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무 되어 그 곁에 서고 싶다
나무 같은 사람 by 이기철
나무 같은 사람
이기철
나무 같은 사람 만나면 나도 나무가 되어
그의 곁에 서고 싶다
그가 푸른 이파리로 흔들리면 나도 그의 이파리에 잠시 맺는
이슬이 되고 싶다
그 둥치 땅 위에 세우고
그 잎새 하늘에 피워 놓고도
제 모습 땅 속에 감추고 있는 뿌리 같은 사람 만나면
그의 안 보이는 마음속에
놀 같은 방 한 칸 지어
그와 하룻밤 자고 싶다
햇빛 밝은 날 저자에 나가
비둘기처럼 어깨 여린 사람 만나면
수박색 속옷 한 벌 그에게 사 주고
그의 버드나무 잎 같은 미소 한번 바라보고 싶다
갓 사온 시금치 다듬어 놓고
거울 앞에서 머리 빗는 시금치 같은 사람,
접으면 손수건만 하고 펼치면 저녁놀만 한 가슴 지닌 사람
그가 걸어온 길, 발에 맞는 편상화
늦은 밤에 혼자서 엽록색 잉크로 편지 쓰는 사람
그가 잠자리에 들 때 나는 혼자 불 켜진 방에 앉아
그의 치마 벗는 소리 듣고 싶다
A Woman Like a Tree
by Lee, Ki-cheol
When I see a woman like a tree,
I wish to be another tree and stand by her.
When she is shaken like green leaves,
I wish to be dews formed on them.
When I see a woman like a root,
That erects her trunk on the ground
And blows her leaves in the sky
But hides herself deep into the soil,
I wish to make a room like a glow
In her unseen mind,
And stay overnight with her.
When I see a tender-shouldered woman like a dove
On a street where the sun shines,
I wish to look at her smile like a willow leaf
After buying her a pair of watermelon-colored underwear.
A woman like spinach, who cooks it
And then brushes her hair at a mirror.
A woman with her heart, handkerchief-sized when folded,
And as large as an evening glow when unfolded.
The path she has followed and the lace-ups to fit her feet.
A woman who writes a letter in deep green ink late at night.
When she goes to bed, I wish to hear her put off her skirt
Sitting alone in a lighted room. (Translated by Choi)
나무 같은 사람은 남자여도, 여자여도 좋다. 그 흔들리는 잎 새 위에 내린 이슬이 되고 싶기만 하다면 남자인들, 여자인들 어떨 것인가? 자신은 흙속에 묻힌 채 줄기와 잎사귀를 만들어내는 한, 그러한 사람 곁에 서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약하고 헐벗은 존재이지만 작은 선의에도 수줍은 듯 고마움의 미소를 잃지 않는 그런 사람과 밤새워 함께 한다면 어찌 행복하지 않을 것인가.
하지만 시를 읽어가며 나는 그 사람이 여인이기를 바란다. 시금치를 다듬어 밥상을 준비하면서도 정갈한 모습을 잃지 않는 여인. 소심한 듯 순종하다가도 모든 것을 포용하는 나보다 더 크고 관대한 여인. 걸어온 그 거친 길 위에 찍힌 그녀의 발자국. 그러한 그녀가 한 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마루 끝 낡은 의자에 앉아 편지를 쓴다. 간절히 사랑하고 용서해 온 많은 사람들을 향해 숨 쉬듯 조용히 속삭인다. 그 아름다운 여인이 이제 어려움과 괴로움을 벗어버리고 따뜻한 휴식을 취할 수 있기를 나는 새로운 각성 속에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