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있지만,>속 재언에 대하여
아름다운 꽃에는 가시가 있다
나비를 좋아하는 심장에 해로운 남자, 박재언. 재언은 나비와 마찬가지로 처음 나비를 본 순간부터 나비에게 빠졌다. 다만, 재언은 자기 얘기를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이고. 동시에 많은 오해를 받는 사람이다. 타고난 친절함과 매력적인 외모. 가만히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꼬이는 아름다운 꽃 같은 남자.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많은 오해를 받는 재언. 재언은 그런 오해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타인과 적당한 선을 그었을 것이다. 친절하게 대하면 ‘어장남’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쁘게 굴면 그냥 나쁘다는 이유로 재수없다는 소리를 들었을 테니까. 그는 모든 관계에서 적당하게 선을 긋는 것 말고는 관계를 유지시킬 방법을 몰랐을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거리를 두는 그의 방식이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말을 아끼는 게 가장 중요한 사회인만큼, 불필요한 추궁과 의심에 침묵하는 재언의 방식이 나쁜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해명이 역효과를 일으키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그의 방식이 적절하지 못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지속시키기 위해선, 충돌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고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대화와 끝없이 서로의 선을 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사랑이라는 이유로 상대의 모든 것을 파헤쳐도 좋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서로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낮은 목소리로 나누는 사적인 대화에 가깝다.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눈 수많은 비밀들을 은유로 표현하고 고백하는 것.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 대답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사랑한다면, 마땅히 책임을 져야.
사랑은 대화에 가깝기에, 혼자 말하지 않는 마음은 그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다. 그러니, 사랑한다면 더 용기를 내서 자신을 드러내야 하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 관계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작중 초반부 재언은 관계에 대한 책임은 지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더 나아가 재언은 누군가와 더 깊어지는 것도 원치 않았고, 그저 아름다운 나비를 수집하듯이, 아름다운 어떤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걸 망쳐버린 건 바로 나였다.”
재언이 “모든 걸 망쳐버린” 원인이 자신에게 있었다고 말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를 사랑하는 일은 서로의 선을 넘는 일이고, 서로가 간직해온 비밀을 수없이 나누는 일이다. 서로 나눈 비밀스러운 대화들이 많아질수록, 연인에게는 서로를 향한 책임이 늘어간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깊어질 수록 더 큰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더 큰 책임이라는 말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책임’이라는 것이 서로를 구속하고 통제하라는 의미가 아닌, 그저 이 아름다운 세계를 ‘함께’ 계속해서 걸어가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저 서로를 향한 믿음으로, 서로의 손을 꽉 잡은 상태로 말이다.
- <알고있지만>, 2021, 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