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Berger
INTRODUCTION
1972년에 출판되었으며 같은 이름의 BBC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이 책은, 예술 비평에 관한 매우 영향력 있는 텍스트이다. 비록 책과 프로그램이 같은 주장을 하고 있지만, 약간 다른 방식으로 그렇게 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사진가에게, 이 책은 서양 미술의 맥락에 사진을 적용시키는 장점이 있다. 비평 이론을 처음 접하는 학생에게는, 대중을 위해 제작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예술의 탈신비화(de-mystification)를 중심 목표로 한다. 이 두 가지 점은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많은 학생들이 사진을 공부할 기회가 없었지만, 예술을 공부했다는 점이고, 따라서 이 책은 그들이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할 때 논리적인 진행을 보여준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네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으며, 책은 일곱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지만(세 개는 이미지로만 구성되어 있다), 책은 네 가지 영역도 다룬다. 요약은 네 개의 작성된 장(chapter) 중 세 개의 장에 대한 것이다.
Chapter 1. 이 장에서, 버거(Berger)는 보는 것과 관련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에 의해 사물을 보는 방식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지적한다. 그는 이어서 많은 이미지의 진정한 의미가 탁상공론에 의해 애매모호해졌고, 사진 복제(reproduction)에 의해 변화하며, 금전적(monetary) 가치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
Chapter 3. 이 장에서, 버거(Berger)는 서양 미술에서 누드가 여성을 조직적으로 구상화(具象化)한 방법과 이 전통이 사진으로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보여준다.
Chapter 5. 여기서, 버거(Berger)는 유화(oil painting)가 현실주의적이기 때문에, 소유권과 돈의 구매력에 강력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종종 돈의 힘을 찬양한다고 주장한다. 이 장은 요약되지 않았다.
Chapter 7. 이 장에서, 버거(Berger)는 현대 소비주의(consumerist) 사회와 '홍보(publicity)' 또는 광고 사진을 비판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소유권과 예술 사이의 연결고리를 더욱 발전시킨다.
WAYS OF SEEING: CHAPTER 1
Seeing
버거(Berger)는 말(word)과 우리가 보는 것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말보다 보는 것과 인식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이 세상에서 우리의 처지를 입증하는 것을 보고 있지만, 우리는 이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단어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가 보는 것과 아는 것 사이에는 항상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예는 우리가 지구 주위를 도는 태양을 보면서도 그 반대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 보고 나서 단어를 사용하여 세상을 설명한다는 것을 확립한 후, 즉 우리가 아는 것, 그 다음에 그는 우리가 알고 있거나 믿는 것이 사물을 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것을 역동적인 관계로 만든다; 보고 인식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이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시스템으로 발전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는 지옥의 물리적 현실(reality)을 믿었던 중세 시대의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불(fire)을 보게 될 것이다.
보는 행위는 능동적이다; 그것은 선택의 행위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을 보고 그것과 연관이 된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본 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며,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계의 일부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사물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이해로 이어진다. 이러한 양방향(상호) 시각의 본질은 대화(dialogue)보다 우선한다.
The Image
버거(Berger)에게, ‘이미지란 처음 등장한 장소와 시간에서 분리되어... 재현되거나 재생산된 광경(sight)을 말한다...’(p.9). 이 분리(detachment)는 크거나 작을 수 있지만, 사진들을 포함한 모든 이미지는, 그 이미지를 만든 사람이 보는 방식을 수반한다. 게다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이미지를 볼 때,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우리의 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버거(Berger)는 이미지가 처음에는 거기에 있지 않는 무언가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나중에는 원래 피사체(subject)보다 더 오래 지속됨으로써 추가적인 의미를 얻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미지는 이제 피사체가 한때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보여준다. 나중에, 개인의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그 이미지는 특정 예술가의 특별한 시각으로 받아들여졌다. 과거를 잘 기록하는 것은 없으며, 작품이 상상력이 더 풍부할수록, 우리는 예술가의 세계 경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과거의 이미지가 예술 작품으로 제시될 때, 아름다움, 진실, 형태 등과 같은 학습된 가정(assumption)에 의해 그 의미가 모호하게(신비적이게) 된다.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우리가 변화함에 따라 항상 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신비화는 이미지를 더 다른 것으로 보이게 만들며, 역사로부터 더 적은 결론(conclusion)을 도출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과거의 예술을 볼 때, 우리는 역사 속에 우리 자신을 놓을 기회를 갖게 된다. 신비화는 우리가 그 이미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이며, 따라서 우리의 역사를 박탈하는 것이다. 버거(Berger)에게, 이것은 ‘...특권층 소수가 지배 계급의 역할을 회고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이루어졌다(p.11).
