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해>속 여러 얼굴들에 대하여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는 얼마나 힘이 세던가. 그 단어는 그저 단어 하나일 뿐임에도, 그것 하나로 보잘 것 없는 인간도 자신이 가진 모든 걸 걸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마저 준다. 실제로 어떤 사랑은 그래서 위대하다. 그리고. 어떤 사랑은 그때문에 평범하다. 상대방을 위한 마음 하나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사랑의 마음을 접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위대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란, 사랑을 가장 잘 이해理解한 사람으로 그것이 고통스러우면서도 자신을 가장 뜨겁게 달구는 정열의 감정passion임을 잘 이해한 사람이다. 평범한 사랑을 하는 사람의 경우,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포기하는 그 마음에는 이해(利害)관계가 적용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해관계 앞에서 굴복하는 마음들은 사실 대다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적어도 한번쯤은 겪어봤을 보통의 마음들이고, 일반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마음들이다.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을 품은 사람들(상수와 미경)과 그런 이해관계 앞에서 망설이는 평범한 사랑의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수영과 종현)이 겪는 갈등과 고민을 그려낸다.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네 명의 주요 인물을 내세우고, 그들을 통해서 다양한 사랑의 모양들을 드러내보인다. 인물들이 가감없이 현실적이라서, 드라마 속의 평범한 인물들에게서 과거의 어떤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어떤 인물들은 응원하게 되고, 어떤 인물들에게선 나의 아쉬운 과거를 보는 듯해서 얄궂은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내가 <사랑의 이해>의 인물들에게 느꼈던 모든 감정들은 일종의 애정이었다.
2.1. 하상수, “100%”가 아니면 안되는 사람
사랑이라는 감정을 두고 누구보다 이해관계에서 망설이는 인물이다. 상수는 수영을 좋아하지만, 서비스직 텔러인 수영과의 관계가 가져올 이후의 삶에 대해서 고민한다. 부모님의 눈치를 보고, 직장 동료들의 눈치를 보고, 망설인다. 결국, 상수는 수영과의 연결에 대한 확신의 부족으로 좋게 흘러가던 관계가 틀어지고, 수영의 마음을 확신하지 못한 채로 미경에게 100%가 아닌 마음을 준다. 결과적으로 상수는 미경과의 사랑에 실패하고, 100%가 아닌 마음으로는 무엇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상수 자신이 자신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생겼을 때 상수는 100%를 향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이전까지 자신을 제약했던 이해 관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삶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는 할 것이다. 상수는 삶속에서 후회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인물이 되고, 그 모든 선택지 중에서 그저 자신의 마음이 100% 진심을 향하는 선택지를 고르는 인물로 변한다. 이제, 상수는 자신의 상황이 어떤 이해관계에 얽혀있던 신경쓰지 않는다. 종극에 이르면 그는 이제서야 어떤 이해利害에도 얽매이지 않을 그 자신을 이해理解하고 있다.
2.2. 안수영, 확실하지 않다면 하지 않는 사람
“애매한 건 싫어”하는 수영. 수영은 상수에게 말한 것처럼 확실하지 않은 것은 싫어하는 인물이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상대방이 100%의 감정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신뢰하지 않는다. 그건 그녀가 사람의 사랑이라는 불완전한 감정을, 그리고 그 감정을 따르게 된 결과로서 받아들여야만 하는 삶의 상태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영은 상수와 닮은 듯 닮지 않았다. 상수가 그 자신을 이해하고 그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바를 위해서 어떤 위험도 감수하려는 반면, 수영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면서도, 확신이 없다면 치워버리는 유형이다. 완벽한 행복을 바라는 사람. 완벽한 행복이 불가능하다면 그 행복을 스스로 짓밟아버리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수영의 이런 극단적인 성격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졌다. 수영이라는 인물이 그럴 수밖에 없는 어려운 과거가 있다고 드라마는 계속해서 수영을 변호하는 듯 하지만, “글쎄...”라는 생각이 계속 따라오더라. 드라마 속 그녀의 회피적인 행동과, 완벽만을 바라는 마음, 나쁜 것을 먼저 생각하는 방어적인 그 마음이 과거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해보이고, 충분히 이해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언제라도 금세 무너져내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수영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고 있자니,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가장 마음이 쓰이는 인물이 되었는데, 수영의 위태로움은 오늘의 행복이 아닌 내일의 행복만을 기대하는 그녀의 태도 때문인 것 같다.
