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그날, 몰랐던 눈물의 의미

그날에야 알게된 아버지의 사랑

by 연빈

웨딩촬영의 민망함과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한 달간의 결혼 준비에 들어갔다.

집은 웅이가 살고 있던 인천 근처에 작은 전세집을 구했다.

방 두 개에 아담한 거실, 오래된 주방이었지만 우리만의 첫 보금자리였다.
창문 너머로 저녁노을이 들어오면, 낡은 벽지마저 따뜻하게 물드는 것 같았다.

주말마다 우리는 퇴근 후 곧장 가구점과 마트를 돌았다.
냉장고 앞에서는 ‘양문형이냐, 일반형이냐’로,

식탁 앞에서는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냐, 아니면 아담하게 두 명짜리냐’로 한참을 서성였다.

프라이팬과 냄비 코너에서는 또다시 의견이 갈렸다.
나는 “작은 건 금방 쓰게 돼”라며 두세 개씩 챙겼고, 웅이는 “큰 거 하나면 다 된다”며 웃었다.

“이건 없어도 되잖아.”
“아니야, 쓰다 보면 꼭 필요해.”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작은 실랑이가 이어졌다.

하지만 결론은 늘 같았다.
웅이는 내 손에 장바구니를 쥐여주며,
“네가 편한 대로 하자. 집에서 가장 오래 있는 건 너잖아.”
그 한마디가 마음을 포근하게 덮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물건 하나에도 서로의 마음을 담던 시간이었다.
필요한 것과 사치의 경계에서, 우리는 조금씩 ‘둘만의 집’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결혼식은 부산에서 하게 됐다.
우리 집은 두 번째 결혼이었지만, 웅이네는 첫 결혼이라 손님이 많았다.
서울 쪽 친척들은 관광버스를 대절해 내려왔고, 내 친구들도 기차표를 미리 끊어 부산으로 향했다.

결혼식 전날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엔 하루 종일 리허설 장면과 하객들의 얼굴이 번갈아 스쳤다.


2002년 11월 가을.


결혼식 당일 아침, 부산 하늘엔 가을비가 잠깐 스쳤다.
이른 시간 대기실 창문 너머로 부드럽게 떨어지던 빗방울이, 이내 고요히 그쳤다.
어른들은 “비 오는 날 결혼하면 잘 산다더라”라며 웃으며 덕담을 건넸다.
그 말에 긴장된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지만, 여전히 심장은 쿵쾅거렸다.

드레스를 입고 대기실 거울 앞에 서자, 하얀 원단이 어깨를 감싸며 낯선 무게를 더했다.

손끝까지 떨리는 가운데, 순서가 다가오고… 아빠가 내 앞에 섰다.
양복 소매 끝에 남은 빗자국이 유난히 선명했다.

“싸우지 말고, 잘 살그라.”
묵직하고 짧은 그 말에, 주변이 잠시 멈춘 듯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긴장과 설렘에 휩싸여 있었다.
버진로드 끝에 서 있을 웅이의 모습, 축하해줄 친구들,

이어질 예식 순서만을 생각하며 연신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였다.
아빠의 눈가가 살짝 젖어 있었다는 걸, 나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날의 기억 속 아빠는, 그저 무뚝뚝하지만 든든하게 내 옆을 지키고 있는 모습뿐이었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예식은 마치 숨 쉴 틈 없이 흐르는 강물 같았다.
축가가 끝나고, 여기저기서 사진 찍자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드레스 자락은 계속 밟히고, 머리 위로는 플래시가 번쩍였다.

양손엔 꽃다발이, 얼굴엔 웃음이 붙박이처럼 걸려 있었다.

그 사이 아빠의 표정은 카메라 뒤로, 인파 속으로 자꾸만 밀려나 보이지 않았다.

폐백이 끝나자, 시댁 어른 한 분이 다가와 낮게 말했다.
“사돈이 아까 우시던데?”

순간 귀를 의심했다. "저희 엄마가 우셨어요?" 하고 되물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버님이.”

그 말이 귓가에서 맴도는 순간, 가슴 속 어딘가가 찡하게 저렸다.
결혼식 내내, 나는 아빠의 눈물을 전혀 보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빠는 늘 무뚝뚝한 듯했지만 나에게는 오빠보다 훨씬 더 부드러웠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 일요일이면 꼭 나만 데리고 산에 오르셨다.

산 중턱쯤, 오래된 나무 간판이 걸린 작은 산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따끈한 우유를 사주셨다.

평소 흰 우유만 먹으면 배탈이 나던 내가, 그 우유만은 신기하게도 괜찮았다.

그 따스함이 목을 타고 내려갈 때, 아빠와의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중학교에 들어서던 어느 날 밤, 아빠가 술에 취해 들어오셨다. TV를 보던 내게 툭 한마디를 던졌다.
“갖고 싶은 거 없나?”
순간 머뭇거리다 화면 속에서 기타를 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장난처럼 말했다.
“기타 갖고 싶어요.”
그저 술기운에 나온 대화라고 생각했기에, 나 역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다음 날, 아빠가 이른 퇴근을 하고 나를 부르셨다.
“종로 가자.”
“왜요?” 되물었지만, 아빠는 대답 대신 미소 비슷한 표정만 지었다.

종로 악기상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어제 내가 한 말을 아빠가 그대로 마음에 담아두고 계셨다는 것을.

그날, 세고비아 기타를 손에 쥐었을 때, 말 대신 건네진 그 무게 속에서 아빠의 마음이 전해졌다.

아빠는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결혼식 날, 그 손이 내 손을 꼭 잡아주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아침에 잠시 내린 가을비가 그쳤고, ‘비 오는 날 결혼하면 잘 산다’는 어른들의 말이 들려왔다.

그 순간, 나는 웃음꽃을 피운 채 입장했지만, 아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보지 못했다.

나중에야 누군가 전해준 이야기 속에서, 그 울음은 무뚝뚝한 사람의 가장 솔직한 축복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날 그 손의 온기와 떨림은, 내 마음 깊은 곳에 평생 남아 있을 것이다.


PS. 시간이 흘러서야 알게 되는 마음들...

연빈의 여정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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