버거(Berger)는 프란스 할스(Frans Hals)의 그림 두 점을 예로 들었다; 하나는 섭정(Regent)들이고 다른 하나는 <노인 구빈원의 섭정들(Regentesses of the Old Men’s Alms House)>이다. 그림을 그릴 당시, 할스(Hals)는 초상화를 그렸을 때 사람들의 자선(charity)에 의존하는 빈곤한 노인이었다. 버거(Berger)는 ‘... 조화로운 융합... 기억에 남는 대조... 강력한 백색...’과 같은 문구를 사용하여, 그림을 형식적 요소로만 평가하는 권위 있는 미술사에서 인용한다(p.13).
역사는 더 나아가 시청자가 묘사된 사람들의 성격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논쟁한다. 버거(Berger)에게, 이것은 신비화이며, 그는 우리가 그 성격들을 이해할 수 있는데,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관찰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비슷한 사회적 관계와 도덕적 가치를 지닌 사회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p.14). 버거(Berger)에게 있어서, 성격들, 빈곤한 늙은 화가, 그리고 그가 의지하는 자선 단체의 관계는 그림의 본질이다.
The impact of photography
르네상스 시대부터, 예술에서 원근법(perspective)은 한 번에 한 곳에만 있을 수 있는, 단일 관찰자에게 수렴했다. 그 의미(implication)는 이미지가 시대를 초(超)시간적이다는 것이다. 사진, 특히 영화 카메라가, 이를 변화시켰다. 당신이 본 것은 시간과 공간에서 당신의 위치에 달려 있었다. 카메라는 예술가들이 보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인상파 화가(Impressionist)들은 눈에 보이는 변화들을 지속적으로 보았고[빛이 변함에 따라 물체의 외관도 변했다], 입체파 예술가(Cubist)들은 더 이상 단 하나의 시점(vantage point)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예를 들어, 그들은 한 시점에서 눈을 보고 다른 시점에서 코를 보고 얼굴을 그리곤 했다].
두 번째 주요 영향은 이미지의 고유성(uniqueness)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사진 이전에는, 이미지가 건축(building)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으며, 그 결과 이것이 이미지의 의미의 일부가 되었다. 이미지를 이동할 수 있더라도, 항상 하나의 이미지만 있다. 이미지를 복제함으로써, 카메라는 그 의미를 배가시키고 분열시킨다. 그것은 자신의 라운지 벽, 텔레비전, 또는 티셔츠에 보여줄 수 있다.
복제(reproduction)에 항상 무언가가 부족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여전히 문제를 남기고, 왜냐하면 고유성은 더 이상 이미지의 의미가 아니라, 유일한 물리적 존재에 있기 때문이다. 그 가치는 이제 말 그대로가 아니라 희소성과 가격에 있다. 여기에는 예술이 상업(commerce)보다 우선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갈등이 있다. 예술을 신비롭게 여기는 사람들은 상업적 가치가 영적 가치를 반영한다고 주장하며 반응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종교가 예전의 살아있는 힘이 아니다. 이미지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림의 의미나 품질이 아니라, 고유성이고, 버거(Berger)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거의 동일한 두 점의 <암굴의 성모(Virgin of the Rocks)> 그림을 예로 들었다. 하나는 런던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에 있고 다른 하나는 루브르(Louvre) 박물관에 있다. 두 기관 모두, 미술사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미지의 의미가 아니라 그 이미지가 원본이고, 다른 하나는 복사본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특정 이미지는 그 가치가 증가할 때 새로운 중요성을 갖게 된다. 예술적 가치와 시장 가치 사이의 연관성을 숨기기 위해, 이러한 작품들에 가장된 종교성을 부여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을 예술에서 소외시킨다.
