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이트 노이즈> 2022년
노아 바움백 감독, 애덤 드라이버, 그레타 거윅, 돈 치들 주연의 2022년작 영화. 1985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던 돈 드릴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제7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개막작이자 경쟁 부문 초청작으로 선정되었다.
나는 ‘칼리지 온 더 힐’ 대학 히틀러연구학과의 학과장이다. 1968년 3월 북아메리카에서 히틀러 연구를 창안했다. 동쪽으로부터 간헐적으로 바람이 불어오던 춥고 맑은 날이었다. 우리가 히틀러의 생애와 작품을 중심으로 학과 하나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학장에게 제안하자, 그는 대번에 그 가능성을 간파했다. 나의 제안은 즉각 전격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학장은 후에 닉슨과 포드, 그리고 카터의 보좌관을 지내다가 오스트리아에서 스키 리프트 사고로 죽었다. (P12)
칼라지 온 더 힐 대학에서 학과장들은 교수복을 입는다. 거창하게 치렁거리는 긴 옷은 아니고 어깨에 주름이 잡힌 소매 없는 상의다. 나는 그 발상이 좋다. 시계를 보기 위해 옷의 접힌 부분에서 팔을 꺼내는 동작이 마음에 든다. 시간을 보는 단순한 행동이 이런 화려한 동작 때문에 변모하는 것이다. 장식적인 제스처는 삶에 낭만을 더해준다. 학과장이 교정을 가로질러 걸어오면서 중세풍 복장 아래로 구부정한 팔을 쑥 내밀자 디지털 시계가 늦여름 어스름 속에서 깜박거린다. 빈둥거리던 학생들이 그 광경을 목격하는 순간, 시간 자체를 하나의 복잡한 장식으로, 인간 의식이 빚어낸 로맨스로 볼지도 모른다. 이 복장은 물론 검정색이고 대부분의 옷들과 잘 어울린다. (P19)
누가 먼저 죽을까?
이 물음은 차열쇠가 어디 있을까, 하는 물음처럼 수시로 떠오른다. 그러면 우리는 하던 말을 멈추고 오래도록 서로를 바라본다. 나는 이 생각 자체가 육체적 사랑의 본성 가운데 일부가 아닐까, 살아남은 자에게 슬픔과 공포를 주는 일종의 전도된 진화론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면 우리가 숨쉬는 공기 속의 어떤 불활성 요소이거나 융해점을 지닌 네온 같은 희귀 물질이거나 원자의 중량 같은 것일까? 경주용 트랙 위에서 나는 그녀를 안았다. 아이들이, 밝은 색 반바지를 입은 서른명 정도의 여자아이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뿐하게 솟구치는 무리들이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활기찬 숨소리, 그들의 발이 땅에 닿을 때 중첩되는 리듬들. 가끔 나는 우리의 사랑이 미숙하다고 생각한다. 죽음의 문제가 현명하게도 그 점을 상기시킨다. 그로써 미래에 대한 우리의 순진함이 제거된다. 단순한 것들은 죽을 운명인 것인가, 아니면 그런 생각이 미신인가? 우리는 여자아이들이 되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제각각의 얼굴에 걸음걸이가 특이한 아이들이 기다란 행렬을 이루었는데, 열망에 들떠 무게가 거의 나가지 않는 것처럼 땅을 딛는 발걸음은 사뿐하다. (P29-30)
그런 어느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있는 배비트 곁으로 들어가, 1968년 당시에 히틀러학의 창안자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면 내 이름과 외모를 좀 손봐야 한다고 학장이 내게 충고했던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잭 글래드니론 안되겠어, 라고 말하면서 그는 다른 이름을 쓸 수 없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우리는 마침내 내가 이니셜을 하나 더 만들어서 이름을 J. A. K. 글래드니라고 하기로 동의했는데, 그 이름은 내가 달고 다니는 꼬리표로서 마치 빌려 입은 양복 같았다.
학장은 자기표현을 미약하게 하는 내 성향을 지적하면서 그 점을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그는 내가 몸무게를 불려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그는 내가 히틀러로 “다시 자라기”를 바랐다. 그 자신은 키가 크고 배가 나왔으며 불그스레한 혈색과 이중턱에 발도 크고 둔했다. 위협적인 요소들의 조합인 것이다. 나는 키가 크고 손발도 큰 이점은 있지만 덩치가 너무 없다고, 말하자면 내게 병적인 과체중의 분위기, 부풀린 덩치나 과장된 분위기, 비대하고 중량감 있는 몸집의 분위기가 더 필요하다고,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내가 조금 더 못생길 수만 있다면 내 경력에 엄청난 도움이 되리라고 암시하는 것 같았다.
이리하여 히틀러는 내게 성장과 발전의 모델이 되었다. 때때로 이런 노력을 기울이기가 마뜩찮기도 했지만 말이다. 검고 두껍고 묵직한 테에다 검은 렌즈를 끼운 안경은 내 자신의 아이디어였고, 당시 아내가 기르지 말라고 반대한 숱많은 수염에 대한 대안이었다. 배비트는 J. A. K. 라는 이니셜의 조합이 마음에 들고 그것이 천박한 의미에서의 관심끌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그 이름은 품위와 의미심장함과 위세를 암시했다.
나는 그 이름을 따라다니는 위조된 인물이다. (P32-33)
나는 나도 모르게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음모는 죽음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음모의 본성이지요. 정치적 음모, 테러리스트의 음모, 연인들의 음모, 담론적 책략, 어린애들 놀이의 일부인 잔꾀까지 말입니다. 음모를 짤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더 죽음에 가까이 갑니다. 이는 모두가, 음모의 목표가 되는 사람들뿐 아니라 음모자들도 서명해야 하는 계약과 같지요.”
