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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Aug 16. 2022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

 

* 이 글은 브런치북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의 프롤로그입니다.



어느 날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한 초등학교 정문 앞에 학부모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싶어 힐끔 쳐다보다가 아 맞다, 오늘은 비가 오는 날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교 때가 되어 부모님들이 우산을 들고 자녀를 마중 나왔던 것입니다. 곧이어 조그만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옵니다. 모두 엄마의 손을 잡고 우산을 쓴 채로 오붓하게 돌아갑니다.


우산의 모습은 제각기 다릅니다. 빨간 우산, 초록우산, 파란 우산, 네모난 우산, 동그란 우산, 2인용 우산, 참 귀엽고 다양합니다. 아 저기 친구와 우산을 나눠 쓰고 가는 아이도 보이네요. 저는 그 모습을 뒤에서 가만 쳐다보고 있다가, 전에 책에서 읽었던 문장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모두가 돌아갈 무렵에는 우산이 필요하다”



우산, 우산이란 존재는 뭘까요? 우산은 비바람을 막아주죠. 거칠게 쏟아지는 비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옷이 물에 젖지 않고, 좋았던 기분을 망치지 않고 집으로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래서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한 것이지요. 저는 세상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언제나 거친 비바람 같은 고난과 위험이 주변에서 쏟아집니다. 왜, 세상은 고해의 바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 바닷물이 증발해서 비가 된 거죠. 그 고해가 하늘에서 내리게 된 거죠. 그러니까 제 말은, 산다는 것은 정말 이다지도 힘에 겹고 지난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는 우산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화살처럼 쏟아지는 비를 온 몸으로 맞고 있다가는 오래 버티지 못할 테니까요. 날카로운 빗줄기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그건 사람이 될 수도, 어떤 경험이 될 수도, 말이 될 수도 있겠지요. 뭐든 우리를 이 지난한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고 버티게 해줄 방어막이 필요합니다.


저는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님이라는 우산을 쓰고 있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그들은 나의 보호자로서 사고가 생겼을 때 저를 변호해주었고, 제 편에 서서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는 그 우산이 없어졌지요. 그때부터는 모든 저 혼자 선택하고 책임을 져야했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엔 그 장대같은 비를 온 몸으로 다 맞고 있었어요.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힘겹게 발을 떼고 있었죠.


그것은 생각보다 고단한 일이었습니다. 너무 아팠어요. 살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추위를 못 이겨 그만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다시 일어서고 싶지 않았어요. 넘어지기는 또 얼마나 많이 넘어졌는지요. 어떨 때는 사는 게 너무 힘이 들어서, 이 비가 너무 아프고 잔혹하고 지긋지긋해서 그만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며 하나하나 난관을 통과하다보니 저에게도 어느새 우산이 생겼습니다. 비바람을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고,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덜 고단하게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예상치 못한 일을 한 단계 한 단계 통과하면서, 조그마했던 제 우산은 점점 더 커지고 견고해졌습니다. 이 험난하고 지난한 세계를 함께 걸어줄 사람들,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경험들, 길을 잃지 않도록 이정표가 되어주는 말들이 점점 쌓여갔습니다.


이 책에는 그런 것들을 담았습니다. 제가 우산을 가지기 전까지 우중 속에서 깨달은 성찰들, 지나온 힘겨운 나날들, 그리고 제게 우산이 되어준 경험들, 사람들, 언어와 사랑의 말들. 제 우산을 튼튼하고 견고하게 해준 요령 같은 것들을요. 제게 우산이 되어준 것들이 여러분에게도 우산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언어와 경험들이 여러분의 우산을 튼튼하게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 책을 다 읽었을 때쯤엔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우산을 꼭 쥐고 있었으면 합니다. 모두 웃는 얼굴로 씩씩하게 우산을 쥐고 비바람 속을 걸어갔으면 합니다.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그럼 이제 다시 우산을 쥐고 빗속을 차곡차곡 걸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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