복제(Reproduction)는 그림에서 의미를 분리하며, 그 의미는 어느 정도 변화한다. 예를 들어, 우화(寓話)적인 그림의 일부를 선택하면, 그것은 초상화(portrait)로 변형될 수 있다. 영화 제작자(filmmaker)는 그림의 일부를 선택하여 특정 순서대로 제시함으로써 논점을 구성할 수 있다. 그림 자체를 보여주면, 관객은 즉각 전체 이미지를 받아들이며, 특정 영역을 볼 때에도, 항상 전체를 참고할 수 있다.
단어와 이미지의 병치는 의미 또한 바뀐다. 이미지의 의미는 그 맥락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 이미지는 광고에 사용될 수 있으며, 종종 예술의 신비화(mystification)를 재확인하거나, 누군가 자신의 핀보드(pin-board)에 복제품을 고정하여, 이미지 속에서 매우 개인적인 무언가를 볼 수 있다.
버거(Berger)는 여전히 원본 이미지에서 가치를 본다. 원본(original)은 침묵하고 화가의 행동 흔적이 있어, 화가와 관람자 사이에 친밀감을 형성하여, 그림을 어떤 의미에서는, 동시대적으로 만든다.
버거(Berger)는 예술에 대한 완전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이 접근은 순수하게 자발적인 예술 전문가들의 경험을 포함하여, 예술을 모든 사람의 경험과 연관시키는 것이다. 예술은 더 이상 예전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는 체계(hierarchy)의 일부로 분리했었지만, 지금은 예술 이미지가 제공되고 실질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비화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제시되어 그들을 소외시키고, 그들의 역사와 단절시키며 예술을 정치적 이슈로 만든다.
WAYS OF SEEING: CHAPTER 3, THE NUDE
The social presence of men and women
버거(Berger)는 전통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유형의 사회적 존재라고 지적한다. 남성은 그들이 야기하는 권력(power)의 정도에 따라 판단되었다. 그 권력은 예를 들어 도덕적, 신체적, 경제적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한 남성의 존재는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는 할 수 없는지를 암시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 여성의 존재는 그녀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나타낸다. 그녀가 하는 모든 것은 그녀의 존재의 원인이 된다. 그녀는 남성의 돌봄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관찰하는 법을 배웠고, 그 결과 그녀의 존재는 관찰 대상(surveyed)과 관찰자(surveyor)로 나뉘게 되었다. 그녀 자신의 존재감은 다른 사람들 –궁극적으로 남성들에게– 인정받는 존재감으로 대체되었다. 그가 행동하고, 그녀가 나타나서, 그녀는 자신이 주목받는 것을 지켜본다. ‘여성 자신에 대한 관찰자(surveyor)는 남성이다: 관찰 대상은 여성이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을 하나의 대상(object) – 특히 시각의 대상으로 바뀐다: 광경(sight).’ (p.47).
The nude in oil painting
버거(Berger)는 유럽 유화의 한 범주인 –누드(nude)–에서 여성이 주요 주제(subject)라고 지적한다. 누드는 여성들이 광경(sight)으로서 어떻게 보여졌고 평가받았는지를 드러낸다. 이 전통의 첫 번째 누드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일반적으로 만화(cartoon)와 유사한 일련의 이미지로 묘사한다. 버거(Berger)에게, 이 이야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첫째, 사과를 먹은 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기 때문에, 벌거벗은 모습이 보는 사람(beholder)의 눈에 띄었다. 둘째, 여성은 처벌을 통해 비난을 받고 남성에게 종속되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야기가 사라지고, 대신 한 순간, 보통 수치심의 순간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수치심은 서로를 향한 것이 아니라 시청자(viewer)를 향한 것이다. 점차, 수치심은 일종의 과시(display)가 되었다. 세속적인 피사체(subject)가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에도, 여성이 관객(spectator)에게 보여진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암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자신의 권리로 벌거벗은 것이 아니라 (남성) 시청자가 그녀를 본 것처럼 벌거벗은 상태였다.
버거(Berger)는 다양한 예들을 제시한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청자를 바라보는 누드; 거울을 들여다보는 여성들이 그들 자신의 광경 속에 연결되고 있다; 또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허영심에 대한 비난을 받더라도, 실제로는 벌거벗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싶은 남성의 욕구만 충족시킬 수 있다; 그리고 여성의 아름다움이 평가받고 있다. 이 모든 이미지의 공통점은 주시당하는 여성 존재의 의미이다; 그림에서 남자들에 의해; 그녀 자신에 의해; 그녀의 몸을 자주 대상으로 만드는 관객에 의해.