이게 사실인가? 내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이 말이 무슨 뜻인가? (P48)
“텔레비전은 보고 듣는 방법을 잊어버렸을 때만 문제가 되죠.” 머레이가 말했다. “학생들이랑 언제나 이 문제를 토론해요. 그들은 이 매체에서 다른 데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느끼고 있어요. 마치 이전 세대가 부모와 조국으로부터 돌아섰던 것과 똑같이 말이지요. 난 다시 아이들처럼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말하지요. 잭, 당신 표현을 사용하자면, 내용은 뿌리째 뽑아내고 코드와 메시지를 찾아보라고 하지요.”
“학생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텔레비전은 정크메일의 다른 이름일 뿐이래요. 하지만 난 그들에게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난 두 달 이상 이 방에 앉아 유심히 듣고 메모하면서 새벽까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고 일러줍니다. 멋지고도 겸허한 경험이라고나 할까요. 신비한 경험에 가깝지요.”
“그래서 얻은 결론은 뭡니까?”
그는 다리를 얌전히 꼰 채 무릎에 컵을 얹고 앉아서 똑바로 앞을 보며 미소지었다.
“파장과 방사지요.” 그가 말했다. “텔레비전 매체가 미국 가정의 원동력임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밀폐되고, 시간을 초월하고, 자기완결적이고, 자기지시적인 매체지요. 그건 마치 바로 우리집 거실에서 탄생하고 있는 하나의 신화 같고, 꿈결 같고 전의식(前意識)적인 방식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무엇 같기도 해요. 잭, 나는 거기 푹 빠져 있어요.”
그는 여전히 은밀하게 미소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텔레비전을 보는 법을 배우셔야 할 겁니다. 그 정보에 자신을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죠. 텔레비전은 엄청난 양의 심리적 정보를 제공합니다. 세계 탄생에 관한 고대의 기억을 열어주고, 화상을 형성하는 직직대는 작은 점들의 그물망인 그리드 속으로 우리를 맞이해주지요. 거기엔 빛이 있고 소리가 있어요. 난 학생들에게 묻습니다. ‘이 이상 뭘 더 원하나?’라고요. 그리드 속에 숨겨진 풍부한 자료를 보세요. 한 꾸러미의 화려한 포장 속에, 경쾌한 광고 노래에,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광고에, 어둠속에서 분출하는 상품들에, 낭송 같고 독송 같은 기호화된 메시지와 끊임없는 반복 속에 숨겨진 것들을 보세요. ‘그건 바로 콜라, 콜라, 콜라야’처럼 말이죠. 우리가 순수하게 반응할 줄 알고 우리의 신경질, 피로, 염증을 넘어설 줄만 안다면 이 매체는 사실상 신성한 공식들로 넘쳐나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 학생들은 동의하지 않지요.”
“정크메일보다 더 나쁘다는 거죠. 걔들 말에 따르자면, 텔레비전은 죽어가는 인간의식의 마지막 몸부림이에요. 학생들은 텔레비전을 보며 지낸 자신들의 과거를 부끄러워합니다. 그보다는 영화에 대해 얘기하길 좋아하죠.”
그는 일어나서 우리 잔에 커피를 다시 채워주었다.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세요?” 배비트가 물었다.
“전 뉴욕출신이니까요.”
“머레이, 당신이 말을 하면 할수록 뭔가를 더 숨기려는 것처럼 보여요. 마치 우리를 속이려는 것처럼 말이에요.”
“최고의 이야기는 사람을 호리게 하지요.” (P91-92)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알폰스, 점잖고 선량하고 책임감있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에서 재난 장면을 보면 빠져드는 이유가 대체 뭐지요?”
나는 며칠 전 저녁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용암과 토사와 홍수 장면을 너무나 흥미진지하게 봤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린 그런 장면들을 점점 더 많이 원했거든요.”
“그건 당연하고 정상적인 거요.” 지당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말했다. “누구든지 다 그러니까.”
“왜 그럴까요?”
“우리가 요즘 지력감퇴(智力減退)를 겪고 있기 때문이지.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폭주를 끊어놓으려면 가끔씩 대재난이 필요한 거요.”
“지당한 말씀입니다.” 래셔가 말했다. 그는 깔끔한 면상에 머리를 매끈하게 뒤로 넘긴 자그마한 사내였다.
“정보의 흐름은 끊임없소.” 알폰스가 말했다. “단어, 사진, 숫자, 사실, 그래픽, 통계치, 점, 파장, 분자, 미진(微塵) 등이 그렇소. 대재난만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법이오. 우린 그걸 원하고 필요로 하며 거기 의존하고 있소. 다른 곳에서 발생하기만 한다면 말이오. 캘리포니아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오. 산사태, 산불, 해안침식, 지진, 대량살해 등 온갖 일들이 일어나잖소. 우린 마음속으로 캘리포니아는 어떤 일을 당해도 싸지,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느긋하게 이런 대재난을 즐길 수 있는 거요.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라이프스타일이란 개념을 만들어냈잖소. 그것만으로도 자신들이 파멸할 운명을 자초한 거지.”
코차스키가 다이어트 펩시 깡통을 찌그러뜨려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재난 장면을 찍는 덴 일본도 수준급이오.” 알폰스가 말했다. “인도는 거의 미개발상태지. 인도는 기아, 몬순, 종교분쟁, 열차충돌사고, 난파 등등으로 엄청난 잠재력이 있지. 하지만 그런 재난들이 기록되지 않고 지나가는 경향이 있어요. 신문에 기사 세 줄만 나면 그만이야. 촬영도 위성중계도 전혀 하지 않지. 그렇기에 캘리포니아가 너무나 중요한 거라구. 우린 그들이 자신들의 느긋한 라이프스타일과 진보적인 사회 사상 때문에 벌 받는 광경을 즐길 뿐 아니라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걸 알지. 카메라가 바로 현장에 있으니까. 카메라가 대기하고 있다가 아무리 끔찍한 일이 일어나도 낱낱이 찍어대는 거요.”
“텔레비전 재난장면에 매혹되는 건 얼마간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말씀이군요.”
“대개의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는 두 장소밖에 없소. 자기가 사는 곳, 그리고 텔레비전이 있는 곳이지. 텔레비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게 어떤 것인지 매혹적이라고 느낄 권리가 있다는 거야.”
