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안녕, 도이!
오랜만이지?
나 그동안에는 펜션에 있던 모든 짐을 빼고 원래 살던 아파트로 이사를 왔어.
사실 짐 옮긴 지는 좀 됐는데, 도저히 정리할 힘이 없었어. 대충 잠자리만 정리하고 그렇게 며칠을 지냈어.
출퇴근을 하게 된 거지. 내 후임 상주 부부는 아직 무소식이긴 한데, 일단 그렇게 하라니까 나야 좋지.
성수기가 끝나고 객실 가동률이 확 줄긴 해서 내가 없어도 충분히 잘 돌아가나 봐.
하긴 원래 내가 없었어도 어떻게든 돌아갈 곳이었을 거야.
이젠 무슨 직장에 다니던지 책임감은 조금 덜어내고 살래. 그래도 될까..?
대표님이 일하면서 기쁘고 즐거웠던 기억이 있냐고 묻는데,
생각해 보니까 한 번도 없었어. 나는 거기서 말 그대로 무너져버렸어.
초기에는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 때문에 그랬고
나중에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주는 스트레스랑 외부 인력관리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
결정적으로 상대적인 여유가 있는 시간에도 스위치를 끄지 못하고 내 개인 작업에 충실하지를 못했으니까.
안 맞는 일이었고, 업무량은 과중했어. 의심 없이 그렇다고 생각해.
그냥 그 환경에 매몰되어서는 술 담배에 찌들어 있었어.
이제 다 씹어먹을 수 있겠다는 시기는 지났나 봐. 아니면 지금껏 살아온 방식이 뭔가 잘못되었거나.
그냥 머리 박고 돌진하면 안 되는 건 없을 줄 알았는데. 오늘의 내 모습이 그건 틀린 거라고 말해주네.
회복해야지.
웃음을 되찾고 다시 나를 잘 달래서 걸어가봐야지.
난 어제에 이어서 또 집에서 쉬고 있어.
원래 화요일만 쉬는 거였는데 오늘도 쉬라네?
왠지 '팽'당한 느낌이지만, 오히려 좋아. 어제 집 대청소 하다가 허리를 삐끗하기도 했고, 아직 발바닥의 통증이 남아있어서 조금 더 쉬면 좋지. 펜션 안정화 되고 맘 놓고 여행 갈 때를 대비해서 몸 상태를 만들어 놓아야 하니까.
먹고살 걱정은 어쩌냐고? 괜찮아.
8월에 두둑하게 받았고 조금 뒤에 인센티브도 추가로 받기로 했어. 열흘은 더 쉬어도 될 것 같아.
오늘은 그냥 뭐 밤에 산책 갔다가 (결국 못 참고 야식 혼술하고) 10시간 넘게 푹 자고 일어나서 종일 유튜브를 봤어.
약소하게나마 남은 집안 일도 좀 하고. 나름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어.
지붕 밑에 몸 누일 내 공간이 있다는 건 참 소중한 일이야.
정신이 바짝 들어있을 때는 어디 산속에 굴러들어가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해가 몇 개 지나고 나니까 그럴 자신이 없다. ㅋㅋㅋ 겁도 좀 많아야지.
그냥 고즈넉한 시골 동네에서 자그맣게 살고 싶어. 이사 안 가도 되는 온전한 내 집이었으면 더 좋겠고.
겨울 되기 전에 돈을 좀 모아두고 어딘가 지방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볼까 해.
네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다르게 여기는 지금 인구가 점점 줄고 있어.
당연하게도 상대적으로 살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지역은 인구가 빠르게 줄고 있지.
그런 '지방 소멸'문제를 막기 위해서 다양한 지자체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는 상황이야.
마냥 기뻐할 현상은 아니지만 나처럼 돈은 없는데 한적한 곳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조용히) 박수 칠 일이지.
'한달살러'라는 사이트도 있다구. 여기를 통해서 한번 다녀올까 해.
뜬금없이 '부여'가 눈에 들어오는데... 충청도가 궁금한데..
김해도 가봤고, 경주도 가봤고 한데.. 나 아직 백제 맛을 못 봤다고.
참고로 지금까지 나름 살아보고자 했던 곳은 꼭 가서 살아봤다?
기대해... ㅋㅋㅋ 네 단짝 '사로'의 이야기를 단단하게 만들어야지.
혹시 알아? 올 겨울엔 '백제문화단지' 매표소에서 일하고 있을지도?
좋은 소식이 있어.
비흡연을 선언한 지 일주일이 넘었어. 잘했지?
왠지 이제는 정말 끊을 수 있을 것 같아. 생각도 잘 안나.
이젠 남은 녀석은 술인데.. 밤에 아싸리 일찍 자야지.... ~_~
이제는 나를 갉아먹으면서 살지 않을 거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그렇게 해서는 나는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는 사람이니까.
나를 간단하게 갈아치울 수는 없으니.. 잘 달래가면서 나랑 친하게 지내야지.
그냥 차근차근, 꾸준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로 하루를 채워가려고.
속도를 내는 건 그게 익숙해진 다음에 해야 할 일인 것 같아.
이제 식단도 좀 관리를 하려고.
어제오늘 아침에는 방울토마토랑 바나나, 맥반석 계란 2알을 먹었어.
공복에 맨 처음 들어가는 음식이 중요하다고 하더라고.
이제 견과류나 요거트 류를 섞어가며 먹어야지.
그리고 끼니때 영상 같은 거 보지 않고 먹는데 자체에 집중하려고.
꼭꼭 씹어서 식사하는 행위 자체에 집중할래.
이제 냉장고 중고 구매를 하러 나가봐야 해.
내 차에도 실리는 적당한 크기로 구매를 하려고.
세탁기는 없어도 냉장고는 있어야겠더라. 효율적인 식단 관리를 위해서라도 말야.
돌아오는 길에는 통닭을 좀 사야겠다.
그러고 일찍 자서 내일 출근 전에는 활을 좀 쏘고 펜션 들어갈 거야.
사우 어르신들은 내가 거의 한 달을 안 나와서 관둔 줄 아시겠다.
후. 다시 새 출발 하는 거야.
조만간 또 연락할게.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