종종,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관객을 바라본다. 그녀의 나체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시청자의 것이다. 이것은 벌거벗음이 그렇게 수동적이지 않고 성적 평등의 정도를 지닌 다른 문화의 예술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버거(Berger)가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를 제작할 당시, 누드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연구는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의 <The Nude>였다. 클라크(Clark)는 벌거벗음(nakedness)과 나체(nudity)를 구분한다. 그에게, 벌거벗은 것은 단순히 옷을 입지 않은 것과 같다. 그것은 예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반면에, 누드는 예술 형식이다. 피사체는 벌거벗은 사람들일 수 있지만, 그들이 그려진 방식은 그들을 누드, 즉 다른 방식으로 보기로 만든다. [버거는 명확하게 밝히진 않지만, 클라크의 주된 관심사는 누드의 성적임(sexuality)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버거(Berger)는 이 구별을 발전시킨다. ‘벌거벗었다는 것은 자신이 되는 것이다. 누드는 다른 사람에게 벌거벗은 모습으로 보이지만 자신을 인지(認知)하지 못하는 것이다. 벌거벗은 몸이 누드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대상(object)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누드의 유화에서, 주인공은 결코 그려지지 않는다; 이 사람은 모든 것이 완료된 남성 관객이다. 버거(Berger)는 브론치노(Bronzino)의 <시간과 사랑의 알레고리>를 통해 이 점을 설명한다. 그림에서, 큐피드(Cupid)는 비너스(Venus)와 키스하고 있지만, 그들의 몸이 배열된 방식은 비너스와 키스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녀의 몸은 그림의 남성 관객에게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왜곡되었다. 그 그림은 그의 성적임(sexuality)에 어필하지만, 그것은 그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 이미지는 여성의 체모를 그리지 않는, 또 다른 유럽 관습을 따른다. 이는 털(hair)이 힘과 열정을 암시하기 때문이며, 남성 관객은 이것들이 그의 특징이라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에는 예외가 있으며, 버거(Berger)는 그림에 필요한 특징이, 누드라기보다 오히려, ‘... 사랑받는 여성들의 그림, 어느 정도 벌거벗음(naked)’(p.57)이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그 순간을 초월해야 하고, 왜냐하면 버거(Berger)에게, 살아있는 성(性)적인 경험에서, 벌거벗음(nakedness)은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에, 어떤 순간의 이미지라도 왜곡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는 주관적이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그것들은 진부함(평범함)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개인에 대한 강한 감각을 수반하는, 유럽 인문주의(humanism)는, 이 시기 동안 유럽의 사고에 강한 영향을 미쳤지만, 누드는 묘사된 여성들의 개성(individualism)을 부정했다. 그 이유는 그림에 관련된 그것들의 모순된 관심사 때문이었다: 후원자, 예술가, 그리고 모델. 예를 들어, 뒤러(Dürer)는 이상적인 누드는 다양한 신체 부위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것에 대한 감각을 전혀 부정하지 않았다. 개성(individualism)에 대한 정신은 일부 예술가들이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게 했지만, 전체적으로 전통은 그렇지 않았다.
마네(Manet)의 <올랭피아(Olympia)>에 의해 이상적인 누드가 깨지고, 매춘부(prostitute)의 리얼리즘으로 대체된다는 개념에도 불구하고, 유화에 의해 이용된 부적당한 관계는 여전히 우리 문화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많은 여성들에 대한 사고를 형성하고 있다. 오늘날, 누드를 만든 태도는 대중 매체에서 볼 수 있으며, ‘... 여성을 바라보는 본질적인 방식, 그들의 이미지가 담긴 본질적인 용도는, 변하지 않았다.’(p.64). 이상적인 관객은 여전히 남성이며 그 이미지는 그를 즐겁게 하기 위해 의도되었다.
