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영화, 그리고 사진
데니 라이온(Danny Lyon)은 1942년 뉴욕에서 러시아계 유대인인 어머니와 독일계 유대인 아버지 사이에서 출생했다. 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사진가다. 1962년 서부지역을 여행하던 중 사막 한가운데 있는 콘테이너 화물차를 촬영한 사진이 대학 예술제에 당선된 것이 계기가 되어 사진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65년 가난한 소년들의 생활과 인물을 촬영하여 <시카고 주택지구 Uptown Chicago>을 발표했고, 폭주족들의 생활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시카고 오토바이 클럽에 가담하여 ‘폭주족들<The Bikeriders>’이라는 제목의 작품집을 발표했다. "We dream of works of art and social realism that have the power to change men and transform society" - Danny Lyon, 1974
1936년 미국은 대공황 FSA, 1950년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 자동차 산업의 급속한 발달과 비트문화의 확산,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에서 보듯이, 그리고 케루악의 ‘길 위에서’에서 보여진 히피문화는 젊은이들에게 모터사이클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듯 보인다. 모터사이클은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반항의 상징이기도 하며 자유의 갈망이기도 하다. 소설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로버트 피어시그의 자전적 소설이며, 모터사이클에 아들을 태우고 시카고를 떠나 서부에 이르는 과정을 담아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모터사이클 여행에 미네소타, 노스다코타, 몬태나, 아이다호, 오리건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코스를 타는 것이라 매우 식상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지만 정신병력이 있는 작가의 과거를 찾기 위한 여정, 아들 입장에서 과거의 아빠를 찾기 위한 여정, 그리고 인간 철학의 시원을 찾는 여정이 하나로 모아지면서 모터사이클 여행은 어떤 수행과 탐색의 과정이고 구도(求道)의 길이 된다.
영화 <이지 라이더Easy Rider>가 개봉하기 1년 전, 데니 라이온은 1963년부터 67년까지 찍은 모터사이클biker 문화의 상징적이고 영향력 있는 일련의 사진을 <폭주족들The Bikeriders> 사진집으로 출판했다.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라이온의 접근법은 단순히 관찰자가 아니라 피사체 내면에서 촬영하는 것이었다. 1963년 라이온은 시카고 아웃로즈 모터사이클 클럽(Chicago Outlaws Motorcycle Club)에 가입하여, 이후 4년 동안 회원들과 함께 장거리 여행, 놀이기구, 경주, 필드 미팅 및 비공식 모임에 참가했다. 라이온은 그의 피사체들과 친구가 되었고, 이 시리즈를 통해 종종 "저급한 삶low life"의 한 형태로 정형화된 문화를 명확히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라이온은 1960년대 초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시카고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동안, 그는 학생 비폭력 조정 위원회(Student Nonviolent Coordinating Committee)에서 첫 사진작가로 참여했다. 그 후, 그는 남부 민권 운동에 관한 다큐멘터리 책에 그의 초기 사진들 중 일부를 실었다. 라이온은 폭주족 외에도 사형수, 거리의 아이들, 맨해튼 남부의 변화하는 도시 풍경 등을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그는 또한 많은 영화를 제작했고, 현대 사진작가 난 골딘(Nan Goldin)과 래리 클라크(Larry Clark)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1969년 데니스 호퍼 감독의 영화 <이지라이더>의 등장하는 커스텀 오토바이 초퍼(Chopper)는 히피의 상징이고 아메리칸 뉴에이브 시네마의 대표작이다. 영화의 주제곡인, 캐나다 락 밴드 스테픈울프(Steppenwolf)의 "Born to be Wild"는 오토바이 라이더들의 애청곡이 되었다. 영화에는 반문화의 기수인 스테펀울프(Steppenwolf), 지미 핸드릭스(Jimi Handrix), 더 밴드(The Band), 밥 딜런(Bob Dylan) 등의 록음악이 등장한다. “모터의 시동을 걸어라. 고속도로를 달리자. 모험을 찾아서··· 진정한 자연의 아이처럼 우리는 자유롭게 살도록 태어났다네.(Get your motor runnin’. Head out on the highway. Lookin’ for adventure··· Like a true nature’s child. we were born, born to be wild)” 영화의 마지막 부분, 빌리는 와이어트에게 이제 큰돈도 벌고 자유도 얻었으니 플로리다로 가자고 말한다. 이때 와이어트는 빌리에게 “우린 실패했어.”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들은 마약으로 돈은 생겼지만 자유를 성취하지는 못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메시지이다. 영화 <이지 라이더〉는 미국의 이상인 자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영화로 기록된다.
