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133. 보고, 느끼고, 사진찍는다

by 노용헌

17세기 조선시대, 어릴적 천연두를 앓아 성장과 배움에 있어서 더디었으나, <중용>을 2만번이나 읽었고, 틈틈이 시문을 익혀 마침내 50대에 이르러 뒤늦게 문단에 이름을 올린 백곡(柏谷) 김득신이란 시인이 있다. 글을 많이 읽는 공부법 때문에 그는 자신의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고 이름 짓기도 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글귀는 중용의 20장이었다. 그는 <중용>을 2만 번이나 읽었고, 사기의 <백이열전>은 무려 11만 3천 번을 읽었다고 하니 진정한 ‘조선의 독서광’이 아닐까 싶다. 그는 늦은 나이 59세에 과거에 도전하여 당당히 합격하였다.

人一能之己百之(인일능지기백지)

남들이 한 번에 할 수 있다면 나는 백 번을 하고

人十能之己千之(인십능지기천지)

남들이 열 번에 할 수 있다면 나는 천 번을 한다.


김득신이 스스로 지은 묘비명에는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마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엔 이름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 달려있을 따름이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가는 사물이나 상황에서 현장에 서 있다. 그리고 보고 관찰하며, 느끼고 생각한다. 어떻게 촬영해야 보고 느낀 그 느낌 그대로 상황을 잘 전달할수 있을까하고, 수천 번 눈으로 보고 마음에 찍는다. 수만 번을 사진을 찍으며 그 결과물들을 다시 본다. 나는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현대 사회는 이미지로 넘쳐난다. 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이미지의 소비에 관한 비판을 이야기한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이미지들의 소비속에서 타인이 겪었던 고통에 무감각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의 참담함에 대한 고통뿐만 아니라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데 있어서 사진은 무엇을 이야기해줄까. 어떻게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눌수 있을 것인가. 현실과 재현된 이미지 사이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다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고(Let’s by all means grieve together, But Let’s not be stupid together) 그리고 기억한다. 정작 사진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그만큼 사진은 쉽게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과연 타인에게 공감共感하는 언어가 될 수 있는 것인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그후로 3년이 지나 가족품에 돌아온 조은화, 허다윤양의 이별식이 9월 23-25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눈물 흘리며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기록에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많은 기자들이 보도를 위해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이댄다. 카메라의 폭력성과 과연 나는 타인의 슬픔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가하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지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부터 광화문을 기록에 남기게 되었고, 하루 하루를 기록하던 것이 3년을 훌쩍 넘었고, 언제까지 사진을 찍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10년은 찍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나는 지나가는 풍경속의 타인을 얼마나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공감共感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해야겠다. 항상 보고 느끼고, 마음에 수만 번의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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