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지망생의 정체성
정형적인 쪼잔뱅이 스타일.
혜성같이 나타나 신기한 매력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단박에 사로잡았던 한 무명 가수가 자신에 대해 한 말이다. 뭐, 그 후엔 독보적인 스타일의 엄청난 유명가수가 됐지만서도.
남 잘 되는 꼴을 잘 못 보는 정형적인 쪼잔뱅이 스타일은 질투와 시기의 힘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그랬다. 오직 글쓰기, 소설에 관해서만.
딱히 작가가 되고 싶어 문학을 전공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작가보다는 평론가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냥 이야기가 좋았을지도. 특히 인간의 이야기가.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시인이 되고 싶은지 소설가가 되고 싶은지 오락가락하는 과정을 겪는다.
어느 날은 밤새 되지도 않는 시를 끄적이다가 또 어느 날은 고전 소설을 읽으며 가슴속에 뜨거운 인물들을 그리기 시작하기도 한다.
물론 이도 저도 잘 안 되는 게 문학 범인들(?)의 결론이긴 하지만.
그러다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정말 내가 점점 소멸되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던 어느 날,
나는 아이가 잠든 깊은 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학원 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당연히 대학원에 간다고 글이 술술 써질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문학을 이야기하는 곳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혼자서 끙끙대는 것보다 좀 더 체계적으로 문학적 글쓰기를 배우면서 글을 쓰다 보면 마음에 쏙 드는 소설을 한편이라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재생산하면서.
국내 문학상 수상작들은 기본이고 유명한 작가들의 소설들을 처음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게걸스럽게 읽으며 그렇게 읽고 쓰기가 아주 조금씩 쌓여갈 무렵 철옹성 같던 등단의 문이 아주 살짝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뭐, 엄청 파워가 있는 막강한 신문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신춘문예당선 소설집에 이름이 실릴 수 있는 신문사 신춘문예 최종심까지 올랐고 이후 한 기업의 문학상에서 입선을 했다.
인생은 기세인데, 그때 그 기세를 몰아 소설 쓰기에 온전히 매달려야 했으나, 역시나 인생은 참 다르게 흘러갔다.
그렇게 한참 소설의 세계를 들여다보지도 않으면서 나는 새로 나온 신인 작가나 미디어가 추천하는 소설작품이 있으면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는 일부러 모른 채 쌩쌩 지나쳤다.
정형적인 쪼잔뱅이 스타일인 것이다.
잘 쓰는 사람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재능이 나에게도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TV에 나와 이 표현을 했을 때,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회사일을 하면서도 상담 공부를 하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소설에 대한 마음을 접은 적이 없다.
물론 예전만큼 왕성하게 소설을 많이 읽지 못하고 또 선뜻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지만,
소설을 쓰는 일은 기한도 제약도 없는 완전한 자유의 영역이다.
책상과 의자, 그리고 노트북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소설이 언제나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다고 느낀다.
언제든지 다가가면 다정히 손을 잡아주며 그 간의 있었던 재미나는 이야기를 쫑알쫑알 들려줄 것이라고 믿는다.
문학은, 소설은,
나 같은 쪼잔쟁이 스타일도 충분히 안아 줄 수 있는 너른 품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