WAYS OF SEEING: CHAPTER 7, PUBLICITY
The effect of publicity images
버거(Berger)에게, ‘홍보(publicity) 이미지’라는 용어는 ‘광고 이미지’와 같은 의미이다. 그는 그것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이것이 현대 사회에 독특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시각적 메시지는, 우리가 그것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보는지와 그것들이 얼마나 종종 업데이트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잠시 동안만 지속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현재를 표현하지 않고 미래를 언급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너무 자주 보게 되어 이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는 보통 이 이미지들을 지나치지만, 그것들이 우리를 계속 지나가는 느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동적으로 보여지고 우리는 정적(靜的)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이론적으로, 소비를 촉진함으로써, 대중(소비자)에게 이익을 주고, 그 결과,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경제 시스템 측면에서 정당화된다. 비록 자유로운 선택의 개념, 즉 이 브랜드나 다른 브랜드를 구매할 자유와 연결되어 있지만, 전체 홍보 시스템은 하나의 제안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무언가를 사면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돈을 썼지만, 더 많이 소유함으로써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Envy, glamour and publicity
버거(Berger)는 부러움(envy), 매혹(glamour), 그리고 홍보 사이의 관계를 본다. 홍보는 소비로 인해 삶이 변화하고 부러움을 사는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부러워하는 것은 그 사람을 매혹적이게 만들고, 홍보는 매혹을 꾸며낸다.
홍보는 자연스러운 즐거움에 대한 욕구, 즉 진정한 것에 대한 작업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즐거움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행복을 약속하고,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아 행복을 얻으며, 이것이 바로 매혹이다. 따라서 그것은 그 자체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홍보가 잘될수록, 관객은 그것이 놓치고 있는 것을 더 많이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이 매혹은 매우 고독하다.
부러움을 받는 것은 당신의 경험을 부러워하는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는 것에 달려 있다. 이것은 많은 매혹적인 이미지들의 일반적이고 분명한 목적〔방향〕이 부족한 모습을 설명한다. 구매자들은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그들 자신이 변했다고 상상하며, 바뀌어진 자신을 부러워한다. 사실상, 홍보 이미지는 관객들의 자존감을 낮추고 제품을 구매하면 그 보답을 제공한다.
The relationship between oil painting and publicity images
유화와 홍보 이미지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며, 이는 문화적 위신(prestige)에 모호해져 있다. 홍보(Publicity) 이미지들은 종종 과거의 예술을 직접적으로 참고(reference)하는데, 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모방하거나, 예술을 홍보 이미지에 통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예술에 대한 이 ‘인용(quoting)’은 두 가지를 달성한다. 예술은 부(富)와 아름다움과 관련이 있으며, 홍보 이미지는 이를 통해 이점을 얻는다. 예술은 또한 단순한 물질주의에 좌우되지 않는, 문화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예술의 사용은 홍보 이미지가, 정신적 또는 문화적 세련미와 소비주의라는, 거의 모순되는 두 가지를 촉진할 수 있게 한다. 홍보는 유화에서 예술 작품과 관객-소유자 간의 연관성을 이해하고, 이를 이용해 관객-구매자에게 아첨한다.
그러나, 유화와 훨씬 더 깊은 연관성이 있다. 사용된 구성과 시각적 기호는 매우 유사하다. 버거(Berger)는 예시 목록을 열거한다:
모델들의 제스처
본질의 낭만적인 사용과 순수함의 의미
지중해성(Mediterranean)의 사용
전형적인 여성, 예를 들어, 평온한 어머니(마돈나), 여주인(관객-소유자의 아내), 성적 대상(비너스)
사치스러움을 나타내는 재료(금속, 모피, 가죽 등)
시청자를 위하여 연인들의 정면 배치
새로운 삶을 암시하는, 바다
남성의 입장에서 전달되는 부와 남자다움(virility)
미스터리를 제공하는 데 사용되는 관점
성공과 동일시되는 음주
자동차 운전사로서 말 탄 기사.
버거(Berger)에게, 홍보는 소비자 사회의 문화이며 유화를 그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 유화는 사적인 소유를 찬양했다; 그것은 ‘당신은 당신이 가진 것이다’라는 생각을 나타냈다. 이러한 이유로, 홍보는 르네상스 이후의 예술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그 연장선상에 있다.
둘째, 품질에 관련하여 그것은 과거와 전통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만일 그것이 현대적인 용어로 말했다면 그것은 자신만만할 수도 없고 신뢰할 수도 없을 것이다.
