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한 송이에서 시작된 이야기

첫 계절이 남긴 선물, 그리고 새로운 길

by 연빈

사람들은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곤 한다.
봄처럼 설레는 시작, 여름처럼 뜨겁게 부딪히는 시간, 가을처럼 익어가는 관계,

겨울처럼 잠시 고요히 숨 고르는 순간.
돌아보면, 우리 두 사람의 지난 시간도 그 순서를 따르고 있었다.


2000년대 초, 채팅방에서 우연히 나눈 몇 줄의 대화가 인연이 되었고,

그 인연은 편지를 거쳐 현실 속 만남으로 이어졌다.
서울과 인천, 그리고 부산, 먼 거리를 오가며 싸우고 웃고 화해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때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울었고, 때론 아무 이유 없이 웃다가 하루가 다 가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조금씩 ‘닮음’으로 바꿔가며 결혼이라는 계절을 맞았다.


결혼식 날, 아버지의 굵직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맴돈다.
“싸우지 말고 잘 살그라.”
그 말이 축복이자 당부였다는 걸, 그때는 다 알지 못했다.


신혼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그 공기.
거실 한가운데 놓인 작은 식탁과, 그 위에 올려진 두 개의 머그컵.
그 평범하고 소박한 풍경이 왜 그렇게 가슴 벅찼는지, 지금도 설명하기 어렵다.
아마도, ‘이제 우리가 같은 지붕 아래 산다’는 단순한 사실이 모든 걸 충분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행복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서로의 생활 습관에 놀라고, 사소한 말투 하나에도 서운해진 날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 결심했다.
‘이 사람이 나와 다른 이유를 찾기보다, 나와 함께하려고 얼마나 애쓰는지를 먼저 보자.’
그 결심 덕분에, 우리는 단단해졌다.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
아이가 쉽게 찾아오지 않아, 조급함과 불안을 숨기지 못했던 날들도 있었다.

병원 진료실에서 마주 앉아 무언의 한숨을 내쉬던 순간들,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며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던 시간들.
그 모든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 오히려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웅이가 말했다.
“어제 꿈을 꿨는데… 창가에 미니장미 한 송이가 활짝 피어 있더라.”
그저 예쁜 꿈이라고만 생각했지만, 그날 아침, 내 손에는 두 줄이 선명히 찍힌 테스트기가 들려 있었다.

그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숨이 막힐 만큼 벅찬 기쁨이 밀려왔고, 웅이의 품이 나를 단단히 감쌌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기적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그 미니장미 한 송이는, 아마도 오랫동안 우리 마음속에서 자라 온 사랑의 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꽃은 ‘연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피어났다.


이제 우리 인생은 또 다른 계절로 접어든다.
밤마다 뒤척이며 울던 연이와 빈이가 자라 첫 발을 떼고, 첫 말을 하고,

세상과 마주하며 살아갈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웃고 울고, 다투고 화해하며, 여전히 서로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시간은 ‘우리의 첫 계절’이었다.
그리고 그 첫 계절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을 남겨주었다.

이제 새로운 계절이 시작될 것이다.
그 계절은 아이들의 웃음과 눈물, 그리고 우리가 함께 걸어온 발자국들로 차곡차곡 채워질 것이다.

창밖의 계절이 변해가듯, 우리의 새로운 계절은 아이들과 함께 피어나고 있다.


PS. 긴 글 끝까지 함께 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계절은 지금 어디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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