게 이곳을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알았다.
나는 우울증이 생기기 전부터 계획했던 일들을 한국에 온 후에도 그대로 밀고 나갈 작정이었다. 이 좆같은 병에 걸린 것도 참으로 불행한데 그것 때문에 인생의 손해를 더 늘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울증은 차근차근, 건강도 같이 좀먹고 있었기 때문에 7kg 넘게 살이 빠진 나를 보고 친구들은 어디가-몸이- 많이 아픈 줄 알았다며 나중에야 털어놓았고, 이모들은 엄마에게 애가 왜 저렇게 됐느냐고 자꾸만 물었다고 한다. 나는 프랑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 새 생활을 시작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일단 그 나라에서 치료를 계속해나갈 생각으로 정신과 선생님한테는 새로 갈 나라에서 쓸 처방전을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의사 선생님은 알았다고 했다. 그 나라에서는 어느 병원을 가서 어떤 절차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계속 알아봤다. '거기서 치료를 받아서 낫겠다'는 마음보다는 묏자리 찾는 마음 반, '치료를 시작했으면 끝은 봐야지'라는 마음 반이었다. 올해 중순까지도 일주일에 몇 번씩 계획이 수정되고 뒤집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있었다. 그런데 일단 치료가 진전이 되면서 '묏자리 찾기'의 지분인 50퍼센트가 빠졌다. 내 안의 계획 추진 위원회가 와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고집이나 오기를 내려놓으니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어제인가, 요새 내가 뭔가에 실패하거나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도 날카롭게 벼린 말로 나를 내리찍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전엔 정말 이렇지 않았거든. 나는 내 것이 아닌 책임도 내 것으로 돌리는 아이였다. 남한텐 험한 말도 잘 못하는 주제에 자신한테는 악랄하기 짝이 없었다. 방구석 여포가 따로 없는 폭군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뭐 실수했으면 고칠 방법을 찾으면 돼지'라고 생각하고 고칠 방법 찾는 데에만 몰두한다. 그럴 때의 나는 어디론가 날아가 비슷한 과거의 실수에 절규하지 않고 100퍼센트가 이 순간에 남아 수습을 한다. 내 안의 고비라는 건, 먼저 그곳을 넘어와 한숨을 돌리기까지는 방금 있었던 그 지점이 고비인지 어떤지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요새는 마냥 편하게 산다. 아, 살도 다시 되찾았다. 사람마다 고민은 제각각이기 때문에 '살 다시 찐 게 왜 좋은 건지' 모르는 분도 계실 것 같다. 내 경우에 살을 되찾은 게 기분이 좋은 이유는 '빠지든 찌든 내 의지로 하고 싶은데 감히 병 따위가 지맘대로 내 몸을 바꿔놔서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내 몸만은 내 의지대로 하고 싶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살면서 말아먹은 관계라면 몇 개인가 있기 때문에 감히, 그 옛날의 내가 자신을 용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자신한테 잘해주고 싶다. 위험한 짓은 하지 않고, 아파하면 감싸주고, 약도 발라주고. 그렇게 당연한 방법들로. 당시 의사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 치료의 목표는 내가 지금, 이 순간에 100퍼센트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인생은 구깃할 때도, 매끄러울 때도 있다. 그건 대체로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때로 그 일그러진 단면에 진심으로 가득 찬, 그게 뭐?라는 태연함을 던지는 건 생각보다 더 짜릿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