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2003년
네덜란드의 델프트 화가인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1632~1675)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작품은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불린다. 베르메르의 작품은 대부분 그림 속에서 각자 자신의 일에 몰두하여 화가 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지 않으며, 배경에서는 소품의 세밀한 묘사가 특징이다. 하지만 이 작품만이 유일하게 진주 귀고리를 한 여인이 화가를 바라보고 있으며, 배경의 세밀한 묘사 대신 검정색으로 칠하는 등 화가의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서명만이 적혀있을 뿐 연도도 의뢰인도 알려진 바가 없다. 무엇보다 이 작품 속의 여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진주 귀고리 소녀는 내게 여전히 강력한 시비를 간직하고 있다. 소녀의 얼굴에 어린 표정에 사로잡혀 소설을 썼지만, 나는 아직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결코 알지 못하게 되기를 바란다." - 트레이시 슈발리에
마리아 틴스가 웃었다. “사위의 그림 앞에서 예의범절을 잊어버리는 건 너뿐만이 아니란다, 얘야.” 마리아 틴스가 내 곁으로 다가와서 섰다. “그래, 이 그림은 거의 다 됐지. 이 여인은 반 라위번의 안사람이다.” 아빠가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 무슨 후원자라는 그 이름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 여자는 별로 아름답지 않지만, 사위가 그렇게 보이도록 그렸지. 이 그림은 좋은 값을 받을 게다.”
이 그림은 내가 처음 본 그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훗날 본 그의 다른 작품들, 심지어 밑그림부터 시작해 마지막 완성까지 지켜보았던 다른 그림들보다도 기억에 더 또렷이 남아 있다.
한 여자가 탁자 앞에서 옆모습을 보인 채 벽에 걸린 거울을 보고 있었다. 여자는 흰담비 모피로 가장자리를 댄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노란 공단 망토를 입고, 머리에는 요새 유행하는 다섯 가닥의 빨간 리본을 맸다. 왼쪽 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여자의 이마와 코에 섬세한 곡선을 그리며 얼굴을 거쳐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여자는 목에 건 진주 목걸이에 리본을 묶고 있었는데, 리본을 잡은 두 손은 허공에 정지해 있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넋을 잃은 듯, 여자는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배경이 되는 밝고 하얀 벽에는 낡은 지도가 한 장 걸려 있었고, 그림 앞쪽 어두운 부분에는 내가 청소했던 편지며 파우더 붓, 그리고 그 밖의 물건들이 놓인 탁자가 보였다.
나는 그림 속의 망토며 진주 목걸이를 걸쳐보고 싶었다. 이런 식으로 여자를 그린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P52)
나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그림을 응시했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뭔가가 스르르 빠져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 똑바로 바라보고 있으면 좀처럼 찾을 수 없는 밤하늘의 별 말이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며 눈 끝으로 살짝 보았을 때 별은 더 밝게 다가온다. (P54-55)
셋째 날 아침, 카타리나가 화실의 문을 열어줄 때 창문을 닦아도 되는지 물었다.
“안 될 게 뭐야? 그런 사소한 일은 내게 일일이 물을 필요가 없어.” 카타리나는 날카롭게 대꾸했다.
“빛 때문이에요. 마님, 만일 창문을 닦게 되면 빛이 달라져 그림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보실래요?” 나는 설명했다.
하지만 카타리나는 보려고 하지 않았다. 화실 안으로 들어오기 싫은 건지 들어올 수 없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한번도 이 방에 들어와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타네커의 기분이 좋을 때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봐야겠다. 아래층으로 내려간 카타리나가 남편에게 물어본 모양인지 창문은 그냥 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P61)
“그 안을 들여다보고 싶니?” 그가 물었다. 수주 전 야채에 대해서 물어본 뒤로 그가 내게 직접 말을 걸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 그러고 싶습니다.” 나는 무엇을 해보겠다는 건지 알지도 못한 채 대답하고 있었다. “이게 뭔가요?”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것이다.”
그 단어들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옆으로 비켜서서 그가 걸쇠를 풀고 상자 윗부분을 들어올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원래 둘로 분리되는 것인데 경첩을 달아 연결시켜놓은 것이었다. 그가 덮개를 열어 비스듬히 받치자 상자는 살짝 열린 상태가 되었다. 상자 아래에는 조그만 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몸을 숙이고 상자와 덮개 사이의 공간을 들여다보던 그는 옆에 달린 작은 상자의 끝에 튀어나와 있는 둥근 물체를 만졌다. 뭔가를 보고 있는 듯했지만 상자 안에 그렇게 흥미로운 무언가가 들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P77)
나는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을 처음부터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림이란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의 색을 써서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를 가르쳤다.
그는 하얀 캔버스 위에 회색을 엷게 칠하는 것으로 빵집 딸의 그림을 시작했다. 다음에는 모델이 서 있을 자리며, 탁자와 물주전자, 창문, 지도가 있어야 할 모든 자리를 적갈색 점을 찍어 표시했다. 그 일이 끝난 후 나는 그가 자기가 본 그대로 그릴 거라고 생각했다. 소녀의 얼굴과 푸른 치마, 노랑과 검정색이 어우러진 조끼, 갈색 지도, 양은으로 된 물주전자와 대야, 그리고 하얀 벽, 하지만 그는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P126)
“저 구름들이 무슨 색이지?”
“그야, 하얀색이지요. 주인님.”
그가 살짝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래?”
나는 구름을 다시 보았다. “회색도 있네요. 눈이 올 건가 봐요.”
“자, 그리트, 넌 더 잘할 수 있어. 네가 다듬던 야채들을 생각해봐라.”
“야채들이오, 주인님?”