“산을 오를 때는 가급적 노력을 적게 들이고 욕심을 부리지 않은 채 산을 오르려고 해야 한다. 당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에 따라 속도가 정해지기 마련이다. 당신이 들떠 있을 때는 속도가 빨라지게 마련이다. 숨이 차기 시작하면 속도가 늦추어지게 될 것이다. 이처럼 당신은 들떠 있는 상태와 지쳐 있는 상태 사이에 균형을 맞춰가며 산을 오를 것이다. 이윽고, 당신이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더 이상 미리 생각하지 않게 되었을 때, 발걸음 하나하나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기를 멈추고, 그 자체로서 독자적 의미를 지닌 사건이 된다. 이 나뭇잎은 가장자리가 톱니 모양으로 되어 있군. 이 바위는 헐거워 보이네. 이 자리에서 보면 눈이 아까보다 더 잘 보이지 않는군. 거리로 따지면 더 가까운 곳에 와 있는데 말이야.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것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 미래의 목적만을 위해 사는 삶이란 피상적인 삶일 수밖에 없다.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산비탈들이지 산꼭대기가 아니다. 바로 여기가 만물이 성장하는 곳이다. 하지만 물론 꼭대기가 없으면 비탈도 있을 수 없다. 비탈의 상태와 각도를 정하는 것이 꼭대기인 셈이다.”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364-365>
“모터사이클을 타고 휴가를 가다 보면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사물들을 바라볼 수 있다. 차를 타고 가면 항상 어딘가에 갇혀 있는 꼴이 되며, 이에 익숙해지다 보면 차창을 통해서 보는 모든 사물이 그저 텔레비전의 화면을 통해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일종의 수동적인 관찰자가 되어, 모든 것이 화면 단위로 지루하게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게 될 뿐이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다 보면 그 화면의 틀이 사라지고, 모든 사물과 있는 그대로 완벽한 접촉이 이루어진다. 경치를 바라보는 수동적인 상태에 더 이상 머물지 않고 완전히 경치 속에 함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때의 현장감은 사람들을 압도하게 마련이다.“<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25>
“자신의 모터사이클을 어느 정도 관리해야 하느냐의 문제로 존과 나 사이에 약간의 의견 차이를 갖게 된 데서 시작되었다. 나에게는 모터사이클과 함께 제공되는 조그만 연장이라든가 안내 책자를 이용해서 혼자 힘으로 기계를 조정해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고 정상적인 일처럼 느껴진다. 존은 의견을 달리하는데, 유능한 정비사에게 기계를 돌보도록 맡김으로써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쪽의 관점도 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35>
“나는 그저 그들이 공학 기술로부터 도피하고 공학 기술을 증오하는 가운데 그들 스스로 자신들을 패배자로 만든다고 생각할 뿐이다. 신성한 부처님은 산 위에서나 연꽃잎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주 편안하게 디지털 컴퓨터의 회로 안에, 그리고 모터사이클의 변속기 안에 정좌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처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나아가서 자신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이 된다.”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47>
“그의 귀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소음뿐이었고,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기계 덩어리와 기름 묻은 공구를 손에 들고 있는 내 모습뿐이었다. 도저히 먹혀들지가 않았다. 그는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정말로 알지 못했으며, 그것을 알아내고자 할 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그는 사물의 의미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의 존재 자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그가 사물을 이런 방식으로 본다는 것 - 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104>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