“내 경험이 널리 공유되고 있다는 걸 알게 돼서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어요.”
“기분이 나빠야지요.” 그가 말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래셔가 말했다. “우린 모두 기분이 나빠요. 하지만 그런 차원에서 즐길 수는 있죠.”
머레이가 말했다. “이런 현상은 잘못된 집중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지력감퇴를 겪고 있어요. 그건 어린아이처럼 듣고 보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죠. 사람들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법을 잊어버렸어요. 심리적인 의미에서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산불은 전자동 식기세척기의 초짜리 광고보다 낮은 지평에 있어요. 상업광고가 좀더 깊은 파동, 좀더 깊은 방사를 갖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들의 상대적인 의미를 뒤집어놓았어요. 그렇기에 사람들의 눈, 귀, 두뇌, 그리고 신경계가 피폐해지는 거죠. 단순한 뇌의 사례인 거예요.” (P117-119)
가족이란 이 세상의 온갖 잘못된 정보의 요람과 같다. 가족의 일상사에는 사실상의 오류를 낳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 존재의 소음과 열기 같은 것. 어쩌면 생존의 필요와 같은 좀더 심오한 뭔가가 원인인지 모른다. 우리는 적대적인 사실들로 가득 찬 세상에 둘러싸인 망가지기 쉬운 생물이라고 머레이는 말한다. 사실들은 우리의 행복과 안전을 위협한다. 우리가 사물의 본성을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우리의 구조는 더욱 더 느슨해져 보일 것이다. 가족이 굴러가는 과정은 세상의 영향을 밀폐하는 쪽으로 작동한다. 사소한 실수들이 불거져나오고 허구는 무성히 자라난다. 나는 머레이에게 무지와 혼돈이 가족의 유대를 형성하는 원동력일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황당하고 전복적인 발상이 어디 있느냐고. 그는 내게 그렇다면 가장 강력한 가족 단위가 가장 개발이 덜 된 사회에 존재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무지는 생존의 무기라고 그가 말한다. 마법과 미신이 씨족의 강한 전통으로 확립되어 있다고. 가족은 객관현실이 잘못 해석될 공산이 가장 큰 곳에서 제일 강하다는 것이다. 무슨 이론이 그렇게 비정하냐고 나는 말한다. 하지만 머레이는 그게 사실이라고 고집한다. (P145)
죽은 자들의 힘이란 그들이 변함없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데 있다. 죽은 자들은 현존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들로만 이루어진 에너지의 차원이 있는 것일까? 그들은 물론 땅 속에 묻혀 잠들어 있고 부서져 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이 꾸는 꿈일지도 모른다.
목적없는 나날이 되기를. 계절이 그냥 흘러가기를, 계획에 따라 활동을 진척시키지 말기를. (P174)
간밤에 꿈결처럼 눈이 내린 후 공기는 맑고 고요해졌다. 일월의 빛에는 팽팽한 푸른 색조가, 단단함과 자신감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굳어진 눈에 닿는 장화 소리, 하늘 높이 청명하게 뻗어 있는 비행운. 처음에는 나도 몰랐지만 날씨란 정말 핵심적인 것이었다.
나는 우리집 쪽 거리로 발길을 돌려, 자기 집앞 차도에서 입김을 내뿜으며 열심히 삽질하는 남자들 곁을 지나갔다. 다람쥐 한 마리가 나뭇가지를 타고 물 흐르듯 움직였다. 그 동작이 하도 유연해서 우리가 배우고 믿어온 물리법칙과는 다른 저만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듯했다. 거리 중간쯤 걸어 내려왔을 때, 하인리히가 우리집 다락 창밖의 작은 나무판 위에 웅크리고 앉은 모습을 보았다. 그는 위장용 재킷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열네살인 그에게 복합적인 의미를 띤 복장이었다. 성장하려고 애쓰면서 동시에 남들 눈에 띄기는 싫어하는 복합적인 면은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 그의 비밀이었다. 그는 쌍안경으로 동쪽을 보고 있었다. (P190-191)
거대한 검은 덩어리가, 나선형 날개 달린 갑옷을 입은 생물들의 호위를 받으며 밤하늘을 가로지르면서, 마치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죽음의 배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그것은 너무도 가깝고 너무도 낮게 깔려 있으며, 염화화합물과 벤진, 페놀, 탄화수소, 혹은 그밖의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유독성분으로 뭉쳐져 있어 보기에도 끔찍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장관(壯觀)이었고 획기적인 사건다운 웅장함을 지니고 있었으니 주차장의 그 생생한 장면이나 박탈당한 자의 비참한 무리로서 아이들과 음식과 가재도구를 챙기고 눈 내리는 구름다리를 터덕터덕 건너던 사람들의 장면괴 비슷했다. 우리는 공포와 더불어 종교적인 것에 근접하는 경외감을 느꼈다.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그것에서 경외감을 느끼고, 그것을 우리 자신보다 훨씬 크고 강력하며 원초적이고 자의적인 리듬에 의해 생겨난 어떤 우주적 힘으로 보는 것은 확실히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죽음으로서 분명히 정의되고 측정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당시 우리는 그것을 단순하고 원시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여서 홍수나 토네이도처럼 철마다 일어나는 지구의 변덕으로서 통제 불가능한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너무도 무력했기 때문에 그것이 인재(人災)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 없었다. (P222-223)
나는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당국이 주차장에서 대규모 유출물에 분사한 물질은 아마 소다가루일 것입니다. 하지만 양도 너무 적고 너무 늦게 대처한 케이스였어요. 제 추측으로는 당국이 이른 새벽에 농작물 파종용 비행기를 띄워서 유독가스구름에 엄청난 양의 소다가루를 쏟아부을 겁니다. 그러면 그 구름이 산산이 쪼개져서 수백만 개의 무해한 연기로 흩어질 수 있겠지요. 소다가루는 탄산나트륨의 통상적인 명칭으로서, 유리, 도자기, 세제, 비누 등을 제조하는 데 사용되지요. 또한 중탄산나트륨을 만드는 데도 사용되는데, 필시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시내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급히 마셨던 음료가 바로 그것일 겁니다.”
