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류유산과 재임신, 출산까지의 2년
2023년,
첫 임신과 유산을 겪었다.
10주 차에 아기 심장이 멈춰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웅크리고 있는 아기의 초음파를 보고 팔과 다리가 다 있는 아기가 잘못되었을 리 없다며 울며 근방의 몇 개의 병원을 돌아다녔었다. 그때의 충격이 정말 컸었고,
수술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머리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기의 작은 심장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병원을 전전하며 희망을 붙들고 있었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아기가 결국 내 품에 올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수술의 통증보다 수술 이후의 텅 빈 몸과, 아무 일 없던 듯 흘러가는 세상이 너무 낯설고 원망스러웠다.
내 안에서 함께 자라던 작은 생명이 사라진 자리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남았다.
2024년 ,
이후에도 계속 임신을 시도했지만 몇 번의 화학적 유산을 겪고 결국 다시 임신하기 위해 퇴사를 결정했다.
진해지지 않는 임테기와 늦은 생리가 시작되길 반복하며 희망고문에 시달리다 보니
당시 삼교대로 근무했던 간호사를 계속하다 보면 임신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미 2023년도의 산부인과에서의 기억이 내겐 너무 충격이었던지라 산부인과 자체에 공포감이 심해서 소파술 이후 경과를 보러 가지도 않았고, 임신을 준비하며 산부인과의 도움은 받지 않았다.
다만 화학적 유산을 겪을 때마다 산부인과에서 피검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임신이긴 하나 50 정도의 낮은 수치로 끝내 생리를 했었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의 화학적 유산이 있었고 나중엔 화학적 유산이 익숙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2024년 11월 ,
계속된 화학적 유산과 일 년간의 임신실패로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찾았다. 유명한 곳이라지만 살면서 한약은 먹어본 적도 없어 긴가민가한 상태로 방문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이제는 산부인과의 도움을 받아볼 생각이었다.
한약은 2주 뒤에 도착했고, 한약을 다 먹은 달 놀랍게도 확연하게 진해지는 임테기로 임신을 확인했다.
2025년 1월,
계류유산 이후, 일 년이 지나서야 아기 심장소리와 임산부 수첩도 받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아 다시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었을 때, 눈물이 먼저 흘러내렸다.
기적처럼 다시 찾아온 작은 존재 앞에서, 지난 시간의 상처들이 조금은 덜 아프게 느껴졌다.
기다림은 길었지만 그만큼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이번 길을 걸어가고 싶었다.
물론 임신 기간은 임신준비 기간만큼이나 쉽지 않았지만 아기와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었다.
잘 자라는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볼 때면, 이 세상의 모든 근심이 사라지는듯했다.
그리고 2025년의 가을,
드디어 나의 아이와 함께하게 된 감사한 매일을 보내고 있는 요즘.
아기와 함께하는 일상은 때론 힘들 때도 있지만 사랑으로 가득하다.
임신과 유산이라는 경험들을 거쳐 처음엔 두려움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나는 그 길 위에서 사랑을 배웠다.
첫아기를 잃은 상실의 고통은 여전히 내 안에 큰 상처로 자리하고 있지만 그 또한 내 삶을 빛나게 하는 한 조각임을 알게 되었다.
다시 품게 된 작은 존재와 함께하는 매일은 기적이고, 나 자신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과거의 아픔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희망과 따스한 사랑을 안고 나아가려 한다.
이 이야기를 끝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질 거다.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삶은 늘 그렇게 흘러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