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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May 08. 2024

존 그리샴의 <가스실>

영화 <챔버The Chamber>  1996년

스티븐 킹의 <그린 마일>,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폭탄테러범이 주인공인 소설 존 그리샴의 <가스실>은 사형집행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영화 <챔버>는 제임스 폴리 감독에 진 해크먼, 크리스 오도넬 주연했다.     

급진파 유대인 변호사의 사무실을 폭파하자는 결정은 비교적 쉽게 내려졌다. 이 일에는 딱 세사람이 관련되어 있었다. 한 사람은 자금을 대는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그 지역을 알고 있는 지역 작전 담당자였다. 나머지 한 사람은 폭발물을 능숙하게 다룰 줄 할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데 놀라운 솜씨가 있는 열광적인 젊은 애국자였다. 이 젊은 애국자는 폭파 사건을 일으킨 뒤에 미국을 빠져나가 6년 동안 북부 아일랜드에 숨어 살았다.             (P5)     

폭탄은 초속 몇천 킬로미터 속도로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목조 건물 중앙에 설치된 다이너마이트 열다섯 개는 불과 몇 초 만에 건물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갈기갈기 부서진 나뭇조각을 비롯한 다른 파편들이 다시 땅으로 떨어지기까지는 일 분도 안 걸렸다. 땅은 작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증인들은 나중에 그린빌 시내에 유리 조각들이 끝도 없이 뿌려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시 크레이머와 존 크레이머는 폭파의 진원지에서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두 아이는 자기들이 무엇에 얻어맞았는지도 몰랐다. 고통도 없었다. 소방대원들이 2미터 높이의 잡석 더미에 깔린 두 아이의 시체를 찾아냈다. 크레이머는 3층 천장으로 퉁겨 올랐다가 곧 의식을 잃었고, 지붕의 파편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는 건물 중앙의 분화구 속으로 떨어졌다. 크레이머는 이십 분 뒤에 발견되어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건이 일어난 지 세 시간도 안 되어 다리를 모두 절단해야 했다.              (P18)   

  

폭파 사건이 있은 지 이틀 뒤, 클로비스 브래즐턴이라는 수상한 고수머리 변호사가 그린빌에 나타났다. 브래즐턴은 클랜의 비밀 단원으로, 잭슨 근방에서 온갖 종류의 암살단원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로 악명이 높았다. 브래즐턴은 주지사에 출마하려는 야망을 품고 백인종은 보존해야 하고, FBI는 사탄이며, 흑인들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백인과 섞여서는 안 된다는 등의 강령을 선포하고 다녔다. 브래즐턴은 샘 케이홀을 변호하고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샘의 입을 확실히 봉해 두려고 도건이 보낸 변호사였다. 초록색 폰티액 때문에 FBI가 도건을 감시하고 있었다. 도건은 공모자로 기소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P29)   

  

1981년 2월 12일, 샘 케이홀은 살인 두 소인, 살인 미수 한 소인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틀 뒤, 배심원은 사형 평결을 들고 같은 법정에 나타났다. 

샘 케이홀은 파치먼에 있는 교도소로 이감되어 가스실로 들어갈 날짜를 기다리게 되었다. 1981년 2월 19일, 샘 케이홀은 사형수 감옥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40-41)   

  

굿맨은 그 말에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입씨름은 금방 끝났다. 굿맨은 다시 서류철을 펼쳤다.

“와이코프가 아주 강력한 추천장을 보냈군. 그 친구답지 않은 짓이야.”

애덤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분은 재능을 알아보거든요.”

“나는 이게 좀 의미 있는 요청이라고 생각하네, 애덤. 자네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정확히 뭔가?”

애덤은 웃음을 거두고 헛기침을 했다. 갑자기 초조해져서 다시 다리를 꼬았다.

“그건, 사형 선고 사건입니다.”

“네.”

“왜?”

“전 사형에 반대합니다.”                  (P49)   

  

“1년일세. 하지만 20년 같은 세월이었지. 샘 케이홀은 별로 유쾌하게 다룰 만한 사람이 못 돼.”

“이해할 만한 일 아닙니까? 10년 가까이 독방에 있었으니까요.”

“감옥살이에 대해 나한테 강의할 생각 말게. 애덤. 감옥 내부를 본 적이 있나?”“아뇨.”

“나는 있네. 나는 여섯 주의 사형수 감옥을 가보았어. 나는 샘 케이홀이 의자에 사슬로 묶여 있을 때에 그 친구한테 욕을 얻어먹기도 한 장본인이네. 그 친구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야. 그 친구는 거의 모든 사람을 미워하는 인종 차별주의자야. 자네가 그 친구를 만나게 되면 그 친구는 자네도 미워할걸세.”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네는 변호사일세. 애덤. 샘 케이홀은 흑인이나 유대인보다 변호사들을 더 미워해. 샘은 거의 10년째 죽음과 마주해 왔고, 자신이 변호사들의 음모에 희생되었다고 믿고 있어. 젠장. 그 친구는 2년 전부터 우리를 해고하려고 애썼네. 이 회사에서는 샘을 살리려고 지불 청구 가능 시간으로 따져서 200만 달러나 되는 돈을 썼네. 그런데도 샘은 우리를 해고하는 일에만 더 큰 관심을 가졌단 말일세. 우리가 파치먼까지 찾아갔는데도 우리를 만나지 않겠다고 한 게 몇 번인지 헤아릴 수도 없네. 샘은 미쳤네. 애덤. 다른 프로젝트를 찾아보게. 학대 아동이나 그런 게 어떻게나?”

