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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함께하는 강원도의 겨울

삽질과 함께하는 제설

by 린꽃


강원도의 겨울은 눈이 녹지 않고, 눈이 녹기도 전에 눈이 또 온다.
산골짜기에 위치한 이곳은 폭설이 와도 제설차는 오지 못하는 곳이라 제설도 잘 되지 않을뿐더러 길 곳곳이 경사가 높아서 덕분에 한동안 동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고립되어 살았었다.
눈이 많이 오는 한겨울에 이곳에 사는 매일매일은 감옥에 갇혀 사는 기분이다.



삼일 연속으로 눈이 많이 온 이번주엔 아침마다 밖으로 나가 제설을 했다.

일반적인 아파트 단지에서는 경비아저씨가 제설을 해주시지만, 산골짜기의 작은 단지인 이곳은 주민들이 제설을 한다.

호수별로 제설 출석체크를 하는 것도 진풍경이다.

휴일에 눈이 내렸을 땐 따로 출석체크를 하지 않아 소수의 인원 외엔 제설을 하지 않는다.

출석체크를 하지 않아도 남편은 혼자 꿋꿋이 아침마다 눈삽을 들고 공용현관 앞의 눈을 치우고, 조금 더 눈이 쌓였을 땐 나도 패딩 하나를 걸치고 나가 제설을 한다.

눈이 굳고 난 뒤에 치우려 하면 더 치우기도 힘들고 미끄러워서 바로 치워야 한다.

생전 삽질을 해본 적도 없는 내가 이곳에 온 뒤엔 무거운 눈삽을 들고 밖을 누비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이전엔 눈이 오던 날이 낭만으로 느껴졌던 것 같은데,

지금의 눈은 내게 치워야 하는 골칫덩이가 되었을 뿐이다.



한 바퀴 제설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엔 갑자기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졌다.

구석에 아직 눈이 치워지지 않은 곳의 깨끗한 눈 한가운데 눈사람을 만들면 너무 귀여울 것 같았다.

한 움큼 맨손으로 잡아든 눈으로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미니 눈사람 세 개를 완성했다.

눈이 일상인 곳에 살며 눈사람의 낭만은 사라진지 오래인데, 그래도 올겨울 눈사람을 만든 기억이 하나쯤 있으니 마음만은 따뜻했다.

곧 누군가 밟아버리거나 없어져버리겠다- 생각하며 잠시 마음 아팠지만 다행히 이 글을 쓰는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도 눈사람 세 개는 앙증맞게 함께 있다.



올해는 유독 눈이 많이 온다.

지난겨울보다 더 자주 눈이 오는 탓에 매일 설국이 되어있다. 이곳에 살며 폭설과 추위는 힘들지만 반대로 이곳의 겨울은 강점이 되어 다음 주부터는 겨울 축제인 산천어축제가 진행된다고 한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이 올정도로 유명한 축제이다.

여행객들은 강원도의 겨울을 찾아오는 이 계절이 나는 너무 힘들다. 아마 적당히 내리는 눈이나 금세 제설이 되는 곳에 산다면 눈이 와도 걱정은 없을 텐데.

매번 높게 쌓이는 눈은 그 높이마다 나를 이곳에 가둬버린다.

바깥을 보니 아직도 함박눈은 내리고 있다.
눈이 녹을 때까지 당분간 또 고립되어 살아야 할 것 같다.
안 그래도 지나가는 이 하나 없이 적막한 이곳이 지금은 낮에도 스산하다.

강원도의 겨울은 아무리 살아도 적응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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