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가

책이 남기고 간 생각들

by 글쓰는나무

얼마 전 거실에 있던 크리스마스 장식을 정리했다. 크리스마스 전후로 약 세 달간 자리를 차지했던 장식들을 하나둘 치우면서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게 흘렀음을 실감하며 아쉬운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정리를 마친 자리의 휑한 모습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져 미련을 떨며 한동안 그곳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낯선 것이나 모험하고는 거리를 두는 성향이라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것들을 한다. 하지만 한 번 정이 들면 그것이 무엇이든 애정을 듬뿍 줘버린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공간이든 일이든. 오래 사용하던 물건과의 작별에도 크든 작든 감정이 움직인다. 그런 탓에 어떤 이별은 아예 외면함으로써 요동치는 감정을 덮어버린다.


책. 책에 대해 말해보자면, 다음 장이 궁금해 빠르게 읽어나가다가도 마지막 장이 가까워지면 일부러 속도를 늦춘다. 결말이 너무 궁금하면서도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면 찾아오는 허전함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솎아내어 내놓은 수많은 글자들이 나의 내면으로 오가다가 갑자기 끊겨버리는 듯한 기분도 든다. 그 허전함과 허무함이 싫어서 일부러 끝까지 읽지 않은 책도 있었다. 물론 결국에는 호기심이 이겨 끝까지 읽었지만 말이다.


많이 애정을 쏟은 책이라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도 쉽게 손에서 놓지 못한다. 책장을 덮고도 몇 번이고 표지를 어루만지며, 표시해 둔 문장들을 다시 훑어보기도 한다. 때로는 여운이 가시지 않아 그저 책을 바라보며 앉아 있기도 한다.

책 속의 인물들이 머물던 세계를 떠나보내기가 아쉬워 마지막 장을 다시 펼쳐보기도 하고, 혹시라도 놓친 문장이 있을까 다시 몇 페이지를 되돌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 책을 제자리에 둘 수 있다.


한 권의 책이 끝난 후,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또 다른 책을 찾는다.

책은 책으로 잊어야 한다.

그 반복 속에서 끝과 시작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아가 삶의 그것에 대해서도.


마주 볼 자신이 없어서 아예 외면해버리고 말았던 끝과 미련 없이 돌아섰던 끝, 마냥 슬퍼하고 힘들어했던 끝, 아쉽고 안타까웠던 끝.

삶에서 경험했던 모든 끝에는 다른 무언가의 시작이 늘 있었다. 끝과 시작의 순환으로 시간이 흘러간다. 그 속에서 무르익고 깊어진다면 끝을 이정표 삼아 앞으로 잘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덮으며 떠오른 많은 생각들로 머릿속이 묵직해졌다. 책 자체가 쥐어 준 통찰이 나의 현실에 스며들며 새로운 이해를 불러일으키고, 내가 나아갈 방향을 조금 더 선명하게 밝혀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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