“사양하겠습니다. 제 관심은 사형 선고 사건입니다. 그리고 전 샘 케이홀의 전력에 강박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P51-52)    

 

애덤은 블라인드의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미시간 호수 위에는 돛단배 한 척이 떠 있었다. 애덤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샘 케이홀의 친척입니다.”

굿맨은 놀라지 않았다. 

“알겠네, 어떤 친척인데?”

“샘 케이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에디 케이홀이죠. 에디 케이홀은 아버지가 폭파 사건으로 체포되자 창피해서 미시시피 주를 떠나 캘리포니아 주로 달아나, 이름을 바꾸고 과거를 잊으려 했죠. 그러나 자기 아버지가 저지른 죄 때문에 괴로워했습니다. 에디 케이홀은 1981년 아버지가 유죄 선고를 받은 직후에 자살했습니다.”

굿맨은 의자 가장자리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 있었다. 

“에디 케이홀은 제 아버지입니다.”

굿맨은 잠깐 머뭇거렸다.

“샘 케이홀이 자네 조부라?”

“예, 전 열일곱 살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에 고모가 그 이야기를 해주셨죠.”                     (P53-54)     

“그럼 샘의 공범은 누구였습니까?” 

“우리는 절대로 알아낼 수 없을 걸세. 애덤. 샘은 재판을 세 차례나 받았지만, 한 번도 공범에 대해 증언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잊지 말게. 샘은 사실 경찰에 아무 얘기도 안 했어. 자신을 변호해 주는 변호사들에게도 거의 털어놓지 않았지. 배심원 앞에서 한마디도 안 했네. 그리고 지난 7년 동안에도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을 말해 준 게 없네.”

“샘이 혼자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냐, 도움을 받았어. 샘은 어두운 비밀을 지니고 있네, 애덤. 절대로 털어놓지 않을 거야. 샘은 클랜 단원으로서 맹세를 했네. 그리고 신성한 맹세는 절대로 깰 수 없는 거라는, 비비꼬이고 로맨틱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 샘의 아버지 역시 클랜 단원이었네. 자네도 아나?”

“네, 압니다. 굳이 일깨워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P80-81)     


“너도 샘한테 사형수 감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불쌍한 노인네라는 로맨틱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부당하게 십자가를 져야 하는 사람이라든가 하는 이미지 말이야.”

“저는 샘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샘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인 건 틀림없어. 크레이머 쌍둥이, 그 아이들 아버지, 네 아버지, 또 더 있는지 누가 알겠니? 샘은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마땅해.”

“샘에 대해 동정심이 전혀 안 생기나요?”

“이따금은 생기지.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고 해가 환하게 빛나고 있으면, 아버지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또 내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일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즐거웠던 순간들은 아주 드물었단다. 애덤. 아버지는 내 인생과 당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너무 많은 불행을 안겨주었어. 아버지는 우리더러 모두를 증오하라고 가르쳤지.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비열하게 굴었어. 아버지의 염병할 가족 전부가 비열해.”

“그럼 샘을 그냥 죽이도록 하죠 뭐.”

“그러자고 하진 않았다. 애덤, 너는 비겁하게 구는구나. 나는 늘 아버지 생각을 해. 그리고 매일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지. 나는 아버지가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런 끔찍한 사람이 되었느냐고 이 벽에 대고 골백번도 더 물어보았어. 왜 아버지는 입에 파이프를 물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포치(지붕이 딸린 현관)에 나와 앉아 있는 멋진 노인이 될 수 없는가? 소화를 돕기 위해 버번이라도 한잔 들고 말이야? 왜 아버지는 무고한 아이들을 죽이고, 당신 자신의 가족을 파멸시킨 클랜 단원이 되어야 했는가?”

“어쩌면 샘은 그 아이들을 죽일 의도가 없었는지도 몰라요.”             (P106-107)  

   

애덤은 멀리 있는 불빛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모르겠어요. 루스 크레이머가 아직도 상처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상처를 잊지 못해? 그 여자는 자기 가족을 모두 잃었어. 그리고 재혼도 하지 않았어. 너는 그 여자가, 내 아버지가 자기 아이들을 죽일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없었는지 관심이나 가질 것 같니? 물론 안 갖지. 그 여자는 그냥 자기 자식들이 죽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야. 애덤. 23년 동안 자기한테는 죽은 아들이 둘 있다는 사실만 알고 산 거야. 그 여자는 내 아버지가 설치한 폭발물로 자기 자식들이 살해되었다고 알고 있어. 만일 그날 내 아버지가 멍청한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워 돌아다니지 않고 우리와 함께 있었다면, 어린 조시와 존은 죽지 않았을 거야. 그랬다면 그 아이들은 지금 스물여덟 살이 되었겠지. 아마 교육을 잘 받아 결혼도 했을 테고, 루스와 마빈 크레이머가 놀아줄 손자도 한둘 생겼겠지. 루스는 그 폭발물이 누구를 겨냥했는가에는 관심이 없어. 애덤, 다만 폭발물이 거기 설치되어 폭파됐다는 데만 관심을 가질 뿐이야. 자기 자식들이 죽었어. 다만 그게 중요할 뿐이야.”

