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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May 09. 2024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

영화 <시라노>  2021년

<시라노>(1950),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영화 <시라노>(1990)는 에드몽 로스탕(Edmond Rostand) 원작 <시라노 드 벨주락>을 각색한 장 폴 라프노 감독의 프랑스 영화다. 시라노 역으로는 프랑스 국민 배우인 제라르 드빠르디유, 아름다운 록산느 역으로는 안나 브로슈가 나왔다. 당시 프랑스에서 흥행뿐 아니라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이 영화는 프랑스의 대종상에 해당하는 세자르상 10개 부문을 수상했고,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그리고 골든그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까지 거머쥔 고전적인 걸작 멜로 영화다.     

조 라이트 감독의 뮤지컬 영화. 1897년 초연된 희곡 시라노 드 벨주락을 각색한 더 내셔널의 2018년 뮤지컬 시라노를 원작으로 한다. 17세기 프랑스의 실존 인물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모티브로 한 5막 운문 희곡이다. 자유분방한 철학자이자 뛰어난 풍자 작가이며 당대 최고의 검술가였던 그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의 주인공 달타냥 의 모델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한 청년   (시라노에게) 도대체 무슨 이유로 몽플뢰리를 그렇게 미워하시죠?

시라노   (앉은 채로 친절하게) 젊은 얼간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두 가지나 있네. 첫째, 그는 날아오르게 해야 할 시구를 물지게꾼처럼 여차! 하고 힘들게 짊어지는 형편없는 배우일세! 둘째, 그건 나만의 비밀이지......

늙은 부르주아   (뒤에서) 당신은 양심 없게도 우리에게서 ‘라클로리즈’를 앗아가 버렸소! 난 그래도.....

시라노   (앉은 채 의자를 부르주아 쪽으로 돌리며 정중하게) 늙은 노새 양반. 늙은 바로의 시구들은 빵점 이하이기 때문에 중지시켜도 난 아무 후회가 없소이다!

재녀들   (칸막이 좌석에서) 하!--- 호!--- 우리의 바로를! 저런!--- 어떻게 저런 망발을?--- 아! 맙소사!

시라노   (의자를 칸막이 좌석 쪽으로 돌리며, 점잖게) 아름다운 부인들, 빛을 발하고, 활짝 피어나고, 꿈의 시중꾼이 되시오. 그 미소로 죽음을 황홀케 하시오. 우리에게 시구들을 불어넣어 주시오.... 하지만 그것들을 심판하진 마시오!

벨로즈   그래도 돈은 돌려줘야죠!

시라노   (무대를 향해 의자를 돌리며) 벨로즈, 처음으로 말다운 말을 하는군! 난 테스피스의 망토에 구멍을 내진 않아. (그가 일어나 주머니 하나를 무대 위로 던진다) 이 돈주머니 받고 입 다물어!

홀 전체   (탄성을 내지르며) 아!..... 오!

조들레   (잽싸게 돈주머니를 주워 들어 보며) 이 가격이면 매일 와서 ‘라 클로리즈’를 공연하지 못하게 해도 좋아요!

홀 전체    우!...... 우!

조들레   이렇게 야유를 받는 일이 있어도!

벨로즈    자, 다들 나가 줘요!

조들레   나가요!                 (P36-37)  

   

시라노    그런데 왜 언짢은 표정을 지으시오? 혹시 내 코가 지나치게 크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오?

화난 사람   (말을 더듬으며) 전 선생 코가 작다고, 아주 작다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다고 생각해요.

시라노   엥? 뭐라고? 내가 그렇게 우스꽝스럽게 생겼다고? 작다고, 내 코가? 이것 참!

화난 사람    맙소사!

