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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ng Documentary Work

Robert Coles

by 노용헌

Introduction

(현재 우리가 칭찬할 만한 유명한 사람들,Let Us Now Praise Famous Men) 논점에서, 제임스 에이지(James Agee)는 소작농 가족들의 생활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것과 1936년 7월에 만난 워커 에반스(Walker Evans)의 장엄한 과업을 묵상한다. 그들이 그 지역의 농업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하여 포춘(Fortune) 잡지의 편집자에 의하여 남쪽 지방으로 보내졌다. 그들은 그들의 지역인 알라바마 중심지(소위 흑인가의 심장)에서 선발되었다. 인종상의 모집이 아니라 부유하고 농작물을 길러 생산하는 주민들과 같은 사람을 묘사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세 가족을 그들의 방법과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만들었다. 그들 모두 백인으로-배우려고 노력할 무엇을 이해하는 과업에 직면했고, 독자에게 그들의 말과 이미지를 제공할 무엇. 그 다큐멘타리 과업은 엄청나게 에이지(Agee)를 괴롭혔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쓸데없이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에게 그의 책의 첫 페이지(미적이고, 지성적이고, 도덕적인 투쟁)에서 밝힌다. 그리고 그가 그런 동료 시민들, 동료 인간들과 시간을 보낸 후 그가 목격한 무엇에 대해 기록한 것을 심사숙고하였다. 그는 “비참한 눈빛을 보았다”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가망 없는 것처럼 보인다. 머지 않아 그는 분노와 경멸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그와 에반스(Evans)를 남쪽으로 보내도록 감독 지휘하였다. "외설스럽게 말하는 것은 나에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완전히 겁나게 한다"라고 그는 기록한다. " 그것이 인간의 관련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것 함께 난국과 행운을 통해 그려진다. 그리고 언론계의 기관, 조합의 이익을 위하여, 무방비한 삶들을 상세하게 꼬치꼬치 캐내고 그리고 지독하게 인간집단을 손상시킨다..." 그것은 매우 긴 의미의 단순한 시작이다. 요컨대, 포춘(Fortune)의 편집장을 맡고 있고 두 명의 고용인(최소한), 제임스 에이지(James Agee)와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저널리스트적인 임무의 결과인 책을 통해서 우리는 의심할 바 없이 우리를 상기시켰을 때 우리는 작가가 확실하게 우리 자신의 방법에서 과실이 있는 것처럼 인식한다. 섹션의 끝에는 “교육”이라 불렸다. 에이지(Agee)는 그의 “자기 혐오”라고 언급한다. 그는 그의 고뇌를 제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무능”보다는 “무지”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는 또한 명백한 것에 대해서 자신 스스로 비난한다. "가볍게 얘기하고 있거나, 진지하지 않는 [그가 쓰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필요한 그의 묘사] 묘사로 그들을 사진 찍는 것은 자살을 하고 싶은 충동의 무능력이다.“


나는 그런 감정적이고, 극적이고, 잊을 수 있는 무차별적인 분노가 단순한 수사법이라고 생각한다. -솔직 담백하고 독자에게 약속하기 위해 수줍은 노력, 작가의 고백적 견해들을 통해, 필요한 도덕적인 자기반성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하나의 책에 통감할 수 있는가? 여전히 , 에이지의 분노는 결국 그의 격렬한 언어가 때때로 제안하는 것 보다 적게 개인적이다. 그는 정말로 작가들과 독자들에 대하여 우리의 인간성까지도 대항하여, 심지어 그가 그렇게 국적과 인종-그렇게 멀지 않은 배경(테네시주 자작농 조상인 그의 아버지), 교육수준, 계급-을 나눈 그들의 인간성을 지지하기 위하여 열정적으로 그리고 훌륭하게 시도할 때에도(그리고 장황하게, 약간의 확언) 끊임없이 비난하고 있다. 책에서 긴장의 중심 원인은 가까운 장래에 있을 과업에서의 불충분한 에이지의 느낌이다.