셋째, 일반적인 수준의 관람객-구매자의 전통적인 교육을 활용한다. 홍보는 구체적이거나 정확한 역사적 언급을 할 필요가 없다; 사실 그렇지 않은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컬러 사진과 유화는 관객에게 촉각적 현실감을 전달하는 능력에서 매우 유사하며, 실제로 그것(thing)을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관객-소유자의 경우)이나, 그것을 소유할 가능성(관객-구매자의 경우)을 강화한다.
유화와 홍보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유화는 사실(fact)에서 시작하고, 즉, 그는 이미 보여지는 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것은 관객-소유자의 상태를 확증하고 그의 자부심(ego)을 북돋아 준다. 홍보는 관객-소유자의 자아를 약화시키고, 그의 삶에 불만을 품게 한다(그러나 사회는 그렇지 않다). 관객-소유자는 시장(market)에서 돈을 벌었고, 관객-구매자는 시장에 있으며, 노동자로서 그다음엔 구매자로서, 두 개의 수준에서 그가 생각하는 돈을 가지고 있다.
홍보는 당신이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두려움에 작용한다. 이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 소비자는 돈을 가져야 했다. ‘돈은 삶이다 ... 모든 인간 능력의 상징이자 열쇠라는 점에서이다. 돈을 쓸 수 있는 힘은 살아 있는 힘이다.’ (p.143).
유화는 미래 세대에게 전해질 실제, 성공적인 현재(present)에 대한 영구적인 기록을 남겼다. 홍보를 위해서, 현재는 충분하지 않아야 한다. 일시적인 홍보 이미지는 당신이 바람직하거나 성공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적임(Sexuality)은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든, 홍보를 통해 물건(things)을 판매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것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성적으로 바람직하거나,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Function of publicity
홍보(publicity)가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관객-구매자의 환상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다시 그것은 현실(reality)을 분리했다.
버거(Berger)는 현대 발명품이라고 말하는, 매혹(glamour)의 개념으로 돌아간다. 과거에는, 우아(優雅)함과 고상함(elegance) 등의 개념이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달랐다. 이러한 특성들과 함께 묘사된 사람들은 이러한 특성들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질투(envy)에 의존하지 않았다.
매혹이 존재하려면, 질투가 널리 퍼진 감정이어야 한다. 버거(Berger)는 산업 사회가 아직 완전히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를 위한 적절한 조건들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은 개인이 무력감을 느끼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 개인은 자신이 존재하는 것과 되고 싶은 것 사이에 갇혀 있다. 이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이 있다: 개인은 질투와 무력함(helplessness)에 시달리며, 홍보에 악용되는, 백일몽(day dreaming)에서 달아나려고 한다; 또는 개인이 정치적으로 활동하게 되어 자본주의를 전복시키려고 시도한다.
버거(Berger)는 홍보를 민주주의의 대체물로 본다. 중요한 정치적 선택 대신, 개인은 무엇을 살지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개성을 주장한다. 이는 사회의 부족한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숨긴다. 홍보는 일종의 철학적 시스템으로, 그 자체적인 관점에서 사물(things)을 설명한다.
Publicity and the world
전 세계는 홍보의 장(場)이며, 갈등을 넘어, 혁명을 자신의 용어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와 홍보의 세계 사이에는 극명한 대조가 있다. 때때로, 이것은 매우 분명해지며, 버거(Berger)는 홍보 이미지와 함께 제3세계 빈곤(poverty)에 대한 가혹한 이미지를 사용하는 잡지의 예를 들곤 한다.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이슈들이 발생하는데, 그 중에는 이러한 이미지를 서로 나란히 보여주는 문화의 냉소주의(cynicism)가 있다. 버거(Berger)는 도덕적 충격을 강조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광고주들도 이를 인식하고 그 결과 이미지를 순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버거(Berger)는 전자가 행복한 사건에 관한 것이라면 뉴스나 피처(feature) 사진과 홍보 이미지 사이의 대조도 마찬가지로 클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조적인 점은 ‘홍보는 본질적으로 사건이 없는 ... 지속적으로 연기되는 미래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p.153). 그것은 사건(event)을 실체성(tangibility)으로 대체하고, 보여주는 모든 것이 획득을 기다리고 있다. 이 획득할 수 있는 힘은 홍보가 인정하는 전부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희망이 혼합되고 단순화되었다. 관객-구매자는 이러한 희망이 구매를 통해 충족될 것이라는 모호하지만 매혹적인 약속을 했었다.
