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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Feb 08. 2023

마르셀 파뇰의 <마농의 샘>

영화 <마농의 샘> 1986년

영화 <마농의 샘 2>(1986) 

    

마르셀 파뇰의 영화 <마농의 샘>은 1,2부로 된 시리즈 영화이다. 이 영화는 1986년 프랑스의 내셔널 시네마 아카데미상 그랑프리에 이어 비평가협회에서 최우수 영화상을 수상하고, 세자르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데에 이어서 다니엘 오떼유의 최우수 남우상 수상까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욕심에 눈이 먼 위골랭]

“물론이죠. 하지만 기술은 배웠어요. 아틸리오가 다 가르쳐 줬거든요. 저는 거의 매주 일요일마다, 그리고 가끔씩은 저녁때도 아틸리오와 함께 꽃을 재배했어요. 모든 병충해에 대한 치료법을 알고 있지요. 그리고 아틸리오가 제게 꺾꽂이 가지를 주기로 했어요.”

“대량으로 재배하려면 얼마가 필요하니?”

위골랭은 머뭇거리다 눈을 몇 번 깜빡인 다음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결국 말하기 시작했다. 

“15,000프랑이요.”

파페는 중절모를 뒤로 넘기고 이마를 문지른 후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졸고 있는 노새에 채찍을 가하면서 말했다. 

“내가 돈을 주마.”

“파페, 과감한 결정을 하신 거예요.”

“그런 게 아니다. 너를 위해서 돈을 주는 것이 아니야. 수베랑 가문을 위한 거야.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조상과 앞으로 태어날 후손을 위한 거야. 이랴, 이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위골랭이 말했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문제가 하나 있어요.”

“그게 뭐냐?”

“물이에요. 카네이션은 사람처럼 물을 많이 마셔요. 서른 그루에 물을 주는 데도 우물 물을 긷다가 손바닥이 다 까질 지경이었어요....”

“펌프를 달면 되잖느냐.”

“네, 그렇지만 500그루에 물을 준다면 우물은 나흘 만에 말라버릴 거예요.”

“그렇다면 문제구나.”

<마르셀 파뇰, 마농의 샘 1, P30-31>     


“르 플랑티에는 어떠냐? 거기라면 가능하지 않겠냐?”

파페가 말했다. 

르 플랑티에는 언덕 저 멀리에 위치한 작은 동굴이었다. 커다란 돌벽으로 막혀 있는 그 동굴에서 한 은자가 오랫동안 살았다고 전해졌다. 그곳에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아름다운 샘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양치기들의 은신처로 사용되고 있었다.

“거기도 생각해 봤어요. 르 플랑티에 샘물은 아름답지만, 높이가 400미터나 돼요. 겨울에는 매일 아침 하얀 서리가 내리는데, 그렇게 되면 카네이션은 다 죽어요. 게다가 그곳도 피크부피그의 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래, 맞구나. 그러면 남은 방법은 저수지밖에 없구나. 마사캉 근처 계곡 쪽에 큰 웅덩이를 하나 파고 빗물을 모으는 도랑을 파자꾸나. 그렇지만 크기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지 알아야겠구나. 아틸리오가 가지 만 개라고 했지? 그에게 가지 하나당 몇 리터의 물이 필요한지 물어보거라. 그리고 가지 가격도 물어보고. 요샌 손이 아파서 제대로 글을 쓸 수가 없구나.”  (P65-66)     

“자네가 아주 어렸을 때 본 걸 거야. 분명히 폭우가 쏟아진 직후였을 테고. 왜냐하면, 내가 봤을 때는 40년 전이었거든. 그때는 내 손가락 굵기만큼 흘렀어. 그 이후에는 샘이 사라졌지.”

“그럼 자네는 그 샘이 아주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겐가?”

“내가 오늘 아침에 잠깐 보러 다녀왔네만, 돌처럼 말라 있더구먼. 사실은 피크부피그 같은 게으름뱅이가 샘을 돌보지 않아 막혀버린 거라네. 샘은 그 아래로 흐르다가 땅 속으로 더 깊이 숨어 버려서, 어디까지 들어갔는지 알 수도 없다네.”