시라노   어마어마하게 크다오, 내 코는! 천한 납작코, 멍청한 들창코, 납작 머리 양반아. 내가 이 돌기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걸 알아 두시오. 커다란 코는 그야말로 친절하고, 선하고, 정중하고, 재치 있고, 관대하고, 용맹스러운 사내의 표시니까. 내 모습 있는 그대로, 당신으로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모습 그대로, 한심스러운 천민! 왜냐하면 내 손이 당신 목깃 위에서 찾을 영광 없는 얼굴에는 전혀..... (시라노가 그의 따귀를 때린다)   

화난 사람    아야!                 (P39-40)

     

결투가 시작된다

시라노   당신은 중립을 지키고 있어야 했소. 어디를 찔러 드릴까. 멍청하신 분? 부풀린 위쪽 소매 아래, 허리? 푸른 장식 줄 아래, 심장? 불알이 딸랑거리네, 딩동! 내 칼끝이 날아다니네, 파리처럼! 결국..... 발구 끝에 내가 찌르는 것은 바로..... 당신의 뚱뚱한 배. 아쉽게도 아직 운 하나가 부족하네. 벌써 물러서나, 전분보다 더 창백해져서? 아니, 겁쟁이란 낱말을 떠올리게 하려 했군! 탁! 당신이 나에게 선물하고자 한 칼끝을 여유 있게 피하고, 내가 칼을 정조준해 날쌔게 뻗으면..... 자네 브로치 잘 잡게. 라리동! 발구가 끝나면 내가 찌를 테니. (그가 엄숙하게 예고한다) 왕자여, 주님께 용서를 빌라! 내가 발로 카르트 자세를 잡고, 교전을 펼치고, 막고, 속이는 동작을 하고..... 앞발을 쭉 뻗으며, 엇차! 여기, 이렇게.            (P47-48)     

시라노   이 순간은 모든 순간 중에 가장 축복받은 것이라, 내가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은 채 당신이 여기까지 나에게 말을 하러..... 근데 무슨 말?

록산    (가면을 벗으며) 우선 감사의 말부터. 왜냐하면 어제 당신이 그 눈부신 검술로 망신을 준 그 건달, 그 허풍쟁이, 바로 그가 나에게 반한..... 어느 대귀족이.....

시라노    드 기슈.

록산   (눈을 내리깔며) 제 남편으로..... 만들고자 했던 사람이니까요.....

시라노   허울뿐인 남편으로. (인사를 하며) 따라서 난 내 못난 코가 아니라 당신의 아름다운 눈을 위해 싸운 거로군요, 록산. 아주 잘된 일이오.

록산    그리고...... 전...... 제가 하러 온 고백을 하려면 당신을...... 예전의 오빠로 여겨야만 해요. 호수 근처에 있던 공원에서 함께 놀았던!

시라노    그래요...... 당신은 매년 여름 베르주라크로 내려왔지!

록산    당신은 갈대로 검을 만들었고.....

시라노    당신은 옥수수로 인형의 금발을 만들었지!

록산    즐겁기만 한 시절이었어요.....

시라노    신맛이 나는 산딸기가 익어 가고.....

록산    당신이 내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지 해주던 시절이었죠!

시라노    짧은 치마를 입은 록산은 마들렌이라 불렸고......

록산    그때 제가 예뻤나요?                       (P81)     

시라노    손가락을..... 집어넣을 참이었지. 왜냐하면 그 대귀족에게 내.....

크리스티앙    코를.....

시라노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손가락을 때려 줄 힘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난 속으로 외쳤지. 계속 걸어, 가스코뉴 사나이. 해야 할 일을 해! 가자, 시라노! 이렇게 다짐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는데 어둠 속에서 누가 불쑥 공격을 하는 거야......

크리스티앙    손가락으로 코를 튕기며.

시라노    공격을 피하고 보니.....

크리스티앙    바로 코앞에.....

시라노    (그를 향해 달려들며) 제기랄! (모두 구경을 하려고 우르르 몰려든다. 크리스티앙을 덮치기 직전. 그가 화를 다스리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술에 취한 백 명의 괴한이 소리를 빽빽 질러 대며 폴폴 풍기는 거야......

크리스티앙    코에 대고......

시라노    난 돌격해! 내가 두 놈의 배를 쳐 거꾸러뜨려! 한 놈을 산 채로 꼬챙이에 끼워! 누군가가 날 겨냥하고 달려들어. 퍽! 내가 반격을 가해......

