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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Oct 02. 2021

평범한 휴일

휴일엔 보통 샌드위치를 먹는다. 


에그 마요에 베이컨을 추가하여 올리브를 듬뿍 넣은 샌드위치를 가장 좋아한다. 평일에 간단히 때우는 식으로 먹는 샌드위치의 맛과 휴일에 자유를 느끼며 먹는 맛은 매우 다르다. 자유를 듬뿍 머금은 빵은 내 마음 같아 반갑고, 아삭아삭한 야채의 시원함은 쌓인 피로를 풀어주며, 달달한 계란과 토마토, 올리브의 조합은 남은 오후를 알차게 보내기 위한 준비운동 같은 역할을 해준다. 든든하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한 끼, 바쁜 일과 사이에 방해꾼처럼 소멸해야 하는 용도와는 달리 휴일의 샌드위치는 정서적 안정감을 동반하기 때문에 은은하니 더 맛이 좋다. 


샌드위치를 나무 그릇에 옮겨 담아 커피와 함께 먹는다. 한 입 물때마다 잘게 썬 야채들이 입가 사이로 튀어나오기도 하고, 계란 덩어리들이 툭 떨어져 금세 반듯한 모양을 잃어버리지만 옷자락에 대강 닦은 손으로 모양새를 만들어서 아무렇게나 주숴먹는다. 그렇게 어딘가에 빨려 들어가듯, 나의 휴일에는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샌드위치의 세계로 흠뻑 빠져버리곤 한다. 


평범한 휴일


약속은 대체로 일요일에 잡는다. 토요일은 샌드위치를 꼭 먹어야 하니까, 그리고 남은 커피에 책도 읽어야 하고 창문 너머 일몰이 지는 풍경도 봐야 하고, 저녁엔 산책도 해야 한다. 이상하게 회사를 가는 평일에는, 주말에 거창한 계획들을 세우게 된다. 진로 고민에 이직 준비도 하고, 자격증 공부도 해야지, 하는데 막상 휴일이 되면 그 누구보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느긋이 일어나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고, 음악을 듣고,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을 백팩에 넣고 카페에 가고, 빨래를 돌리는 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산책을 하거나 달리기를 한다. 그렇게 토요일을 보내면 그다음 날 오전에는 등산을 가야 하고, 땀을 흘린 뒤 먹는 밥맛에 행복해하고, 남은 시간에는 다시 책을 읽고, 아, 또 월요일이 다가왔구나, 하며 저녁을 보낸다. 생각보다 사람은 급한 일이 없으면 익숙한 일들을 먼저 하는구나, 싶은 거다. 평범한 휴일을 보낼 수 있다는 건, 별 일이 없다는 것이고, 그건 꽤 별일 없이 잘 살고 있는 건가(사실하기 싫은 일은 미루고 미루는 거일 수도 있다).


얼마 전, 3년 전 만든 단편영화가 또다시 어느 영화제에 초청이 되어 인터뷰를 할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다.  학교를 졸업 후, 영화계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이제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아닌, 평범한 회사원인데 참 오랫동안 여러 곳에 상영되고 있었다(물론 감사한 일이지마는, 이따금씩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사실 회사를 핑계 대며 가지 않을 려고 했는데, 타이밍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이번 달엔 근무시간이 바뀌어서 5시 퇴근하는 날이고, 인터뷰 시간은 그쪽에서 제안한 시간에 얼추 맞을 것 같았다(이럴 때만 기가 막히게 상황이 따라준다). 불러주는 일은 참 고마운 일인데,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몸이 움직이는 것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도망갈 생각만 먼저 하고 있는지, 평범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무런 스트레스가 없으니 좋다고는 느꼈는데 이런 이벤트가 이제는 내게 와닿지 않을 정도로 영화에 대한 열망이 없어졌단 말인가.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니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당연히, 가야지! 무슨 소리야."


그들의 호통에 나는 도망치려다가 걸린 앵무새처럼 머뭇거렸다. 생각해보니,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거절을 하지 못하는 것도 내가 가진 이상한 단점이다.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가능할 것 같다고(가능하다고 말하기엔 아직도 긴가민가 상태이다). 나 이렇게 가는 건가. 


오늘은 일찍 일어나 카페에 와서 한강 작가의 신작 소설을 읽었다. 나도 작별하고 싶으나 작별하지 못하는 게 있는 걸까. 그렇다면 나와 영화는 언제 작별하려나, 그날을 고대하는 것인지 혹은 떠나보내기 싫은 것인지, 내 마음은 이렇게나 무질서하다. 


그건 그렇고 오늘도 평범한 휴일을, 평범한 나를, 칭찬해!




글 여미

커버사진 여미

yeoulha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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