“우물을 판다면요?”

카지마르가 묻자 파페가 대답했다.

“시간 낭비일 뿐이야. 그 물은 심연에서부터 흐른 것이 틀림없지. 물이 올라오는 것을 더러운 것들이 막고 있어서 도로 심연으로 방향을 튼 것이야. 땅 밑으로 30미터 들어갔을 수도 있고, 100미터일 수도 있지. 나는 샘들의 본성을 알고 있다고. 샘은 미인과 비슷해. 사람들이 미인들을 잊어버리면, 그녀들은 떠나버린다네. 그걸로 끝인 거지.” 빵집 주인이 말했다.  (P83-84)     


그는 우선 오랫동안 샘의 무덤을 관찰했다. 왜냐하면 샘은 배신자와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샘을 찾아다닐 때는 결코 발견하지 못한다. 하지만 샘을 막고자 할 때는 ‘다른 어딘가’에서 분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일 아침 위골랭은, 작업을 완벽하게 성공적으로 이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떠한 물 자국도 땅위에 드러나 보이지 않았고, 무화과나무에서는 어떤 가지도 새로 나지 않았다. 파페와 위골랭은 실로 멋진 작업을 했다.  (P96)     

“부인께서는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계시군요. 성당에서도 이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네요.”

위골랭이 말하자 꼽추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내 목소리에 놀란 사람은 선생 말고도 많이 있었지요. 아내는 <라크메>, <내가 왕이었다면>, <마농>과 같은 오페라를 불렀었습니다.”

위골랭은 장이 말한 오페라 작품을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그걸 모른다고 해서 감탄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부인께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셨을 거예요!”  (P117)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였죠. 독특하기도 했고요. 가장 성공적이었던 공연은 <마농>이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딸아이에게 그 제목을 따서 이름을 붙여줬지요. 언젠가 엄마와 똑같은 재능을 발휘하라고 말입니다.” 

꼽추가 덧붙였다.   (P118)     


“갈리네트, 조심하거라. 꼽추들을 너무 믿어서는 안 돼.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교활하단다. 그 샘에 대해서는 그자 어머니한테서 들었다고 보는 게 당연해. 그가 크레스팽에서 왔고 우리를 경계하리라는 것을 잊지 마라. 그저 순진한 도시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저수지 하나 분량의 물로 2헥타르를 경작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진 않을 게다. 뭘 심고 싶어 하더냐?” 

“채소랑 포도나무, 밀을 심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리고 로탕티크를 심고 싶다고도 했어요. 로탕티크에 대해서 계속 말하더라고요. 그게 뭔가요?”

“책에서나 자라는 식물일 게다. 어디선가 봤지.”

“현대적이어야 한다고도 말했어요.”

“그가 네게 ‘루틴한 것’에 대해 말했다는 데 10프랑 걸겠다.”

“그게 뭔가요?”

“도시에서 쓰는 말이야. 루틴하다는 것은 옛날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을 말하지. 도시 사람들은 현대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옛 사람들이 가르쳐준 것을 전부 버렸어. 그리고 그들은 기적을 만들었지.”   (P132)     

“바로 맞히셨습니다. 목축업자들의 대 실수가 바로 그 토끼장입니다. 친애하는 선생, 토끼장이 바로 루틴입니다!”

‘대단해, 그가 그 말을 했어. 파페가 기뻐하시겠다.’ 위골랭은 생각했다. 

“그것은 루틴 중에서도 가장 무식한 루틴입니다. 왜냐하면 토끼를 가두어 놓는 것이 모든 병의 근원이 되거든요. 게다가 루이 11세가 주교 한 사람을 산송장으로 만들려고 했을 때, 왕이 무엇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주교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역사가 교훈을 주는 것이죠.”

주교, 왕, 송장과 토끼 간에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위골랭에게는 역사가 교훈을 주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꼽추는 계속 이어 말했다.