- 출판업자에게 보낼 그가 완성할 얼마간의 원고가 사람들의 생활에 관하여 많은 문제들을 전달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느낌은 그의 독자들이 진실이라고 느끼지 않을 것에 대해 걱정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 그들을 설득하고 매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가 칭찬할 만한 유명한 사람들"(Let Us Now Praise Famous Men)라는 책을 다 읽은 그들은 위험한 관념을 수반하여 그들은 주제에 관하여 가장 대부분의 그들의 생활에 정확하게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필사적으로, 그의 몸부림치는 다큐멘터리(무익하고 무능하게 우리를 되풀이해서 훈계한다)를 시작하였다: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전혀 여기서 어떤 집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을 찍었다; 그 밖의 것들은 천 조각들, 면 조각들, 흙덩어리들, 연설 음반들, 나무와 철 조각들, 향수병들, 음식과 배설물의 접시들." 그는 가장 확실하게 중요한 노동과 국민대중의 고통, 일, 회의론자의 말들을 그의 책으로부터 절제되어 말해진다. 손쉽고 정당하게 많은 사람들에 의한 천재적인 작업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아주 분명히 그는 작품이, 있는 그대로, 복합적인 자책으로부터 스스로 멈추지 않았다. 그를 이해하는 우리는, 마구 퍼붓는 논쟁의 독자들처럼,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심리학적, 윤리적인 수수께끼를 심사숙고할 모든 책임 그 거의 침착하게 (책은 자극하는 여담으로 가득 찼다) 우리의 습관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가 경박하고, 제멋대로 가져온, 그러므로 이 책은 대유행뿐만 아니라 통찰력, 너그러운 서정미를 가졌는가? 여하튼 더 정직하고 가까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적절할 만큼 심지어 사진의 그의 언급에서도, 책에서의 함축된 대안은 - 결코 다른 사람이 암시한 제공작품들이 신경(그리고 자극) 쓰이지 않습니까? 그는 우리를 상기시키고 있었습니까, 외관상 경멸적인 것처럼 보이는 견해에서, 반어적으로, 심지어 작가들의 명예를 더럽힌다, 얼마나 중요한 논쟁들은 있을 수 있다 - 수단, 결국, "파편“ , "도막" , " 조각" , "약병" , "음반" , "접시" 들의 아이디어에 의해서 우리들에게 의미가 전달되어지는가? 물론, 최저 이슈는 언어의 종류가 무엇을 의미하면서, 어떤 단어들인가, 어떤 사람들이 쓰고,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 얻었으며, 실지 답사의 노력으로 만들어진(1936년 여름 동안 알라바마에서 보낸 시간)것과 몇 년간의 가치 있는 특별한 답사(“초고”들로 불리운 그들의 실체적인 형태)들이 정당한지, 거의 숨기지 않고 에이지는 출판을 끝냈고,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가?


내가 에이지(Agee)의 책을 떠올리지만, 그러나 여기서 나는 이른바 다큐멘타리 작업, 말하자면, 약간의 직업상의 위험들을 간단히 말한다. 에이지가 기획한 열정적인 정밀한 조사는 하나의 희망들, 모든 작품과 연구의 관점들이다. 정신분석의 정신의학의 내 작업에서는, 우리가 적당하게 자기기만을 위한 능력을 강조한다. 마음의 동요와 무의식적인 영향 아래에, 환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들까지도 - 소위 그들에게 “이동”하고, 우리에게 “역이동”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저널과 책들은 아마도 자기 방위쪽의 너무 인간 성향에서, 후자보다 많이 멀리 전자를 강조한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이동" 과 "역이동"이란 말은 나쁜 결과를 초래하거나 정신적 응답, 의식과 무의식의 가능한 범위를 설명한다. - 또한, 인식하거나 인식하지 않든지 다르게 만든다.- 우리의 무언의 특성 나타낸다, 스스로 인정하지 마라, 다른 사람과의 살아가는 방법. 심지어, 우리의 부조리는 가족 안에서 유년 경험들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가 나이 들었을 때 사회적 태도의 주인은 우리 속에 자란다. 우리가 살아온 생활의 결과, 그리고 그들은 끊임없이 우리와 관계가 있다. 우리의 비교적 무관심하거나 무감각한 감정을 민감하게 만든다. 결국, 다큐멘타리 작업으로 관찰되어진 특별한 생활로 이끈다. 그리고 약간, 우리 자신의 해석으로부터 끌릴 것이다.

