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녀의 배 안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밑에서 위로 공기 방울처럼 피어올라 온다. 이건 좋은 신호가 아니다.
' 아! 뭐지? 속이 안 좋네. 아 어젯밤에 불닭을 먹는 게 아니었는데. 아 씨...누고 가까? ’
살짝 배꼽 주위가 찌릿했지만, 지금 집에 들어갔다 나오면 확실히 지각이다.
지금 시각. 8시 25분.
9시 10분까지 회사에 안전하게 들어갈 자신도 없거니와, 오늘은 정말로 늦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금요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정신이 살짝 나가신 고 팀장님이 주관하는 ‘아침 요가’가 있다.
근무 시작하는 시간 15분 전에 가볍게 요가로 몸을 풀자는 좋은 취지지만, 좋은 건 제발 혼자 하기 바란다. 삼십 평생 풀어지지 않는 몸뚱이가 요가 동작 몇 번으로 풀릴 리가 있겠냐고요.
인사권을 쥐고 있는 고 팀장님의 눈 밖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매주 아침마다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기묘한 자세로 매트 위에서 버티고 있다.
한 발로 서기 위해 버티는 것인지.
제 발로 밥벌이를 하기 위해 버티는 것인지.
어젯밤, 그녀는 혼자 너무 달렸다. 절친 혜교랑 그 점집에 가는 게 아니었는데... 괜히 찝찝한 말만 듣고 와서 기분이 꿀꿀해 혼자서 맥주캔을 땄는데...하필 안주가 너무 맛있었다.
거기다 불닭이 너무 매워서 맥주를 3캔이나 더 비워버렸다.
가뜩이나 과민한 대장이 이것을 견딜 리가 없었다.
지하철역으로 달려가는 중에도 속에선 일정한 리듬을 타며 가스들이 위로 아래로 솟아올랐다 가라앉았다 난리부르스다.
살짝 엉덩이 사이에 힘을 주고 출구 쪽을 쏘아본다.
- 여러분, 괄약근에 쫙 쫙 쫙. 짭아 당기세요!! 하체에 힘을 뽝!! 젊음에 뽝!!
귓가에 고 팀장님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마 위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 구르릉 구르릉 구구구꾸꾹
사람들 틈에 겹쳐서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 틈에, 옆에 여자가 흠칫 놀라 복자를 쳐다본다. 분명 복자의 배 속에서 푸드덕대는 수십 마리의 비둘기 소리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 보라색 아이섀도우를 칠한 여자의 눈이 포도알처럼 보였다.
여자는 콧구멍을 씰룩거리며 뭔가 불쾌한 냄새까지 감지한 것 같았다. 복자는 더 이상 아닌 척 태연한 얼굴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떤 표정을 지어 주어야 하나? '
“ 으흥~ ”
복자는 그녀를 향해 살짝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괜한 짓을 한 걸까?
여자의 보라색 눈이 더없이 커지더니, 앞서 내려가는 대머리 아저씨와 뽀글 파마 아줌마 사이를 비집듯이 파헤치고 아래로 내달렸다.
“ 뭐야, 이 아가씨. 자기만 바쁜가? ”
“ 어허 이사람..... 저러다가 넘어지면 크게 다치지... ”
대머리 아저씨와 뽀글 파마 아줌마가 포도 아가씨를 훈계했다.
복자는 살짝 세 사람에게 모두 미안해졌다.
만원의 지하철을 벗어나 간신히 안국역에서 내렸다.
9시가 조금 넘어선 시간이었다.
이제 달려야 한다. 뛰어야 한다. 뛰어야 하는데.
윽,
어쩌나. 도저히 정상적인 모양새로 걸을 수가 없었다.
다리가 꼬이고 발가락 끝까지 힘을 줘도 불안했다.
온몸에 닭살이 돋아나고, 코 밑까지 축축하게 땀이 찼다.
지금 당장 여기 서서 싸버릴 것 같았다.
“ 화장실.... 화장실.... 어... 화장..실.... ”
복자는 입 밖으로 주문을 외며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사람들을 뚫고 계단을 날아올랐다.
그건 정말이지...
날아올랐다고는 말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급하게 들어간 화장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본능적으로 익숙한 건물 안으로 들어와 대충 화장실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왔다.
화장실이면 된다.
아니 꼭 화장실이 아니어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우두둑 들어가서 변기라고 생각되는 것에 엉덩이를 간신히 내려놓았다.
- 푸아아아아악. 푸아아아악. 풍 풍...후.....
