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어, 방을 한 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일주일에 두어 번 와 있을 곳이 필요해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한옥 쪽을 가리키자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글씨,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 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라제마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 짓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 놓으라는 말도 못 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말속에
내가 이미 세 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걸.*
좋아하는 시를 다시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시는 우리에게 잊고 있었던 어떤 것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 세를 얻으러 돌아다니는 와중에 어느 집에 들어가 집주인에게 빈방이 있는지 물었을 때 빈방이 있지만 마음으로는 쓰고 있다는 주인의 말에 세 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시인의 문장은 우리가 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혹은 어떤 마음과 정성을 가져야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오래된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당장 눈앞의 것들을 바라보며 좇는 게 아닌 마음으로 채우는 어떤 것들이 있어야 하는 것. 그리하여 그러한 마음을 전하는 말에 잘 담았을 때 우리는 그 안에서 따듯한 방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을 시인은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시는 나로 하여금 마음을 돌아보게 하고 말을 데우게 한다.
나의 말이 당신에게도 가끔 머물다 갈 수 있는 방이 된다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는 때때로 차가운 세상으로부터 서로를 품어줄 수 있기를.
*나희덕 <사라진 손바닥> 시집의 <방을 얻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