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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푼케의 <레버넌트>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2015년

by 노용헌

레버넌트(revenant)는 망령이라는 뜻이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The Revenant)는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제작, 각본, 연출한 미국의 서부극 스릴러 영화이다. 이 영화는 개척자 휴 글래스(Hugh Glass)의 실화와 19세기 초 미국 서부에서 모피무역 원정을 하던 중 곰에 물려 사냥 팀에서 죽은 채로 남겨지고 그의 생존 이야기이다. 원작은 마이클 푼케가 2003년에 발표한 동명 소설 <더 레버넌트>를 바탕으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와 마크 L. 스미스가 공동으로 각본을 썼다. 이 영화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톰 하디, 윌 폴터, 그리고 도널 글리슨이 캐스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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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들이 가장 힘겨워하는 일은 매일 나가서 식량을 구해오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과제들과 마찬가지로 사냥에서도 당장의 이득과 위험 요소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미주리 강에서 평저선(얕은 물 위를 다니는 데 좋은 밑바닥이 평평한 배)을 버려두고 그랜드 강까지 걸어 이동하느라 그들은 식량을 챙겨오지 못했다. 차나 설탕을 챙겨온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기 가공용 소금만을 조금씩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그랜드 강 주변은 사냥감들로 득실거렸고, 덕분에 그들은 매일 밤 신선한 고기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사냥을 하려면 총을 쏴야 했고, 라이플이 내는 소리는 몇 마일 밖에서도 들릴 만큼 요란했다. 그들의 위치가 적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미주리 강을 떠나온 후로 남자들은 패턴을 유지하려 애써왔다. 그들은 매일 두 명으로 구성된 정찰대를 먼저 보냈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그랜드 강을 따라 이동했다. 정찰대의 주요 임무는 인디언들이 있는지 살피고, 캠프에 적합한 곳을 선정하고, 식량을 찾는 것이다. 그들은 며칠에 한 번씩 큼직한 사냥감을 잡아 오곤 했다. (P33-34)


회색곰이 다시 네 발로 기어 글래스에게 다가왔다. 글래스는 얼굴과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 공처럼 몸을 웅크렸다. 곰이 그의 뒷덜미를 물고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어찌나 세차게 흔들어대던지 글래스는 척추가 부러져버릴까 두려웠다. 곰의 이빨이 그의 어깨뼈를 으스러뜨렸다. 발톱은 그의 등과 머리를 반복해서 할퀴었다. 그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마침내 곰이 글래스를 떨어뜨리고 그의 허벅지를 물었다. 곰은 다시 그를 흔들어대다가 한쪽으로 휙 던져버렸다. 아직 의식은 살아 있었지만 그는 더 이상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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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는 곰의 반대편으로 돌아가 무릎을 꿇고 다시 앞발을 잡아끌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곰의 상체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이제 거대한 짐승은 몸이 흉측하게 뒤틀린 채 누워 있었다. 해리스는 곰의 뒷다리를 잡아끌어 곰의 하체까지 뒤집었다. 마침내 글래스의 전신이 드러났다. 블랙 해리스는 피가 들러붙은 회색곰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글래스가 제대로 맞힌 것이다.

글래스 옆에 쪼그려 앉은 블랙 해리스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부상자를 처치해본 경험은 충분히 있었다. 세 명으로부터 화살과 총알을 뽑아줬었고, 그 자신도 두 차례나 총에 맞아봤었다.

하지만 이런 참혹한 모습의 부상자는 처음이었다. 글래스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갈가리 찢겨 있었다. 뜯겨진 머릿가죽은 한쪽으로 늘어져 있었고,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망가져 있었다. 가장 심각한 부분은 그의 목이었다. 회색곰의 발톱은 글래스의 어깨에서부터 목까지 세 개의 깊은 상처를 남겨놓았다. 3센티미터만 더 깊었어도 글래스의 목정맥은 끊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찢어진 목 근육 안으로 식도가 드러나 있었다. 또한 회색곰의 발톱은 그의 기도까지 심하게 손상시켜놓았다. 해리스는 겁에 질린 눈으로 상처에서 일고 있는 피거품을 내려다보았다. 글래스는 아직 살아 있었다. (P39)