크리스티앙    팍!

시라노    (폭발하며) 빌어먹을! 다들 나가!                (P105-106) 

    

시라노    필요한 건 내 머릿속에 다 있으니 자넨 외우기만 하면 되네. 영광을 누릴 절호의 기회가 왔어. 시간 낭비하지 말도록 하세. 인상 좀 펴고. 빨리, 자네 집으로 가세. 내가 말할 걸 일러 줄 테니.....

크리스티앙    싫어요!

시라노     엥?

크리스티앙    난 여기서 록산을 기다릴 겁니다.

시라노    웬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 빨리 가세......

크리스티앙    싫다고 했잖아요! 편지와 문장을 빌리는 데, 얼굴 마담 역할을 하는 데, 계속 떨고만 있는 데에 이젠 지쳤어요!..... 처음엔 좋았어요! 하지만 이젠 느껴요, 그녀가 날 사랑한다는 걸! 고마워요. 난 이제 두렵지 않아요. 내가 직접 말할 겁니다. 

시라노    이런!

크리스티앙    나라고 해서 못 할 거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나도 그렇게 멍청하진 않아요! 두고 봐요! 물론 당신의 가르침이 내게 큰 도움이 됐어요. 이젠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기필코 그녀를 영원히 내 품에 안을 수 있을 거예요! (클로미르의 집에서 다시 나오는 록산을 보고) 그녀예요! 시라노, 안 돼요, 날 두고 가지 말아요!

시라노    (그에게 인사를 하며) 혼자 잘해 보셔.                 (P125-126)     

크리스티앙    (그녀 곁에 앉으며. 잠시 침묵) 당신을 사랑하오!

록산    (눈을 감으며) 그래요, 사랑을 말해 줘요.

크리스티앙    당신을 사랑하오.

록산    그건 주제죠. 수놓아 보세요. 아름답게.

크리스티앙    당신을......

록산    수를 놓아 봐요!

크리스티앙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오.

록산    물론 그렇겠죠. 그다음은?

크리스티앙    그다음은..... 당신도 날 사랑했으면 좋겠소! 말해 주오. 록산, 당신도 날 사랑한다고!

록산    (토라진 어투로) 전 크림을 바라고 있는데, 당신은 수프를 주시는군요. 절 어떻게 사랑하는지 좀 말해 볼래요?

크리스티앙    음..... 아주 많이.

록산    오! ...... 당신 감정들을 실타래 풀 듯 풀어 놔 보세요!              (P127)  

   

시라노    (발코니 아래에서 크리스티앙에게) 좋아, 좋아. 들릴 듯 말 듯 하게.

록산    싫어요! 당신은 말을 너무 못해요. 가세요!

크리스티앙    ....... 제발!

록산     싫어요! 당신은 이제 절 사랑하지 않아요!

크리스티앙    (시라노가 일러 주는 말을 따라 하며) 날 탓하다니, 이럴 수가,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더욱 사랑하는 나에게!

록산     (창문을 닫으려다 멈추며) 이런! 훨씬 낫잖아!

크리스티앙    (똑같이) 사랑이 나날이 커가네. 그..... 잔인한 개구쟁이가..... 요람으로 여기는..... 내 불안한 영혼 속에서!

록산    (다시 발코니로 나오며) 훨씬 나아요! 그 잔인한 사랑을 요람에서 질식시키지 않은 당신이 바보예요!                      (P131)     

록산    (크리스티앙을 향해 달려오며) 자 이제, 크리스티앙!

크리스티앙    (그녀의 손을 잡으며) 이제 말해 주오, 왜 그 온갖 종류의 용병과 난폭한 군인들이 설쳐 대는 위험천만한 길들을 거쳐 여기가지 날 만나러 왔는지?

록산    당신이 보낸 편지들 때문이에요!

크리스티앙    뭐라고요?

