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서툼이 뒤엉킨 첫날밤
결혼식이 끝난 뒤, 식장을 나서는데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아빠는 마지막까지 무표정한 얼굴로 하객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손등에 힘줄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그 손은 결혼식 내내 내 손을 꼭 붙잡아 주었던 손이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손이 전하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신혼여행 조심히 다녀오고...”
아빠는 짧게 한마디만 하고, 그 큰 손으로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목 끝까지 차오른 울음은 꿀꺽 삼켰다. 그 순간, 내가 이 집을 떠난다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났다.
친정 식구들은 서울로 올라가는 관광버스에 하나둘씩 올랐다.
엄마는 창문 너머로 나를 붙잡듯 손을 흔들었고, 오빠는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가 멀어질수록, 가슴 속에 뻥 뚫린 빈자리가 커졌다.
하지만 이내, 옆에서 웅이가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이제 나랑 같이 가는 거야.”
그 한마디에, 내 빈 가슴에 살짝 온기가 스며들었다.
웅이 친구들이 마련한 피로연에 들렀다.
작은 식당이었지만 웃음소리와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야, 신랑! 이제 진짜 끝났다~!”
“신부님, 우리 웅이 잘 부탁드립니다!”
원래 계획은 **‘술 절대 금지’**였다.
한달 전 웨딩촬영을 마친 후, 웅이 집에서 술에 취해 저질렀던 흑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로 시어머니께 민망한 모습을 보인 뒤라,
결혼식 당일만큼은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피로연 자리에서 상황은 달랐다. 웅이 친구들이 잔을 번갈아 가며 건네며,
“오늘은 특별한 날인데, 한 잔 해야지!”
“신부님, 이건 축하주예요!”
라고 웃으며 권하니,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혼식의 긴장과 피로가 한꺼번에 풀린 탓일까, 한 모금이 두 모금이 되고…
결국 또 술이 술술 넘어갔다.
시간을 확인했을 땐 어느새 저녁 7시.
우리는 원래 저녁 8시 비행기로 신혼여행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지만, 몸은 이미 한없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공항에 가야 한다는 생각은 멀어져 갔고, 웅이는 취해 쓰러진 나를 챙기느라 분주했다.
결국 우리는 비행기를 놓쳤다.
친구들이 잡아준 근처 호텔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내 기억은 뚝, 끊어졌다.
다음 날 나는 머리속은 무거웠지만, 가벼워진 머리칼로 부스스 일어났다.
“여기 어디야? 이건..?”
웅이는 피곤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머리에서 나온 거야. 밤새 빼느라 혼났어.”
그제야 나는 모든 상황을 들었다.
지금부터 웅이에게 들은 그날의 기억이다.
호텔 방 안은 적막했다.
결혼식의 부산스러움도, 피로연의 웃음소리도 모두 사라진 자리.
침대 한쪽에 축 늘어진 채 꼼짝도 못하는 나를 보며 웅이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올림머리를 하나씩 풀어주기 시작했는데, 실핀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대체 이걸 언제 다 뽑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하나씩 빼다 보니, 그 수가 수십개는 되는것 같았다.
화장도 지워줘야 했다.
속눈썹은 어찌나 잘 붙어있던지 뗄때 아팠을것 같은데 꼼짝도 안하고
립스틱이 사라지자, 마치 결혼식 아침처럼 편안한 표정이 드러났다.
웅이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단다.
‘이게 무슨 신혼 첫날밤이냐… 내가 이 여자를 정말 데리고 살아도 되나…’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곤히 자는 얼굴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풀렸다.
작은 숨소리, 가만히 움직이는 손가락 끝까지 다 사랑스러웠다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동이 트고, 아침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 가슴 한쪽이 뜨겁게 조여왔다.
어제의 내가 떠올랐다.
웨딩촬영 후 시댁에서 있었던 실수 때문에 ‘술은 절대 안 마신다’고 다짐했던 나였는데,
결국 또 이렇게 웅이에게 손이 가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또 술 때문에… 이 사람을 이렇게 고생시키다니.’
머릿속이 수백 가지 감정으로 엉켰다.
부끄러움, 후회, 미안함… 그리고, 그 모든 걸 덮어버릴 만큼 큰 고마움.
피곤에 절은 얼굴로 나를 챙기고, 화장까지 지워주고,
밤새 실핀 빼준 그 손길이 생각나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웅이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손끝에 묻어 있는 어제의 온기와, 나를 향한 묵묵한 배려가 전해져 왔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감정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혹시라도 울면 오늘 하루가 더 벅차질 것 같아서.
하지만 속으로는 다짐했다.
‘이 사람한테, 더 잘해야지.’
그 순간, 어제보다 오늘 더 깊이 웅이를 사랑하게 된 걸 알았다.
PS: 신혼의 첫날밤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진짜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어요.
연빈의 여정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