“저는 거대한 농장을 만들 겁니다. 토끼를 놓아기르는 ‘현대적인 목축’을 할 겁니다.”

“대단해요. 흥미로워요.”

위골랭이 말했다.  (P154)    

 

“제가 생각하게에는 곡괭이로 일하다가는 석 달 만에 성질만 버리게 될 것 같아서요. 쟁기가 있다면 땅을 다 갈고도 내년에 호박을 심을 밭도 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땅에게도 좋고 우리도 저녁까지 일을 마칠 수 있지요!”

꼽추는 환한 얼굴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에메, 기도는 절대 헛된 법이 없어. 이것이 하늘의 응답이야.”

이렇게 해서 위골랭은 ‘주님의 도구’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그의 의도는 그다지 선한 것만은 아니었다.

우선 위골랭은 훗날 농장을 헐값에 얻기 위해 꼽추와 우정을 쌓으라는 파페의 조언을 따랐다. 그리고 혹시나 곡괭이가 잘못해서 샘 부근을 파헤쳐 샘의 존재를 드러낼 물이 조금씩 배어 나올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위골랭이 와서 직접 조언을 한다면 이와 같은 불행을 피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장의 어리석은 계획이 빨리 진행되면 그만큼 실패도 빨리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위골랭은 땅의 상태가 어떤지 점검하고, 깊이를 가늠해 보고 부드러운 정도를 살펴보며, 흙 냄새를 맡고자 하는 열망으로 불타올랐다. 그리고 이 작업은 미래의 꽃 재배에 대한 준비 단계가 될 것이다. 이런 저속한 이유 외에도 위골랭 자신도 모르는 새에 스며든 어두운 양심의 가책도 한몫했다. 위골랭은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를 도와주고, 그에게 좋은 일을 하는 거야. 나는 그의 계획이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만, 어쨌든 도와주는 건 선행이지. 그리고 인자하신 주님께서는 나의 선행에 보답을 해주실거야.”   (P179-180)    

 

토끼 농장의 위치 때문에 위골랭은 걱정이 되었다. 장이 계곡 바닥 쪽에 시멘트로 된 지하 땅굴을 서른 개나 만든다면 카네이션을 심기 전에 땅굴을 없애고 땅을 원해 상태로 되돌리는 데 한 달이나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땅굴은 언덕에 파야 했다. 그리고 샘이 갇혀 있는 언덕 오른쪽도 피해야 했다. 

“장 선생님, 선생도 아시겠지만, 계곡 바닥 쪽이면 경작이 가능한 땅을 많이 잃어버리게 돼요. 그리고 토끼들은 오줌을 많이 싼다는 걸 잊지 마세요. 만일 배수가 잘 안 된다면 토끼들은 파리들처럼 냄새에 질식해서 죽을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선생님이라면 언덕 옆 기슭에 땅굴을 팔 거예요. 그리고 시멘트 관 바닥에 구멍도 네 개를 낼 거고요. 그렇게 되면 토끼들은 항상 젖지 않겠죠. 그러니까 언덕에 토끼 굴을 판다고요. 언덕 어느 쪽에 파야하는지가 문젠데, 물론 오른쪽은 안 되지요. 그쪽은 북쪽이라 햇빛도 안 들고 북풍도 세게 불어요. 왼쪽이라면 정오 경에는 해가 들고 바람도 피할 수 있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 카도레는 훌륭한 의견이라고 생각했고, 위골랭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이튿날 장이 기준이 될 푯말을 세우는 것을 도우러 오겠다고 말했다.   (P181)     

“어머니인 자연은 언제나 자식들을 먹인단다. 나는 이만큼 먹는 즐거움을 누려본 적이 없어. 얼마 전부터 일시적인 가난 때문에 우리는 천연 비료 외의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인자하신 주님의 땅에서 난 야생 음식과 제철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단다. 게다가 매일 마시던 커피 세 잔을 포기한 것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왜냐하면 일요일에 마시는 모카커피 한 잔을 더 감사히 여기게 되었거든. 그리고 잠도 훨씬 더 잘 잔단다. 아침에 일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라일락 차는 몸에도 더 좋고.... 이 새로운 식습관 덕분에 내가 완벽하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거야. 도시의 공기가 끔찍한 질병의 원인이었어. 층층이 쌓인 공간에서 지옥 같은 소리를들으면서 살고, 매일 아침 악취가 나는 사무실에 앉아서 스스로가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불쌍한 이들을 생각할 때면, 그들을 비웃게 된단다!”  