해리스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목의 치명상이 오히려 반갑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는 글래스를 그늘지고 풀이 덮여 있는 곳으로 끌어냈다. 해리스는 피거품이 이는 목을 무시한 채 그의 머리에 집중했다. 글래스의 벗겨진 머릿가죽을 제대로 덮어주고 싶었다. 해리스가 물통을 꺼내 그의 머리에 물을 부었다. 상처에 묻은 흙을 최대한 씻어내야 했다. 너덜거리는 피부를 원위치로 돌려놓으려니 마치 대머리에 모자를 씌워주는 기분이 들었다. 해리스는 벗겨진 피부를 글래스의 이마에 붙여놓고 나서 그 끝을 귀 뒤로 쑤셔 넣었다. 나중에 제대로 봉합할 수 있도록. 글래스가 그때까지 버텨준다면.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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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는 전날 밤 글래스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게 정말 어젯밤이었나?’ 1809년, 드루이야르의 죽음은 종말의 첫 조짐이었다. 헨리가 이끄는 무리는 스리포크스의 골짜기에 방책(防柵)을 버려두고 남쪽으로 도망쳤다. 덕분에 그들은 블랙풋 족으로부터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결정은 로키 산맥의 가혹한 자연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들은 살인적인 추위와 굶주림과 크로 족의 약탈을 꿋꿋이 견뎌냈다. 1811년, 마침내 그들이 비틀거리며 산을 내려왔을 때도 모피 교역 가능성은 미해결 문제로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헨리는 로키 산맥이 감춰놓은 부를 쫓아 사냥꾼들을 이끌고 있었다. 헨리는 머릿속으로 기억의 페이지를 찬찬히 넘겨보았다. 세인트루이스를 떠나온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그는 1만 달러어치의 교역품이 실린 킬보트를 잃었다. 블랙풋 족은 미주리 강의 그레이트폴스 근처에서 그의 부하 둘을 죽였다. 그는 아리카라 족 마을로 달려가 애슐리를 지원했고, 그곳에서 레번워스 대령과 함께 괴멸됐다. 결국 미주리 강은 아라카라 족에 의해 완전히 봉쇄되고 말았다. 일주일에 걸쳐 그랜드 강을 따라 오르는 동안 그의 부하 세 명이 맨던 족에게 죽임을 당했다. 원래 평화적인 인디언인 그들은 칠흑 같은 밤에 실수로 그들을 공격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글래스가 곰의 공격을 받아 치명상을 입고 누워 있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토록 저주가 끊이지 않는 걸까?’ (P44-45)


대위는 2월의 어느 화창한 날, 모피를 가득 실은 통나무배가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하는 상상을 즐겨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들의 성공적인 옐로스톤 원정은 “미주리 리퍼블리컨” 1면에 소개될 것이다. 그 기사를 보고 새로운 투자자들이 우르르 몰려들 것이다. 봄이 되면 애슐리는 돈을 풀어 새로운 모피 수송대를 모집할 것이고, 늦여름 즈음이면 헨리가 이끄는 사냥꾼 여단이 옐로스톤 구석구석을 신나게 누빌 것이다. 충분한 인력과 교역품만 있다면 블랙풋 족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비버들이 득실거리는 스리포크스 골짜기에 덫을 놓으려면 그들의 협조가 절실했다. 다음 겨울이면 비버 가죽이 가득 실린 평저선 몇 척을 이끌고 당당히 귀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건 시간에 달려 있었다. 경쟁자들보다 무조건 먼저 도착해야만 했다. 그 방법 외에는 없었다. (P52)


1819년, 미 육군은 모피 교역을 활성화시키겠다며 ‘옐로스톤 원정’을 시작했다. 비론 존재감은 미비했지만 육군의 관여는 많은 사업가들로 하여금 모피 교역에 적극 뛰어들게 만들었다. 마누엘 리사의 미주리 모피회사는 플랫 강에 사업장을 차려놓았다. 1812년 영미전쟁 당시 영국군에 의해 컬럼비아 강에서 쫓겨났던 존 제이콥 애스터는 자신의 아메리칸 모피회사를 소생시키고 본사를 세인트루이스로 옮겼다. 그들 모두 한정된 자금과 인력을 놓고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헨리는 소나무 그늘 밑 들것에 누워 있는 글래스를 힐끗 돌아보았다.

