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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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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Nov 08. 2024

밥은 잘 먹고 다니니?

(feat. 기절 신부)

2024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는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빛의 속도로 흘러갔다. 봄에는 신혼집을 구했고, 이사를 했고, 집에 가전제품을 채우느라 머리를 쥐어짰고, 여름에는 웨딩 촬영을 했다. 가을에는 결혼식도 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펭귄(남편)과 신혼여행으로 해외를 갔다. 놀랍게도 이 모든 것은 계획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이미 가게를 함께 운영하게 되면서 내 원룸 자취방에서 같이 산지 2년이 흘러갔었고, 결혼은 커녕 미래 계획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쩌다 청약에 당첨돼서 더 넓은 집을 구하게 됐고, 집을 구하니 양가 부모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눈을 떠보니 결혼식도 하게 되었다.


신기할 정도로 막힘 없이 이 모든 것은 원활하게 진행되었고, 감사하게도 양쪽 집안에서 지원도 아낌없이 주셔서 좋은 곳으로 신혼여행도 다녀왔다.


이런 것이 운명이라면 운명일까? 우리의 만남을 아낌없이 축복해 주고, 지원해 주는 환경 속에서 결혼식을 치를 수 있었다. 결혼을 준비하면 싸울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다고 하던데, 나와 펭귄은 정말 아무런 어려움 없이 무사히 잘 끝낼 수 있었다. 지금도 펭귄과 한 집에 살면서 알콩 달콩 재밌게 살고 있다.


이렇게 2024년을 보내면서, 내 소원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밥은 잘 먹고 다니니?


고등학교 때, 체육시간이었나? 땡볕에서 몇 시간 동안 서서 단체로 벌을 받고 있었다. 그때도 지금과 다르지 않게 나는 살이 전혀 찌지 않는 말랑깽이 형태의 사람인 척(?)하는 흐물흐물한 생물체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 돌더니 그대로 주저앉아 쓰러져버렸다. 이유는 모른다. 단지 평소에 밥을 잘 먹지 못했고, 살이 안 찌는 체질에, 자주 체해서 위장이 약했다. 그때 당시 별로 친하지 않았던 같은 반 남학생이 나를 업고 양호실에 데려갔고, 그 이후로 며칠 동안은 이불킥의 나날을 보냈다. 놀란 부모님은 나를 큰 병원에 데려갔지만, 별 다른 병명은 찾지 못했고, 의사 선생님은 힘들면 그 자리에서 누우라는 진단을 내리셨다.


기절 신부


그 이후 성인이 되어서 기절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땡볕에서 무거운 촬영 장비를 옮기다가도 한번 쓰러졌었고, 친구랑 미술관에 갔다가 한 공간에 오랫동안 서 있었는데, 그때도 비슷하게 쓰러질 뻔했다. 이외로 전조현상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는 바로 주저앉거나 휴식을 취해서 기절 까지는 막을 수 있었다. 오래 서있거나, 압박적인 상황에서 힘을 쓰지 않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라고 생각하고 살지는 않았다.


나 최근에 기절을 또 버렸다.

바로 나의 결혼식에서.....(또르르)


스트레스를 받거나 심하게 긴장을 하면 바로 체하는 체질이라서, 결혼식 전날 저녁과 당일 아침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주변에서 뭐라도 먹으라고 많이 권유했지만, 그날은 좋은 컨디션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괜히 뭔가를 먹었다가 체한 상태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싶지 않았던 내 욕심 탓이었을까. 결혼식을 할 때까지만 해도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서 실실 웃고 다니면서 행진까지 무사히 마쳤는데, 마지막 사진 촬영을 할 때 갑자기 식은땀이 나면서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족사진을 찍고, 친척, 지인사진 촬영을 준비하는 도중에 '기절 전조현상'을 오랜만에 느끼게 된 것이다. 사실 그때 바로 주저앉았으면 괜찮았을 것 같은데 무거운 드레스를 입고 있는 상태여서 바로 앉을 수가 없었다. 옷이 문제인가 싶어서 헬퍼 이모님께 바로 드레스를 여유롭게 풀어달라고 요청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오랜만에 기절을 해서 그런지, 기절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고, 생각도 못했다. 아, 이런 내 결혼식에서 기절을 해버리다니, 이런 이런! 그렇게 사진 촬영은 중단되었고, 모두가 놀라서 내 입에 아이스크림, 사탕 등을 넣어주었지만 그것마저 나는 제대로 먹지 못했다. 나머지 사진은 찍지 않는 것으로 작가님과 결론을 내리고, 그렇게 펭귄은 나를 들어 업고 휴식공간으로 이동을 했다. 한 20분 정도 지났을까. 다시 정신상태가 괜찮아져서 연회장으로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양가 부모님이 강력하게 요청(?)하셔서 다음날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공항으로 향했다.


식중에 쓰러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은 들지만, 마지막 단체사진을 남기지 못한 아쉬움은 계속 남아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 프로기절러의 삶은 이러하다. 나중에 내 병명을 찾아보니 '미주 신경성 실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펭귄에게 그때 심정을 물어보니, 경사로운 자리에서 신부가 최후를 맞이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하하하


이 모든 것은 내가 밥을 잘 못 먹고 다녀서, 아니 밥을 먹으면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이 말랑깽이 육체 때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 좀 잘 먹고 싶은데, 조금만 먹으면 배가 부르고, 아무거나 먹으면 또 배가 아프니 많이 먹지도 못한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이 나의 현재 소원이다.


(밥은 어떻게 하면 잘 먹는건가요?)


남은 올해, 아니 내년에는 밥 좀 잘 먹고 다니게 해 주세요. 밥도 많이 먹고 살도 10kg 이상 더 찌게 해주세요. 건강해서 쓰러지는 일 없게 해 주세요!


허공에 대고 외쳐본다.

기절 신부이긴해도, 아무렴 어때~~~

오늘도 깨 볶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신혼부부다.


"밥은 잘 먹고 다니니?"


글 여미

커버사진 여미


다들 건강하세요 :)

(속은 편해서 행복한 결혼식이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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