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Dec 18. 2020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너에게 슬픔을 주겠다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니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From Sorrow to Joy

              by Chong, Ho-seung     


Now I’ll give you sorrow

More precious than love.

When you are delighted in cutting the price of some oranges

Displayed by an old vendor shivering on the cold street of a winter night,

I will show you the equal face of sorrow.

When I call you in the dark

You never give a smile on me in equal response.

When a dead body concealed by a straw mat

Is frozen to death again,

You never put a cover on it.

For your nonchalant love,

For your tears never shed,

I will give you a wait, too.

I will stop the large snowflakes falling on the world.

With the spring snow at a barley field

I will go to the sorrows of those people trembling in the cold

And walk with you on the snow-covered path when the snow stops.

Talking about the power of snow,

I will walk to the sorrow of a wait.     


매년 이 무렵이면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자는 구호가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그런데 올해는 바깥 구경을 못해서인지, 내가 무심해서인지 그런 말들이 도무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세월이 하 수상하여 그런 것이겠지요. 내 속의 따뜻한 마음조차 얼어붙은 모양입니다. 지난 늦가을 오대산 자락 소금강의 언덕 빼기에서 한 노인에게 밤 한 바구니를 샀습니다. 밤이 먹고 싶은 탓도 있었지만 가을 산을 기웃거리며 떨어진 밤송이를 주웠을 그의 모습에 애잔한 마음이 들었던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가끔 골목 어귀에서 산나물을 파는 나이 든 아주머니들을 보게 됩니다. 이름 모를 푸성귀를 조그만 판때기  위에 벌려놓고  오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그들은 그저 나이 들어 놀면 뭐하나 싶어 거리에 나와 앉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집에 돌아가면 장성한 자식들이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면박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삶의 흔적들일 겁니다. 텃밭에서 키우고 산에서 캔 그것들과 함께 살아온 그 세월을 결코 놓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인고의 시간에 조차 무관심할 수 없는 마음이겠죠.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추억보다는 현실의 냉혹한 삶에  던져진, 그래서  죽는것보다 살기가 더 어려운 이웃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 상처 입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 세상이 정말 왜 이럴까요.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테스형은 알른지 모르겠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슬픔의 평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힘들고 고달픈 사람에게만 슬픔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인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돌부리보다 삭막한 사랑의 무관심을 질책하기도 합니다. 말라버린 눈물에 대한 회한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시인의 표현처럼 ‘슬픔의 힘’은 위대합니다.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남의 슬픔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슬픔이 지나면 찾아올 기쁨을 기다리는 것이 희망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오그라든 마음이 갑작스러운 한파에 더욱 스산해집니다. 내 슬픔을 감내하기도 힘든 요즘이지만 얼어붙어 움직이지 조차 못하는 이웃의 고통을 아주 잊어버릴까 걱정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별은 너에게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