리는 뒷걸음질을 쳐 흔들의자에 앉아서 다시 얼음을 흔들더니 술을 마셨다. 

“내 말을 오해하지 마라, 애덤. 나는 사형에는 반대해. 나는 아마 이 나라의 쉰 살 먹은 백인 여자들 가운데 자기 아버지가 사형수 감옥에 있는 유일한 여자일지도 몰라. 사형은 야만적이고, 부도덕하며, 차별적이고, 잔인하며, 미개한 처벌이야. 나는 이 말 하나하나에 서명이라도 할 수 있어. 하지만 피해자들을 잊으면 안 돼, 알았니? 피해자들은 보복을 원할 권리가 있어. 그리고 이제 보복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루스 크레이머가 보복을 원하나요?”                       (P109)     


이렇게 해서 애덤은 23년 만에 마침내 자신이 태어난 주로 돌아가게 되었다. 특별히 반가운 느낌은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두려워할 일도 없었지만, 애덤은 앞 차를 추월하지 않고 시속 90킬로미터로 조심스럽게 치를 몰아갔다. 길은 좁아지면서 미시시피 델타의 평평한 평원으로 내려앉았다. 애덤의 오른쪽으로 밭두렁이 1.6킬로미터쯤 꾸불꾸불 이어지다가 사라졌다. 월스라는 작은 마을을 지났다. 크기야 어쨌든 그게 61번 간선도로를 따라가다가 만난 첫 마을이었다. 애덤은 남쪽으로 가는 차량들을 뒤쫓았다. 

애덤은 상당히 많은 조사 끝에, 이 간선도로가 수십 년 동안 일자리와 좋은 집을 찾아서 북쪽의 멤피스와 세인트루이스, 그리고 시카고와 디트로이트로 줄지어 떠난 가난한 델타 흑인들의 주된 통로로 이용되어 왔음을 알게 되었다. 블루스 음악은 바로 이 61번 간선도로 양 옆에 늘어서 있는 마을과 농가들, 곧 쓰러질 것 같은 이 일자 집(모든 방이 일자로 연결된 집)들과 먼지 낀 시골 가게와 다채로운 색깔의 싸구려 술집에서 태어나 북쪽으로 퍼져갔다. 블루스 음악은 멤피스에 둥지를 틀고, 그곳에서 가스펠과 컨트리 음악과 섞였다. 그리고 이것이 다 합해져서 로큰롤이 태어났다. 애덤은 전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악명 높은 튜너커 카운티로 들어서면서 머디 워터스의 오래된 테이프를 들었다.              (P112-113)   

  

“그럼 시간 제한이 없단 말입니까?”         

“없소, 원한다면 하루 종일 있어도 좋소. 마지막 며칠은 우리도 사형수를 좀 편하게 해주려고 애쓰고 있소. 당신은 보안상의 위험만 없다면 원하는 대로 드나들어도 좋소. 나는 다른 다섯 주의 사형수 감옥에도 가보았소. 내 장담하는데, 우리가 대우는 최고요. 젠장,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죽이기 전에 그 불쌍한 사람을 감방에서 끌어내어 소위 ‘죽음의 집’이라는 곳에 사흘 동안 가둬두오. 잔인하기 짝이 없지.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소. 그 중요한 날까지 샘은 특별한 대우를 받을 거요.”

“중요한 날이요?”

“그렇소. 오늘부터 4주 남았소. 8월 8일.”

루커스 만은 책상 모퉁이에 있는 서류로 손을 뻗어서 그걸 애덤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오늘 아침에 이게 내려왔소. 제5순회재판구에서 어제 오후에 유예를 철회했소. 미시시피 최고 법원에서 새 처형 날짜를 8월 8일로 정했소.”

애덤은 서류를 보지 않은 채 치켜들기만 했다. 

“4주라.......”                    (P124-125)   

  

샘은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천장을 향해 연기를 내뿜었다. 

“나는 당신네 사람들하고는 끝장을 본 줄 알았는데.”

“회사에서 저를 이리로 파견한 게 아닙니다. 제가 자원했습니다.”

“왜?”

“모르겠습니다. 샘 케이홀 씨한테는 변호사가 필요하고, 그리고.....”

“왜 그렇게 초조해하지?”

애덤은 입에 물고 있던 손가락을 얼른 빼내고, 발을 떨던 것을 멈추었다. 

“저는 초조하지 않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는 이곳에서 수많은 변호사들을 보았어. 하지만 당신처럼 초조해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지. 무슨 일인가, 꼬마? 내가 이 칸막이를 뚫고 나가 널 해코지할까봐 겁나는 거야?”

애덤은 웃음을 지으려고 애를 쓰면서도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마세요. 저는 초조하지 않아요.”

“몇 살이나 되었지?”

“스물여섯입니다.”

“스물둘 정도로 보이는군. 대학은 언제 졸업했나?”

“작년에요.”