아이의 식견과 재치에 감탄한 사람들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들었다. 이렇게 많은 낯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너무도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는 지금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남들의 반응에서 자신의 가치를 가늠하는 법을 배우는 중일까? 이런 혼란스럽고 끔찍한 사건의 와중에서 그가 세상에서 자신의 입지를 세우는 법을 배운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여러분이 아마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우리가 계속 듣고 있는 나이어딘 D라는 물질이 정확히 무엇인가 하는 점일 겁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이 물질에 관해 배웠고, 쥐가 경련을 일으키고 그밖의 다른 증세를 나타내는 영화도 보았습니다. 자, 좋아요, 이건 기본적으로 아주 단순합니다. 나이어딘 D란 살충제를 제조할 때 생기는 온갖 부산물을 몽땅 합쳐놓은 덩어리이거든요. 원물질은 바퀴벌레를 죽이고, 부산물은 그 나머지 전부를 죽인다. 이게 우리 선생님이 하신 썰렁한 농담이죠.”
아이는 손가락을 뚝뚝 소리나게 꺾으며 왼쪽 다리를 약간 떨었다.
“분말 형태로는 무색, 무취이고 아주 위험한 물질입니다. 다만 그것이 인간이나 인간의 후손에게 어떤 결과를 미칠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당국에선 수년간 연구했는데 확실히 알아내지 못했거나, 아니면 알고도 말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어떤 것들은 너무 끔찍해서 공표하기 힘들거든요.”
아이는 눈썹을 동그랗게 치켜뜨더니 우스꽝스럽게 씰룩거리며 입가로 혓바닥을 쏙 내밀었다. 사람들이 웃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일단 그것이 토양 속으로 스며들면 40년 동안 없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남은 수명보다 더 길지요. 5년이 지나면 여러분은 옷과 음식뿐 아니라 일반 창문과 방수용 덧문 틈에서도 여러 종류의 곰팡이가 자라는 것을 보게 될 거예요. 10년이 지나면 방충망에 녹이 슬고 구멍이 나고 삭아들 겁니다. 판자벽은 뒤틀릴 거구요. 유리는 파손되고 애완동물들은 외상을 드러낼 겁니다. 20년이 지나면 다락을 밀봉하여 그 속에 숨어서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 모든 것에 배워야 할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이 쓰는 화학물질에 대해 잘 알아야 된다는 거죠.”
나는 아이가 나를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본다면 자신을 의식하게 될 것이고, 우울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던 예전의 자기 생활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불의의 사고와 예측불허의 끔찍한 재난의 이름으로 그럴지라도, 아이가 지금 피어나고 있다면 활짝 피어나도록 그냥 두자. 그래서 나는 살짝 빠져나와 눈 장화에 비닐을 덧씌워 신은 남자 옆을 지나 야영 채비를 해둔 막사 제일 끄트머리 쪽을 향했다. (P228-229)
나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내가 벌써 죽었다고 그들이 생각한다면 날 혼자 내버려둘지도 모른다. 나는 의사가 내 주요 장기 가운데 한 곳의 중심에 별 모양의 구멍이 나타난 엑스레이 사진을 라이트 박스에 걸어두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죽음은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내부에 들어와 있다.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죽어가고 있는 그 상태와 분리되어 있고, 여유가 있을 때 그것에 대해 생각에 잠기고, 엑스레이 사진이나 컴퓨터 화면에서 끔찍하고 이질적인 그 사실 자체를 말 그대로 지켜볼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상태와 우리 자신 사이의 음산한 분리를 감지하는 것은 죽음이 도표화되거나 이를테면 화면에 나타나는 그런 순간이다. 신에게서 강제로 빼앗아온 멋진 기술체계 전부인 상징기호의 망은 이미 도입되어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죽음에서 우리 자신을 이방인처럼 느끼게 만든다. (P248)
나는 듣고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팔짱을 끼고 고개는 약간 기울인 모습들이었다. 이런 예언들이 그들에게는 터무니없는 것은 아닌 듯했다. 텔레비전 광고시간에 잠시 쉬면서 잡담하듯이, 그들은 만족스럽게 짧고도 무관한 말들을 나누었다. 묵시론적인 사건들을 희망적으로 전환하는 타블로이드 신문들이 다루는 미래란 우리 자신이 지금 당장 겪고 있는 경험과 그렇게 다른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봐, 나는 생각했다. 집에서 쫓겨나와 매서운 밤공기 속으로 무리지어 내몰리고 유독가스 구름에 쫓기고 꾹꾹 구겨넣듯 임시숙소에 들어가고 죽음의 선고를 받았을지도 모를 우리 모습을, 우리는 이미 대중매체에서 다루어지는 재난이라는 공적인 사건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눈먼 노인들로 이루어진 이 작은 청중들은 영매들의 예언이 너무나 가까운 시기에 일어날 사건들이라서 우리의 필요와 소망에 맞게 미리 형상을 부여해야 한다고 인식했다. 대규모 파괴가 일어날 것이라는 어떤 끈질긴 느낌 때문에 우리는 계속 희망을 급조해내고 있었다. (P256-257)
오후 일곱시에 조그만 TV를 든 남자가 방안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연설 비슷한 것을 했다. 그는 중년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돼 보이는, 눈빛이 선명하고 꼿꼿한 사내로서, 귀 덮개가 아래로 내려오고 가장자리에 털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는 TV를 자기 몸에서 멀찍이 띄워 공중으로 잘 들어올린 다음, 연설을 하는 동안에 방안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텅 빈 화면을 보여주기 위해 걸어가면서 여러번 빙 돌았다.