록산    그 위험들을 무릅썼다고 꾸짖어도 할 수 없어요! 당신의 편지들은 날 취하게 만들었어요! 아! 한 달 전부터 당신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편지를 썼는지 생각해 봐요. 늘 더 아름다운 편지들을!                    (P194-195)     

크리스티앙    (시라노의 천막 앞에서 그를 부르며) 시라노?

시라노     (전투를 위해 무장을 하고 나오며) 왜 그러나? 자네 얼굴이 창백하잖아!

크리스티앙    그녀는 이제 날 사랑하지 않아요!

시라노    뭐라고?

크리스티앙    그녀가 사랑하는 건 바로 당신이에요!

시라노    아닐세!

크리스티앙    그녀는 이제 내 영혼만을 사랑해요!

시라노     아니라니까!

크리스티앙    맞아요! 그러니까 그녀가 사랑하는 건 당신이에요. 당신 역시 그녀를 사랑하고!

시라노    내가?

크리스티앙    난 알아요.

시라노    자네 말이 맞네.

크리스티앙    미친 사람처럼.

시라노    그 이상으로.

크리스티앙     그녀에게 털어놔요!

시라노    안 되네!

크리스티앙    왜죠?

시라노     내 얼굴을 보게!

크리스티앙    내가 추남이라도 사랑할 거래요!

시라노    그녀가 그렇게 말했나?

크리스티앙    그래요!                            (P198-199)  

   

시라노    내 마음은 단 한순간도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저 세상에 가서도 당신을 한없이 사랑했던 사람으로. 당신을.....

록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어떻게 그 편지를 읽을 수 있죠. 이렇게 어두운데?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시라노가 바로 곁에 있는 록산을 보고 흠칫 뒤로 물러나 고개를 숙인다. 긴 침묵, 완전히 어둠이 깔리자 록산이 두 손을 모으고 천천히 말한다. 

록산    지난 14년 동안 그가 나에게 웃음을 주러 찾아오는 오래된 친구 역할을 했군요!

시라노    록산!

록산    그건 당신이었어요.

시라노    아니오, 록산, 아니오!

록산     그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시라노    아니오! 그건 내가 아니었소!

록산    당신이었어요!

시라노     내 맹세하리다......

록산     그 모든 너그러운 속임수를 이제야 깨달았어요. 그 편지들을 쓴 건 당신이었어요....

                (P229-230)     

시라노    그녀가 날 바라보는 것 같군.....감히 내 코를 바라보다니, 이 들창코가! (칼을 치켜든다) 뭐라고? 그래 봤자 소용없다고?......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늘 이길 거라는 생각으로 싸우는 건 아냐! 아니지! 그럼! 아무 소용 없을 때가 더 아름다운 거야! 도대체 저것들은 다 뭐지? 당신들 수천 명이오? 아! 알아보겠군. 내 오래된 모든 적들! 거짓? (칼로 허공을 찌른다) 받아라, 받아! ...... 하! 하! 하! 타협들. 편견들, 비열함들! (다시 칼을 휘두른다) 나더러 타협하자고? 결코, 결코! ..... 아! 너, 거기 있었구나. 어리석음! ..... 너희들이 결국 날 죽이리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래도 상관없어. 난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울 테니까! (칼을 정신없이 휘두르다 헐떡이며 멈춘다) 그래, 너희들이 내게서 앗아 가는구나, 월계관과 장미를! 앗아 가라! 너희들이 아무리 그래도 나에겐 가져갈 뭔가가 있으니. 오늘밤, 내가 주님의 집으로 들어갈 때, 나는 그 푸른 문턱을 넘어 구원을 얻을 것이다. 너희들이 아무리 그래도 내가 주름 하나. 얼룩 한 점 없이 가져가는 그것은...... (칼을 높이 들고 달려 나간다) 그것은...... (칼이 그의 손에서 떨어진다, 비틀거리다 르 브레와 라그노의 품에 쓰러진다)

록산    (몸을 숙여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 그것은?

시라노    (눈을 다시 뜨고는 그녀를 알아보고 웃으며 말한다) 나의 장식 깃털.           (P237-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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