그는 글래스의 뜯겨진 머릿가죽을 제대로 봉합해놓지 않았다. 너덜거리는 머릿가죽은 여전히 그의 머리 위에 불안하게 얹혀 있었다. 그 가장자리에는 짙은 자주색 피가 들러붙어 있었다. 망가진 몸의 기괴한 왕관 같았다. 대위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연민과 분노, 억울함과 죄책감.

회색곰의 공격은 글래스 탓이 아니었다. 곰은 그저 그들 여정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위험 중 하나에 불과했을 뿐이다.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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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저는 다시 부상자의 머리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글래스의 눈이 뜨여 있는 걸 확인한 그가 흠칫 놀랐다.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와 어울리지 않게 글래스의 또렷한 두 눈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브리저는 글래스를 빤히 쳐다보며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글래스는 1분간 소년을 응시하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의식이 돌아온 그 짧은 순간 동안 글래스는 자신의 민감성이 크게 증폭된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순간적으로 비밀스러운 몸의 작용을 인식하기라도 한 듯했다. 소년의 정성이 그의 몸 일부에나마 안정을 가져다준 것이다. 송진이 발린 곳은 따끔거렸고 약제의 온기는 그의 목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글래스는 자신의 몸이 또 한 차례의 결전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음을 깨달았다. 겉으로는 변화가 없었지만 몸속 깊은 곳에서 분명히 느껴졌다. (P69)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글래스는 움직이지 않고도 그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대충 몇 시나 되었을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는 전날 고꾸라졌던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분노는 그를 빈터 가장자리까지 데려다놓았지만 그곳에서 고열에 발목이 잡혀버리고 말았다.

곰은 글래스의 몸 밖을 망쳐놓았고, 고열은 그의 몸 안을 망쳐놓고 있었다. 글래스는 마치 몸 속 한 부분이 도려내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모닥불의 온기를 갈망하며 심하게 몸을 떨었다. 캠프의 불구덩이에서는 더 이상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았다. 불이 없으니 온기가 있을 리 없었다.

글래스는 누더기가 된 담요로 돌아가고 싶었다. 남아 있는 기운을 끌어오려니 그의 몸속 깊은 틈에서 희미한 절규의 메아리가 들려왔다. (P80)


‘몸을 데워야 해.’ 글래스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담요는 6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글래스는 땅에 엎드려 왼팔을 몸 앞으로 쭉 뻗어냈다. 그런 다음, 왼발을 구부렸다가 있는 힘껏 땅을 밀어냈다. 글래스는 성한 한쪽 팔과 한쪽 다리만 써서 빈터를 느릿느릿 가로질러나갔다. 6미터는 6킬로미터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글래스는 세 번이나 동작을 멈추고 숨을 돌려야 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이 따끔거렸고, 상처 난 등이 욱신거렸다. 그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허드슨 베이 담요를 움켜잡았다. 담요를 끌어와 어깨에 두르고 양모의 온기를 온몸으로 받았다. 그러고는 이내 의식을 놓아버렸다. (P80-81)


글래스는 다시 피츠제럴드와 브리저가 사라진 숲 쪽을 돌아보았다. 그들이 한 짓을 생각하니 피가 끓어올랐다. 그는 당장이라도 그들을 뒤쫓아 가고 싶은 강한 충동에 휩싸였다. 그의 몸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지만 정신만은 곰에게 공격당한 이후 처음으로 또렷해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절망했다.

자신의 몸 상태를 찬찬히 살펴나가는 글래스에게 압도적인 공포가 찾아들었다. 그는 왼손으로 머리를 더듬어보았다. 샘물에 비친 흐릿한 반영을 통해 곰이 벗겨놓은 머릿가죽을 대충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였다. 용케 살아남는다면 그의 흉터들은 동지들의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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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글래스에게 첫 번째 경련이 찾아들었다. 창자에서 둔한 통증이 전해져 온 순간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체중을 지탱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고꾸라졌다. 머릿속에서 극심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마치 두개골 곳곳에 금이 간 듯했다.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복부에서는 타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마치 돋보기로 모아진 강렬한 햇빛이 살 속으로 파고드는 듯했다. 속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헛구역질이 시작되자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팠다. 역류한 담즙이 목의 상처로 스며든 것이다.