“방송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말했다. “한마디 말도, 화면 하나도 나오지 않았어요. 글래스버러 채널에서 우리 사건은 실제로 세어보았을 때 52개의 단어는 쓸 만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화면 하나, 생방송 기사 하나 없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서 이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걸까요? 그 사람은 우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고나 있는 걸까요? 우리는 놀라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구요. 우리는 집을 떠났고, 눈보라 속에서 차를 몰았고, 유독가스 구름을 목격했어요. 우리 위쪽 바로 거기에 있었던 그것은 치명적인 유령 같았습니다. 아무도 그런 것에 대해 내실있는 취재를 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삼십초도, 이십초도 안됩니까? 그들은 이 일이 중요하지 않다고, 사소한 일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겁니까? 그들이 그렇게도 무감각한 사람들입니까? 유출물과 오염물질과 폐기물 들을 질리도록 봤다는 말입니까? 그들은 이게 단지 텔레비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텔레비전 방영은 이미 너무 많이 했어, 더 보여줘봐야 뭐 하겠어?’ 이런 식인가요? 그들은 이게 실제상황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 건가요? 거리마다 카메라맨과 음향 담당자와 기자들로 득실거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창문 밖으로 그들에게 ‘우릴 좀 내버려둬요, 겪을 만큼 겪었어요. 우리 생활에 침입하는 그 못된 기구들을 가지고 여기서 썩 나가주세요’라고 소리지르고 있어야 하지 않나요? 이백명이 죽고 희귀한 재난 장면이 벌어져야만 그들은 헬기와 방송사 리무진을 타고 현장에 몰려오는 걸까요?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야 우리 얼굴에 마이크를 들이밀고 집 현관 계단까지 쫓아오고 앞마당에 캠프를 치고 그 흔한 언론 곡예를 벌이게 될까요? 우리에게 그들의 천치 같은 질문을 경멸할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요? 이곳에 있는 우리 모습을 한번 보세요. 우리는 격리 수용되어 있습니다. 중세의 나병환자들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계단 발치에 먹을 것을 두고 안전한 곳으로 살금살금 걸어가버립니다. 지금은 우리 삶에서 가장 두려운 순간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과 우리 삶의 목표는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공식적인 방송기관의 반응은 전무합니다. 유독가스 공중유출 사건은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우리의 공포는 어머어마합니다. 인명 손실은 크게 없었다 해도 우리의 고통에 대해서, 우리의 인간적 염려와 공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여야 하지 않습니까? 두려움은 뉴스거리가 안 된다는 건가요?”
환호가 터져나왔다. 함성과 박수소리가 계속 터져나왔다. 연설을 끝낸 남자는 관객들에게 작은 TV를 보여주면서, 십인치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나와 얼굴을 맞대게 되었다. 풍상에 찌든 그의 얼굴이 어떤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사소한 사실이 새로 밝혀져서 충격을 받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전에 이걸 봤어요.” 그가 마침내 내게 말했다.
“전에 뭘 봤단 말입니까?”
“당신이 거기 서 있고 나는 여기 서 있었어요. 4차원으로 도약한 것 같아요. 당신 모습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명하고 또렷해요. 밝은 머리색, 기운없는 눈, 불그레한 코, 특징 없는 입과 턱, 땀을 잘 흘릴 것 같은 얼굴, 보통의 뺨, 구부정한 어깨, 커다란 손발. 이 모두가 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관에서 스팀이 소리를 내며 나왔어요. 당신 모공에는 작고 조그만 털들이 삐죽이 나 있었어요. 당신 얼굴의 그 표정도 똑같아요.”
“어떤 표정 말입니까?” 내가 말했다.
“어디 홀린 듯, 창백하고 넋이 빠진 표정이죠.”
아흐레 동안을 더 지내고서야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지시를 받았다. (P284-285)
“난 모든 사람이 죽는 생각을 해. 나뿐만이 아니고, 끔찍한 상상 속에 빠지곤 해.”
“죄책감에 많이 시달렸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게 내가 그 생각을 한 것과 상관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내가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런 일은 더 빨리 일어날 거예요.”
“참 이상한 일이야. 우리 자신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깊고 끔찍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어. 그래도 우린 돌아다니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먹고 마시지. 그럭저럭 제 구실들은 하고 산단 말이야. 그 감정은 너무나 깊고 생생해. 그 감정이 우릴 마비시켜야 되는 것 아냐? 어떻게 우리가 그걸 이기고 잠시라도 살아남을 수 있어? 차를 몰고, 강의를 하면서 말이야. 어젯밤에, 그리고 오늘 아침에, 우리가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지 본 사람이 어떻게 아무도 없을까? 그건 우리 모두가 상호 묵인하에 서로에게 숨기고 있는 그런 것일까? 아니며 아무도 몰래 똑같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건가? 똑같은 가면을 쓰고.”
“죽음이 단지 소리일 뿐이면 어쪄죠.”
“전기 소음이지.”
“그 소리가 끝없이 들려요. 사방에서 들려와요. 아, 끔찍해.”
“균일하고 하얀 소음이지.” (P344)
“그레이 리서치의 사람들이 하는 일이 정확히 뭐야?”
“뇌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부분을 분리해요. 다일러는 그 부분의 고통을 급속히 제거해줘요.”
“놀랍군.”
“그건 그냥 강력한 진정제 정도가 아녜요. 이 약은 죽음의 공포와 연관된 뇌의 신경전달물질과 구체적으로 상호작용하게 되어 있어요. 모든 감정과 감각에는 고유한 신경전달물질이 있어요. 미스터 그레이는 죽음의 공포 부분을 발견한 후, 뇌에서 그것을 억제하는 물질을 분비하도록 유도하는 화학물질 발견 작업에 착수했어요.”
“놀랍고 두려운 일이군.”
“삶 전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뇌 어딘가에서 힘차게 움직이는 분자활동의 결과예요.” (P346-347)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이 물질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건 잘못된 거예요. 그게 죽음에 대한 공포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예요. 죽음이란 우리에게 필요한 경계선이 아닌가요? 죽음이 삶에 소중한 결을 부여하고 사물에 대한 정의를 내리게 해주지 않던가요? 우리가 늘 짊어지고 다니는 최후의 선, 경계 혹은 한계를 알지 못한다면 이생에서 행하는 그 어떤 것이 아름답고 의미가 있을지 자문해야 될 거예요.”
