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33. 보이지 않는 것을 찍는다는 것

by 노용헌

사진에서 인간 정신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사진은 인간의 외형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육체 - 옷을 입거나 벗고 있기도 하고, 폭력이나 수술로 혹은 X-레이에 노출되어 내부를 드러내기도 하는 물질적 형상으로서의 육체만이 사진에 나타날 뿐이다. 영혼, 생각, 감정, 정신 이러한 것들은 보이는 것이 아니다. 카메라로는 담아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진에서 정신적인 것들을 읽어내고 느끼고 감동 받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자라나면서 우리는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고 느끼고 있으며 정신과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음성 언어나 신체적 신호를 인지함으로써 알게 된다. 우리는 타인의 눈, 입, 얼굴의 모양, 근육의 긴장상태, 팔다리의 움직임 등을 통해, 다른 사람도 '정말로' 생각하고 느끼고 있다는 표시들을 읽어 나간다. 이 표시들은 타인의 정신적 본질에 이르는 단서들이다. 사진을 읽어내는 능력은 이러한 상호 인지능력으로부터 나온다.


삶은 부단히 흘러가는 과정이다. 서로를 바라볼 때, 우리는 육체의 기호들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진화하고 흘러가는 것을 본다. 사진에서는 이 움직임들이 정지되어 있다. 이 두 가지 것들-삶은 흘러가는데 사진은 정지되어 있다는 사실은 사진을 한계 짓는다. 그러나 동시에 이 한계는 사진을 인간 정신의 아주 특별하고 강력한 표현 도구가 되도록 만들어 준다. 단지 한 장의 사진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만으로 추론하고 인지해야 한다는 것은 사진의 한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사진 이미지의 '멈춰진 상태'라는 가능성은 사진에 강력하고 잠재적인 힘을 부여한다. 그것은 연속적인 삶의 흐름 속에서는 쉽게 인식할 수 없던 영혼, 정신을 추출해내 고정시켜 낸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반복해서 정지된 이미지를 볼 수 있으며, 종종 이 이미지가 보여주는 정신의 깊은 층위까지 꿰뚫고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말 그대로 정신이라는 전기적 특성은 이미지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이 저장된 사진 이미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대답하기를 기다리는 긴장, 혹은 부담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긴장은 우리를 사진으로 끌어들이고, 사진 속에 드러난 것들과 정신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나도록 한다. <World Press Photo - This Critical Mirror, by David Goldblatt>


보이지 않는 것을 찍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도사진가들에게 있어서 사진은 기록을 넘어 무언가를 전달한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감상자로 하여금 느끼게 만든다. 유진 스미스의 ‘도모꼬를 목욕시키고 있는 어머니’라는 사진은 많은 사람들에게 휴머니즘을 일깨워 준다. 미나마따 병의 걸린 자식을 끌어안고 있는 어머니의 사진은 강력한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미국 FSA 사진의 대표적인 도로시 랭의 ‘이주민의 어머니’ 사진은 미국의 헐벗은 농민의 삶을 대변한다. 깊게 패인 볼과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의 표정에서 드러나 사진의 사실성은 그 표면이 만들어낸 디테일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이야기하게 만든다. 사진에는 고뇌라는 정신적인 것이 보이지 않는다. 도로시 랭의 사진은 그저 사진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사진은 단순히 현실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디테일의 표면을 넘어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Dorothea Lange이 말한 '제2의 목격자:second lookers'라고 하는 것들, 자꾸 되돌아보게 하는 사진들은 무척 드물다.


도로시 랭


사진은 순수예술가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을 전달하려고 한다. 사진 그자체로서가 아니라 또다른 세계를 작가는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꿈과 몽환적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현실은 또 다른 추상을 만들어 낸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 이미지에 대한 시각적 경험을 스투디움과 푼크툼으로 말한다. 사진이미지를 읽는 지적경험은 감상하는 사람의 경험에 따라서 다르게 체화된다. 사진이미지의 우연 발생적 경험들은 개인적인 푼크툼(Punctum)으로 전달된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하여 나만의 세계를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라 본다면 그것은 극히 개인적인 푼크툼의 세계를 표현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의 의미로서의 스토디움(Studium)으로 해석하는 사진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해석되고 그것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전달하게 된다. 김춘수의 ‘꽃’은 꽃이라는 일반성과 개별성, 특수성이 개별적인 독자에게 다의적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사진은 정지된 이미지이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끊임없이 의식작용을 함으로써 많은 다의성을 가지게 된다.


사진기를 통해서 바라본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현상)을 촬영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개념(본질)을 찍는다는 것은 보이는 현실(진실)을 넘어 촬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을 곱씹어 보면 볼수록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보이는 물질 현상만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다. 물질 현상은 스티글리츠가 말한 이퀴벌런트나,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나 모든 보이는 현상은 다층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사진가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찍는 것이며, 왜? 찍는지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이며, 나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찍고 있는지, 눈에 보이는 풍경들만 촬영하고 있는 사진적 태도(기술적 태도)를 벗어나 생각하는 사진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치열하게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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