“대단하군. 유대인 놈들이 나를 구하기 위해 새파란 햇병아리를 보내다니. 나는 오랫동안 그놈들이 은근히 내가 죽기를 바란다고 생각해왔는데. 이제 그게 증명되었군. 내가 유대인을 몇 죽였으니 이제 그놈들도 날 죽이고 싶어해. 내 생각은 이제까지 틀린 적이 없지.”        (P139-140) 

    

"'베어풋‘에 대해 말해 보게.“

“뭘 하자는 겁니까? 예고 없는 시험입니까?”

“뭐든 내가 원하는 대로야. ‘베어풋’은 어디 사건인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원래 이름은 ‘베어풋 대 에스텔’이죠. 1983년에 있었던 이정표가 되는 판결로, 최고 법원에서는 사형수 감옥 재소자들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항소 청구권을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쓰려고 유보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충 그런 내용이죠.”

“이런, 이런, 읽긴 읽었군. 그런데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나? 어떻게 똑같은 법원에서 제멋대로 마음을 바꿀 수 있는지 말이야. 생각해 봐. 200년 동안 미합중국 최고 법원에서는 법적으로 사형을 허용했어. 그게 합헌적이고, 연방 헌법 수정 제 8조로 멋지게 뒷받침된다고 하면서 말이야. 그러더니 1972년에는 전혀 변한 게 없는 똑같은 헌법을 놓고도 사형이 불법이라고 판결했어. 그랬는데 1976년에는 사실상 사형은 합헌적이라고 판결했어. 워싱턴의 똑같은 건물에서 똑같은 검은 가운을 입고 있는 똑같은 바보들이 말이야. 이제 미합중국 최고 법원은 또 같은 헌법을 가지고 다시 판결을 바꾸고 있어. 레이건 아이들(레이건이 대통령이었던 시절에 임명된 판사들)은 너무 많은 항소문을 읽는 데에 싫증이 나서, 어떤 통로들은 막아버리겠다고 선언했어. 그게 나한테는 이상한 일로 보여.”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한 일로 보이죠.”                    (P143-144)     

샘은 마침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시더니, 휘파람 소리를 내며 입술을 조그맣게 벌려 연기를 뿜어냈다. 그러고는 팔꿈치를 카운터에 대고 약간 몸을 앞으로 기울여 칸막이의 구멍을 통해 애덤을 살폈다. 

“캘리포니아 주 어디 출신인가?”

“남부 LA입니다.”

애덤은 그 꿰뚫는 듯한 눈을 흘끗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가족은 아직도 거기 살고 있나?”

심한 통증이 애덤의 가슴을 찔렀다. 잠시 심장이 얼어붙었다. 샘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눈은 전혀 깜빡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애덤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약간 몸을 낮추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샘은 의자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마침내 샘이 입을 열었다. 

“그럼 어머니는?”

“포클랜드에 살고 계시죠. 재혼했습니다.”

“누이동생은 어디 있나?”

애덤은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며 우물거리는 소리로 대답했다. 

“대학에 다닙니다.”

샘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애 이름이 카멘이지, 맞지?”

애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악물고 물었다.

“어떻게 알았죠?”

샘은 칸막이에서 몸을 뒤로 빼더니, 철제 접이 의자에 몸을 파묻고는 애덤을 외면하고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떨구었다. 

“여긴 왜 왔니?”

샘의 목소리는 더 단호해지고 더 강해져 있었다.

“어떻게 절 아셨죠?”

“목소리, 네 애비 목소리와 같더구나. 왜 여기 온 거냐?”

“에디가 보냈습니다.”

두 사람의 눈이 잠깐 마주쳤다. 샘은 고개를 돌리고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두 팔꿈치를 두 무릎에 기댔다. 그리고 시선을 바닥에 고정시킨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샘은 오른손으로 눈을 가렸다.                  (P149-150)   

  

교도소 소장은 사형을 싫어했다. 그러나 사회에서 사형을 갈망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고, 사형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빈약한 근거들을 오래 전부터 암기하고 있었다. 사형은 범죄를 억제한다. 사형은 살인자들을 제거한다. 사형은 궁극적인 처벌이다. 사형은 성서에 입각한 것이다. 사형은 복수에 대한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사형은 피해자 가족의 괴로움을 덜어준다. 나이페는 꼭 필요한 경우라면, 어떤 검사 못지않게 설득력 있게 이런 주장들을 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한두 가지는 믿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사형수를 죽이는 짐은 나이페에게 지워졌다. 나이페는 자기 직업의 이 끔찍한 측면을 경멸했다. 사형수를 감방에서 데리고 나와, 마지막 몇 시간 동안 괴로움을 주는 고립실(孤立室)로 데려다주는 이가 바로 필립 나이페였다. 사형수를 고립실 옆방인 가스실로 데려가 다리, 팔, 머리에 띠가 잘 묶였는지 확인하는 사람도 바로 필립 나이페였다.             (P151-152)  

   

