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오행](2023)_격리시절 13
습관적으로 물을 올리고 선반을 열었는데
텅 비어 있다
커피가 없지, 참.
어제 아침 블랙커피 통을 다른 곳으로 옮겼었다.
가능한 집에 있을 때 커피를 덜 찾자는 나름의 의도를 심어 그렇게 해 놓고는 까맣게 잊고 오늘 아침 다시 커피통을 찾는 손.
많이 줄인 편이긴 하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 편이니 이렇게 며칠만 지나면 또 마시는 양이 줄어들 것이다.
월화 드라마를 한동안 제대로 챙겨보지 못할 것 같다.
멋진 로맨스 드라마는 가슴이 떨려서도 못 보겠더라,
손끝이 닿을 듯한 그 순간의 설레임을 생방으로 보는 일은 그래서 가끔 힘들다.
박준영과 채송아가 걷던 돌담길,
둘은 손이 닿을 듯 말 듯 했다.
그 이후 어떻게 되느냐가 둘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것이다.
일, 사랑.
모든 것이 치열한 스물 아홉.
학교 운동장을 내려다보며 차 한잔 더 하고 싶고
절절한 로맨스의 떨림은 오래 느끼고 싶지만,
커피를 치우고
TV에서 조금은 눈을 떼 보자.
조금 더 바빠져보자.
참 재미없게도 산다.
이 재미없는 격리시절에도 가을이 왔다.
가을 그리고 아침...
변화의 시작은 작은 한걸음.
널부러져 있던 액자와 엽서를
문 앞으로 옮겨둔다.
가을 아침이고, 커피도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