현실성에서 불합리하지 않다면, 다큐멘타리란 말은 확실히 오히려 개인적인 것보다는 실제적인 것, 실존하는 것에 흥미를 암시한다. 다큐멘타리의 증거는 다른 점에서 주장이나 가정인 것을 구체화한다. 다큐멘타리 영화는 사실적으로 특별한 종류의 삶을 묘사한다; 다큐멘타리 보도는 다른 입장에서의 추측을 입증한다. 기록을 통해 그들 자신, 정보제공자들, 목격자들, 참여자들을 통해, 카메라의 사용과 테이프 녹음기를 통해, 편지나 저널들, 일기들을 통해, 학교 기록들, 법정 기록들, 병원 기록들, 신문 기록들을 통해, 상황, 장소, 사람, 집단의 사람들에 관하여 정확성을 가진다. Agee가 질문의 유형에서 그가 자극하여 면, 흙, 옷감뿐만 아니라 노트에서 듣고 기억하는 가변성의 이야기에 대해 언급 할 때 - 우리가 알고자 하는 삶의 부분을 무엇이든지 주의를 끌게 한다. 그러나 그의 반복해서 인정했다, 성급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리고 그의 책을 열 때 실재하고, 명료하고, 관찰하고 그리고 인증할 결연한 노력을 상기하면서, 그의 독자들은 경멸의 폭발, 자발적인 것뿐만 아니라 무차별적으로 퍼붓는다. 그리고, 이후, 외관상 부적절하거나 마음을 산만하게 하는 감정들의 범위와 논쟁하게 된다. - 완고한 주관성에 의한 객관성을 위한 조사. 요즈음 (Agee의 때보다 멀리), 주관성은 작가와 독자들에게 모든 사물들안의 문화적 흥미에 의하여 심리학적으로 확대되고, 또한 그의 다큐멘타리 작업(Down And Out In London And Paris, The Road To Wigan Pier)에서의 Orwell의 사람들은 나에 의해서, 나의 학생들에 의해서 특징 지워지게 된다. "범죄", 또는 "수치심"의 조짐들로서 -어떤 범죄에서 공범 의식을 잘못 전해 화가 나는 신경질적임, 또는 당황케 하는 사람이 그의 행운에 연결될 때, 그의 인식이 다른 시각에 의해서 완전히 뒤바뀔 때이다.


역사상 다른 순간에, 에이지에게 개인적인 감각의 강한 표현들이 달리 주목할지도 모른다 --적당한 사회적인 불법행위나 가까운 장래에 그 일과 어울리는 정의의 표현: 사회적 질문의 도덕적인 토대들. 오늘날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것의 어떤 요소도 원하지 않는다--예를 들면, 오히려, "비편견value-free" 사회 과학을, 바란다. 자기 자신의 직업의 내성적인 투쟁들과 결부시키기 위하여, 나는 정신병 의사들이 말하는, 우리의 바램, 심지어, 우리의 의도를 숨기면서까지, "중립"을 위한 욕망을 기억한다. 이 책에서 표현될 때, 우리의 환자들이 우리의 태도들 그리고 가치들에 의하여 우리에게(되도록이면) 편견이 없는 "진실"을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를 들면, 우리가 우리의 사무실에 걸고 싶을지도 모르는 사진들, 또는 우리는 그 날의 사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자신, 또한 다른 사람들에 관하여 아무생각없이 말하지도 모른다--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극", 힌트 없이 불을 킨다. 어떤 점에서 우리의 환자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환자들이 그들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 의한 "감정 전이의 대상들", 또는 "매개들" (객관화된 언어)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할 것이고, 우리는 바랬다, 번갈아, 그들안의 변화들은 전혀 문제될것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거의, 무감각, 소멸과 같은 것을 위하여 강하게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론상 대부분의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스크린"으로 언급했다, 흥미있는 이미지-- 그들 스스로 "투사된" 부분, 우리들의 속성은 부모와 형제들과 함께 했던 그들의 지난 경험에 관한 집단적인 폭로와 매한가지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삼가는 태도는 정말로 가능하나, 현실적인 환경이든 아니든, 인간들은 "연구"될수 있는가? 정신병 의사들은 대부분의 시간 입을 다물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말을 할 때, 감정적이거나 분별이 있는 열정을 피하는 공정한 점에서, 우리는 매우 조심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은 우리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을 적당히 신중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눈에 보이도록 가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암시는 가까운데에 있다;