사형수 빵의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동지애가 싹텄다. 반은 백인이고 반은 흑인이었는데, 모두들 잔인한 살인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과거의 행위와 전과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었고, 피부색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바깥의 일반 교도소에서는 대체로 인종을 기준으로 재소자들을 효율적으로 분류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사형수 빵에서는 자신이 구금 상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판단했다. 이들은 좋건 싫건, 모두가 세상의 좁은 모퉁이에 함께 갇혀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사회 부적격자, 부랑자, 철저한 암살자, 냉혈의 살인자 같은 사회의 찌꺼기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작은 우애 클럽이라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선 한 사람의 죽음은 곧 모두의 죽음을 의미했다. 샘의 새로운 사형 선고 소식은 철창을 넘어 속삭이는 목소리로 A동 전체에 전달되었다. 어제 정오에 그 소식이 전해지자 사형수 빵은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모든 재소자들이 갑자기 변호사를 만나고 싶어했다. 모든 법적인 문제에 대해 새로운 관심이 일었다. 패커는 그들 가운데 몇몇이 텔레비전을 끄고 라디오 소리를 낮추고 자신의 법률 서류들을 살피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P198-199)     

사형수 빵에는 두 종류의 살인자들이 있었다. 패커는 오랜 세월을 연구한 끝에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시 살인을 할 냉혈의 살인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실수로 살인을 했지만 다시 남의 피를 보는 것은 꿈도 못 꿀 사람들이 있었다. 첫째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빨리 가스를 먹여야 했다. 그러나 둘째 부류에 속한 사람들을 보면 패커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들을 처형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설사 그들이 석방된다 하더라도 사회는 아무런 괴로움을 겪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그 사람이 살인자라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터였다. 샘은 확실히 둘째 부류에 속한 사람이었다. 샘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 거기서 곧 외롭게 죽음을 맞이할 사람이었다.                   (P201)    

 

“또 어리석은 질문이로구나.”

“왜요?”

“그건 관련 없는 사항이지요, 변호사님. 너는 변호사지 정신과 의사가 아니야.”

“저는 할아버지 손자예요. 따라서 할아버지 과거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어요.”

“물어봐라. 하지만 아마 대답을 듣지는 못할 거다.”

“왜요?”“얘야. 과거는 사라진 거다. 이미 지나간 거야. 이미 한 일을 고칠 수는 없어. 또 그걸 다 설명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저는 과거가 없는데요.”

“그럼 너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야.”

“그렇게 자신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얘야. 만일 내가 네 빈 부분을 채워줄 것을 기대했다면, 안됐지만 너는 사람을 잘못 찾아온 것 같구나.”

“좋아요. 그렇담 누구한테 들어야 하죠?”

“모르겠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저한테는 중요할지도 몰라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 당장은 네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아. 믿거나 말거나, 나는 내 걱정을 훨씬 더 많이 해. 나와 내 미래, 나와 내 모가지. 어딘가에서 큰 시계가 째깍거리고 있어. 좀 큰소리로 째깍이고 있지. 안 그러냐? 어떤 이상한 이유 때문에, 왜냐고 묻지는 마라. 나는 그 염병할 시계가 째깍이는 소리를 듣고 있고, 그것 때문에 정말 불안해. 그래서 남들 문제를 걱정하기가 정말 힘들구나.”

“왜 클랜 단원이 되셨어요?”

“아버지가 클랜에 있었기 때문이지.”                   (P219)   

  

“폭탄은 새벽 4시에, 핀더 가족이 모두 깊이 잠들어 있을 때에 터졌어요. 여섯 명이었죠. 기적적으로 경상자 한 명만 나왔어요.” 

“그건 기적이 아니었어. 폭탄은 차고에 설치되었어. 만일 내가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면, 폭탄을 침실 창문에 설치했을 거다.”

“집의 반이 무너졌어요.”

“그랬지. 하지만 나는 시계를 이용해서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그 베이글인지 뭔지를 먹고 있을 때에 모조리 날려버릴 수도 있었어.”

“왜 안 그랬죠?”

“말했다시피, 우리는 사람을 죽이려 하지 않았어.”

“그럼 뭘 하려고 했어요?”

“겁을 주려고 했지. 복수를 하고. 염병할 유대인 놈들이 시민권 운동에 자금을 대는 걸 막으려고 했어. 아프리카계 놈들을 그놈들이 속한 자리에, 그놈들의 학교와 교회, 동네와 화장실에 그대로 두려고 했지. 우리 여자와 아이들한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마빈 크레이머 같은 유대인들은 인종 혼합 사회를 촉진하고 아프리카계들을 부추기고 있었어. 그놈이 날뛰지 못하게 막을 필요가 있었어.”                     (P230)     


“깊게 숨을 쉬세요. 샘, 괜찮아요.”

가스실에서 죽을 선고를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깊게 숨을 쉬라’는 말이 종종 쓰였다. 그러나 이 말은 농담으로 하는 말 이상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재소자들은 보통 어떤 사람이 화가 났을 때는 늘 이 말을 해주곤 했다. 그러나 교도관들이 이 말을 할 때는 전혀 웃기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헌법 위배였다. 그 말은 소송에서, 사형수 감옥에서 이루어진 잔인한 처우의 예로 거듭해서 거론되었다. 

샘은 그 벌레와 뜻을 같이하여, 먹다 버린 아침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샘은 커피를 마시면서 바닥을 노려보고 있었다.                 (P294)     

“맞아요. 그래서 멋진 이론을 하나 만들어냈어요. 새로운 주장인데, 이걸 월요일에 제기하려고 해요. 이론은 간단해요. 미시시피 주는 아직도 가스실을 쓰는 다섯 개밖에 안 되는 주 가운데 하나예요, 맞죠?” 

