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큰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는 큰 변화가 있는 한해였다. 7살 4월에 이사 왔지만, 유치원을 이동하지 못해 집에서 먼 유치원에 보내느라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8살이 되어서는 새로운 학군의 친구들을 사귀느라 적응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긴장된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로부터 세 계절이 지나고 마지막 겨울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나는 그 무어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아이의 생활에서도 같은 관점으로 많은 일이 진행되곤 한다. 아이들의 놀이시간을 존중해 주고 친구와의 만남을 우선순위에 놓는다. 1학년 처음 학교에 보내고선 한 달가량을 학교 앞, 학원 문 앞 등 여러 곳에 기웃거리며 친구 엄마의 전화번호를 얻기 위해 노력했던 눈물 나는 시간이 떠오른다.
어제는 학교에서 처음 만나 친해진 친구네 엄마와 아이들만 데리고 카라반 캠핑장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이 친구도 우리 아이와 마찬가지로 학군지가 아닌 다른 직장어린이집을 졸업했기에 이 동네에 특별히 친한 친구가 없었다. 우연히 학원에서 만났고 그길로 연락처를 주고 받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엄마도 나와 동갑에 맞벌이 가정이었다. 나와 비슷한 육아관을 가진 엄마는 은근히 말이 통하는 점이 많았다. 우리 집과 마찬가지로 8살 5살 두 딸이 있었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공연을 같이 보러 가기도 하고 여름엔 두 가족이 함께 물놀이를 가기도 하면서 아이들도 친해지고 우리도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아이들만 데리고 미즈 캠핑을 떠났다. 그곳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주변의 시선과 서로의 교육관을 공유하게 되었다.
배움에 있어 중요한 건 무엇일까? 유아기의 시기에는 즐거움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 입학과 취직이라는 특수 상황을 제외하고서는 관심사와 즐거움이 우선된 배움이 재미있고 의미 있지 않을까. 뒤돌아보면 강요에 의해, 필요에 의해 배워왔던 수학과 물리, 열역학과 재료공학이 내 인생에 그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숱한 국,영,수 과목들로 평가받았겠지만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건 바른 인성과 됨됨이 정도가 아닐지 생각해 보면 지나치게 공부에만 연연하는 건 오히려 사회생활에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본적인 생각을 하는 나이기에 아이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에 대해선 그리 강요하지도, 권하지도 않으면서 아이를 키워왔다.
그런데 세 계절을 지내고 보니 학교에 가는 일은 유치원과는 또 다른, 더 큰 세계에 발 담그는 일이었다. 언제나 보호받기만 하던 존재에서 때론 스스로 해야 할 일도, 본인이 결정해야 할 일도 많아지는 나이라고 해야 할까. 많이 보고 배우고 노는 과정에서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습관도 길러야 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들춰봐야 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그렇다고 엄마의 호기심 또한 함께 자라는 건 아니기에 많은 일에 인내를 가지고 자라는 아이를 살펴봐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걸 깨닫는다. 주변 아이의 속도와 비교하지 않고 내 아이의 속도와 성향에 맞게 지원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임을, 잊을 뻔했던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한번 되뇌어본다.
그렇게 세 계절을 지내고서야 친구 사귐도 배움도 결국은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자신의 속도로 잘 해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일은 부모가 발 동동 구른다고 당장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해왔듯이 사랑하는 마음 가득 담아 응원자의 위치에서 아이 곁에 머무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