그것은 거의 그렇지 않다"value-free"! 게다가, 우리가 공정성을 가지고 듣거나 보는 모든 것을 경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무엇을 알아채는지를 안다-- 그리고, Agee와 Orwell 처럼, 우리는 환자들이 아마 (즉, 곤경, 고통, 당황)했던 것보다 더 불행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데에 노력을 해야 한다. Agee와 Evans가 억압받는 것을 노려보았을 때, 우리는 모든 움직임을 보고, 우울한 표정의 모든 논쟁에 귀를 기울인다.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의학적인 훈련을 가져야만한다, 병원과 진료소 경험-- 우리는 과학적이거나 정당성을 가지고 우리 스스로를 가장한다. 우리는 "훈련되어지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 자신을 보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터에 오는 그들을 안심시키기 것을 의미한다. 작가들 또는 사진가들은 끊임없는 노력을 하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의 도제기간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마 포춘Fortune의 편집자들은 Agee와 Evans가 하는 일(그들이 보고 듣는 것을 신중하게 묘사한 것)에 확신을 가진다. 그럼에도, 많은 환자들은 충분히 그들을 이해하는데 실패하는 그들의 의사들을 비난했다. 그리고 상당수의 의사들은 현실적인 환경에서 가능하거나 가능하지 않은 것의 대중들의 비탄에 대해 Agee와 의견을 같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했던 작업을 비평하는데 호소했다. Agee가 관찰자, 작가로서 그의 자발적인 작업을 할때, 그의 불평이나 여담을 발행인에게 원고를 전달했다.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은 저널리스트, 작가, 사진가, 또는 의사나 교사로서 자기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주체와 대상의 혼합은 지속적인 태도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도전이다--이 둘을 혼합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 우리가 "반칙foul"이라고 외치기 시작할 것인가? 우리의 본성의 도덕적인 측면이 우리를 괴롭힐 수 있고, 우리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Agee의 외침, Orwell의 비난, 그리고 "분노" Erik H. Erikson은 가장 가장 중요한 것과 바람직한 특성으로서 그의 정신분석 동료들에게 권유했다. (편견이 없을때 그리고 "냉정함"은 확실히 바람직한 동료들의 태도이었다, Agee와 Orwell이 많은 독자들에 의하여 다루어졌을 때-- 많은 나의 학생들, 확실히-- 매우 성미급할 때, 그리고 냉정한 사회적 관찰자들로서 믿지 못할 때 그들은 결정해야만했다). 한 사람이 당연시하는것은 다른 사람의 파멸일지 모른다, 물론; 그리고 우리가 한 시대를 통해, 다큐멘타리 작가들과 사진가들은 이런 경향이 있다. (그리고 추측컨대) 그들이 선택한 "연구 분야", "주제들" 로부터 비교적 무관심하다. (또, 환기시키고 연상시키는 언어의 힘!), 또한 그 기대는 그들의 혼란을 정밀 조사하고 그들에게서 다시한번 얻는다.-- 사회 과학적 조사라고 불리우는 관점에서, "참여적 관찰participant observation", 어떤 점에서 많이 의논된 "역할들", 정의내리려고 노력하는 사회학자들과 인류학자들에게 결국에는 몰입케한다.

나는 그것들이 화제에 오르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을 가르쳤다, 내가 알기에, 내가 가르친 세미나에서, 옵저버(관찰자observers), 리포터, 다큐멘타리안(documentarian포괄적인 말)으로서 목격한 것을 말로 나타내거나 사진(또는 영화)을 통해 묘사하려 하는 작가들과 사진가들 그리고 영화제작자와 저널리스트, 사회과학자들이 참석했다. 몇번이고, 우리의 토론들은 그들의 작업에 대한 남자들과 여자들의 태도들에 집중시켰다. (그들의 본성, 그들의 가능성, 그들의 한계) 그리고 그들의 편에서 개인적으로, (아웃사이더들, 관련있는 사람들의 특권) 누군가가 그 작업을 하고 있다. 때때로 그 이슈는 방법론적이다-- 어떻게 특별한 프로젝트를 했는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거나 습득된 시각적 도큐멘트를 어떻게 편집했는지. 때때로 그 이슈는 심리학적이거나 개인적이다-- 캠퍼스, 특정 지역에 나타나는 많은 감정들을 감수해야 한다. 적당하게 마음 편하거나 상투적인 삶일지라도, 사람됨을 간파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방법에 각각 다르다. 그 이슈는 계급문제가 아니다-- 상당히 부유한 조사자가 가난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의문의 여지가 없다, 많은 다큐멘타리 전통은 우연한 만남을 특징으로 한다: 저널리스트, 에세이스트, 사진가, 대학에 관계있는 연구자, 영화제작자는 어떻게 그것을 만들지를 배우기 원한다. 그리고 그 후 기사, 책, 영화, 전시되거나 출판될 일련의 사진들을 가지고 만들게 된다. 그러나 다큐멘타리 작가들과 사진가들은 또한 장벽들로 방해당한다-- 인종, 명백하게, 지역 또는 국적, 문화. 때때로, 사실상, 그런 현장작업에서 격을 올리는 것은 필요하지만 격하시키는 것은 필요치 않다. Orwell의 첫번째 책의 풍자 버젼을 생각하게한다. -- "up and about"에서, 말한다, 두 "고급 주택가gold coast" 사회. 나는 이와같은 작업을 했던 나의 세 학생들의 개인적인 응답들과 어려움들을 잘 기억한다, 손에 테이프 녹음기와 카메라를 가지고, 제일 좋은 위치에 주의를 기울이고, 슬럼가나 이주노동자 캠프에 적응하려 했던 세미나에서 그들의 동료만큼 생각했다. 결국 문제들을 해결하는 그런 학생들, 그런 현장작업자들은 어느정도 도덕적이고 어느정도 심리학적으로 주의를 기울인다-- 그렇지만 두가지 문제 사이의 경계에서 찾으려할 때 혼동스럽다.