“맞다.”

“그리고 1984년에 미시시피 입법부는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극약 주사나 가스실 가운데 어느 한쪽을 택할 수 있다는 법을 통과시켰어요. 하지만 새 법은 1984년 7월 1일 이후에 선고를 받은 사람들에게만 적용이 돼요. 샘한테는 적용이 안 돼요.”

“맞아. 아마 사형수 빵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반한테는 선택권이 있을 거야. 하지만 오래 뒤의 일이 되겠지.”

“입법부에서 극약 주사를 승인한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구형을 좀더 인간적으로 하자는 거였어요. 그 법 배후의 입법 역사를 연구해 보니, 주 당국에서 가스실 처형을 하면서 생긴 문제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더군요. 이론은 간단해요. 처형을 빠르고 고통 없이 하라. 그러면 사형 집행이 잔인하다는 문제를 놓고 하는 헌법적인 문제 제기가 줄어들 것이다. 극약 주사는 법적인 문제를 줄여주고, 따라서 사형 집행도 쉬워진다. 따라서 우리의 이론은, 주 당국에서 극약 주사를 채택한 이상 실제로 가스실은 낡은 방법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왜 낡았느냐? 그게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방법이기 때문이죠.”                 (P302-303)   

  

“나는 23년 동안 샘이 처형되기를 기다렸소. 그 순간이 일 분이라도 빨리 오기를 기다릴 뿐이오.”

이어 엘리엇은 배심원이 사형을 선고한 뒤에도 살인범을 거의 10년이나 살려주는 사법 체제를 비난했다. 

“내가 처형의 증인이 될지는 확실치 않소. 그건 내 의사가 판단할 일이오. 하지만 증인이 되고는 싶소. 거기 가서, 샘 케이홀이 의자에 묶일 때 그 눈을 보고 싶소.”

루스 크레이머는 약간 온건했다. 

“시간이 대개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죠. 지금은 샘이 처형되고 나면 어떤 느낌일지 잘 모르겠어요. 그 어떤 것으로도 내 아들들을 돌려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 밖에는 별말이 없었다. 

애덤은 신문을 접어 탁자 옆에 놓았다.                    (P353)  

   

베이커 쿨리를 비롯한 멤피스 지사의 다른 변호사들이 애덤이 갑작스럽게 해고 결정을 받은 일과 그 결정이 신속하게 번복된 일을 알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그들은 평소와 똑같이, 자기들끼리만 모여 다니고 애덤의 사무실로부터는 거리를 두는 태도로 애덤을 대했다. 그렇다고 애덤에게 무례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애덤은 시카고에서 파견 나온 사람이었으니까. 그들은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어 보였고, 애덤이 말을 붙이면 복도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법인 변호사들이었다. 풀 먹인 셔츠에 부드러운 손을 가진, 형사 변호의 먼지와 때에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의뢰인을 방문하러 구치소나 감옥이나 유치장에 가본 적도 없고, 경찰이나 검사, 그리고 괴팍한 판사와 언쟁을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주로 책상이나 마호가니 회의탁자에 앉아서 일했다. 그들은 자문의 대가로 한 시간에 몇백 달러를 지불할 여유가 있는 의뢰인들과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의뢰인과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는 전화를 하거나, 다른 변호사나 은행가나 보험회사 임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신문에는 이미 지사 사람들을 분개하게 할 만한 기사들이 나오고 있었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자기 회사의 이름이 샘 케이홀 같은 인물과 연관되어 거론되고 있다는 데에 창피함을 느꼈다. 그들 대부분은 시카고 본사에서 7년째 샘 케이홀을 대리해 왔음을 모르고 있었다. 이제 그들의 친구들도 질문을 해대고 있었다. 다른 변호사들도 농담을 던지고 있었다. 부인들은 가든 클럽 다과회에서 창피를 당했다. 인척들도 갑자기 그들의 변호사 경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샘 케이홀과 그의 손자는 멤피스 지사에서 금세 성가신 존재가 되었지만, 멤피스 지사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P416-417)     

애덤이 말을 이었다. 

“저는 저 자신과 샘의 딸을 대신해서, 적어도 우리가 그 모든 일에 대해 정말 미안해한다는 말씀은 드려야 할 의무감을 느낍니다.”

“왜 샘이 오래전에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오?”

“그건 제가 대답할 수 없습니다.”

“알고 있소. 당신은 새로 왔지.”

‘아, 언론의 힘이란.’

물론 엘리엇 크레이머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신문을 읽고 있었다.

“네, 선생님. 저는 샘의 목숨을 구하려 하고 있습니다.”

“왜?”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샘을 죽인다고 해서 선생님의 손자들이나 아들이 돌아오는 건 아닙니다. 샘은 잘못했지만, 정부에서 샘을 죽이는 것도 잘못하는 일입니다.”

“알겠소. 그런데 내가 그런 말을 지금 처음 들어보는 거라고 생각하오?”

“아닙니다. 선생님. 틀림없이 다 아시는 얘기일 겁니다. 또 다 보셨을 겁니다. 다 느끼셨을 겁니다. 저는 선생님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저 저 자신이 그런 고통을 당하는 걸 피하려고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달리 또 뭘 원하시오?”