글래스는 두 시간 동안 땅에 누워 있었다. 완전한 공복 상태였지만 경련은 멎을 줄 몰랐다. 헛구역질과의 사투가 끝날 때마다 그는 죽은 듯이 누워 통증이 가시기를 기다렸다. (P110)


피츠제럴드와 브리저가 한 짓은 그를 버려두고 떠난 것보다 훨씬 못된 짓이었다. 그들은 예리코로 통하는 길에서 고개를 돌리고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행인들만도 못했다(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의 유래가 된 신약성서 이야기에서, 강도를 당해 유대인이 쓰러져 있는 곳이 예리코로 통하는 길목이다), 글래스는 그들로부터 극진한 보살핌을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이었다.

피츠제럴드와 브리저는 고의적으로 그의 소지품을 훔쳐갔다. 그것도 생존을 위한 필수품들을, 그것은 살인 행위나 다름없었다. 심장에 칼을 꽂거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죽였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절대 죽지 않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왜냐면 그들을 찾아 죽여야 하니까.

휴 글래스는 몸을 추스르고 그랜드 강을 따라 계속 기어가기 시작했다.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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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눈부신 섬광이 번쩍했다. 잠시 후, 요란한 천둥소리가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려댔다. 글래스의 얼굴에 빗방울이 떨어졌고, 거센 바람은 횃불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의 배 속이 심하게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맙소사, 안 돼…… 지금 꺼지면 안 된다고!’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하얀 늑대는 이미 공격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놈들이 정말 두려움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글래스는 자신이 먼저 놈들을 공격함으로써 그들의 허를 찔러보기로 했다. (P128-129)


두 남자는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응시하며 마주 서 있었다. 인디언이 손을 내밀어 글래스의 목걸이에 걸린 커다란 회색곰 발톱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글래스의 머리와 목의 흉터들을 찬찬히 훑어나갔다. 인디언이 글래스의 어깨를 밀어 돌아서게 한 후 갈가리 찢긴 셔츠 안으로 드러난 흉터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더니 어린 인디언들에게 몇마디 주절대고 나서 다시 글래스를 돌아보았다. 말에서 내려온 어린 인디언들이 글래스에게 다가와 그의 등을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왜들 저러지?’

인디언들은 글래스의 등에 난 깊은 상처들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껏 숱한 상처들을 봐온 그들이겠지만 이토록 참혹한 상태의 흉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길고 깊은 상처들 안에서는 구더기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한 인디언이 손가락으로 하얀 벌레 하나를 집어 글래스에게 보여주었다. 화들짝 놀란 글래스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누더기가 된 셔츠를 북북 찢었다. 그는 뒤로 팔을 뻗어 상처를 만져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글래스는 바닥에 엎드려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인디언들은 글래스를 말에 태우고 아리카라 족 마을을 벗어났다. 노파의 개가 말들을 쫓아왔다. 그들 중 하나가 말에서 내려 강아지를 가까이 유인하더니 도끼의 뭉툭한 부분으로 개의 머리를 냅다 내리찍었다. 그는 죽은 개의 두 다리를 집어 들고 다시 말에 올라 저만치 멀어진 동료들을 뒤따라갔다. (P149-150)

남자들은 피츠제럴드의 설명을 듣기 위해 합숙소에 모였다. 브리저는 피츠제럴드의 교묘하고 능숙한 거짓말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뭐, 할 얘긴 많지 않습니다.” 피츠제럴드가 말했다. “다들 각오하고 있었던 일이지 않습니까. 그의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의 남다른 근성엔 나 또한 경탄했습니다. 우린 그를 깊이 묻어주었습니다. 짐승들이 파헤치지 못하게 돌도 충분히 덮어놓았고요. 솔직히 난 서둘러 거길 뜨려 했습니다. 하지만 브리저 저 친구가 기어이 십자가를 만들어주겠다고 해서 말이죠.” 뻔뻔한 거짓말에 브리저가 움찔했다. 스무 개의 우락부락한 얼굴들이 일제히 그를 돌아보았다. 그중 몇몇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정말 저 말을 믿는 거야?’ 브리저는 더 들어줄 수가 없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더라도 막아야 했다. 그들의 거짓말을. 그의 거짓말을. (P15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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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조 진지가 사는 길은 지역 부족들과 꾸준히 교역하는 것뿐이었다. 아리카라 족과의 관계가 극적으로 변하면서 수 족의 중요성이 현저하게 높아졌다. 카이오와는 레번워스에 대한 수 족의 경멸감이 자신과 자신의 교역소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노란 말과 수 족 전사 세 명의 출현은 길조였다. 더군다나 그들은 백인까지 데려왔다.

