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2006년

by 노용헌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눈에 보이지도 귀로 들리지도 않는 후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한 프레임에 사물을 가득 담거나, 특히 밝은 색감을 사용해 ‘향기’가 있음을 표현하거나, 신체 부위를 근접하게 촬영해 그르누이가 온몸에 저장하는 ‘미’의 향기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인물을 통한 후각 표현도 인상적이다. 그르누이 역을 맡은 벤 위쇼는 내면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의문스러운 표정 속 냄새에 집착하는 광기를 표현하면서, 향수처럼 은은히 퍼지도록 흘러가는 영화와 결을 같이 하며 그르누이를 표현하고 있다. 향기를 내고 있는 인물, 그 향기를 맡는 인물의 그 모습을 화면으로 담아내고 있는데, 특히 마지막 처형장의 장면 속 모든 인물들이 예술 작품이 되어 ‘향수’를 표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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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드니 거리의 유모 잔느 뷔시, 당신의 말에 의하면 그러니까 당연히 있어야 할 냄새가 없는 아기는 악마의 자식이라는 거요?”

그가 등뒤로 돌렸던 왼팔을 치켜들고는 둘째 손가락을 물음표 모양으로 구부려서 위협적으로 그녀의 얼굴에 갖다 대었다. 그녀는 생각을 해보았다. 대화가 갑자기 그녀가 굴복할 수밖에 없는 신학적 심문으로 변질되는 것은 그녀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에요.”

그녀가 좀 물러서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이 일이 악마와 관련되어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판단하세요. 테리어 신부님. 제게는 그럴 힘이 없으니까요. 제가 아는 건 단 한 가지,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그런 냄새가 없는 이 애가 무서울 뿐이에요.” (P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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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이 되었을 때 그는 후신경(喉神經)을 통해 주변의 모든 사물들을 완전히 파악했다. 가이아르 부인의 집에 있는 모든 것, 북부 샤론느 거리에 있는 모든 장소, 모든 사람, 모든 돌과 나무, 숲과 나무 울타리, 심지어 작은 얼룩에 이르기까지 그는 냄새로 알아낼 수 있었다. 그가 구분할 수 없고, 다시 확인할 수 없고, 그때그때의 일회성 속에서 기억하지 못하는 냄새는 하나도 없었다. 그는 수만, 수십만 가지의 독특한 냄새를 수집했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아주 정확하게 다룰수가 있었다.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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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누이가 향수라는 말에 어울리는 냄새를 처음으로 맡은 곳이 바로 여기였다. 소박한 라벤더 향이나 장미 향기가 섞인 축제 때의 정원 분수대의 물 말이다. 그러나 등화유나 월하향, 노랑 수선화나 재스민, 혹은 계피향이 섞인 사향 염료 등 좀더 복잡하고 귀한 향기들도 저녁이면 호화로운 마차들 뒤에서 두터운 냄새의 띠를 이루며 퍼져 나왔다. 그는 일상적인 냄새들을 기억해 둘 때처럼 이 향기들도 받아들여 기억해 두었다. 그것들에 호기심을 느끼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그는 향수의 목적이 사람을 도취시키고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향수의 구성 성분들이 좋은지 나쁜지도 알 수 있었다. 그가 보기에 그 향수들은 전체적으로 조악하고 서툰 솜씨에서 나온 것으로, 제대로 혼합되지 못하고 대충 엉터리로 섞어 놓은 것이었다. 자신이 그것과 똑같은 재료들을 가지고 있다면 훨씬 더 좋은 향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P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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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그를 발견한 그녀는 너무 놀라서 몸이 굳어져 버렸다. 때문에 그는 그녀의 목을 조를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되었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지도,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반항 한번 해보지 못했다. 한편 그르누이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주근깨가 박혀 있는 갸름한 얼굴, 붉은 입술, 반짝이는 초록색 큰 눈을 그는 보지 않았다. 그녀의 목을 조르는 동안 향기를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을 꼭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죽자 그는 시체를 오이씨가 널려진 바닥 한가운데에 눕히고 옷을 벗겼다. 향기가 물결이 되어 밀려와서는 그의 가슴속을 가득 채우고 넘쳐흘렀다. 그는 그녀의 피부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코를 벌름거리면서 배에서 가슴으로, 목과 얼굴을 거쳐 머리카락으로 냄새를 훑어 올라갔다. 그리고는 다시 배로 내려와 국부를 지나 넓적다리와 하얀 종아리를 훑어 내려갔다 그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녀의 모든 냄새를 훑어 내렸고 턱과 배꼽, 팔꿈치의 주름살 사이에 있는 마지막 한 방울의 향기까지 다 들이마셨다.

