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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Apr 17. 2024

관음과 관심 : 너무나 일상적인 일

우리 삶은 관음과 관심 투성이다.

식빵을 꺼내 토마토 퓌레를 한 겹 바르고 모차렐라 치즈를  뿌린다. 마치 첫눈 같다. 냉장고 야채박스 안에서 쭈그러들고 있던 방울토마토를 얼른 반으로 치즈 위에 올린다. 미리 쪄놓은 호박과 비트를 얇게 잘라 듬성듬성 놓고 올리브도 곁들어본다. 물론 모차렐라 치즈를 한 겹 더 올리는 것은 말해 뭐 해. 전자레인지 1분을 돌려놓고 토마토주스를 갈았다. 입맛을 다시며 식빵피자 접시를 꺼내보니 모차렐라 치즈는 본연의 모습 그대로 뻗뻗하다. 어? 1분으로 녹지 않는 것인가. 전자레인지를 한 번 더 돌리면서 아예 전자레인지 앞에 똬리를 틀고 주저앉았다. 은은하게 비친 조명들 사이로 치즈가 어떻게, 언제쯤 녹아들어 가는지 아주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며 관찰했다. 이 쯤되면 식빵 피자에 보내는  집중력은 관심을 넘어 관음 수준이다.


관음 :  볼 (관) 소리, 말(음)이 합쳐진 말로 타인의 소리, 타인의 말을 보는 것


관심이 어떤 것에 끌려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라면, 관음은  타인의 소리와 말을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요즘과 같은 영상이 난무한 시대에 들여다보는 것은 타인의 소리와 말뿐 아닐 것이다. 타인의 블로그 글을 들여다보고 읽는 것, 인스타그램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보는 것, 유튜브를 통해 누군가의 브이로그를 보는 것, 심지어 TV 속 프로그램 속 관찰 카메라를 통해 그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까지 말이다.


우리 삶은 관음이 가득하다.

관음은 인간의 본능이다.

누군가의 소리와 생각을 보는 것은 일상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브런치를 통해 생각과 일상을 은밀히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첫 관음 대상은 '시누이'였다.

결혼을 하고 5년을 손 아래 시누이를 데리고 있었다. 시누이는 가끔씩 본가로 가 있기도 했는데, 어느 날부터  주인이 없는 방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시누이와 가까워지고 싶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알고 싶기도 했지만, 대화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고 어떻게 대화를 해나가야 갈지 갈피를 못 잡았었다. '시'자에 관계된 사람이다 보니 잘해줘야 할 것 같으면서도 선을 그었다.

 

방은 그 주인을 나타낸다.

시누이가 쓰는 화장품, 침대 위 이불, 옷장 안에 걸려있는 옷들, 화장대 거울에 붙은 메모 쪽지들, 수집하고 있는 것들을 살펴봤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조그마한 책장이었다. 책장을 채우고 있는  책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렇다고 책을 꺼내  읽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제목만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관심을 가진 사람인지, 보았던 것 같다. 관음을 통해 몰래 들여다보기를 한동안 했다.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될지 몰랐던 '시월드'의 그녀였으니까.


그때부터였던 것일까.

누군가의 공간에 들어가면 구석진 곳에 있더라도 책장을 찾아가 보고, 흔적이 녹아있는 책상을 들여다보고 하는 습관이 생긴 건 말이다.


내 일생일대 가장 큰 관심을 주는 사람 중에 관음을 하고 싶지 않은 부류가 있으니 바로 '아들들'이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말수도 적어지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학교로 사라지고 난 뒤에는 어김없이 그들의 책상으로 갔다. 책장과 책상 위를 구석구석 매의 눈으로 살폈다. 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소득이 없으면 다행이지만 간혹 책상 밑 후미진 곳에 성인 잡지가 구겨져있다던지, 성인이 된 뒤로는 담배와 라이터가 곱게 모셔져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충격이란!!


하지만 그들에 대한 관음을 멈출 수는 없다.

인스타그램이 업데이트가 되었다는 알람이 오면 부리나케 들어가 사진을 보고 아들과 팔로우를 한 지인들 계정까지 두루두루 들어가 보고는 겨우 멈출 수 있으니 말이다. 영원한 나의 관음대상들, 팔로우를 해 주는 것이 어디인가.


나를 보여주기도 쉬워지고, 타인을 보기에도 편해진, 요즘은 노출과 관음이 만연한 세상이다.  

누군가에게 나를 노출한다는 것은 누군가 나를 지켜봐 주고, 부끄럽지만 나에게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일까. 또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일까.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라이킷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욕구일 것이다.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관찰하고 지켜보는 관음은 어떤 욕구일까? 물론 관심을 전제로 하겠지만 관음은 동등한 관계이기보다 지배하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인 것일까.

어쨌든 노출과 관음은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물론 적절하고 적정한 선을 지켜야겠지만 말이다.





오늘, 나의 관음으로 완성된 식빵피자를 먹으면서 연재를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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