진지에 거주하는 인디언과 뱃사공들이 몰려나와 그들을 반겨 맞아주었다. 모두의 시선은 얼굴과 머리에 흉측한 상처가 난 백인에게 집중되었다. 수 족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브라조는 노란 말과 인사를 나누었다. 노란 말은 어떻게 백인 남자를 거두어 보살피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글래스는 자신에게 집중된 따가운 시선들이 부담스러웠다. 수 족 언어를 아는 이들은 노란 말이 전하는 소식에 묵묵히 귀를 기울였다. 노란 말은 곰에게 치명상을 입은 글래스가 무기도 없이 떠돌다 자신들에게 발견되었다고 했다. 백인 남자도 할 말이 있었지만 노란 말의 설명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노란 말의 설명이 끝나자 카이오와는 백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당신 누구요?” 백인 남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브라조는 프랑스어로도 물어보았다.

“키 에트 -- 부?”

글래스는 마른침을 삼치고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는 로키마운틴 모피회사 소속으로 강을 따라 상류로 오르던 중 만난 적이 있는 카이오와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카이오와는 그가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글래스는 확 달라진 자신의 겉모습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몰골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휴 글래스.” 말을 할 때마다 목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의 목소리는 가련한 징징거림으로 들렸다. “애슐리의 사람.”

“무슈 애슐리는 얼마 전 여길 떠나셨습니다. 제드 스튜어트와 열다섯 명의 직원을 서쪽으로 보내시고 세인트루이스로 가셨어요. 여단을 하나 더 만드셔야겠다나요.” 카이오와는 부상 입은 남자의 반응을 묵묵히 기다렸다.

부상 입은 남자가 대꾸하지 않자 우둔해 보이는 애꾸눈의 스코틀랜드인이 불쑥 말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유?”

글래스는 목의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천천히 말했다. “그랜드 강 상류에서 회색곰의 공격을 받았어요.” 그는 애처롭게 들리는 자신의 징징거림이 영 거슬렸다. “헨리 대위가 날 챙기라고 두 사람을 남겨뒀죠.” 글래스가 설명을 멈추고 성치 않은 목을 살며시 매만졌다. “그들이 내 물건을 훔쳐 달아났어요.”

“수 족이 당신을 여기까지 데려다준 거요?” 스코틀랜드인이 물었다. (P158-159)


급류에 휩쓸려 1마일쯤 내려온 글래스는 강을 빠져나와 우거진 덤불 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토끼들의 흔적을 따라 딸기나무 덤불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버드나무 무리와 커다란 유목 사이에 주저앉은 그는 부상당한 부위와 소지품부터 찬찬히 살펴보았다.

회색곰과 사투를 벌였을 때보다는 훨씬 양호했다. 미친 듯이 기슭을 뒹구느라 몸 구석구석이 타박상과 찰과상으로 뒤덮여 있었다. 팔뚝에는 총알이 훑고 지나간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냉기가 오래된 상처들을 욱신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심각한 부상은 없었다. 물론 이곳에서 얼어 죽을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그나마 아리카라 족의 맹공격을 받고도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그는 안도했다. 강가에서 부둥켜안고 있던 도미니크와 라 비에르주의 모습이 아직도 그의 눈에 선했다. 그는 머릿속에서 그 이미지를 지워내려 애썼다. (P204)


