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사도 했고 유럽여행도 다녀왔어
안녕 오빠, 오랜만에 오빠한테 편지를 쓰네
브런치 한 작품 당 30회까지만 쓸 수 있어서
2회밖에 안남아서 꼭 할말 있을 때 쓰려고 아껴뒀었어
주말 내내 오빠가 많이 생각이 나고 보고 싶었어서 오늘 편지를 써봐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는데
먼저, 나 어제 이사를 했어
오빠가 고시원 구매를 하고부터 수원이 동네가 되었으니
벌써 수원이 익숙해진지도 7년이 지났네
수원에 자리를 잡고
우리 가족들도 수원으로 이사를 가고
참 오랜 시간을 보낸 동네라는게 더욱 더 느껴진다.
오빠 가고 나서
이사갈지 말지 엄청 고민하다가
가족 없이 혼자 지낼 자신이 없기도 하고
오빠와 지낸 동네를 떠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수원에서 가족들이랑 지냈는데
요즘은 내 공간이나 내 시간이 너무 없는 것 같아서
갑작스럽게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됐어
회사만 아니면 수원이나 지방에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휴직하고 회사를 안가는데도
서울에서 자취를 하다니 좀 웃기지 않아?
알고보니 나 서울 좋아했는지도...
내가 고시원 팔지말자고 했는데
오빠가 고시원 급하게 정리했을 때
아쉽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사가려고 보니까
나한테 말은 안했지만 남겨질 내가 고생할까봐 빨리 정리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제와서 돌아보니 오빠가 어떤 마음으로 주변을 정리했을지 마음이 많이 아파
또, 알면서도 모르는 척 외면할수밖에 없었던 내가 밉기도 하고
그냥 그저 그렇게 기적이 일어나서 오빠가 내 옆에 있어주기를 바랬던 내가 안쓰럽기도 해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오빠한테 든든한 사람이 되고 싶어
돌아보면 오빤 아플때도 내 걱정뿐이었는데
나는 오빠가 아픈거보다도
오빠 없이 혼자 남겨질 내가 걱정되기도 했었던 것 같아서
그 점이 너무 미안해
혼자 남겨질 내 걱정 말고
오빠 마음은 어떨지 조금 더 들여다봐줬더라면
오빠가 나한테 오빠 마음을 더 얘기해줄수 있었을까?
무섭고 두렵다고 내게 얘기할 수 있었을까?
그러면 오빠 마음이 좀 더 편안해졌을까?
연애할때도 그렇고 오빠 아플때도 그렇고
오빠는 나한테 큰 힘이 되어줬었는데
나는 그저 어린아이처럼 오빠 옆에 있어만 준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워
내가 힘들때는 늘 오빠가 옆에서 참 많은 도움을 줬는데 말이야
수원 집 짐을 하나 둘 정리하다보니까
오빠가 잘해준 것들이 하나 하나 생각나더라고
당시에는 잘 몰랐었던 것 같아
오빠가 프로포즈 했을 때 적어주었던 쪽지도 잃어버렸었잖아
짐정리하는데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르게 갑자기 나오더라?
짤막한 몇마디인데 지금 보면 오빠답게 참 담백하게도 잘 적은 것 같아
짧은 몇마디를 적으려고 얼마나 고민했을지 눈에 선해
"2000일동안 무뚝뚝한 나 만나느라 고생했고 그래도 나를 만나고 사랑해줘서 고마워.
우리 지금 이대로 행복하게 오래도록 함께이면 좋겠어. 나랑 결혼할래?"
이 짧은 쪽지를 노래 두 곡이 끝나도록 반복해서 읽었어
하필 그 노래가 "오르막길", "천상연"이라는 노래였다?
오빠 중간에 괜찮아져서 결혼하려고 준비했을 때
축가로 오르막길 불러달라고 했더니
오빠가 부르면 진짜 너무 오르막길 같아서
이미 오빠와의 시간이 오르막길이라서 나한테 미안해서 못부르겠다고 했었잖아
그 얘기가 생각나서 슬펐는데
이어서 천상연이라는 노래가 나오더라?
근데 뭔가 진짜 오빠가 나한테 하는 말들 같아서 엉엉 울었어
작년 노래인데 오빠도 알려나?
오빠가 나를 지키지 못하고 떠났다는게 미울때도 있었는데
노래 가사가
너를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
너의 행복한 모습을 보기를 원한다,
새롭게 시작해라,
이런 말들이었어
오빠가 지금 하늘에서 나를 지켜보며 내게 해주는 말 같아서 너무 슬펐어
-
사랑해 널 잊을 순 없을 거야
미안해 너를 지키지 못한 것을
너의 행복한 모습 나 보기를 원해
부디 새롭게 시작하길 바래
하늘이 우리를 갈라 놓지만
눈물로 너를 보내려고 하지만
너를 얼마나 내가 사랑했는 줄 아니
영원히 너를 지켜보며 살 거야
행복하길 바래
-
나는 그래도 아마 오빠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그리고 처음보다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여전히 오빠 생각만 하면 마음 아픈건 똑같지만
그 아픔과 함께 하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최근에는 시우랑 같이 유럽도 다녀왔어
파리 갔다가 스위스 갔다가 이태리까지 갔다 왔는데
이태리 가니까 오빠 생각이 많이 나더라
이태리로 신혼여행 가려고 미리 티켓 샀었는데
결국 다 취소돼서 못가고 환불신청했었잖아
이태리 가니까 이런저런 곳을 다니면서
오빠가 좋아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래도! 음식은 맛이 없었어
그러니까 너무 아쉬워하지는 않길 바래
그래도 유럽을 가니까 좋던데
오빠가 유럽 한번도 못가본건 조금 아쉽다.
지금 자유로운 몸으로 여기 저기 다니고 있는거면 좋겠다.
나는 이렇게 하나하나 해보며 어떻게든 다시 살고 있는데
오빠도 그곳에서는 편안할까 그곳에서는 잘 지내고 있을까
생각이 드는 많이 요즘이야
내가 점점 잘 지낼수록
점점 일상으로 돌아갈수록
나만 잘 지내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오빠 주변분들은 아직도 날 많이 챙겨주셔
다음주에도 차장님이랑 점심 먹기로 했어
다들 너무 감사해
그리고 오빠 주변분들을 만나서 시간을 보낼때면
오빠가 없는게 실감이 나서 힘들때도 있지만
오빠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 기억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람은 원래 기억 속에 산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그 말이 내 가슴 속에 깊게 박혀서
그래도 오빤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았으니 말이야
나는 사실 아직도 오빠가 떠난게 믿겨지지가 않아
그리고 믿지 않아야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
그래도 나 잘지내는거 응원하고 있는거 맞지?
오빠라면 나 지켜봐주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줄 것 같아
그런 믿음이 내게 있어서 다행이고
그 믿음으로 하루하루 다시 살아가볼게
그러니까 오빠,
나 잘 지낼 수 있게 응원해주고 지켜줘!
아니면 나 안지켜줘도 되니까 오빠 잘 지내, 알겠지?
오빠도 꼭 잘 지내고 있어!
늘 고맙고 미안해
나 또 잘 지내다가 마지막 남은 한 편쓰러 또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