홍보가 없으면, 자본주의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며, 대다수의 사람들을 강요함으로써만 살아남을 수 있다, 즉 ‘...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관심을 가능한 한 좁게 규정지으며 ... 무엇이 바람직한지와 바람직하지 않은지에 대한 잘못된 기준을 강요함으로써...’(p.154).
ASSIGNMENTS/DISCUSSION POINTS
The impact of photography
1. 버거(Berger)는 그림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림의 질이나 의미가 아니라 고유성(uniqueness)이라고 주장한다. 사진은, 그림과 달리, 정말로 동일한 복사본을 많이 만들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사진의 본질적인 특성 중 하나이며 민주적인 매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사진 수집가(collector)들은 나중에 인쇄된 동일한 것보다 오히려 ‘빈티지(vintage)’ 프린트(사진을 찍었을 때 만들어진 것)에 항상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것이다. 이 높은 가격은 빈티지 프린트가 사진가의 오리지널 비전을 더 잘 반영할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정당화되었다. 많은 사진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한정판(limited edition)으로 프린트하며, 어느 정도 희귀성을 보장함으로써 프린트의 가치를 높인다. 예를 들어,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과 마리오 자코멜리(Mario Giacomelli)과 같은 사람들은, 나중에 이미지를 다시 프린트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웨스턴의 아들 브렛(Brett)은, 사후에 자신의 작품이 프린트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모든 네거티브를 파괴했다. 셰리 레빈(Sherrie Levine)(제9장 참조)은 유명 사진가들의 작품을 복제한 사진을 찍으며, 그 결과 나온 프린트를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버거(Berger)에게, 그림들의 고유성(uniqueness) 때문에 그것들이 상품화되는 것은 분명히 그 의미를 훼손한다. 위에서 언급한 점들과 관련하여 사진에서 고유성, 가치, 의미의 개념을 탐구해 보세요.
2. 명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진을 찾아서, 분리해서 보거나 다른 부분과 함께 볼 때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그것들의 부분을 선택하기 위해 연구하세요. 원본을 잘 복사(photocopy)하거나 스캔한 후, 그것을 잘라내고 새로운 의미들을 설명하기 위해 그 부분을 제시한다. 캡션(caption) 없이 먼저 이 작업을 수행한 다음 캡션과 함께 수행한다. 캡션이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다.
The Nude
The social presence of men and women
1.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잡지, 남성을 대상으로 한 잡지, 혼합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잡지, 세 권을 선택하세요. 광고 이미지와 편집 이미지를 각각 분석하여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존재에 대한 버거(Berger)의 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실인지를 확인하세요.
각각 다른 잡지에서 남성과 여성의 묘사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각 잡지 내에서 광고와 편집 묘사에 차이가 있는지. 수십 년 전의 유사한 잡지들을 조사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묘사 방식에 어떤 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는지 확인해 보세요.