나는 높은 곳에 있는 구름의 둥그스름한 꼭대기 쪽으로 빛이 솟구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클로리츠, 벨라민츠, 프리던트.
“사람들은 내가 묘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말했다. “인간의 공포에 대한 내 이론도 묘연한 건 확실하구요. 자기 모습을 상상해봐요, 잭, 너무도 가정적이고 늘 앉아서 지내는 당신이 어쩌다 깊은 숲속을 걷고 있는 모습을요. 그러다 문득 뭔가가 눈에 들어와요. 그게 뭔지 다른 건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게 아주 커다란 것이고 당신의 일상적인 참조틀에는 없는 것이란 걸 알게 돼요. 세계관에 오점 하나가 나타난 거예요. 그것이 여기 없거나 선생님이 없어야 하는 거죠. 이제 그것의 전모가 드러나요. 그건 바로 북미산 회색곰이에요. 엄청나게 크고 빛나는 갈색의 곰이 어슬렁거리면서 다가와요. 환히 드러난 어금니에선 진액이 뚝뚝 듣고 있어요. 잭, 당신은 야생에서 이렇게 큰 동물을 본 적이 없어요. 이 회색곰과의 만남은 너무도 충격적이고 기이해서 자신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자아에 대한 신선한 인식을 부여한답니다. 특이하고도 무시무시한 상황에 처한 자아에 관해서 말이죠. 새롭고도 강렬하게 자신을 보게 돼요. 스스로를 재발견하는 겁니다. 당신은 자신이 갈가리 찢기게 될 상황을 당해서 정신을 곤두세우고 있어요. 뒷발로 선 그 짐승 때문에 당신은 난생 처음으로 친숙한 환경 바깥에서, 홀로, 뚜렷이, 온전하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우리가 이 복잡한 과정에 붙인 이름이 바로 공포예요.”
“공포란 더 높은 단계까지 상승된 자기인식이라 이거군요.”
“그래요, 잭.”
“그럼 죽음은요?” 내가 말했다.
“자아, 자아 그 자체죠. 만약 죽음을 그렇게 이상하거나 그렇게 근거없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죽음과 관련된 당신 자아에 관한 감각도 줄어들 거예요. 당신의 공포도 사그라질 거구요.”
“죽음을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나도 몰라요.” (P396-397)
“배비트는 장인어른이 결혼생활을 하기엔 너무 통제력이 없다고 생각하던데요.”
“오늘날 결혼의 핵심은 말이지, 바깥세상의 이런저런 자잘한 재미를 보려고 집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거야. 미국 가정이라는 은밀한 곳에서는 원하는 건 뭐든지 얻을 수 있어. 좋든 싫든 이런 게 바로 우리가 몸담고 사는 시대야. 마누라들은 여러 가지 일을 할 거야. 그러길 원하기도 해. 자넨 이리저리 둘러보는 자잘한 재미를 포기할 필요는 없어. 예전에 미국 가정에서 얻을 수 있는 거라곤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행위뿐이었지. 지금 자네들이야 선택사양도 누리잖아. 내 말하지만, 아주 진한 것도 하지 않느냐, 이 말일세. 집안에서 누릴 선택사양이 많아지만 많아 질수록 거리에 창녀들이 더 많아지는 건 참 놀라운 일이지. 이걸 어떻게 설명하겠나, 잭? 자넨 대학교수잖아. 이 현상이 뭘 의미하는가?”
“모르겠는데요.”
“마누라들은 식용팬티를 입지. 그들은 그 용어도 알고 용도도 알지. 그러는 동안 창녀들은 추우나 더우나 밤낮없이 길바닥에 서 있어. 걔네들이 누굴 기다리는지 아나? 관광객? 사업가? 아니면 살덩이를 탐닉하는 사내들? 일본인들이 싱가포르로 간다는 걸 읽지 않았겠나? 비행기 한 가득 사내들이 탔대. 대단한 종족이지.”
“결혼하시려고 진지하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이동주택에서 사는 예수쟁이 여자랑 결혼하려면 제정신으론 안 되겠지.” (P427-428)
“내 걱정은 하지 말게나.” 그가 말했다. “다리 조금 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내 나이엔 누구나 저니까. 나이가 들면 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기침하는 것도 신경 쓰지마. 기침은 건강에 좋은 거야. 속에 든 것이 이리저리 움직이게 해주잖아. 그게 한곳에서 자릴 잡고 몇 년이나 그 자리에 가만있지만 않으면 아무 해가 없는 법이야. 그러니까 기침도 괜찮아. 불면증도 그렇지. 불면증은 아무 문제 없어. 내가 잠을 자서 얻는 게 뭐가 있단 말이야? 자네들도 1분 더 자면 일할 시간이 1분 줄어드는 그런 나이가 곧 될 거야. 기침하고 다리 절고 할 시간이 줄어든단 말이지. 여자 문제는 신경 꺼. 여자들은 괜찮아. 우리는 카세트를 빌려서 섹스도 좀 하고 그렇게 지낼 거야. 섹스는 피를 심장으로 펌프질해 주지. 담배 피운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어. 그럭저럭 잘 넘어가고 있다고 자신하고 싶으니까. 모르몬교도들이 담배 끊으라고 해. 그들도 담배만큼 해로운 것 때문에 결국 죽을 거야. 돈은 아무 문제도 안돼. 수입 면에서도 완전히 고정적이니까. 연금 제로, 저축 제로, 주식과 채권도 제로야.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지. 저절로 굴러갈 거야. 치아 때문에 신경쓸 것도 없어. 이는 괜찮아. 이가 헐렁해질수록 혀로 흔들어줄 수 있어. 그러면 혀도 할 일이 생기는 거야. 손 떠는 것도 걱정하지마. 누구든지 가끔은 떠는 법이야. 그리고 왼손만 떨잖아. 손 떠는 걸 즐기는 방법은 말이야, 그게 다른 사람 손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체중이 원인도 모르게 갑자기 줄어도 걱정할 필요 없어. 눈도 시원찮은데 먹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눈 걱정도 하지 마. 눈이야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가 없지. 정신이 온전할까 하는 걱정은 깡그리 잊어버려. 정신이 몸보다 먼저 가는 법이야. 그렇게 돌아가는 거지. 그러니까 정신이 어떨까 걱정하지 마. 정신은 온전해. 차에 대해선 걱정을 해야만 해. 핸들이 좀 휘어졌거든. 브레이크도 세 번이나 리콜된 거고. 푹 파진 곳을 지나가면 후드가 위로 치솟는단 말이야.” (P444-445)
“우리가 죽음을 인식하기 때문에 삶이 더 소중해지는 건 아닐까요?”
