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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Oct 18. 2024

늙은 갈대의 독백

우리 시 영역(英譯 ) ... 백석

늙은 갈대의 독백

                 백석


해가 진다 갈새는 얼마 아니하야 잠이 든다

물닭도 쉬이 어느 낯설은 논드렁에서 돌아온다

바람이 마을을 오면 그때 우리는 섧게 늙음의 이야기를 편다


보름달이면 갈거이와 함께 이 언덕에서 달보기를 한다

강물과 같이 세월의 노래를 부른다

새우들이 마른 잎새에 올라앉는 이때가 나는 좋다


어느 처녀가 내 잎을 따 갈부던 결었노

어느 동자가 내 잎닢 따 갈나발을 불었노

어느 기러기 내 순한 대를 입에다 물고 갔노


아, 어느 태공망이 내 젊음을 낚아 갔노

이 몸의 매딥매딥

잃어진 사랑의 허물 자국

별 많은 어느 밤 강을 날여간 강다릿배의 갈대 피리

비오는 어느 아침 나룻배 나린 길손의 갈대 지팽이

모두 내 사랑이었다


해오라비조는 곁에서

물뱀의 새끼를 업고 나는 꿈을 꾸었다

벼름질로 돌아오는 낫이 나를 다리려 왔다

달구지 타고 산골로 삿자리의 벼슬을 갔다


The Soliloquy of An Old Reed

                        Baek, Seok


The sun sets. Before long, a reed warbler falls asleep.

A goosander easily comes back from a strange levee of a rice paddy.

When the wind comes to the village, we sadly talk about the old age.


The full moon I look up at on this hill with a reed crab.

With the flowing river, I sing a song of years.

I am delighted when shrimps climb on the dry leaves.


Which maiden picks my leaves for her pendent trinket?

Which child plucks my leaves to play a reed?

Which goose chews on my mild stalk and flies away?


Ah, which angler catches my youth?

At every joint of my body

Are the traces of my lost love left.

A reed pipe from a boat crossing the river at the starry night,

A reed stick of a traveller getting off from a ferry on a rainy morning,

All these were my love.     


A night heron beside me dreamed of

Flying with the baby of a water snake on its back.

A polished sickle called for me,

And I was loaded on a cart and carried to a mountain village to be a reed mat.  

(Translated by Choi)


평생 바람에 흔들리며 울음을 토하던 갈대가 홀로 이야기한다. 갈새가 잠들면 물닭이 날아와 위로하고 바람이 흔들면 지난 세월을 얘기한다. 하늘의 달과 언덕과 흐르는 강물을 기억하며 잎 새에 기어오르는 새우마저 즐거이 맞이한다. 갈잎 따 노리개 만들던 처녀, 풀피리 불던 아이, 잠시 대 위에 앉았다 날아가는 저 기러기,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내 젊음 낚았던 태공을 원망하랴. 마디마디 끊어져 피리를 만들고 지팡이를 만들던 그 모든 것들은 내 사랑의 흔적이었음을. 새끼 물뱀 업고 나는 해오라기 꿈에서 깨면 휘둘리는 낫조차 숙명이겠지. 달구지 타고 먼 길 떠나도 돗자리 되어 다시 돌아오리라.


자연과 인간의 합일이 이보다 더 자연스레 묘사될 수 있을까? 갈대의 독백을 듣는 시인의 감각이 경이롭다. 어찌 갈대의 소리가 젊음이 낚인 인간의 아픔과 동화를 이루는가? 마디마디 새겨진 세월의 흔적으로 인간의 삶을 형상화한 그 회화적 묘필(妙筆)에 감동한다. 훤칠한 키에  생긴 젊은 백석이 해방 이후 고향인 이북에 남아 그의 출중한 문재(文才)를 제대로 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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