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유행, 계절, 사람, 감정 — 모든 것은 사라지기에 더 빛난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잃어가며 산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도, 피해 갈 수도 없다.
다만 어떤 사람은 그것을 두려움이라 부르고,
또 어떤 사람은 아름다움이라 부른다.
나는 이제 후자 쪽을 믿기로 했다.
왜냐하면,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만
비로소 진짜 마음이 보이기 때문이다.
유행은 늘 빠르게 지나간다.
어제까지 모두가 입던 색은 오늘이면 낡아 있고,
사람들이 떠들던 말들은 어느새 타임라인 아래 묻힌다.
처음엔 그 변화가 너무 빠르다고 느꼈다.
‘왜 이렇게 금세 식어버릴까’
‘왜 이렇게 쉽게 잊힐까’
그런데 이제는 안다.
그것이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순간의 열정이 그렇게 반짝였다는 걸.
잠시 머물다 흩어지는 것들이 있기에,
우리는 ‘지금’을 더 단단히 껴안을 수 있다.
계절도 그렇다.
가을이 길게 머물면 우리는 금세 그 고요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단 며칠 만에 낙엽이 스러지고 나면,
그 짧음 속에서 오히려 계절의 온도를 더 또렷하게 느낀다.
겨울이 추운 이유는
봄이 다시 찾아올 것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라짐은 늘 다음의 시작을 품고 있다.
끝이라는 문장 끝에는,
언제나 새 문단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도, 감정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
그 모든 것은 언젠가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그때마다 우리는 슬퍼하고,
잃어버린 자리에서 허공을 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그 사람의 웃음,
그날의 햇살,
그때의 마음이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나를 살게 한다.
사라졌다고 해서 사라진 게 아니다.
다만 다른 형태로 남았을 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습관이라는 모양으로,
그리고 아주 오래된 다정함의 온도로.
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움은
그것들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
영원한 것은 지루해지고,
변하지 않는 것은 결국 무감해진다.
그러니 모든 것은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 순간이 얼마나 눈부셨는지
우리 마음이 알아챌 수 있다.
나는 이제 두렵지 않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중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함이
언젠가 내 기억 속에서 빛으로 남을 것을 믿기에.
오늘의 햇살이 내일이면 사라지고,
오늘의 마음이 내일이면 달라져도 괜찮다.
그 모든 흐름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아름다움을 배우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