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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Oct 01. 2021

비워낼 수록 행복해지는

간혹 나는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물론 지금도 약간 남아있을 수도 있다).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알고, 적당히 눈치도 있고, 사람 사는 일도 거기서 거기인 거 알겠고, 뭘 더 알아야 해?'(이 생각을 10대 때도 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어른이 될수록,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할수록 어려운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는 그것에 대해 잘 모른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의 감정과 욕망들을 조절하는 능력이다.


자주 비워내면 평범해진다


모든 이치를 깨우치고 있고, 스스로 성숙하고 고고한 존재로서 더 이상 알아야 할 것도 없고, 배울 것도 없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나의 잘나고 멋진 모습만 밖으로 계속 드러내기 참 바쁘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어딘가에 해소하고 있고, 내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특별하다고 자부하는 순간, 마음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스럽게 뚱뚱해진다. 뚱뚱해진 마음은 밖으로 뱉어내야 직성에 풀리기에, 나의 남다른 모습들을 계속 찾아내어 잘 보이는 곳에 노출시키는 일에만 바쁜 것이다. 그러나, 정말 멋있고 아름다운 사람은 자주 비워내는 일에 능하고 적당한 시시함을 즐길 줄 아는, 평범한 사람이다.


대체로 우리의 일상은 일정한 흐름으로 반복된다. 큰 이벤트가 없는 한, 내가 알고 있는 루트대로 평범하게 흘러간다. 이러한 시시함 마저 즐길 줄 아는 사람은, 미소를 짓는 일이 잦다. 스스로 평범하다고 느끼니까, 이 세상에 공부할 것들도 많고 알아야 할 것들도 많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보통의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편한 것이며 행복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평범한 일상, 특별한 발견


올해 초, 러닝 크루에서 친해진 언니가 한 명 있다. 같은 오피스텔에 살기도 하고, 대화도 잘 통해서 금세 친해졌다. 우리는 이따금씩 맛있는 식량이 생기면 서로 챙겨주는 패턴(?)이 생겨서 왕래가 잦은데, 최근에 언니를 만났을 때 신선한 경험을 했다. 언니는 클라이밍 수업을 막 마치고 왔다면서 '오늘 나보다 더 잘한 사람이 있는 거야. 진짜, 위기의식 느꼈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언니의 표정은 세상 행복해 보였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서 이것이 진짜 위기를 느낀 사람의 모습인가? 싶을 정도였다. 질투가 나거나, 정말 자신이 못해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어머, 저 사람 잘하네! 놀라운 사실이야'라는 새로운 발견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퇴근을 하고 운동을 가느라 분명 피곤했을 텐데 그런 기색도 없이, 평범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며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식량만 주고받고 헤어지느라 길어봤자 약 3분 내외의 대화였다. 난 언니의 저 한 마디의 여운이 꽤나 길었다. 이런 평범하고 시시한 일상도, 특별한 발견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비워내는 것에 능한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시간을 쏟지 않는다. 그보다 눈앞에 놓인 일들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의 관심사가 '나'에서 '외부'로 바뀌는 것이다.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세상을 특별하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 가수 양희은이 '엄마가 딸에게'라는 노래에서 부른 가사처럼, 어른이 되어도 이 세상엔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고,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삶인 거니까. 평범한 '나', 그리고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주 비워내고, 좋은 것들을 채우고, 웃음을 잃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요즘 실천하고 있는 일은, 마음도 자주 비우는 일도 일이지만, 내 방도 자주 청소하는 일이다. 31년 동안 복잡한 마음을 품고 살만큼 내가 쓰는 공간조차도 꽤나 복잡하게 살고 있었다(그냥 청소를 잘 안 했다). 쓰레기통도 자주 비우고, 꽤나 자주 청소를 한다고 생각했는데(실천한 지는 약 2주 정도 되었다) 이번 추석에 어머니가 오시더니 방이 너무 더럽다며 음식만 보내주시고는 바로 집 밖으로 나가셨다.


역시나, 뭐든 비우는 일은 힘들다.

그래도, 대체로 평범한 나를 칭찬해!


글 여미

커버사진 여미 

yeoulhan@nate.com


나만 청소 싫어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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