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코로나 3월

이후 한국에서의 6개월, 다시 자카르타로

by 레이리


어린 딸아이를 안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3월, 나는 두려웠고 절박했다. 자카르타에 공식적인 첫 확진자가 나왔던 3월 이후 내 몸과 마음은 바이러스 공포에 서서히 무너져갔다. 근처 마트에는 생필품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고 곧 물건들이 하나 둘 동나기 시작했다. 뉴스 화면에서나 봤던 일을 눈 앞에서 보고 겪으니 불안감은 더해만 갔다.

사재기로 인해 텅 비어버린 쌀 코너


그전까지 그토록 날 설레게 했던, 온통 이국적이고 생경한 이 곳의 풍경이 하루아침에 두렵고 막막한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 곳에서 아프기라도 하면 어찌해야 하나, 혹여 코로나에 걸리면 아이는 누가 돌보지, 수시로 체온을 쟀고 건강염려증과 불안감에 몸 상태는 안 좋아졌고 고립감마저 더해지니 이건 더 이상 평범한 일상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이토록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강한지 미처 몰랐다. 그렇게 탈출하듯 한국으로 일시 귀국했다.


한국에 도착해 차창 밖으로 수줍은 듯 피어있던 연분홍 벚꽃나무를 보며 비로소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졌다. 베란다 너머 완연한 봄기운에 위로받으며 한편으론 마음껏 이 봄날을 만끽하지 못하는 상황이 속상했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그 심정이 어떠했는지 자연스레 짐작되었다.


2주간의 자가격리 후 첫 동네 산책


코로나 이산가족이 되어 기왕 한국에 온 이상, 그냥 흐지부지 있다 가긴 싫었다. 마스크를 쓰고 아이와 함께 뮤지컬도 보고 전시회도 관람했다. 드넓은 공원과 한강 산책로를 원 없이 걸었다. 내 눈엔 감사할 것들이 넘쳐났다.

아이에게 큰 선물 같았던 한국에서의 시간들

자격증도 따고 번역하고픈 일서들을 샘플 번역해 출판사에 제안했다. 어쩌면 코로나가 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하루하루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몇 달 후면 상황이 좋아질 거란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 여름을 지나던 8월 중순, 설마 했던 코로나 2차 유행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보낸 여름 풍경

가을이 찾아왔는데 여전히 마스크와 한 몸인 생활이 이어졌다. 두 눈만 내놓고 바라봐야 하는 상황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문득문득 슬펐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상황에 마음도 점점 지쳐갔지만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베트 속담도 있듯이, 내가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으니 이 상황에 조금 의연해지기로 했다.


그렇게 가을이 찾아오고


한국에서 6개월여를 보내고 자카르타 입국 시 제출해야하는 코로나 PCR 검사를 받았다. 코에 긴 꼬챙이 같은 면봉이 깊숙이 들어와서 빙글빙글 몇초간 돌리는데 이걸 어떻게 아이들이 견딜까 싶었다. 역시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고 머리와 손, 몸을 내 두 팔로 감싸 안아 두 번째만에 끝낼 수 있었다. 미안한 맘에 울컥했다.


며칠동안 서류를 준비하고 까다로운 입국 절차를 외우다시피 해서 무사히 자카르타에 돌아왔다. 코로나로 인해 비행기 타는 것도 입국하는 것도 일이 되었다. 복잡하고 번거로운 일. 공항도 기내도 더 이상 설레는 공간이 아니다. 긴장하고 경계해야 하는 위태로운 공간으로 바뀌었다. 피곤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코로나 덕분에 평범한 일상, 건강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한국에 와서 2주 만에 바깥에 나와 땅 위를 걸었을 때 느꼈던 환희를 잊을 수 없다. 밖을 나와 걷는다는 것 자체가 이렇게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느꼈다.


그 감사했던 순간들을 지나 지금 이 곳 자카르타에 돌아온 난, 6개월 전보다 담대해지고 의연해졌다. 연일 4천 명 이상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는 이 곳 상황은 심각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내 마음은 편안하다. 이슬람 기도소리도, 새까만 밤하늘도 그저 다 반갑다. 한국에서 들고 온 마스크와 영양제가 주는 마음의 여유가 크겠지만 어느 정도 파악한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 영향도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해 질 녘 풍경

코로나 이전에 매일 여행하듯 아이와 다니던 자카르타 일상을 다시 찾고 싶다. 그 순간이 지나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뭐든 후회 없이,
나답게
오늘을 제대로 살기


코로나가 내게 알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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