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사진과 길
길에서 길을 잃고, 막다른 골목길인지도 모르고 우리는 앞만 보고 길을 따라 걸어갔지만 그 길은 막혀있는 길이었다. 길을 잃고 다시 되돌아가는 길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는 길. 어둠속에서 별은 내가 앞으로 나아갈수 있는 이정표, 어둠속에 반짝이는 별을 보고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을 따라 걸어갔지만 끝없이 순환하듯 헤메이게되니 그 길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는 어쩌면 목적지도 없이, 내가 선택한, 그래서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불편함도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한 발 한 발 걸어간다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것일테니. 오늘도 한 숨 한 숨 숨쉬고 있듯이 말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알록달록한 리본들을 본다. 어느 산악회 회원들이 지나간 흔적이기도 하고 표식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길을 안내한다는 것은 먼저 간 사람들의 발자취이기도 하고, 길은 계속 변하는 것도 사실이다. 명멸[明滅]하는 길은 영사기의 깜박임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미래와 과거는 현재의 꿈이기도 하다. 앞서가는 사람은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걸었던 길에 표식을 해놓는다. 어쩌면 그 길은 지름길이 아니고, 돌아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뒤에 오는 후배들을 위해서 어떤 표식을 하고 있을까? 일기를 쓰듯 메모를 하듯, 사진은 내가 만난 시간의 표식이고, 일기이고, 메모이다.
사진과 글은 어쩌면 정반대일 것이다. 글은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면, 사진은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이다. 길에서 만난 모든 것은 구체적인 사물들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사물들에서 사진은 내가 느끼는 추상적인 암시를 담는다. 사진 자체로는 구체적인 것이지만 그 속에 담겨진 의미는 그것을 찍은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어렵다. 누구나 저마다의 길을 걸어가듯이 사진은 저마다의 길을 담고 있다. 그러나 사진계 선배들이나 사진을 가르치는 교수도 사실 자신이 걸었던 길이 정답인양 자신의 잣대로 누군가를 판단한다. 옳고 그름의 판단을 자신의 이익과 영향으로 판단하는 세상이다. 정보는 넘쳐나고 가짜뉴스인지 진짜뉴스인지 fact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프랑스의 니에프스가 자연 풍경을 최초로 고정한 헬리오그라피(Heliograph)를 완성한 것이 1826년, 탈보트(William Henry Fox Talbot)는 칼로타입을 발명해 자연을 묘사하였다. 니에프스는 글쓰기와 비교해 사진을 ‘태양으로 쓴 글’이라 불렀고, 탈보트는 카메라를 ‘자연의 연필’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글이 되었건 사진이 되었건 자신의 생각을 메모하고, 기록하고, 표현한다. 우리가 만나고 보았던 것은 그 시간의 목격자이자, 증언자이기도 하다. 사진가는 카메라라는 연필을 통해서 뭔가 끄적거린다. 물론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무언가를. 자연이 만들어 논 구체적인 상황들을 사진가는 뭔가 끄적거리고, 지우고, 수정한다.(포토샵으로) 태블릿 PC에 생각을 메모하듯, 카메라로 쉽게 피사체를 담아낼수 있기 때문에 더욱, 왜,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에 고민이 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