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148. 카메라는 칼일까, 밥일까

by 노용헌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 우리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카메라라는 도구를 통해서 바라본 세계는 각각의 기준대로 재현된 현실은 달라진다. 카메라는 내게 있어서 칼일까, 밥일까, 아름다움을 전달한다는 아름다움의 전형은 사진가의 관점에 따라 달리 전달된다.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한다. “카메라가 발명된 뒤 이 세계에는 독특한 영웅주의, 즉 시각의 영웅주의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진작가는 놀랄 만한 이미지를 찾아서 저마다의 문화적, 계급적, 과학적 탐험을 떠나게 됐다.”(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시각의 영웅주의 P138) 사진은 아름다움을 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적 기준이 되었고, 그것은 강력한 아름다움의 전도사가 되었고, 그것은 영웅주의의 권력이 되었다. “아름다움보다는 진실을 드러내는 대담하고 엄격한 날것 그대로 찍어야 한다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여전히 [피사체를] 미화하고 있다. 사실 사진은 보잘 것 없고, 공허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 덕택에 오랫동안 승승장구해오지 않았던가. 적어도 현실적인 것은 파토스를 자아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파토스가 곧 아름다움이다. 이렇듯 사진을 평가할 때에는 늘 이중적인 미적 기준이 도입되기 마련이다.”(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시각의 영웅주의 P155)


사진은 일종의 파편이고, 각각의 상황에서 서로 다른 용도로 쓰인다. 선함과 아름다움을 가장한 권력은 사실상 껍데기에 불과하다. 오히려 더 추악할지도 모른다. 카메라는 사실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서 달라진다. 예술가의 칼인지, 부엌의 칼인지, 목수의 칼인지 그것은 사용자에 따라서, 그리고 이용자에 따라서 카메라는 달라진다. “카메라는 자비로울 수도, 잔인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진에 대한 취향을 지배하는 초현실주의적 기호에 따르면, 이 잔인함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뿐이다. 사진은 진부한 아름다움에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케 해주는 도구로서, 미적으로 즐거운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관념을 크게 넓혀준다. 우리는 때로는 진실의 이름으로, 때로는 세련됨이나 듣기 좋은 거짓말이라는 이름으로 반응한다.”(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시각의 영웅주의 P157)

기록적 의미로서, 목격자, 증언자로서의 다큐멘터리 사진을 제외하고 카메라는 칼일까, 밥일까. 우리는 수많은 의미로서, 전달로서, 카메라를 사용한다. 사진가는 사진으로 돈을 벌고, 사진을 통해서 살아간다. 어쩌면 사진은 사진가에게 밥인 셈이다. 강운구 작가는 자신의 사진작업을 밥에 비유했다. 그는 종종 “살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요리는 밥이다”라고 하며, “사진술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진은 기록성이 있는 사진이다”라고 말한다. 나의 사진은 칼일까, 밥일까. 카메라는 피사체를 향해있고, 피사체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피사체와의 대화가 필요하다. 카메라는 피사체와의 대화속에서 만들어지고,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과도 끊임없이 대화를 소통한다. 밥은 나 자신의 활력을 만들기도 하지만, 밥을 먹는 공간은 나외에의 사람들과의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서 카메라는 밥일까, 칼일까.

그간 미투를 보면서,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다이내믹하다. 연일 빅 이슈로 넘쳐나니 말이다. 우리는 영웅을 만들지 말아야겠다. 가짜영웅에 현혹되지도 말아야겠다. 그런데 사진은 날것인데 사진은 영웅을 만들고, 칼을 휘두른다면 이 또한 조심해야 할 것이다. 자칫 자신의 휘두른 칼에 자신이 상처를 입을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이 칼이 아니라 밥이 될려면, 아니 밥이 아니라 뿌리 깊게 박힌 나무처럼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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