2.3. 박미경, 사랑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보았다. 물론, 그 재력은 평범하지 않지만 말이다. 미경은 처음부터 서로가 100%일 것이라는 사실을 믿기보다는, 천천히 서로의 감정들이 차오르다보면 어느순간 100%에 가깝게 차오를 수 있다는, 사랑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다. 그렇기때문에 그녀는 여러번의 실패에도 쉽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으며, 그녀에게선 드라마틱하고 영화적인 사랑 대신 평범한 사랑을 만나고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드라마에선 가장 비범하지만, 동시에 가장 평범한 인물로, 내가 가장 애정하는 인물이다. 미경은 넘어진만큼 성장할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인물,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넘어진만큼 성장해가는 대다수의 평범하고 대단한 사람들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2.4. 정종현, 부채감으로 포장된 마음
수영과 함께 꿀밤 한 대 때려주고 싶었던 인물...이지만, 미경과 함께 굉장히 현실적인 인물이고 사랑이라는 감정과 다른 감정을 착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마음만큼이나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으로 연인을 대하는 종현인데, 그게 과연 진짜 사랑이었을까라는 질문에는 부정적으로 답하고 싶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상대방을 대할 때 어려운 마음이 든다면 그 마음은 사랑이 아니라고 본다. 그건 부채감이다. 사랑 역시 어려운 마음이지만,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선을 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마음이다. 상대방에게 존댓말을 쓰다가도 너라고 불러버리고 싶은 마음이고, 그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종현에게 수영은 은행이라는 돈냄새가 가득한 삭막한 장소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하대하지 않고 이해해주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그녀의 존재가 특별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수영이 좋은 사람이란 것은 사실이지만, 수영과 자신 사이에 그어진 선을 넘고 싶지 않았고, 둘의 관계는 종현의 부채감이 절반, 사랑이 절반 정도 섞인 마음으로 유지된 듯 하다. 그런 종현을 완전히 이해 못할 건 또 아닌듯 하다. 사실,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걸고 싶은 100%의 마음이 모두에게 허락되진 않은 것 같으니까.
3. 상수와 수영은 결국 다시 이어질 수 있을까?
내 생각은 ‘No’다. 16화가 되면, 두 사람은 이제 모든 이해관계에서 해방되지만, 상수는 수영에게 지금 ‘행복’한가를 묻는 인물이고, 수영은 “내일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인물이다. 그러니, 이어지더라도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오랫동안 같은 마음의 궤적을 그리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친구로써 지낼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상수도 수영도 그 애매한 관계를 견디지 못할 것이 분명해보인다. 그러니, 두 사람은 어느순간 서서히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4. 이해(利害)에서 벗어날 때 이해(理解)하게 되는 마음에 대하여
사랑을 이해하고자 다양한 사랑의 방식을 보여주는 드라마, <사랑의 이해>. 상수는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 혹은 멜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전통적인 사랑꾼이고. 수영은 과거의 상처때문에 완벽한 내일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 마음들이라면, 스스로 붕괴시키는 다소 극단적이지만 어떤 의미에선 평범한 인물이고, 미경은 여러번 실패하면서 다시 여러번 사랑하는 평범하면서도 사랑으로 끝내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대다수의 위대한 사람들의 모습을 하고 있고, 종현은 존경과 사랑을 오해한 인물이자 평범한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처럼 보인다. <사랑의 이해>속 인물들은 이해(利害)관계로부터 처음 관계를 시작하지만, 곧 이해를 넘어서 자신의 마음을 이해(理解)한다. 사랑이라는 상대방을 향한 강렬한 감정을 통해서 나를 이해理解하게 된다는 것은 어딘가 의미심장한데, 그것을 일종의 거울상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나의 마음 중 내가 외면하고 싶은 가장 연약한 부분을, 그리고 동시에 내가 알지 못했던 가장 단단한 부분을 잘 투영하고 반영한 거울상이다.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듯이, 다른 것에 비친 상에 의해서만 나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때도 있는 법이다. 진정으로 내가 사랑하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한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이며, 동시에 나의 가장 단단한 부분이다. 그래서, 사랑을 이해理解한다는 것은 곧 사회적 이해利害에서 벗어난 온전한 나를 이해한다는 의미다.
- <사랑의 이해>, JTBC,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