그는 빈정거리면서 웃었고 마농은 까르르 웃었다.  (P222-223)     


언덕의 잘생긴 나무꾼, 위대한 주세페가 죽었다. 바르의 숲에서 매우 비틀린 어느 큰 나무의 ‘잘 오이지 않는 썩은 나무 기동’이 ‘도끼질 한 방’에 쓰러졌고, 주세페는 너무 늦게 뒤로 물러났다. 끝쪽에 붙어 있던 크지 않은 가지 한 개가 주세페의 목덜미를 내리쳤고, 작은 ‘목뼈’를 분질러버렸다....   (P258)    

 

위골랭은 잠시 멈추었다가 힘주어 말을 이었다.

“선생 같은 사람은 도시에 어울려요. 다른 사람의 돈을 가져가는 세금 징수원으로 일하는 게 힘드셨다는 것을 이해해요. 선생은 선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니까요.... 그렇지만 이 정도 교육을 받으셨으니 교사나 우체부를 할 수도 있고, 담뱃가게를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대도시 시청의 사무실에서 일을 할 수도 있고요.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대요. 저는 선생이 셔츠 바람에 토시를 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문 앞에는 발을 털 수 있는 깔개가 놓여 있는 집에, 복도에는 편지함이 놓여 있고 계단에는 가스등이 켜져 있는 그런 곳에 계실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선생의 운명이라고요. 그러지 않고 이곳에 계신다면 점점 더 말라갈 거예요. 선생이 돈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건 창피한 일이 아니에요. 그냥 없는 거지요. 그래서 선생은 달팽이나 토끼, 버섯, 민들레를 먹게 될 거예요. 그건 일하는 사람이 먹을 음식이 아니지요. 그걸 먹으면 선생께서는 포도주를 많이 마셔야만 하고 결국 일을 끝내지도 못하고 죽을 거예요. 그럼 에메 부인과 어린 마농이 어떻게 되겠어요? 그 둘은 이미 얼마 전부터 예전처럼 활기찬 상태가 아니에요. 선생께서는 그걸 모르실지 몰라도 저는 눈치 채고 있었답니다. 제가 상관할 일이 아니란 건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걱정이 되고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린 거예요.”   (P305)     


마을로 가는 길 내내 위골랭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미 그에게 위험하다고 말했어요.... 제 잘못이 아니에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가 자신의 불행을 불러온 거예요.... 바로 책 때문에 죽은 거라고요.... 그는 전부 다 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된 거예요. 요전에 그가 제 말을 들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저는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다고요....”  (P323)

     

[마농의 복수]

“그래, 태평한 팔자는 오래가지 않는 법이지. 게다가 총알이 날아와 등에 박히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사는 거고. 게다가 종종 바보같이 덫에 거리곤 해. 각자 자신에게 맞는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지.... 나는 왜 내가 일하는지 생각해 보곤 해. 500루이가 있으면 파페의 유산을 받을 때까지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 텐데 말이지. 평생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중요한 사실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 한다는 거야. 사람은 결국은 죽는데 말이야. 그러면 재산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   <마르셀 파뇰, 마농의 샘 2, P64>     


하지만 가끔씩 그녀는 논리적으로 생각했다. 어찌되었든, 비가 오지 않았고, 치명적인 돌멩이가 떨어졌으며, 그녀의 아버지가 샘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도, 그것이 저 불쌍한 농부의 잘못은 아니었다. 만약에 위골랭이 스스로 샘을 발견했다면 마농이 무슨 이유로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 그녀는 경계심과 원한을 없앨 수 없었다. 마농은 여러 선한 행동에서 얻어진 유리한 결과는 결국 감추어진 속셈을 드러내 보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P90)     