“오 분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삼 분 동안 이야기했소. 이제 이 분 남았소.”              (P491-492)

     

“어디 있었어?”      

“사방에, 내 이름은 사실 웨지가 아니야, 샘. 그러니 딴 생각하지 마. 한 번도 웨지였던 적이 없어. 심지어 도건도 내 진짜 이름을 몰라. 나는 1966년에 징집되었지. 하지만 베트남에 가기가 싫었어. 그래서 캐나다로 갔다가 돌아와서 지하로 들어갔지. 그리고 계속해서 지하에 있었어. 나는 존재하지 않아, 샘.”

“네가 여기 앉아 있어야 하는 건데.”

“아냐, 그건 틀린 말이야. 나는 거기 앉아 있으면 안 돼. 그리고 당신도 마찬가지야. 그린빌로 돌아가다니 어리석었어. FBI는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했어. 절대로 우리를 잡을 수 없었을 거야. 나는 아주 똑똑했어. 도건도 아주 똑똑했어. 하지만 공교롭게도 당신이 약한 고리였어. 그게 마지막 폭파였을 텐데. 시체 같은 것들도 다 끝이었을 텐데. 그만둘 때였거든. 나는 이 나라에서 도망쳐서, 절대로 이 비참한 곳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텐데. 당신은 집으로 가서 닭과 암소를 돌보았을 텐데. 도건이 뭘 했을지야 아무도 모르지만, 하지만 당신이 거기 앉아 있는 건. 샘, 당신이 멍청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오늘 여기에 온 너도 멍청이지.”

“그렇지 않아. 당신이 소리를 질러대도 아무도 당신 말을 믿지 않을 거야. 젠장, 어쨌든 모두들 당신이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지금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고 싶어. 나는 혼란을 원치 않아. 그냥 다가오는 일을 받아들여, 샘. 조용하게 말이야.”

샘은 신중하게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바닥의 재를 발로 쿵 밟았다. 

“가, 웨지.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

“물론이지. 이런 말하긴 싫지만, 샘. 나는 당신이 가스를 마셨으면 좋겠어.”

샘은 일어서서 뒤의 문으로 걸어갔다. 교도관 하나가 문을 열고, 셈을 데려갔다.         (P551-552)  

   

샘은 마침내 발을 멈추고 서류 캐비닛에 몸을 기댔다.

“부탁 하나 들어주련?”

샘은 방 맞은편 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목소리가 한층 낮아져 있었다. 숨도 천천히 쉬었다. 

“말씀하세요.”

샘은 의자로 한 발짝 다가가 봉투를 하나 집어들어 애덤에게 건네주고, 서류 캐비닛에 기댄 자세로 돌아갔다. 봉투 앞면이 밑으로 가 있어서 수취인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걸 전해주었으면 좋겠구나.”

“누구한테요?”

“퀸스 링컨.”

애덤은 봉투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샘을 찬찬히 살폈다. 샘은 다른 세상에 빠져 들어가 있었다. 샘의 주름진 눈은 방 건너편 벽의 뭔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1주일 동안 쓴 거다. 하지만 생각은 40년 동안 했어.”

샘은 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내용인데요?”

애덤이 느릿느릿 물었다. 

“사과. 나는 오랫동안 죄책감을 지니고 살았어. 애덤, 조 링컨은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었어. 좋은 아버지였지. 나는 이성을 잃고, 아무런 이유 없이 그를 죽였어. 그리고 그를 쏘기 전에, 그를 쏘고도 벌을 받지 않으리란 걸 알았어. 나는 늘 그 점이 마음이 걸렸어. 정말 걸렸어.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밖에 없구나.”

“그게 링컨 사람들한테는 틀림없이 의미가 있을 거예요.”

“어쩌면. 그 편지에다 링컨 가족에게 용서를 빈다고 썼다. 그게 일을 풀어가는 기독교적인 방법이지. 내가 죽을 때, 나는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면서 죽고 싶구나.”         (P643-644)  

   

샘은 다시 의자로 다가와, 이번에는 봉투 두 개를 집어들었다. 샘은 그것을 애덤에게 건네주고, 천천히 방 안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봉투 하나에는 주소 없이 루스 크레이머의 이름만 적혀 있었다. 또 하나의 봉투에는 엘리엇 크레이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건 크레이머 가족한테 쓴 거야. 그들에게 전해라. 하지만 처형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해.”

“왜 기다리죠?”

“내 동기가 순수하기 때문이야. 내가 죽음을 앞두고 동정을 얻으려고 이렇게 했다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애덤은 크레이머 가족한테 보내는 편지들을 퀸스 링컨의 편지 옆에 놓았다. 

‘세 통의 편지. 그리고 시체 세 구. 샘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편지들을 써댈까? 희생자들이 얼마나 더 있을까?’

“곧 죽을 거라고 믿는군요, 샘?”

샘은 문간에서 발을 멈추고 그 말을 잠시 생각했다. 

“승산은 적어. 나는 준비를 해야 돼.”

“아직도 기회는 있어요.”

“물론 그렇지. 하지만 나는 만에 하나를 대비해 준비해야 돼.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어, 애덤. 늘 그 생각만 한 건 아니지만. 지옥의 사자와 만날 날이 정해지면 다른 사람들에게 입힌 피해를 생각하게 되는 거란다.”