다큐멘타리 작업을 하는 그들에게 유일한 문제는 없다, 말하자면, 그들 자신에게. 정말, 충분한 자기분석이 있다, 우리가 볼 때; 그러나 관찰된 명백한 진실은 또한 있다, 평범한 임무로 방문자들, 아웃사이더들, 남성들과 여성들에 관한 그들의 자신의 견해들을 가지고 있고, 하려고 하고, 하고 있다--그리고 할 것이다, 나중에, 그들은 출발했다. 나는 충분치 않으면 출입할수 없다라고 생각한다, "현장작업fieldwork"이라 불리우는 출발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 무엇인가 준비를 하고, 예를 들면, 관찰자에게, 처음엔, 다양한 정보제공자들과 중개자에 의하여, 그리고 특별한 체류의 목적으로 무슨일이 일어났다, 증거에 대하여, 공언들, 골칫거리는 표현되고 심지어 위협들은 만들어진다. Agee의 현재 우리가 칭찬할 만한 유명한 사람들Let Us Now Praise Famous Men에서 "늦은 일요일 아침Late Sunday Morning"은 마약으로 괴로워하는, 두 미국사람들로서 발생할 수 있는 암시이상을 보여준다: "그들이 마음속 깊이 담아두는것을 볼 때, 그들이 속였다는 것을 알수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필연성은 겉치레, 호의에 직면하고 싸움에 이긴다-- 그렇지만 상당한 희생을 치른다. 그의 일을 하기 위해서, Evans는 그의 카메라를 필요로 했다. 백인 지주들은 Agee를 데려갔고 그들의 소작인 몇몇은 Agee에게 공손하지도 환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권유로 넓어졌고 (명백한 판단이 아닐지라도)기만적인 답변이 마음에 떠올랐다.


Agee의 마음은 매우 자극되었다-- 그는 마음속을 살폈고, 심지어 그들이 아마도 형식적인 환대일지라도 (암암리에) 예의를 갖추었다. 과연, 그가 이들의 호의를 받아들일 때, 그는 그들의 권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위해서 작업할 때, 그리고 그는 즉시 그들을 즐겁게 했다. 그는 또한 어떠한 시간도 낭비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그는 그들의 고용주와 함께 이들 소작농들의 집들에서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깨닫기 시작했다, 물론, 그의 작업을 시작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작업의 본질을 위해서 중요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누군가는 색다른 장소에서 사는 사람들, 부끄럼을 타고, 위협적이고, 허약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Agee와 Evans가 지주들을 만난 편한 커피전문점에서 그들은 거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더우기, 북부에서 온 이들 두 방문자들은 특별한 임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간 줄곧 조금도 수고를 아끼지 않았지만, 그들은 자진해서 단순히 어슬렁거리고, 시간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특별한 지식의 우연성은 그들의 작업의 방향성을 주었다. 그들은 뉴욕 도시를 떠나기 전에 알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은 알라바마Alabama에 도착하기 전에 알려고 했다-- "중개자"들은 Evans의 카메라에 주제가 표현되기 위해 그들과 함께 그곳을 지나갔다. 강력하게 암시적인 작가 , Agee는 기억되는 순간의 교환을 통해 생각할 것을 제안하려했고, 서두 부분의 첫번째 단락에서 이어진다: Walker는 사진을 찍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확신했고, 물론, 당신이 찍고 싶은 스냅사진을 찍는다; 즉, 그들이 카메라를 볼 때 흑인들이 도망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효과적인 말, 더 나아가서, 뭐랄까, 그들을 태우고 간 두 지주(물론, 백인)들의 한 사람에 관하여, "가까운 그의 소작인들이 흑인이었고 나에겐 쓸모가 없었다." Agee는 우리에게 문제가 없다고 까놓고 말한다, 애써 공감을 표한다, 그리고 감정이입과 더불어, 사람들은 그의 책에서 나타낸다-- 서정성은 잡지의 사명을 가진 재능 있는 시인과 수필가에 의하여 끊임없이 그들을 노력하게 한다-- 그와 그의 친구는 주의깊게 실제적인 것에 매우 유능했다. 여행에서 방언의 사용은 특히 효과적이다-- 그리고 뜻이 깊다: 어느 정도 우리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다른 사람이 우리의 스폰서들이라면. 어쨌든, 그들에 관해서, 추측하지 않는다-- 그들이 문제가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이들 교만하고 관대한 방문객들에겐 쓸모가 없다, 예민한 감각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는다, 바로 지금, 교섭자들: 우리가 그 작업을 하려할때, 협력하게 될것이다(다큐멘타리 작업에서 최후의 길잡이-- "응답자들"은 기꺼이 도와준다).