The nude in oil painting
1. 순수 미술에서, 누드가 묘사되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이는 스탠리 스펜서(Stanley Spencer), 루시안 프로이드(Lucian Freud), 제니 사빌(Jenny Saville)과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사진에서도 마찬가지로, 예를 들면 사진에서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조 스펜스(Jo Spence), 셀리 만(Sally Mann), 아르노 민키엔(Arno Minkkinen), 존 코플랜스(John Coplans)와 같은 사진가들과의 지배적인 관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누드는 광고에서 점점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버거(Berger)가 유화에서 전통적인 누드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을 여전히 광고에서 누드에 대해 균일화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다른 잡지들을 참고하여 당신의 답을 입증해 보세요. 버거(Berger)의 책 요약에서 유화와 홍보 이미지의 관계(The relationship) 섹션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클라크(Clark)와 버거(Berger)는 누드에 대해 매우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 클라크(Clark)에게, 나체는 단순히 옷이 없는 것이지만, 누드는 예술에 의해 창조된 것이고, 버거(Berger)에게, ‘나체인 것은 자신이 되는 것이다. 누드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체로 보이지만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벌거벗은 몸은 누드가 되기 위해 하나의 대상(object)으로 보아야 한다’(p.54). 흥미롭게도, 사진의 정직함(truthfulness) 때문에 클라크(Clark)에게 예술 형식이 될 수 없었다.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그의 몸을 ‘객관화(objectify)’할 수 없지만, 버거(Berger)에게 그것의 리얼리즘(realism)은 몸을 객관화하는 이상적인 매체로 만든다. 일반적인 영어 사용법에서는, ‘누드’와 ‘나체(naked)’라는 용어가 꽤 서로 호환되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다양한 매체나 사진 속 누드를 보세요. 현대 누드를 볼 때, 예를 들어 화가 루시안 프로이드(Lucian Freud)와 제니 사빌(Jenny Saville), 사진가 존 코플랜스(John Coplans), 셀리 만(Sally Mann), 리 프리들랜더(Lee Friedlander)의 작품을 보세요. 클라크(Clark)와 버거(Berger)의 구분이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3. 버거(Berger)는 회화적(pictorial) 에세이를 사용하여 누드를 객관화하는 데 있어 사진이 전통적인 유화를 대체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양한 이미지들의 복사본을 수집하고 이 점을 지지하거나 반박하기 위해 자신만의 회화적(pictorial) 에세이를 만들어 보세요.
Publicity
Envy, glamour and publicity
1. 버거(Berger)는 광고(홍보)가 독자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매우 부정적인 방식으로 설명한다. 일련의 광고를 선택하여 버거(Berger)를 지지하거나 그의 주장을 약화시키는 주장을 설명하는 데 그것들을 사용하세요. 이 질문에 답할 때 당신은 이 요약에서 홍보에 대한 기능(Functions) 섹션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The relationship between oil painting and publicity images
1. 버거(Berger)는 광고가 유화의 측면을 활용하는 것에서 모든 다양한 방식을 나열한다. 당신은 가능한 한 많은 측면의 예시들을 찾아보시고, 가능하다면 유화의 선례들도 보여주세요. 당신의 대답은 <Ways of Seeing>의 2장, 4장, 6장처럼 완전히 시각적일 수 있다. 주디스 윌리엄스(Judith Williams)의 저서 <소비하는 열정(Consuming Passions)>에서의 <광고에서 예술의 기능> 장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Functions of publicity
1. 광고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활동하기보다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주장하도록 장려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손상시킨다는 버거(Berger)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하십니까? 답변할 때, 당신이 광고에 휘둘린다면 실제로 당신 자신의 개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광고주가 당신에게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고려해야 한다. 광고주가 당신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선택에 대해 알려주는 것일 뿐이라는 광고주의 주장과 고찰해 보세요.
Publicity and the world
1. 버거(Berger)는 잡지에 실린 광고 이미지와 강렬한 뉴스 사진의 모순된 병치에 대해 언급하며, 강렬한 뉴스 사진이 광고인 올리비에로 토스카니(Oliviero Toscani)의 베네통(Benetton) 광고를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베네통 광고는 ‘홍보(Publicity)는 본질적으로 사건 없이 ... 지속적으로 연기되는 미래에 위치한다’(p.153)는 버거(Berger)의 주장을 약화시키고, 사건을 실체성(tangibility)으로 대체하며, 그것이 보여주는 모든 것이 획득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광고가 어떤 이미지에도 적합하고 그 의미를 훼손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다른 예시를 사용하여 당신의 대답을 입증할 수 있다.
2. <Ways of Seeing>을 쓴 이후 잡지계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일요일 신문 잡지 부록과, 버거(Berger)가 사용하는 예는 뉴스 중심에서, 라이프스타일(lifestyle) 중심으로 변화했다. 버거(Berger)의 예에 등장하는 사진가, 돈 맥컬린(Don McCullin)은 이러한 강조점 변화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선데이 타임즈Sunday Times>에서 해고당했다. 이 변화는 이제 그러한 잡지에서 세상을 보는 방식(ways of seeing)이 충돌할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홍보의 보는 방식을 강화한다. 당신의 나라에 잡지 부록이 포함된 신문이 있다면, 이러한 잠재적 충돌과 뉴스의 조달자(공급자)로서 잡지의 가치를 평가해 보세요.
-Basic_Critical_Theory_for_Photographers, Ashley la Gra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