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내도록 베란다로 나가는 길목엔 베이지색 망사 커튼이 쳐져있다. 동네 곳곳에는 화려한 벚꽃이 만개하고 연두색 잎들이 싱그럽게 올라올 때쯤이면 우리 집 거실 망사커튼이 활짝 열리는 순간이다.
베란다 통유리창은 이제 벌거벗어진다. 거실 밖 베란다의 모든 곳은 샅샅이 그대로 보이고, 빨래를 널면서 떨어진 각종 보풀과 머리카락들, 군데군데 물 때 자국, 돌돌 뭉쳐 날아다니는 먼지덩어리, 겨우내 관심을 두지 않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민낯을 드러낸다.
베란다에 초록 화분들을 진열하고 그 중간쯤 어딘가에 나무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커피 한잔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예쁜 베란다라면 모를까. 문 열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도 나고 창틀 틈에 꼼수를 부리며 끼어있는 먼지 자욱한 유리 창문을 보면 나는 그만 눈을 돌리게 된다.
베란다 유리창 대신에 거울을 달게 되면 어떨까?
거울이라면 이런 것쯤 안 보이게 해 줄 텐데 말이다.
베란다 유리창 너머로 큰 찜솥단지가 보인다. 몇 년 전 친구와 먹었던 석화가 너무 맛있었다는 나의 말을 귀담아들은 남편이 주문한 솥이다. 가까운 수산 시장에 가서 석화를 몇 킬로 사 왔고 목욕탕에 쭈그려 앉아 1시간 동안 석화 껍데기를 칫솔질하며 씻어냈다. 가까운 친구 부부가 불려 왔고 아들들과 함께 배 터지도록 석화를 먹었던 그 '기억의 찜솥'이다.
이 찜솥은 몇 주전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생들 부부 모임에 동행을 하게 되었다. 1박 2일 통영으로 떠나는 차에 강제 동행을 했고 숙소 밖 베란다에서 큼지막한 조개를 삶아대었다. 저녁 술안주로 엄청난 양을 먹고도 남아, 다음 날 아침 라면 속에 풍덩 담가져 해장을 하기도 했다.
남편의 '먹여 살리기 요리'는 역사가 오래되었다. 고등학교 동창생 부부 모임은 서로의 결혼시기가 비슷했고 아이들 나이도 고만고만해서 유년 시절을 다 같이 찬란하게 보냈다. 지리산, 덕유산, 태백산, 제주도까지 함께 산을 오르고 물놀이를 하고 캠핑을 했다. 제주도 둘레길을 오르기 전 간식을 마련하느라 골몰하고 있으면 남편은 큰 양푼이에 밥을 넣고 김가루를 촤르륵 흩뿌리며 깨소금을 듬뿍 넣어 동글동글 말아내는 강단 있는 간식거리를 준비해놓기도 했다.
눈이 쌓이고 쌓여 벤치까지 삼켜버리는 겨울 설산, 태백산을 오르자는 누군가의 말에 모두 질세라 동참했던 그 해 겨울, 잡아끌고 잡아당겨주며 오른 태백의 정상은 온통 새하얀 눈밭이었고 세상을 발아래 두고 먹는 새빨간 라면은 추위를 단박에 날려주기 더할 나위 없었다. 하산해서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기진맥진했다. 허기진 배가 19개. 배고픔을 어떻게 달래나 고민하던 찰나, 우리 집 차에 함께 끌려온 큼지막한 양은 들통 찜솥이 남편 손에 쥐어져 있었다.
잘 손질된 닭 세 마리와 옻나무, 마늘, 대추가 찜솥에 투하되었고 옻냄새가 은근히 풍겨 오르며 노오란 닭국물을 만들어냈다. 19개의 숟가락은 달국물에 빠지기 바빴고. 19개의 입들은 오물오물 씹고 고기를 뜯어대며 행복을 끌어안고 경배했다. 남은 닭국물은 닭죽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며 아침식탁을 차지해 주었다.
같은 소재로 만들었지만 전혀 다른 기능을 하는 것이 거울과 유리다. 규석이라는 광물을 기반으로 만들었지만 전혀 반대의 성격을 갖는다. 유리는 들어오는 빛을 그대로 투과시키고 거울은 빛을 반사시킨다. 빛을 그대로 투과시켜 투명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은 유리와도 같다. 자신 안에 빛을 머금고 있어 그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은 거울 같은 사람이다.
남편의 요리는 사랑이다. 요리를 좋아한다기보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한다. 좋아하는 내 사람들을 위해 자기가 내어 줄 수 있는 것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몸으로 표현한다. 속을 알 수 없는 거울이 아니라 유리 같은 사람이다. 남편의 '먹여 살리기 요리'를 먹으면 늘 맛있다. 사랑이 투명하게 전달되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