나는 빈정거림에서 벗어나 적의를 가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Agee는 두 경영자들과 함께 있는 동안 당장에라도 터지려고 했다, 그리고 그의 나중의 회상과 방언의 사용, 그것이 그와 Evans를 관련시킬지라도(그들은 논쟁이나 항변에서 말하지 않았다), 그가 그들을 생각하고, 정말이지 너무 그들의 독선적인 감각(다른사람에 대한 독선적인 냉담)을 분명히 보여준다(그들의 수고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했다,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 곧 Agee의 신랄함과 열망은 더 넘치는 표현을 찾고 있다. 그는 그의 "리서치" 요구, 저널리스트적인 프로젝트의 실지답사의 요구들에 의하여 좌절되었다, 이들 둘을 책망하는 것으로부터, 누군가는 그에게 대단하고 중요한 그리고 아주 필요한 호의(비꼬기는 계속해서 증가한다)를 베푼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창의력이 풍부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예를 들면, 진보적인 인텔리겐차는 되돌아간다) 문전 퇴짜를 맞을지도 모른다, 적절한 곳에서 그들은 더 심술굿어 보인다, 때때로, 그런 두 사람들은 Agee의 책의 타이틀 페이지 "세 소작인 가족들" 의하여 그 땅을 인정했다. Alabama로부터의 Agee의 출발로 말한다면, 사람들은 단지 그에게 무엇이 발생할지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기사를 포춘Fortune에 쓰지 않았다. 어떤 점에서, 그의 미션은 실패했다; 그리고 그것은 틀림없이, 상당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보상할 그의 열정적인 욕망 때문에 그는 세상에 대한 고통으로 나타냈다. 그러나 훌륭했다-- 정말로, "칭찬하기"에 마땅한 "유명한 사람들"은 성서적인 것의 가치가 있다. 나는 Agee와 Evans가 실제로 Alabama를 출발할 때 그들의 기사를 어디에도 가지고 갈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그들의 미래의 장애물, 곤경, 타협들, "성과"를 찾아내거나 약속을 이행할 그들의 무능력을 준비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대개, 그들은(특히 Agee는, 느낀다) 완전히 몰두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자기비난self-recriminations은 남부에서 어쨌든 불안정한 도덕적인 고통을 증거하는 현재 우리가 칭찬할 만한 유명한 사람들Let Us Now Praise Famous Men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인쇄와 편집 사무실이 있는 북부지역의, 마을 중심부를 고려했다. 그래서 Orwell과 함께 동행했고, 그때 그는 Wigan에 남았다, 거기에서 그는 광부들과 함께 관찰을 했고, 소작농들과 함께 Alabama에서 Agee와 Evans를 봤다. 위간 부두로 가는 길The Road To Wigan Pier은 광부들을 위한 끝없는 감탄을 생기게 했다, 존경심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까지-- 게다가 여기저기서 다른 사람들이 점차 좋아졌다, 확실히: Wigan의 소매상인들, 예를 들면, 또는 런던의 지성인들은, Orwell에게 다큐멘타리 임무를 준, 최고의 사람들, 급진 좌익 독서 클럽New Left Book Club의 편집자를 포함한다. Orwell은 결코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진 세상에 접근하는지, 그의 의도를 그들과 어떻게 함께했는지, 그의 작별을 어떻게 말했는지를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Agee와 함께 있을 때, 그가 Wigan으로 떠나기 전에 세상에 대한 격렬한 공격-- 결국, 세상 사람들은 그의 독자들이 될것이다-- 그의 특별한 다큐멘타리 노력뿐만아니라, 우리 모두에 의하여 시작된 그들에 관하여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만일 여하튼 우리 자신에게 정확한 이유를 결정하지 않는다면, 결코 우리가 조사할 이유가 없다. (투박하게, Agee의 미완성품이라 불리우는, 우리가 "사용한" 것들) 우리가 거기에서 떠난 동안, 난해하고, 변화무쌍한 존재를 추상적으로 "현장the field"이라 불렀다, 우리의 집필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느끼는 애매모호함, 아마도 심지어 우리가 우리의 필름 피트를 편집하기 쉽다, 또는 우리의 사진들에 부여한 타이틀, 우리가 만든 선택들, 우리가 배열한 방식. 나는 나의 학생들의 도움으로 이 책에서 이런 문제들이 다시 생각날 것이다, 나 자신의 다큐멘타리의 여행의 시험, 그것의 부수적인 과실들, 그것의 맹점들, 그것의 막다른 우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나는 나의 관찰하기를 정하길 원했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이 책의 목적중의 하나의 단서를 주기를 원했다: 무엇을 본다는 것은 동네사람들이 제공하는 인식(우리가 희망하는)을 찾아서 우리 자신이 아닌 동네사람들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나가는 우리들에게 발생한다-- 어떤 것은 도덕적으로 그리고 심리학적으로 우리속에 발생하고, 어떤것은 작가들, 사진가들, 영화 제작자들, 또는 대학 연구자들처럼 우리에게 계속해서 발생한다. 물론, 몇몇 학생들이 이 주제에 관한 나의 세미나에서 나에게 지적하는 것처럼, "현장"은 바로 근처에 있다-- 비판적인 사고는 그것을 둘러싼 일상 생활에 대한 태도이다: 얼마나 의식적으로 그리고 신중히 (마음속에 다큐멘타리의 목표를 가지고) 일상적인 삶에 관해 알려고 노력했습니까? 그보다, 이후 토론내내. 여기서 나는 학생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나는 언급하고자 한다, 그 세미나에서 나는 하바드Harvard 그리고 듀크Duke에 있는 다큐멘타리 연구 센터에서 거의 20년을 가르쳤다.


