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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Apr 29. 2021

어렸을 적 폭력이 현재에미치는 영향


유년 시절 폭력의 경험은 후에 당사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러니까 어렸을 적 맞고 자란 아이는 커서 어떤 어른이 될까. 누군가 내게 그리 묻는다면 나는 영화 <벌새>와 <메기>를 보고 난 후 내가 느꼈던 것에 관해 얘기해줄 것이다. 이제껏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것에 대한 이야기를.




우선 영화 <벌새>. 14살 ‘은희’가 학원 선생님께 대들었다는 말을 들은 은희의 부모님은 거실에서 목청을 높이며 싸우기 시작한다.


“당신은 도대체 애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애가 이 모양이야?”

“뭐? 그럼 당신은 그런 말할 자격 있어?!”

“어쨌든, 쟤 성격 진짜 이상해!!”     


그 모든 말을 방안에서 가만 듣고만 있던 은희는 돌연 방안의 물건을 죄 집어던지며 발악한다. 깜짝 놀란 부모님이 방안에 들어오자, 은희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친다. “나 성격 이상한 거 아니야, 나 성격 이상한 거 아니라고!” 그 모습을 본 은희의 오빠는 위협적으로 그녀의 앞으로 다가온다. “너 미친 거 아니야?” 라고 그가 말하자, 은희는 “왜? 또 때리게? 어디한번 때려봐 이 새끼야, 때려보라고! 내가 너 경찰에 신고 안한 거 고마운 줄 알아!” 라고 응수한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오빠는······ 순식간에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은희의 뺨을 철썩, 내리친다.     


살과 살이 게 맞부딪치는 마찰음과 함께 은희의 뺨이 맥없이 돌아갔을 때, 나의 두 눈에서 눈물이 투둑, 하고 떨어졌다 불시에. 그냥, 갑자기, 스스로 인지하기도 전에 제멋대로 툭, 하고. 나는 눈물이 뺨을 타고 턱에서 뚝뚝 떨어질 때쯤이야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라, 나 왜 울고 있지? 왜 눈물이 나는 거지? 스스로도 우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무척 당황스러웠다.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진정되지 못한 마음을 끌어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영화관을 나왔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했다. 왜 그때 막무가내로 눈물이 터진 걸까. 나는 그것을 ‘몸의 기억’이라고 결론 내렸다. 유년 시절 엄마 아빠에게 지독히도 뺨을 맞은 기억이, 뇌를 거치지 않고 순간적으로 몸을 통해 터져 나온 것이라고. 무의식중에 잠잠히 떠돌고 있던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이, 그 장면에서 콱 짓눌려져 눈물의 형태로 쏟아져 나온 것이라고.

 

출저: 네이버 영화, <벌새> 스틸컷


전에, 친구가 회사에서 같이 어울리는 무리가 자신을 제외하고 저녁 약속을 잡은 것 같다고 전화를 걸어온 적 있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런 것 같은 정황을 발견했다고. 과거 학창시절에 잠시 왕따를 당했던 경험이 있는 친구는 자신이 소외될까 무섭다고, 불안해 죽겠다고 수화기 너머로 심정을 전했다. 또 이렇게 혼자가 될까봐서 마음이 진정되지를 않는다고. 결국 친구는 무리의 모든 SNS를 뒤져 자신이 의심하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확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음날 친구의 의심은 혼자만의 오해라고 밝혀졌지만, 나는 이 일을 통해 깨달았다. 폭력과 소외의 경험은 이렇게 무의식 속에 곤히 잠들어 있다,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불시에 수면 위로 떠올라 사람의 숨통을 죄어온다고.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터져 나와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고. 그렇게 폭력과 소외의 트라우마는 아주 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몸의 기억으로 남아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든다고. 어쩌면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은 채 무의식 속에 부유하면서.

 

폭력의 또 다른 잔해를 주운 곳은 영화 <메기>의 후반 시퀀스에서였다. 주인공 ‘윤영’의 남자친구 ‘성원’은 누가 봐도 아주 무해하고 다정한 남자다. 그런데 윤영은 우연히 만난 성원의 전 여자친구로부터 아주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바로 그가 전 여자친구를 때렸다는 사실. 윤영은 이를 듣고 난 후 계속 성원을 의심하며 긴가민가 한다. 영화를 보던 나도 그가 그럴 리가 없다고, 저렇게 무해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할 리가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영화의 후반부에서 윤영이 성원에게 “너 여자 때린 적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태연자약하게 답한다. “응, 전 여자친구.”


출저: 네이버 영화, <메기> 스틸컷

나는 그가 응, 이라고 답했을 때 마음속으로 물음표를 떠올렸다.

‘왜 때린 거지?’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스스로에게 충격을 받았다.

‘왜?, 나 지금 왜라고 생각한 거야?’


가해자가 어떤 상황에 처했건, 어떤 성품을 가졌건 폭력에는 그 어떤 정당성도 부여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그가 보여준 다정한 모습을 보며 그가 행사한 폭력에서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러한 사고방식의 기저에는 ‘저렇게 다정한 사람이 폭력을 가할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라는 명제가 깔려 있었다. 어렸을 적, 폭력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배우지 못하고, ‘이유가 있으니까 맞는다. 네가 잘못했으니까 맞는다’는 말을 듣고 자란 나는, 어느 새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또 다른 외국영화에서 아빠가 아들의 뺨을 때리고 몹시 후회하는 장면을 보고서는, ‘뭘 뺨 하나 때린 거 가지고 그러지? 우리 아빠였다면 저 상황에서 머리채를 바닥에 내팽겨 치고 발로 마구 밟았을 텐데.’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나는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할 뿐 아니라 폭력에 대한 역치 또한 높은 어른으로 자라났다. 그러니까 저 정도의 구타는 폭력이 아니다······라고.


모순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몸은 폭력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반면, 정신은 무디게 반응하는. 아직도 아빠가 손을 올릴라치면 무릎이 부들부들 떨리지만 또 다른 폭력의 장면 속에서는 가해자에게서 정당성을 찾는. 물론, 과거의 폭력의 경험이 현재에 미치는 두 가지 영향을 직접 깨우치고 난 후에는 가해자에게 그 어떤 정당성도, 서사도 부여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몸 속 깊숙이 내재된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었다. 그건 또 다시, 불시에, 어느 순간과 맞닥뜨리면 나의 중추신경을 타고 밖으로 터져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애초에 폭력과 소외의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뭇사람들이 그리 좋아하는 ‘극복’도 ‘의미부여’도, '폭력''소외' 앞에 사용되는 수식어가 될 수 없다고. 그 어떤 것도 폭력과 소외 앞에서는 무력하고 유해하다고. 그러니까 애초에 ‘너를 사랑하니까 때린다.’ ‘네가 잘못했으니까 맞는 거야.’ 같은 말은 성립할 수가 없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폭력과 소외를 경험하게 하지는 않았나. 나도 모르는 새 누군가의 가슴을 후벼 파고 움츠러들게 만들지는 않았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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