“마농! 네 옆에서는 차마 말할 용기가 없었어. 하지만 나는 이미 사랑이란 병에 걸렸어!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병에 걸린 지 한참 됐어! 무서운 폭우가 레프레스키에르를 지나간 다음이었다고! 나는 새끼 자고를 잡으려고 숨어 있었어.... 빗물에서 목욕을 하는 널 봤어.... 나는 오래 지켜보고 있었어. 얼마나 아름다웠다고. 범죄를 저지르는 게 두려웠어! 그래서 금작화 아래로 도망갔는데 네가 돌을 던졌다고!” 

마농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다른 욕설을 몰랐기 때문에 손으로 확성기 모양을 만들어 피에몽 욕설을 퍼부어댔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를 ‘늙은 돼지’라고 부르면서 한바탕 욕을 퍼붓고 난 후 그녀는 염소 떼를 따라 오솔길로 떠났다. 위골랭은 언덕 가장자리를 달려오면서 외쳤다.   (P140)     


“샘이 흐르는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카브리당은 대답하기 전에 잠시 주저했다.

“어쩌면 제가 어렸을 때 한 번쯤은 봤을지도 몰라요.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했을 때 말이죠.... 작은 개울에서 물을 마셨어요. 그게 그 샘인 것 같네요.”

“샘인 것 같다니? 이 고장에는 다른 샘이 있었던 적이 없다네! 그리고 꼽추가 오기 전에 샘을 막은 사람이 위골랭이란 걸 자네도 잘 알고 있잖나.”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해요. 어쨌든 저는 그 문제에 아무 관련이 없어요. 그리고 파페가 우리에게, 샘이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말했잖아요...”

카브리당이 웅얼거렸다.

“사라졌다고? 하지만 수베랑 가를 위해서는 사라지지 않았지? 그들은 농가를 손에 넣자마자 얼른 물이 다시 솟아 나오게 했잖아.”

목수가 비웃었다. 

마농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대화를 엿들으면서 내용을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P148)     

마농은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이 됐든 범죄가 일어난 장소를 다시 보고 복수를 준비할 것이었다. 그녀는 라 가레트 언덕으로 내려와서 르 플랑티에 협곡을 지나 생 테스프리 언덕을 통과해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농가로 이어지는 언덕 꼭대기에 도달했다. 그녀는 저녁 바람에 흔들리는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커다란 소나무 숲이 더 이상 밭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랐다.  (P153)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차가운 물 위로 몸을 숙여 염소처럼 천천히 물을 마시고는 세수를 했다. 그리고 물을 거울 삼아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있는 동안 저수지 바닥에서 붉은 불꽃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 불꽃은 소용돌이 모양으로 피어오르더니 천천히 수면으로 올라온 다음 휘몰아치며 다시 가라앉았다... 이 분 동안 구름은 저수지 양쪽 벽에 닿을 정도로 넓게 퍼졌다. 이제야 마농은 신께서 자신에게 위골랭의 몰락과 마을의 단죄를 허락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기적과 같은 카네이션은 옥수수와 호박처럼 말라죽을 것이고 레 바스티드의 무성한 채소밭은 며칠 만에 말라버릴 것이다. 그녀는 이 소식을 전하러 언덕의 마가목을 향해 달려갔다. 그녀를 몰아댄 감정은 매우 격한 것이어서 결국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P164-165)     

“생각을 해보렴, 생각을.... 내가 너한테 준 고통에 대한 후회와, 네게 줄 행복에 대한 만족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나쁜 조합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 않니?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할지 모르겠니? 나도 내가 못생겼다는 걸 알아. 하지만 나는 용감하고 너는 충분히 우리 두 사람 몫만큼 예쁜걸.... 네가 낳게 될 아이들을 생각해 볼 때, 만에 하나 너의 아버지처럼 불구가 나온다고 해도, 그 아이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 나의 귀여운 녀석, 나의 가장 예쁜 아이가 될 거야. 나는 그의 요람 앞에 무릎을 꿇고 매일 용서를 빌 거라고....” 