이른바 "literary-documentary문학-다큐멘타리 전통"은 잠시 주요한 수업으로 도움이 되었다: 이미 언급된, Agee와 Orwell의 저작; 도로시 랭Dorothea Lange과 폴 테일러Paul Taylor에 의한, 미국 엑소더스American Exodus와 같은 책들; 사진의 다양한 자료들, 농업 안전국(FSA) 의하여 후원받은 작업으로 Lewis Hine과 Doris Ullman로부터; 뿐만 아니라 Russell Lee, Marion Post Walcott, Ben Shahn, Edward Rothstein와 Evans의 이미지들. 나는 또한 Frederick Wiseman의 다큐멘타리 필름을 지명했다, 미국 관습의 주요한 시험에 해당하는 그들의 개요에서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것의 일상적인 단편이다: 우리의 학교에서 학생들과 선생님들, 우리의 가게에서 노동자들과 고객들 , 우리의 병원에서 환자들과 의사들과 간호사들. 모든 읽기와 시각적인 문제, 타국에서 온 사람들의 출현에 의하여 보충된, J.Anthony Lukas의 공통점Common Ground, Oscar Lewis의 산체스네의 아이들Children of Sanchez, Studs Terkel의 노동Working과 분열된 거리Division Street와 같은, 우리가 스스로 하고 있는 작품에 관한 많은 생각들을 불러일으켰다: 세미나의 각 회원은 사진을 찍고, 영화를 제작하고, 또는 리포트, 에세이를 쓰는, 다큐멘타리 작업에 참가했다. 조만간 우리는 함께, 여기에서 이 책의 세가지 부분들, 관심과 토론의 세가지 주요한 범위들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대학의 후원아래에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는 그들과 어울릴 때, 우리는 끊임없이 지성의 문제들과 싸웠다(아마 너무 많이, 그렇게 자존심을 희생하고). 우리가 하고있는 작품의 종류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합니까? 우리는 어떻게 진행합니까-- 어떤 이웃에 사는, 어떤 남자들, 여성들, 아이들을 중개로 해서? 어떻게 우리의 작업이 신문기자들, 전통적인 사회 과학자(예를 들면, 표본 조사)들, 또는 사회 역사학자와 같은 사람들과 비교할수 있는가,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과 가진 인터뷰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 언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까- 언제,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합리적으로 만족하여 떠납니까, 그리고 그렇다면, 우리가 작업한 사람들에게 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의 책임은 무엇이고,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답례해야만 합니까? 우리 자신에게 어떠한가-- 속임수를 발휘하여 변질된 질문, 심지어 (말뿐인 말!) "사리사욕"을 챙기지 않았는가? 누가 어떤 기준이라 불리우는, 그러한 판단들을 만드는가? 우리 자신에 관해서, 쓸쓸한 방구석에서의 사람들은 절박한 도덕적 인식이 끊임없이 잠재해 있다, 우리에게 찾아들 가장 예기치 않은 순간들이 준비되어 있고, 우리에게 어울리는 것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리의 감각에 밀어 닥친다-- 우리가 분과적 규율들의 규칙들에 의하여 대개 규정되지 않거나, 그것들을 정당화하는 이론들과 과정들과 일상들과 단계들을 상세히 설명하는 교과서에 의하여, 비교적 색다른 노력에서 적합하거나 또는 부적절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론에 대해 말한다-- 구체적인 구현에서 뿐만 아니라, 관념적으로도 "다큐멘타리 학문" 에 관심을 보일 방법은 무엇인가? 개인적이고 윤리적인 것을 말한다, 또, 그렇게 많은 질문들을 한다-- 솔직하게, 직접 얘기할 방법 (어떠한 언어를 사용), 그런 일의 심리적인 위험들에 관하여, 그리고, 또한, 윤리적 도전이 때때로 용납이 안되는 것처럼 보입니까? 게다가, 작가로서, 녹음 또한 기록하는 편집자로서, 단어들을 선택하는 사람으로서, 크로핑하고 자르는 사진가로서, 다큐멘타리 필름을 만드는, 그의 간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의 설명들과 여담들의 형태와, 하나의 스토리("가공하지 않은 인터뷰 재료" 또는 "편집되지 않은 영화 필름" 또는 분류되거나 배열하지 않은 사진 필름)가 결정되기까지, 언제 선택하고 배열하고 내러티브가 필요한가? 어떤 사진들이 크로핑(장면의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 초점, 강조에서 부수적인 변경으로 인해) 되었는가? 분명한 이야기와 연속성을 제공하며, 시공간을 앞지르거나 뒤로 물러서는 어떤 영화? 사실은 언제 허구쪽으로 방향을 바꿉니까-- 그리고 두 단어들은 어떻게 서로에 관하여 이해됩니까: 정반대로서, 또는 동질同質로서, 같은 목적이 되고, 종종 연속된 영역, 그리고 가끔 다른 것에서 차용합니까? 