냄새를 다 빨아들여 그녀가 완전히 축 늘어진 후에도 그는 한동안 더 그녀 옆에 웅크린 자세로 앉아 있었다. 자신의 몸을 완전히 채우고 있는 그녀의 향기를 단 한 방울도 흘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모든 방에 빗장을 질러야만 했다. 그런 후에야 그는 일어서서 촛불을 끄고 방을 나왔다. (P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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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지는 증류액은 더 좋고 더 새롭고 더 독특한 것이었다. 자신의 마음속에 피어 있어서 그 자신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냄새 맡을 수 없는 그런 정선된 식물들로 만든 증류액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독특한 증류액은 이 세상을 향기로 가득 찬 에덴으로 변화시키고, 그 속에 있으면 자신의 인생도 후각적으로 견딜 만한 것이 되는 그런 향기를 품고 있었다. 자신이 만든 증류액의 향기로 온 세상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그런 커다란 알람빅이 되려는 것. 그것이 바로 그르누이가 꿈꾸는 소망이었다. (P15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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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누이의 마음속 우주에서는 사물은 없고 단지 사물의 냄새만 존재했다(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를 적절하고 그럴듯한 하나의 풍경으로 묘사하는 것은 공허한 말 장난에 불과하다. 우리의 언어는 냄새로 맡을 수 있는 세계를 묘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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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누이는 금방 안개에 휩싸여 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 안개의 소용돌이 속에는 이제 숨쉴 수 있는 공기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질식해 죽지 않으려면 안개라도 들이마셔야 했다. 그런데 이미 말했듯이 안개는 어떤 냄새 덩어리였다. 그르누이는 그게 무슨 냄새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르누이 자신의 냄새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것이 <자신의> 냄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완전히 자기 자신의 냄새에 파묻혀 있는데도 어떤 방법으로도 그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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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체취가 없을 리가 없어. 냄새가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것보다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날마다 냄새를 맡아 왔기 때문에 코가 내 자신의 체취에 둔감해진 탓일 거야. 그래서 내 몸의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된 게 틀림없어. 나 자신으로부터 냄새를 분리시키거나, 아니면 적어도 일부분이라도 잠시 떼어 냈다가 시간이 좀 흐른 후 다시 맡아 보면 틀림없이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거야.”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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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들려는 것은 바로 인간의 냄새였다. 물론 지금 만드는 것은 임시 방편에 불과하겠지만 그는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인간의 냄새를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사실 <인간의 냄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얼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모두 냄새가 달랐다. 수천 명의 사람 냄새를 알고 있고, 태어날 때부터 냄새로 사람을 구분해 온 그르누이보다 그 사실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냄새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 그런 냄새가 있었다. 단순화시키면 그 냄새는 대체로 땀과 기름, 그리고 시큼한 치즈가 섞인 것 같은 냄새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그 냄새를 지니고 있었고, 사람마다 기본적인 그 냄새에다 보다 세밀한 어떤 냄새를 추가로 갖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개인적 분위기를 좌우하는 체취였다. (P22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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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르 리쉬가 살해된 이후 살인자에 대한 체계적인 추적의 단서를 잡았기 때문이다. 즉 살인자가 목격된 것이다. 라 나풀르 여관의 마구간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그 수상쩍은 무두장이 도제가 살인마임이 분명했다. 여관 주인과 마구간 마부, 그리고 리쉬의 일치된 진술에 의하면 그는 남의 눈에 잘 안 띄는 사람으로 갈색 상의에 거친 리넨으로 만든 여행 가방을 든 키가 작은 남자였다.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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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한 일은 바로 처형장과 그 주변 언덕에 구름처럼 모여 있던 만여 명의 사람이 한순간에 갑자기 푸른 옷을 입고 마차에서 막 내려서는 작은 남자는 절대 <살인마>일 리가 없다는 확고한 믿음에 사로잡힌 일이었다! 사람이 바뀌었다고 의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 내려선 남자는 그들이 며칠 전 교회 광장에서 법원 창문을 통해 본 그 남자가 틀림없었다. 만약 그때 그들의 손에 그가 있었다면 광포한 증오심에 사로잡힌 그들에 의해 맞아 죽었을지도 모르는 그 남자가 확실했다. 이틀 전에 명명백백한 증거와 그 자신의 고백을 토대로 합법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바로 그 남자였다. 일분 전까지만 해도 사형 집행인이 그를 때려죽이기를 갈망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가 살인자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남자가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가 살인자일 리가 없었다. 처형장 위에 서 있는 그는 무죄였다.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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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세상에서 가장 악취가 심한 곳에서 냄새도 없이 태어난 그가, 쓰레기와 배설물, 그리고 부패 속에서 성장한 그가, 따뜻한 인간적 영혼도 없이 오로지 반항심과 역겨움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가, 작은 키에 구부정한 모습, 절름발이에 추한 얼굴로 보기만 해도 도망치고 싶어지는 그가, 외모와 마찬가지로 내면 세계 역시 괴물인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데 성공한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도대체 웬 말인가? 사랑받고, 존경받고, 신으로 찬양까지 받게 되다니! 이것은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요람에는 들어 있지 않던 것. 오로지 그 혼자만 갖지 못했던 그 성스러운 빛을 끝없는 교활함으로 스스로 획득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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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향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자신들이 진짜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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