지구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변기가 박살나는 소리.
아 살 것 같다. 우주의 평화도. 미움도. 사랑도. 할렐루야.
바로 눈앞에 우주가 잠시 생겼다 사라지는 기묘한 영상이 보였다.
“ 아........ 살았다. ”
입으로 말한 건지,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 그녀는 이 변기 칸 안에 휴지 걸이가 휑하니 비어진 걸 보았다.
어? 이게 아닌데. 이거 왜 이래?
하얗고 둥실한 휴지가 걸려 있어야 할 자리에 빠짝 마른 거무스름한 마분지 통이 떨렁 남아있었다.
문득 복자의 머릿속에 어제 점집에서 들은 무당 아줌마의 걸걸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이고매~ 삼재 바람 제대로 맞았네. 재작년, 작년. 다 별로였네. 거기다 올해는 날삼재야. 바닥에 팍 엎드려가지고 나 죽었다 해야 한데이. 처음 보는 어느 미친놈이 앞에 있어도 니 성질대로 바락바락 대들지 말고 예예 하면서 옆으로 싹 비켜 주란 말이야. 내 말 꼭 새겨 들으래이.
그 때 옆 칸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 오~ 그래. 하늘이 날 이렇게 버리진 않지. 삼재는 얼어죽을. ’
복자는 침착하고 예의 바르게 옆 칸에 노크를 하며 도움을 청했다.
어휴~ 살다 살다 진짜 별짓을 다한다.
“ 저기.... 죄송한데... 혹시 휴지 좀 나눠 쓸 수 있을까요?”
옆 칸엔 아무런 대답이 없다.
‘ 아 씨.... 뭐야? 싸가지야? 쳇.’
잠시 후, 다시 노크를 건내려는 찰나, 아래로 두툼하게 접힌 휴지가 보였다.
‘ 거, 사람 괜찮네.’
“ 고맙습니당. 홍~"
그녀도 모르게 뒷말에 홍홍 애교가 붙었다.
산뜻하게 뒤처리를 하고 변기물을 내리는 데 어라?
- 딸깍딸깍
변기 내림 장치가 덜거덕거리기만 할 뿐 제 구실을 못하는 게 아닌가! 젠장 젠장 젠장!!!!!!
“ 아 씨.... 어떡해...... 욱욱..”
난감하다.
윽..
자신의 몸에서 나온 것이지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형국이었다.
어쩌겠는가.
여기서 변기를 붙잡고 하루 종일 지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변기 문을 덮어버리고 문을 열고 그냥 밖으로 나와버렸다.
“ 어머머머!! 여 봐요. 여기 여자 화장실이에요!!”
복자는 널찍한 등짝을 한 채로 태연스럽게 여자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는 한 남자에게 비명을 질렀다.
거울에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뭐야? 여자야? 남자야?
남자의 얼굴은 밝게 염색된 갈색 머리 때문에 더 새하얗게 보였다.
만화 속에서나 튀어나온 것 같은 예쁘장한 외모였지만 뭔지 불량한 느낌이 감돌았다.
목 언저리를 지나 왼쪽 귓바퀴 안으로 감아올린 도마뱀 문신이 눈에 띄었다.
‘ 말을 조심하자! 요즘 얘들 무섭다.’
길다란 속눈썹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커다란 갈색 눈이 여자를 향했다.
“ 아줌마, 나 아니었음 거기서 못 나왔어요. ”
느릿하게 아래로 깔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뭐요? 아줌마? 야! 너 양아치니?”
그 때였다.
양복 입은 중년의 아저씨가 초조한 얼굴로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 뭐야, 이 아저씨는 ?’
배가 앞으로 볼록하게 나온 중년의 아저씨가 복자를 보고 흠칫 놀랐다.
“ 어이쿠, 아가씨. 여기 남자 화장실이에요...”
아저씨는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그녀 앞을 빠르게 지나쳤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대로 어정쩡한 자세로 다시 거울 속 양아치랑 눈을 맞추었다.
- 피식.
잘생김은 있지만, 재수는 없는 양아치의 한쪽 입술 끝이 위로 올라갔다.
‘ 나, 지금 엄청 쪽팔린 상황 맞는 거지? 빨리 나가야 해. 정신 차려. 김복자! ’
거울에 비친 복자의 얼굴이 점점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
“ 으아악악...... 이게 뭐야.. 우욱우욱 더러워.. 누가 변기 물도 안 내리고 저런 걸 싸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