나는 앞으로 이 장에서 의논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런 질문들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 책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특히 서두에서, 35년 내내-- 실제로, 1960년에, 그때 나는 이 작업의 본질에 관하여 적기 시작했다, 나의 아내, Jane과 나는 우리가 학교 인종차별 투쟁의 한가운데에 New Orleans의 거리에서 보았던 것을 이해할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목격자로서, 구경꾼과 청취자로서, "리서치"하는 개인으로서, 문제되어진 것을 심사숙고하려는 사람으로서, 우리자신을 이해하려 했다(그래서,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 또한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때에 New Orleans는 그들을 야유하고 협박하기 위하여 매일 모였고, 민중의 저항을 경험했던 네명의 흑인 아이들과 함께 우리를 대신해서(비운의 사건) 부닥쳤다. 나는 어떻게 아이들(그리고 그들의 부모들, 그리고 그들의 조부모들)이 환경의 변화 아래에서 사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나의 작품 활동에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는 아이들에 관한 일련의 책(위기의 아이들the Children of Crisis 시리즈의 5권, 아이들의 삶the Inner Lives of Children 시리즈의 3권)들이었다, 그리고, 또한, 내가 다큐멘타리 작업을 하는 사진가들과 작업한 책들: 뉴멕시코의 노인들The Old Ones of New Mexico과 첫번째 에스키모와 마지막 에스키모The Last and First Eskimos(Alex Harris와 함께); Dorothea Lange, Doris Ullman, 그리고 Thomas Roma의 작업과 연결되는 에세이들. 이들 작업에서, 나는 내가 경험했던 것처럼 다큐멘타리 작업의 본질을 의논("방법Method"으로 불리우는 장에서)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또한 다큐멘타리 전통을 격려하기 위해 수년동안 강의를 해왔다. 나는 계층의 외침The Call of Stories이란 책에서, 어느 정도까지, 수업에 활용했다: 교육Teaching 그리고 도덕적인 상상Moral Imagination 그리고 고용의 외침The Call of Service: 이상주의에의 증인Witness to Idealism-- 어떤 소설가들이나 사진가들이 세계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도와준다. 이 책은 그런 두가지에 속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의 연속적인 탐구, 내러티브의 해석을 통해, 도움의 노력을 통해, "필드"에서 프로젝트를 통해, 주목할만한 삶의 복잡성, 우리가 그 삶의 관점들을 바꾸려고 노력할 때 우리에게 직면하는 도덕적인 책임들과 위험들을 정당하게 평가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큐멘타리 작업의 본질은 우리 주변의 세계에 밀접하다, 그러나 또한 우리에게 많은 질문들과 도전들을 제기한다. 이 책의 유익한 부분은 원래 뉴욕 공립 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에서 1996의 5월에 강의되었고, 옥스포드 대학 출판Oxford University Press의 협조로 후원받는 시리즈로서, 세 강좌로서 제공되었다. 나는 나에 대한 그들의 예의와 친절에 대해 출판 편집자들과 도서관의 임원들에게 감사한다. 마지막 장의 실질적인 부분은 색다른 형태로 다른 곳에서 첫 번째로 출판되었다. 나는 나를 허락한 잡지 편집자들에게 감사한다, 그것 때문에 더 충분히 테마들을 검토했다. 나는 또한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즈William Carlos Williams 박사의 기고에서도 느끼듯이, 즉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그를 알지 못한다면 다른 삶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독자가 볼 때, 나의 작업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할때, 그의 서정적인 문장은 페이지 앞쪽에 씌어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듀크 대학Duke University의 다큐멘타리 연구 센터에 있는 나의 동료들, DoubleTake 잡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나는 많은 애정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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