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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Nov 28. 2024

나의 얘기가 끝나기 전에 너는 꿈을 꿀 거야







“눈을 감고 내가 하는 이야길 잘 들어봐. 나의 얘기가 끝나기 전에 너는 꿈을 꿀 거야. little star, tonight. 밤새 내가 지켜줄 거야.” - Little Star by 스탠딩 에그


 흔한 이름을 가진 J는 조용한 새벽 통화할 때마다 내게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잠에 들 때면, 끝없이 어두운 바다 위로 수많은 별빛이 쏟아져 내려 나를 감싸주곤 했다. J의 노래는 반짝였고, 내 마음까지도 빛나게 했다.



 J는 내 첫사랑이었다. 같은 중학교 한 학년 선배였던 그에게 사탕을 선물한 적이 있다. 고백을 한 것도, 내 이름을 전한 것도 아니었지만 마냥 좋았다. 열다섯의 그 사건이 있기 전, 나는 그렇게 순수하고 수줍음 많은 소녀였다. J를 다시 만난 건, 나를 갉아먹었던 스무 살의 연애에서 막 벗어난 때였다. 7년 만에 우연히 만난 J는 내게 반했다며 다가왔지만, 자존감도 자신감도 바닥이었던 나로서는 순수하던 소녀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J는 하루도 빠짐없이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만나지 않는 날에도 굳이 바래다주기 위해 데리러 왔다. 함께하지 못할 때는 통화를 했다. 내가 불면증으로 밤잠을 설칠 때면 J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혼자 무서워할 틈을 주지 않았다.



 나를 세상 밖으로 꺼내주려는 J의 노력 덕분에 나도 사랑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엔 그의 호의를 의심하고 부담스럽게 느꼈지만, 점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트라우마로 겪던 고통들도 J 덕분에 많이 나아짐을 느꼈다. 심리치료의 도움이 크긴 했지만, J의 따뜻한 애정 표현이 없었다면 마음을 열기 힘들었을 것이다. J는 나를 다시 웃게 만들었다. 나에게 용기와 자존감을 심어주었고, 그와 함께하는 시간에서 조금씩 나를 되찾아 갔다.



 J의 군입대와 함께 우리는 이별을 맞이했다. 그의 보호 아래서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나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에게 기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함께하던 귀갓길도, 밤새 나누던 통화도, 나를 반짝이게 하던 노래도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것 같아 겁먹었다. 그의 부재가 다른 상황으로 인한 것이 아닌, 나의 선택으로 인한 것이 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럼 누구를 원망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을 테니. 그래서 나는 결국, 거의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말았다.



 이별 후, 한동안 J의 빈자리를 느끼며 힘들어했다. 그리움과 후회가 교차했고, 그의 노래가 그리워 눈물을 흘리는 밤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심어주었던 용기와 자존감만큼은 꼭 쥐고 놓지 않았다. 사랑받던 나를 되새기며, 기억하고 견뎌냈다.



 얼마 전 우연히 J의 SNS를 발견했다. 지금은 싱어송라이터가 된 듯했다. 그의 노래하는 영상으로 가득한 그 계정에는 그때 그 노래를 부르는 영상도 있었다. 눌러볼지 말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누르지 않았다. 이제는 그의 노래가 그립지 않아서. 그저 그의 노래로 위로받던 기억으로 충분해서.



나에게 사랑받는 법을 알려주었던 그 사람,

노래에 잠들던 그때 내 숨소리가 그 사람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언젠가 한 번쯤 그때의 추억이 다시 한번 그에게 위로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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