글래스가 라이플로 토끼를 잡았을 때 그곳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상류에서는 피츠제럴드가 카누를 대놓을 곳을 찾아 물가를 살피는 중이었다. 갑자기 들려온 총성에 피츠제럴드가 움찔했다. ‘빌어먹을!’ 그는 황급히 노를 저어 기슭으로 다가가 총성이 들려온 쪽을 유심히 살폈다. 저녁 빛은 빠르게 그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리카라 놈들이 여기까지 올라왔을 리 없는데, 어시니보인 족인가?’ 피츠제럴드는 저물어가는 해가 야속했다. 하지만 몇 분 후, 깜빡거리는 모닥불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벅스킨을 걸친 남자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지만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다. 피츠제럴드는 남자가 인디언일 거라 짐작했다. 백인이 이곳까지, 그것도 12월에 올라올 이유가 없었다. ‘저놈 한 명뿐인가?’ 어느새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피츠제럴드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현재 위치에 자리를 잡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날이 밝기가 무섭게 총을 쏜 놈에게 발각될 게 뻔했다. 그는 몰래 접근해 놈을 죽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의 수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모하게 달려들 수는 없었다. 피츠제럴드는 한밤중에 놈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쩍 지나가보기로 했다. 놈이 모닥불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마침 보름달이 떠 카누를 몰로 내려가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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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는 카누를 타고 오는 내내 온갖 거짓 대사를 지겹도록 연습해두었다. “로키마운틴 모피회사의 헨리 대위가 세인트루이스에 전할 메시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로키마운틴 모피회사?” 땅딸막한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저번엔 또 다른 직원이 오더니만, 그 친구는 당신이 온 쪽으로 갔어요. 엄청 무례한 사람이었죠. 인디언 놈도 하나 데려왔고, 같은 회사 소속이라면 그가 달아놓고 간 외상이나 좀 처리해주쇼.”

순간 피츠제럴드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의 호흡이 가빠졌다. ‘강에서 본 그 백인!’ 그는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려오면서 못 보고 지나친 모양입니다. 그 친구 이름이 뭐라고 합디까?”

“이름은 모르겠고, 물건 두어 가지를 챙겨서 떠났습니다.”

“어떻게 생겼죠?”

“그건 생생히 기억납니다. 들짐승에게 잡아먹힐 뻔했는지 얼굴이 흉터로 뒤덮여 있었어요.”

‘글래스! 아직 살아 있다니! 빌어먹을!’

피츠제럴드는 그들에게 육포를 내주고 비버 가죽 두 개를 받았다.

다시 카누에 오른 피츠제럴드는 더 이상 물살에 의존하지 않고 있는 힘껏 노를 저어나갔다. 최대한 멀리, 그리고 신속하게 벗어나야만 했다. 글래스는 반대쪽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죽었던 그가 다시 살아난 이유를 잘 알기에. (P226-227)


짐 브리저는 겁에 질린 눈으로 유령을 쳐다보았다. 남자의 온몸은 얼어붙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초췌한 얼굴의 턱수염에는 수정으로 만든 단검 같은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양모 모자를 쓴 유령은 꼭 겨울을 깎아 만든 듯했다. 하지만 얼굴의 진홍색 흉터들과 녹인 납처럼 이글거리는 눈빛은 그가 산 사람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브리저는 광기 어린 눈으로 실내 구석구석을 빠르게 훑는 남자를 지켜보았다.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충격적인 광경에 남자들은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그들과 달리 브리저는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젠가 꿈속에서도 본 적 있는 상황이었다. 순간 그의 안에서 죄책감이 끓어올랐다. 그는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안에서 오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지?’ 저승에서 돌아온 망령은 그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마침내 블래 해리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맙소사...... 휴 글래스잖아!” (P240-241)


글래스는 물속 깊이 내려가 모래톱을 향해 헤엄쳐나가기 시작했다. 마침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급류가 그를 도와주었다. 물은 탁했지만 그는 모래톱의 가장자리를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30미터 남았어.’ 머스킷 총알과 화살 들이 연신 수면을 갈랐다. ‘30미터.’ 글래스는 기슭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의 폐는 산소를 달라고 울부짖는 중이었다. ‘10미터.’ (P272)


글래스는 황당했다. 피츠제럴드의 거짓 진술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다. 원래 그런 놈이었으니,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건 그 거짓말에 놀아나고 있는 소령의 반응이었다. 꼭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홀린 쥐새끼를 보는 듯 했다. ‘저 말을 믿다니!’

피츠제럴드가 계속 이어나갔다. “저는 휴 글래스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어제야 알게 됐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를 제대로 묻어주지 않고 캠프를 떠난 건 분명 잘못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위태로웠어도 최소한 그 정도는 해주었어야.....”

글래스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판초 속으로 손을 넣어 벨트에 숨겨놓은 권총을 뽑아 들었다. 글래스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날아간 총알은 피츠제럴드의 어깨에 박혔다. 피츠제럴드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억센 팔들이 양쪽으로 글래스를 붙잡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바동거렸고, 식당 안은 이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애스키첸이 무언가를 지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글래스의 눈에 소령과 번뜩이는 그의 황금 견장이 들어왔다. 잠시 후, 글래스는 뒤통수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P291)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1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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