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페인트칠을 한 대문을 지나 시멘트 계단을 재빠르게 올라가면 짙은 나무색 현관문이 나타난다. 현관문을 열면 정사각형의 반듯한 거실과 부엌, 방, 화장실이 한꺼번에 눈 안으로 밀려 들어온다. 거실 창문이 크긴 하지만 빛을 흡수하지는 못한다. 차르르한 흰색 시폰 커튼이 쳐진 안방은 빛을 온몸으로 받아 햇빛을 방 안 구석구석 분사하고 있다. 우리 식구는 항상 안방에서 동그란 나무 밥상 앞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밥을 먹곤 했다.
" 철도 공무원이라고 있는데, 그거 한 번 준비해 봐라. 어떻노?"
갑자기 던져진 아버지의 말에 밥상으로 가던 숟가락이 허공에 멈췄다.
"임용고시.. 그거 몇 명 뽑지도 않고, 합격하는 게 힘들다 카는데... 차라리 철도 공무원 준비해 보는 게 낫지 않겠나" 텔레비전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무심히 던지신다.
나는 밥 먹던 숟가락을 밥상 위에 '탁'내려놓고 천천히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방문을, 일부러, 있는 힘껏, 꽝하고 밀쳤다. 아버지가 이 소리를 들어야 된다. 시작도 안한 시험을 실패로 단정 짓는 것이 싫었다. 내 의견은 무시했다. 내가 미리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분노스러웠다. 나는 아직 출발선에조차 서지 않았다고!!
2년여를 독서실 깜깜한 구석에서 혼자 버텼다. 공부의 스타트를 함께 한 동기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고 어느새 나는 독서실을 혼자 지키고 있었다. 1년에 한 번 치는 시험, 나만 공부하는 것도 아닐 테고 합격한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으며, 만일 떨어진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불안과 두려움도 키우지 않았지만 '희망'도 꿈꾸지 않았다.
학창 시절 질문할 학생을 찾으시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나는 아니겠지 설마'하며 고개를 숙이면 어김없이 나였다. 희망을 꿈꾸면 언제나 불운이 은근슬쩍 다가와 뒤통수를 때리며 조롱하는 것 같았다. 희망은 불안, 두려움과 늘 한 세트로 다니는 것일까. 나를 둘러싼 모든 감정과의 차단이었다.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애쓰며 모든 상황에 냉담 내지 가볍게 반응하며 감각을 둔화시켜 버린 것이다. 삶은 그냥 살아내는 것이다. 희망을 왜 꿈꾸어야 하나
하지만 시험을 한 달여 남겨두고 극심한 변비의 고통을 겪었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난생처음 변비약을 먹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그냥 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감정보다 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나는 희망을 꿈꾸지 않음으로 희망했다.
아버지의 '선 넘은' 노파심 덕분인지, '두고 봐라'라는 나의 분노 덕분인지 희망에 대한 감정 차단의 효과였던지 합격의 피날레를 용케도 울릴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 소식을 듣지 못했다. 방구석 분노 이후 5개월 뒤에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임용고시 합격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죽음으로 연결되는 과거의 고리이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치고 있다. 존 밀턴은 이 햇빛을 silver lining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은빛 자락'이라는 말로 해석하면 적당할까. 은빛 자락이란 말에는 구름 뒤에 가려진, 혹은 지금은 가려져 있지만 곧 드러날 '희망'을 뜻하는 말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볼 수 있는 '희망의 조짐, 밝은 전망'을 뜻한다.
하지만,
저 구름 뒤 가려진 햇빛은 모습을 내비칠 수도 있지만 또다시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 내 silver lining, 희망의 메타포는 희망을 꿈꾸지 않는 것이었다. 고통받는 환경으로부터 감정을 차단하고 회피하려 하였다. 그것은 환경으로부터 탈출하지 않아도 되고 불안감과 두려움도 가까이 올 수 없으며 간혹 고통을 이겨내는 것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지속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감정 차단을 계속 쓴다면 지금, 여기의 나를 온전히 느낄 수 없다. 희망에 무덤덤해질 때마다 나에게 전하고 싶다.
더 이상 비겁하게 겁쟁이가 되지 말고 구름 뒤 편의 것이 햇빛이든, 더 짙은 구름이든 제대로 샤워를 하라고. 그래서 희망도 온전히 꿈꾸어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