“두려움이나 불안에 근거한 소중함이란 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불안해서 덜덜 떠는 존재일 뿐인 게지.”
“맞아요, 더없이 소중한 것은 우리가 든든하게 느끼는 사람들이죠. 아내나 아이 말이죠. 죽음의 유령 때문에 아이가 더 소중해지나요?”
“아뇨.”
“맞아요. 덧없이 흘러간다고 해서 삶이 더 소중하다고 믿을 이유는 전혀 없는 거죠. 이런 말이 있어요. 어떤 사람이 곧 죽을 거란 말을 듣고 나서야 자기 삶을 온전히 살기 시작할 수 있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틀리죠. 일단 자신의 죽음이 확정되고 나면 만족스런 삶을 산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선생님은 죽을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알고 싶으세요?”
“전혀 알고 싶지 않아요.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미지의 것에 직면해서 우리는 그게 거기 존재하지 않는 척 가장할 수는 있어요. 정확한 날짜를 알면 많은 사람들이 자살할걸요, 그 상황 자체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P495-496)
“어떡하면 이걸 극복할 수 있겠소?” 내가 물었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신뢰를 고수할 수도 있겠죠. 그것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까 그것을 통해 빠져나갈 수도 있지 않겠어요? 이런 게 바로 테크놀로지의 진상이지요. 한편으로는 불멸에 대한 욕망을 창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지요. 테크놀로지는 자연에서 유리된 욕망인 겁니다.”
“그런가요?”
“그건 쇠락하는 우리 몸의 끔찍한 비밀을 은폐하려고 고안된 거죠. 하지만 그건 생명이기도 하잖아요? 생명을 연장해주고 낡아가는 장기를 새것으로 바꿔주죠. 매일 새로운 장치와 기술들이 쏟아져나오잖아요. 레이져, 분자 증폭기, 초음파 같은 것 말이에요. 거기 한번 몰두해봐요, 책. 믿어보라고요. 그들이 당신을 번쩍거리는 튜브에 집어넣고 우주의 기본 물질로 당신 몸을 빛나게 할 거라고 말이에요. 빛, 에너지, 꿈, 이런 것들로 말이지요. 감지덕지할 일이죠.”
“당분간 의사라면 꼴도 보기 싫어요, 머레이. 하여간 고마워요.”
“그렇다면 내세에 집중함으로써 죽음을 극복할 수도 있어요.”
“그건 어떻게 하는 겁니까?”
“그야 뻔하죠. 환생이나 윤회, 초공간, 죽은 자들의 부활 등등에 대해 샅샅이 읽어보세요. 이런 믿음에서 발전해나온 아주 매력적인 체계가 몇 개 있답니다. 그런 걸 공부해보세요.”
“그중에서 믿으시는 게 있나요?”
“수백만의 사람들이 수천년 동안 믿어왔어요. 그들과 함께 빠져들어보세요. 제2의 탄생, 제2의 생에 대한 믿음은 실제로 아주 보편적이니까요. 분명 뭔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체계들은 모두 다 너무 다르잖습니까?”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고르세요.”
“하지만 당신 말을 들으면 그게 다 편리한 환상이나 형편없는 미망이 아닐까 싶네요.”
그는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사후의 생에 대한 열망에서 우러나오는 훌륭한 시와 음악, 춤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어쩌면 이런 것들은 우리의 희망과 꿈에 대한 충분한 정당화가 될 거예요. 죽어가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요.” (P496-497)
“내가 억압할 줄 모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더 건강하다고 생각합니까? 어쩌면 지속적인 공포가 사람의 자연스런 상태인데, 내가 공포를 끼고 살기 때문에 실제로 뭔가 영웅적인 일을 하고 있는 걸 수도 있나요, 머레이?”
“스스로 영웅적이라고 느끼시나요?”
“아뇨.”
“그렇다면 영웅적인 건 아니겠네요.”
“하지만 억압이란 부자연스러운 것 아닙니까?”
“공포가 부자연스럽죠. 번개와 천둥이 부자연스럽고요. 통증, 죽음, 현실, 이런 것들은 모두 부자연스러워요. 이런 것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우리는 견딜 수 없어요. 우린 너무 많이 알고 있어요. 그래서 억압, 타협, 위장에 의지하죠. 이것이 우리가 이 우주에서 살아남는 방식이에요. 이건 우리 종(種)의 자연스러운 언어예요.” (P503-504)
“이제껏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했죠.” 그가 말했다. “선생님이 이미 시도하신 두 가지, 서로 상충되는 두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고요. 테크놀로지와 열차 충돌 사고, 내세에 관한 믿음에 대해서도 언급했어요. 그밖에 다른 방법들도 있어요. 그중 한 가지 접근법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군요.”
우리는 도로를 건넜다.
“잭, 제 생각으로는 이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요. 죽이는 자와 죽는 자가 있어요. 우리들 대부분은 죽는 자들이에요. 죽이는 자가 되는 데 필요한 분노라든가 뭐 그런 성향이 없거든요. 그냥 죽는 거죠. 누워서 죽기를 기다릴 따름이에요. 하지만 죽이는 자가 되면 어떨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신나는 일일지 상상해보세요. 상대가 죽는다면 당신은 죽을 수가 없어요. 그를 죽인다는 건 살아갈 점수를 얻는 거죠. 더 많은 사람을 죽일수록 점수를 더 많이 쌓는 거예요. 이렇게 보면 그 많은 대학살, 전쟁, 처형이 모두 설명이 되죠.”