위골랭은 마농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를 향해 양팔을 벌렸다. 굵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흐느꼈다.

“마농.... 내 사랑..... 내 사랑....”      (P254)     


“모두가 다 알고 있었지. 구릉에서 우리는 그들이 물통과 물병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걸 봤으니까.”

“마지막에는 거의 달려갔다고.... 우리는 그가 쓰러질 줄 알았어. 하지만 남의 일에 참견하기에 나는 너무 가난했다네.”

카브리당이 말했다.

베르나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결국 여러분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군요. 그런데 그분께 그분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재산을 알려주어 스스로의 생명을 구해낼 한 마디를 해줄 용기를 낸 분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말이군요!”

벨루아조 씨가 말했다.

“전 다른 사람들게 화를 내고 싶지 않습니다만, 여러분은 모두 말 한 마디나 간단한 행동만으로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던 범죄의 공범입니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P258)     

큰 올리브나무의 무성한 가지 사이로 위골랭이 밧줄 끝에 매달려 천천히 뱅그르르 돌고 있었고 그 아래 풀밭에는 사다리가 나동그라져 있었다. 그는 그네 고리에 매달린 거였다.

팡필은 앞으로 뛰어나가 목을 매단 위골랭의 다리를 가슴께로 붙잡아 몸을 받쳐 들었다. 그동안 선생이 사다리에 올라가 칼로 밧줄을 잘랐다.

“그가 살아날 희망이 있습니까?”

벨루아조 씨가 물었다. 그러자 팡필이 대답했다.

“바짝 마른 생선처럼 뻣뻣하군요.”

네 사람은 위골랭을 부엌에 있는 그의 침대로 데려왔다. 베르나르는 길게 나온 푸른 혀 위에 수건을 덮었다.

“자, 당신들이 한 짓이지.”

“이봐요, 이봐요. 파페 스스로도 그가 미쳐버렸다고 말하지 않았소! 오늘 아침에 말하고서는!”

필록센이 말했다. 팡필은 죽은 위골랭의 머리에 빗질을 했다.   (P267)    

 

“미안하지만, 신발에 ‘양심’이 들어갔네!”  

그는 큰 바위 위에 앉으러 가서 부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양심이라니? 유언장에 관한 건가?”

필록센이 물었다.

“아니야. 우리말로 ‘양심’이란 단어는, 라틴어로 걷는 데 지장을 주고 발에 상처를 내는 신발에 들어간 ‘돌’을 말한다네. 매혹적인 비유법으로 우리는 그 단어에 도덕적인 의미를 부여한 거지.”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부츠를 거꾸로 흔들었고, 그러자 작은 조약돌이 떨어졌다. 학교 선생은 웃기 시작했다.   (P277-278)     

파페는 일어서려고 했지만 다시 벤치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중얼거렸다.

“델핀, 델필, 자네 확실히....”

“내가 그 편지를 읽었다고 하지 않았나. 게다가 그녀가 편지를 쓰는 것까지 도와줬다니까.... 불쌍한 그녀는 잠도 못 잤어. 그래서 악마의 탕약을 먹고 아이를 지우려고도 했다네.... 언덕에서 바위로 뛰어내리기도 했어. 하지만 아이는 잘 살아남았지. 그래서 그녀가 자네를 싫어하게 된 거야. 그녀는 오바뉴에 춤을 추러 갔다가 거기서 키 크고 잘생긴 크레스팽의 대장장이를 만났지. 그녀는 그와 결혼해 마을을 떠났고, 아무도 그 아이가 태어난 걸 몰랐어...”

“그 아이가.... 살아서 태어났는가?”

“살아서 태어났지. 하지만 꼽추였어.”

파페는 가슴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한기를 느꼈고, 심장은 갑자기 마비된 갈비뼈 사이로 팽창하는 것 같았다. 그는 숨을 내쉬지 않았고, 호흡을 할 수도 없었다.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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