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파가 생기면 일어나는 일
따로 명상이나 요가 같은 걸 하지 않고도 생활에서 수행을 하게 된다. 단순한 행위가 반복되다보면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리듯 어지러운 마음이 가지런해지고 고요해진다. 행위 자체에 집중했을 때 그렇다. 그러다가 문득 깰 때가 있다. 내가 뭐하는 짓이지, 미쳤네 미쳤어,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고, 오금이 저려오고, 한심하고 허무한 마음이 고요한 마음을 휘젓고 다닌다. 효율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렇다. 늘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어제도 그랬다. 빨간 지붕집 할머니가 밭에서 실파를 한 움큼을 뽑아주셨다. 직접 농사지어 나눠주신 거라 감사히 먹긴 해야 되는데 실파의 곱고 가느다란 자태를 보니 깊은 한숨이 나온다. 일단 흙이라도 털어보자며 파를 움켜잡고 물에 흔들어 씻어본다. 흙은 떨어져 나갔지만 한숨이 나오는 건 마찬가지. 일단 조금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달려들어 한 올 한 올 다듬기 시작하니 이태리 장인의 한 땀 한 땀 정신이 생각난다. 파의 알싸한 냄새에 취하고 뭔가 정신 승리를 일궈내고 있는 듯한 뿌듯함에 취하다 보면 내가 파를 다듬는 건지, 파가 나를 다듬는 건지 모르겠는 무아지경의 경지에 오른다.
그렇게 아름다운 수행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나의 마음은 참으로 취약하다. 한 올 한 올 짜여진 정신줄이 느슨해지기 시작하고 그 틈으로 유혹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문득, 내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어 집어 치우고도 싶지만 손은 이미 관성에 올라탔기에 쉽사리 멈춰지지 않는다.
온갖 유혹을 떨쳐내고 불굴의 정신력으로 마지막 한 올까지 끝냈을 때 짜잔,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니! 멀리서 반가운 친구가 오는데 때마침 비님도 내려주신다. 뭐야? 먹을 복 있는 친구와 분위기 파악 잘 하는 날씨 좀 보소!
나이스x2 타이밍!
실파 가득 넣고 파전을 부친다. 이태리 장인 정신이 깃든 파전은 처음이지? 저 멀리 강남에서 경기도 변두리까지 놀러 왔는데 파전만 실컷 먹여 보내네. 나의 친구 대접은 이리도 극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