“선생 말은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남들을 죽여서 죽음에서 벗어나려 했단 거요?”
“그럼요.”
“그리고 이런 걸 신나는 일이라고 한단 말이오?”
“저는 이론에 대해 말하는 거예요. 이론상으로 볼 때 폭력은 일종의 재생이에요. 죽는 자는 수동으로 스러지죠. 죽이는 자는 계속 살아가고요. 너무나 신기한 등식이죠. 비적들이 엄청나게 많은 시체를 긁어모을 때, 그들의 힘은 커져요. 힘이 신의 은총처럼 쌓이고 또 쌓이는 거죠.” (P505-506)
“살인음모를 꾸며라, 이 말이로군. 그렇지만 모든 음모는 사실상 살인입니다. 음모를 꾸민다는 건 죽는 것이고. 의식을 하든 하지 않든 그렇다는 겁니다.”
“음모를 꾸미는 건 사는 거예요.”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과 손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우리는 옹알이를 하면서 혼란 속에서 생을 시작하죠. 세상 속으로 흘러들어가면서 형태를 만들고 계획을 세워보려고 하고요. 이런 행위에는 위엄이 있어요. 선생님의 인생 전체가 음모요, 계략이요, 도표예요. 실패한 계략이라 해도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요. 음모를 꾸미는 건 삶을 긍정하는 것이고 모양과 통제를 추구하는 것이니까요. 죽는 후에도, 특히 사후에, 그 추구는 계속됩니다. 매장의식은 이 계략을 의식의 형태로 완성하려는 시도예요. 국장(國葬) 같은 걸 한번 상상해보세요, 잭. 아주 정확하고 세밀하고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잖아요. 국가 전체가 숨죽이고 지켜보지요. 거대하고 강력한 정부가 혼란의 흔적을 깡그리 떨쳐버릴 예식을 치르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요.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들이 이 일을 잘 해치우면, 완벽한 어떤 자연법이 준수되는 거지요. 국가는 불안에서 놓여나고 죽은 자의 새 영은 구원받고 삶 자체가 강화되고 다시금 긍정하게 되는 겁니다.”
“확실한가요?” 내가 물었다.
“음모를 꾸미고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시공간을 구상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인간 의식을 전진시키는 방식이지요.” (P508-509)
“선생님은 죽이는 자인가요, 죽는 자인가요?” 머레이가 물었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뭔지 알지 않소. 평생 난 죽는 자였어요.”
“죽는 자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소? 죽는 자는 기질적으로 죽이는 자로 바뀔 수 없다는 건 분명하잖소?”
“생각을 좀 해봐야겠군요. 예를 들어 짐승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보죠. 수컷 말이에요. 수컷의 심리에는 잠재적인 폭력이 축적된 늪이나 저수지 같은 게 있지 않을까요?”
“이론적으로 볼 땐 있는 것 같소.”
“우린 지금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게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가로수 그늘진 거리에서 두 친구가 하고 있는 게 이론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만약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면, 혹은 일어났을 때, 우리가 끌어댈 수 있는 깊숙한 매장지나 원유저장소 같은 게 있지 않겠어요? 수컷의 분노가 가득 담긴 커다랗고 어둑한 호수 같은 곳이 말입니다.”
“배비트도 그렇게 말했소. 살인을 부르는 분노라고. 꼭 그녀가 한 말 같군요.” (P509-510)
“물론 해야죠. 도대체 왜 수녀노릇을 하시는 겁니까? 벽에다 왜 저 그림을 붙여놓으셨어요?”
그녀는 약간 물러섰는데, 눈에는 비웃으며 즐거워하는 기운이 가득했다.
“그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죠. 우리를 위한 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것 참 우습군요. 어떤 사람들을 위한 거란 말인가요?”
“모든 타자들이죠. 우리가 아직도 믿음이 있을 거라고 평생토록 믿는 그런 타자들 말이에요. 그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들을 믿는 게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에요. 그런 믿음을 완전히 버린다면 인류는 멸망할 거니까.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거죠. 한줌밖에 안되는 소수지요. 악마와 천사, 천국과 지옥 같은 옛것과 옛 믿음을 구현하면서요. 우리가 이런 것들을 믿는 체하지 않으면 세상은 무너질 거예요.”
“믿는 체한다고요?”
“물론 믿는 체하는 거죠. 우리가 멍청인 줄 아세요? 그렇다면 여기서 썩 나가세요.”
“천국을 믿지 않는단 말인가요? 수녀가요?”
“당신도 믿지 않는데 나라고 왜 믿겠어요?”
“내가 믿는다면 당신은 믿을 필요가 없어요.”
“신앙이니 종교니 영생이니 하는 이 모든 오랜 수수께끼를, 인간들이 속아온 이 위대하고 오랜 것들을 당신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당신의 헌신은 겉치레란 말인가요?”
“우리의 겉치레가 헌신이죠. 누군가는 믿는 것처럼 보여야 하니까. 우리가 진실한 믿음과 진실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 삶은 진지해요. 믿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수록, 사람들은 누군가 믿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로 해요. 토굴에서 사는 눈빛 형형한 사람들. 검은 옷을 입은 수녀들. 묵언 수행하는 승려들을 말이죠. 우리는 믿는 일을 하도록 남겨졌어요. 바보나 아이들도 그래요. 믿음을 저버린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의 존재를 믿어야만 해요. 그들은 자신들이 믿지 않는 게 옳다고 확신하지만, 믿음이 완전히 시들어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죠.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가 바로 지옥이니까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있어야 해요. 바보들, 천치들, 환청을 듣는 사람들, 방언하는 사람들 말이에요. 우리는 당신네들의 미치광이예요. 당신네들의 불신을 가능하게 하려고 우리는 우리 삶을 포기하죠. 당신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면서도, 누구나 당신처럼 생각하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바보들이 없다면 진실도 없어요.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촛불을 밝히고 성상 앞에서 건강과 장수를 비는 우리는 당신네들의 바보요, 당신네들의 미친 여자예요.” (P555-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