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격리 시절 2
[식물보다 못한 한 인간에 대하여]
2020. 11. - 2021. 6.
쓰다만 일기들이 서랍에 저장된 기간.
2020년 11월부터 서랍 속에 넣어둔 일기들이 반년이 넘도록 먼지만 먹고 있었나 보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고 시인이나 소설가는 꿈꾼 적도 없어서 따로 쓰는 습작도 없다. 창작을 배운 적도 없으니 쓸 수 있는 글은 언제나 일기뿐이다.
일기는 우선 탄탄한 구조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시간순으로 나열해도 시작할 수 있으니까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마음대로 생각해도 당장은 문제가 안 된다. 시나 소설 같은 작업도 아니고 일기만 써내는 수준의 인간이 그마저도 멈췄으니…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 나도 기억을 못한다. 흔적이 없다.
죽은 시간들.
규칙적으로 해내는 루틴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 나는 규칙적으로 하고 있는 습관이나 취미가 진정 하나도 없다. 게으르다. 하다 못해 하루 30분의 산책과 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강아지들도 만드는 규칙적인 습관이 없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산책을 했다는 칸트 아저씨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가 되겠다.
기억을 더듬으며 그때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채워볼까 생각도 했다. 몇 달 전 고민했던 대로 브런치 공간을 지인과 협업으로 채워보는 게 차라리 나았을까. 이미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동료들과 함께 다음 블로그를 만들어 운영하다가 닫은 경험, 다음 브런치의 글들을 모두 지우고 탈퇴해 본 경험이 있으므로 채우는 데에 이제는 급급하지는 않기로 했다.
쓰다만 일기나 습작들을 버리는 일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시인이나 소설가들, 작가들에게 초안은 아주 중요하기도 해서 쉽게 버릴 수 없다. 그런 작가들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쓰다만 일기들은 언제나 나를 불편하게 할 것이다. 미지근한 상태는 소속이 없다. 쓰다만 글은 제목도 완결도 되지 못한 채 죽어갈 것이다.
서랍 속 일기는 그냥 두기로 했다. 게으름에 대한 일종의 벌이다. 어떤 이들은 오래전 이야기들, 학창 시절의 기억들, 추억 속 이야기들을 정말 잘 기억하고 그 순간순간을 기록하던데 나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너무 오래되어 지금은 한 장의 사진처럼만 남은 기억들을 글로 쓰다 보면, 조금씩은 장면을 연결해야 하고 일기라고 하기에는 왜곡될 것만 같다.
꽃이 피는 과정은 상상할 수 없는 인내라는데, 하물며 버리다시피 둔 선인장도 매일매일의 루틴을 견디고 바람을 견뎌, 꽃을 피워내기도 하는데, 그동안 마무리하지 못하고 포기해 버린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계획만 거창했다.
능력이 없어서 좋은 결과에 가 닿지 못한 시도들은 차치하고라도, 연습과 훈련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던 일들도 해내지 못했다. 나이를 이만큼 먹도록 사소한 습관 하나 잘 가꾸지 못했다. 꾸준함이 주는 달고 단 보상은 그 시간을 이겨낸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 꾸준하기보다 벼락을 칠 듯 몰아서 해 낸 일이 더 많았던 나는 벌을 받아야 하겠다.
다음과 같이 판결하기로 한다.
ㅡ
[주문]
게으름으로 인해 죽은 시간을
억지로 재생하지 말 것.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것.
ㅡ
잠시만 멈춘다는 게, 한참을 멈춰 버렸다. 잠시 손에서 놓는다는 게,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쓰다만 일기들은 그냥 두기로 했다.
버리다시피 두었던 선인장 화분은 오늘 꽃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