애덤은 봉투를 집어들고 그것을 살폈다. 

“또 있나요?” 

샘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숙였다. 

“그게 다다. 지금은.”                  (P644-645)     

'얼마나 많은 것을 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샘의 주변 사람들, 샘의 아버지, 가족, 친구와 이웃들은 아마 모두 가난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정직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 사진은 단지 이들의 사회에서는 일반화된 잔인한 의식이 끝나는 순간 카메라로 포착한 것에 불과했다. 샘에게는 기회가 없었다. 이게 샘이 아는 유일한 세계였으니까.

‘과연 어떻게 과거를 현재와 화해시킬까? 운명의 변덕 때문에 40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나도 이들 한가운데에 있었을 터인데. 내가 이 사람들과 이들의 끔찍한 행동을 어떻게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애덤은 사진 속의 얼굴들을 보면서 묘한 위로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샘은 분명 자기 의사에 따라 이 일에 참여했지만, 그는 오직 이 폭도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오직 죄의 일부만 짊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나이 든 축에 속하는, 엄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린치를 선동했고 나머지는 그저 들러리로 따라나섰음이 분명했다. 사진을 보니, 샘과 샘의 젊은 친구들이 이 야만적인 행동을 시작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물론 샘은 그것을 멈추기 위해 어떤 짓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을 부추기는 짓 또한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사진은 수많은 대답 없는 질문들을 불러일으켰다.                 (P680-681)    

 

“우리는 그만 둘 수 없어요. 샘.”

“우리? 우리가 대체 누굴 말하는 것이냐? 걸린 건 내 목이지 네 목이 아니야. 내가 유예를 얻으면, 너는 시카고에 있는 멋진 사무실로 돌아가서 네 인생을 살아갈 거야. 너는 네 의뢰인을 구한 걸로 영웅이 되겠지. <계간 변호사>인가 뭔가에도 네 사진이 실리겠지. ‘미시시피 주에서 멋지게 성공한 총명한 젊은 스타. 비참한 클러커 할아버지를 구하다’, 뭐 이런 식 아니겠냐? 하지만 네 의뢰인은 조그만 새장으로 돌아가 다시 남은 날을 세기 시작해야 돼.”

샘은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애덤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얘야, 나는 이 일을 다시 겪을 수는 없어. 네가 다 그만두었으면 좋겠어. 그만둬. 법원에 연락해서 청원과 항소를 모두 취소한다고 해. 나는 늙은이야. 품위 있게 죽게 해다오.”

샘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숨이 가빠졌다. 애덤은 샘의 반짝이는 쪽빛 눈, 쭈글쭈글한 짙은색 주름에 둘러싸인 쪽빛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샘의 눈가에서 불쑥 눈물이 솟아 천천히 뺨을 타고 흘러내려 하얀 턱수염 속으로 사라졌다.           (P694)     

클랜 단원들은 긴장한 채 애덤 앞으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다. 모두 똑같은 가운을 입고 있었지만, 두건은 거의 쓰지 않았다. 지난 금요일에 만났던 클랜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클랜 단원들은 별로 친절해 보이지 않았다. 

이제 지정 시위장에서 일어나던 소란은 잠잠해졌다. 사람들은 샘의 변호사가 하는 말을 들으려고 밀려들고 있었다. 

애덤은 봉투에서 종이를 꺼내 두 손으로 잡았다. 

“내 이름은 애덤 홀이오. 샘 케이홀의 변호사요. 이건 샘이 보낸 성명서요. 오늘 날짜로 되어 있고, 큐클러스클랜의 모든 단원들, 그리고 그 밖에도 오늘 여기서 그를 위하여 시위를 하고 있는 모든 그룹들에게 전하는 것이오. 그대로 읽겠소. ‘떠나주기 바란다. 당신들이 여기 와 있는 것은 나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당신들은 나의 처형을, 당신들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 나는 당신들을 전혀 모르며, 당신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당장 떠나주기 바란다. 나는 당신들이 벌이는 연극의 도움을 받지 않고 죽고 싶다.’”             (P765)     

루커스 만이 서류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만은 가스실 문간에 섰다. 

“샘, 이건 사형 영장이오. 나는 법에 따라서 당신한테 이걸 읽어주어야 하오.”

“어서 하시오.”

샘은 입술을 열지 않고 툴툴거렸다.

루커스 만은 종이를 들어올리더니 읽기 시작했다.

“1981년 2월 14일 워싱턴 카운티 순회재판구의 유지 평결과 사형 선고에 따라, 당신은 파치먼의 미시시피 교도소의 가스실에서 독가스로 죽을 것을 선고받았다. 당신의 영혼에 하느님의 자비가 있기를.”

루커스 만은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벽에 걸린 두 전화기 가운데서 가까운 데에 있는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혹시 어떤 기적적인 최종 순간의 유예가 없나 알아보기 위해 자신의 사무실로 전화를 한 것이었다. 없었다. 또 하나의 전화기는 잭슨의 지방 검사 사무실로 연결된 선이었다. 다시, 모든 걸 계획대로 진행하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자정에서 30초가 지나고 있었다. 8월 8일. 수요일이었다. 

“유예는 없소.”

루커스 만이 너전트에게 말했다.                  (P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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