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치유
'죽고 싶어.'
30대 초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후, 종일 죽고 싶단 생각에 빠져 있었다.
예상치도 못했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들이 내 인생에 불순물처럼 끼어 있다는 게 미치도록 싫었다.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거덜 난 집안, 그리고 이혼.
국문학도로 특별한 기술 하나 없이 두 아이만 키우던 내가 갑자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부담감.
늦은 나이에 '사모님'에서 '말단사원'이 되어 겪어야 했던 수모.
삶의 나락과 함께 자존심도 바닥을 쳤던 시기였다.
내게 왜 이런 불행이 찾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하고 살았을까.
일을 하다가도 수시로 그런 상념에 잠겼다.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내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없었기에 외부의 탓으로 돌렸다.
그렇기에 나의 불행은 더더욱 부당했다. 나는 인생이 망할 짓을 하지 않았으니까.
피해자인 나는 억울하고 분했다.
하지만, 그 어떤 핑계도 마지막엔 내가 있었다.
내가 못난 인간이었기에 못난 인간을 만났고, 아이들까지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자책.
그 죄책감에 함몰되어 '죽는 방법'을 찾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소설을 써 볼까.'
아무 생기 없이 살던 어느 날.
문득 잊고 있던 작가의 꿈이 떠올랐다.
먹고 사느라 바빠 글을 쓸 여력이라곤 없던 그때.
소설을 올릴 수 있는 사이트를 찾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세상과 인물로 글을 쓴다는 건 꽤 신나고 재밌는 놀이였다.
서툴고 투박한 내 글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 재밌어요, 작가님!
- ㅋㅋㅋㅋ 너무 웃겨요
- 응원합니다~ 작가님, 화이팅!!
처음 들어보는 '작가님' 소리에 현혹된 나는 점점 소설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독자들과의 대화가 즐거워졌다. 얼굴도 모르는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신기했다.
이전까지 사람들과의 단절은 나의 일상이었다. 나에 대해 가엾게 보는 시선도, 나에 대한 호기심도 싫고 무서웠다.
내 치부가 남들에게 드러나는 건 너무나 자존심 상했다. 도움받는 것도 내 치부를 인정하는 것이기에 사람들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내 인생을 바꿔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 소설은 달랐다.
소설의 인물들은 다투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며, 나름의 갈등을 만들고 해소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화를 냈고 슬퍼했으며, 때론 깔깔 웃었다.
늘 안색이 어둡던 내가 웃기 시작했다.
글은 나의 은인 같은 존재다.
마음이 피폐하던 그 시절.
내 마음을 치유하고, 잊었던 꿈을 다시 꾸고,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글쓰기 덕분이었다.
암울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피할 수 있는 안식처였고, 편안히 마음 터놓을 친구 하나 없던 내게 소설 속 인물들이 친구가 되어 주었다.
사랑에 빠진 주인공들을 통해 폭망한 결혼에 위로받을 수 있었다.
내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늘어나고, 동료 작가가 생기고, 출간의 기회도 생기면서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불행이 터닝 포인트를 찾았다.
그리고 소설을 쓴 지 올해로 18년째다.
지금까지도 글을 쓰는 이유는 그때의 은혜를 잊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것임을 알기에.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1월 주제는 '글쓰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