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지나고 나면 내용을 잘 잊어버리곤 한다. 웬만해서 두 번 이상은 봐야 그 내용이 각인될 때가 많은데 책보다는 영화에서 훨씬 더 그런 편이다.
영화를 이야기해 보자면, 볼 땐 엄청난 감동을 받고 눈물까지 펑펑 쏟아냈으면서 누가 그 영화에 대해 물으면 머리가 텅 빈 느낌이다. 그 텅 빈 구석에 조금이라도 기억을 심어보려고 영화 리뷰를 찾아보면 그제야 어렴풋이 영화 속 영상이 떠오른다. 어떤 영화는 다시 볼 때 처음부터 중간까지 내내 처음 보는 것처럼 보다가 데자뷔처럼 갑자기 생각이 나기도 한다.
별 감흥도 없었던 책이나 영화를 두 번 이상 읽거나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단지 기억이 안 난다는 이유로 그런 거라면 더더욱.
어쨌거나 기껏 시간을 내서 본 것들이 내게 남아 있지 않고 휘발돼 버리면 그것을 하기 위해 적게든 많게든 쏟은 내 시간이 아까워지고 집중했던 게 억울해진다.
그래서 남기려고 쓴다.
특별히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는 보고 또 보더라도, 혹은 내용을 술술 이야기할 수 있더라도 그것에 대해 기록하는 건 또 다른 영역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모두 통찰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지만, 특히 읽고 본 것들에 대해 기록하는 것은 커다란 통찰의 숲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귀한 일인 것 같다. 내용뿐 아니라 어떤 메시지가 내게 와닿았는지의 느낌까지 함께 적으니 참 매력적인 글의 종류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그것들에 대해 쓰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다지 파동을 일으키지 못했던 책이나 영화에서라도 내 어딘가에 가닿은 자극은 분명 있기에 쓰는 동안에 생각지 못한 다양한 감정들은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참된 조언이나 위로, 경종을 울리는 말을 간절히 전해 주고 싶어질 때가 왕왕 있다. 온전히 내가 가진 언어나 감정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지는데, 이럴 때 책의 한 문장이나 영화의 한 장면(혹은 대사)을 곁들여 상대에게 전하면 더 큰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내가 본 모든 책과 영화를 기록하지는 않지만, 어떤 책이나 영화는 기억해 두기 위해 기록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