그가 머리를 조금 움직였다. 그를 다시 짜증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내 턱이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네가 어떻게 흰색들을 분리했는지 생각해봐라. 순무와 양파, 그것들이 같은 흰색이냐?”
갑자기 나는 깨달았다. “아니오. 순무는 흰색 안에 초록 빛깔이 있고, 양파는 흰색 안에 노란 빛이 있습니다.”
“그래, 맞았다. 이제 저 구름 속에 어떤 색깔들이 보이지?”
“푸른색도 약간 있고요.” 한동안 구름을 관찰한 후 나는 얘기했다. “그리고..... 음, 노란색도 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초록색도 있네요!” 나는 너무 흥분해서 손을 뻗어 가리키기까지 했다. 살아오면서 내내 구름을 보아왔지만, 그 순간 처음으로 구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웃었다. “사람들은 구름이 하얗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구름 속에서 순전한 흰색을 찾기란 힘들지. 이제는 왜 내게 아직 푸른색이 필요하지 않은지 이해하겠지?” (P128)
하지만 내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색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일을 감추는데 따르는 고통은 보상받고도 남았다. 나는 그가 약제사로부터 가져온 재료들을 손수 가는 이 일을 사랑했다. 상아와 백연, 매더(madder: 꼭두서니의 뿌리, 여기서 적색 염료를 채취한다)와 매시콧. 이 재료들에서 나오는 색깔들은 얼마나 선명하고 순수한지. 그 색을 보는 것이 또한 좋았다. 재료를 곱게 갈면 갈수록, 색이 더 짙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거칠고 굵은 입자의 매더가 곱고 선명한 붉은색 가루로 변하고, 여기에 아마인유를 섞으면 불타는 듯한 주홍색 물감이 된다. 이렇게 해서 나오는 색깔들은 마치 마법을 보듯 신비로웠다.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색을 얻기 위해 재료들을 씻는 방법도 배웠다. 작은 그릇처럼 생긴 조개껍질들을 사용했는데, 모래나 자갈, 석회질을 없애기 위해 어떤 때는 서른 번씩이나 씻고 또 씻었다. 이 일은 길고 지루한 작업이었지만, 한 번씩 씻어 내릴 때마다 색이 원래의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뿌듯했다.
내가 손대지 못한 유일한 색은 군청색이었다. 군청색을 만들어내는 재료는 청금석이라는 것으로 아주 비쌌다. 이 돌에서 순수한 청색을 끄집어내는 작업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그가 직접 했다.
나는 점점 그와 함께 있는 것에 익숙해졌다. 가끔 우리는 작은 다락방에 나란히 서서, 내가 백연을 갈고 있는 동안 그는 청금석을 씻거나 황토를 불에 구웠다.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P136)
나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말했다. “배경에는 뭔가 질서를 흩트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반 라위번 마님의 고요함과 대비될 수 있게요.” 나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뭔가 눈을 간질이는 것 말이에요. 물론 눈을 즐겁게 해줘야 해요. 그러면서 간지럽게 하는 거요. 왜냐하면 천과 마님의 팔이 비슷한 자세로 있으니까요.”
긴 침묵이 따랐다. 그는 탁자를 보고 있었다.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나는 기다렸다.
“하녀한테 한 수 배울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걸.” 마침내 그가 말했다. (P172)
“가톨릭이건 개신교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림이 아니야. 문제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과 그들이 무엇을 보기를 기대하는가에 있지. 교회 안의 그림은 어두운 방안에 있는 촛불과 같은 거란다. 더 잘 보기 위해서 쓰는 촛불 말이다. 그림 역시 우리와 하느님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거다. 개신교의 촛불이건 가톨릭의 촛불이건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그림은 단지 촛불일 뿐이니까.” (P177)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가 골라준 두 개의 천을 들고 광으로 간 나는 거울 앞에서 다시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정수리부터 노란색 천으로 머리를 싸고 나서, 이마 위로 푸른색 천을 둘렀다. 천의 끝자락들을 안쪽으로 잘 밀어넣고, 여기저기 주름진 곳들을 매만지고 이마를 두르고 있는 푸른색 천이 어느 한쪽으로 몰린 곳은 없는지 조심스레 가다듬었다. 그리고 나서 화실로 돌아왔다.
그는 책을 보고 있었는데 내가 살며시 들어와 의자에 앉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나는 처음의 자세로 다시 돌아갔다. 왼쪽 어깨 너머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안으로 밀어넣어 두었던 노란색 천의 끝자락이 풀리면서 어깨 위로 축 늘어졌다.
“아!” 천이 흘러내려 머리카락이 모두 드러날까 두려워 나는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노란색 천은 끝자락만 어깨 위에 매달려 흔들거릴 뿐 더 이상 쏟아지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무사했다.
이때 그가 말했다. “그래, 바로 그거다, 그리트.” (P231)
“너도 알겠지만,”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림에는 그게 필요해. 진주가 반사하는 빛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림은 결코 완성되지 못해.”
나도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너무 이상해서 그림을 오래 볼 수는 없었지만, 진주 귀고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즉시 알 수 있었다. 진주 귀고리가 없는 그림은 나의 눈과 입, 흰 슈미즈, 내 귀 뒤의 어두운 공간, 모든 것들을 따로따로 놀게 했다. 진주 귀고리는 이 모두를 함께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그림은 완성될 것이다.
하지만 그 진주 귀고리는 또한 나를 거리로 내몰 것이다. 반 라위번이나 반 레이원후크, 그 누구에게서도 그가 귀고리를 빌리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카타리나의 귀고리를 보았고, 내 귀에 달게 할 귀고리는 바로 그것이다. 그는 자기 그림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 때문에 초래될 다른 문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사용했다. 반 레이원후크가 내게 경고했던 점이기도 했다. (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