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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un 22. 2024

대프니 듀 모리에의 <새>

영화 <새>  1963년

대프니 듀 모리에의 <새>는 1952년 <The Apple Tree>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1963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새>를 영화로 만들면서 <The Birds>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된 단편집이다. 새-헬로, 스트레인저-사과나무-노인-몬테 베리타가 수록되어 있다.     

듀 모리에와 히치콕 감독과의 인연은 그녀의 아버지 제럴드 듀 모리에와 히치콕 감독의 인연에서 비롯되었다. 제럴드 듀 모리에와 히치콕 감독은 영화 〈왕실의 여인Lord Chamber's Lady〉(1932)에서 함께 작업했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다보니 히치콕이 제럴드 듀 모리에의 딸이자 1930년대부터 떠오르는 신예작가로서 이력을 쌓아가던 듀 모리에의 행적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당연했다.

듀 모리에와 히치콕은 작가와 영화가로 서로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사이였다. 히치콕의 영화 〈자메이카 여인숙〉 〈레베카〉 〈새〉는 모두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고 더불어 듀 모리에 작품의 판매부수도 전 세계적으로 크게 늘어났다.

또한 그녀의 여러 작품들은 히치콕뿐만 아니라 헨리 코스터, 미첼 레이슨 등 다른 감독들에게도 영감을 줘, 조안 폰테인과 알터로 드 코도바가 주연한 〈프렌치맨스 크리크〉(1944),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와 젊은 시절의 리처드 버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나의 사촌 레이첼〉(1952) 등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 <새>는 1961년 캘리포니아의 해안가에 위치한 캐퍼톨러(Capitola)에서 도모산(domoic acid)에 중독된 바다새떼가 마을 사람들을 공격한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원작소설인 <새>는 남자인 냇이 주인공이며 항구 마을에서 새들이 이상함을 알게 되지만 누구도 믿지 않다가, 새들이 갑자기 사람을 공격해 사람들이 죽은 뒤에 가족과 집에 갇히고 담배를 피우며 창가로 새떼들을 바라본다는 짧은 줄거리이다.  

    

[새]

검은 갈까마귀와 흰 갈매매기가 한데 뒤섞이는 낯선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결코 지금의 상태에는 만족할 수 없다는 듯, 결코 잠잠히 있을 수만은 없다는 듯, 녀석들은 어딘가로 벗어나려 애를 쓰고 있었다.

날갯짓을 계속하지 않고서는 한순간도 버틸 수 없는지 찌르레기 무리가 비단 위를 스치듯 바스스 소리를 내며 푸르른 들판을 향해 날아올랐고, 작은 피리새와 종다리도 나무 위와 울타리 위로 흩어져갔다.

냇은 바닷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래 만에 앉은 바닷새들은 물때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나마 녀석들은 초조한 기색이 덜했다. 물가에 늘어선 검은머리물떼새와 붉은발도요, 세가락도요, 마도요가 바다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맨살이 드러난 띠 모양의 해초와 어지럽게 흩어진 자갈만을 남겨놓은 채 천천히 해안으로 빨려들었던 파도가 다시 뒷걸음질 친 순간, 바닷새들이 해변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녀석들 역시 날아오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는 듯, 목청껏 울고 지저귀고 소리를 내지르며 미끄러지듯 고요한 수면 위를 날아 해변에서 멀어져갔다. 서둘러 속도를 내던 녀석들은 이내 냇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무슨 목적이 있어서일까? 그저 가을이면 찾아드는 어떤 충돌을 주체할 길이 없어서, 그런다고 채워지는 것도 아닌 그 슬픈 충동에 사로잡힌 나머지 저렇게 무리를 지어 허공을 날고 목청껏 울어대는 게 아닐까. 겨울이 오기 전에 모든 걸 다 쏟아내기라도 해야 하는 듯 새들은 쉴 새 없이 날개를 퍼덕였다. 절벽에 앉아 페이스티를 먹던 냇은 가을이면 새들에게 마치 경고장이 날아들 듯 어떤 메시지가 전달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겨울이 오고 있다. 죽음의 계절, 그러면 죽음이 두려운 나머지 일로든 다른 어떤 바보짓으로든 스스로를 내모는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새들 역시 저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P9-10)  

   

그는 가까운 쪽 침대에 놓인 담요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담요를 무기삼아 허공을 향해 좌우로 힘껏 휘둘렀다. 몸통이 부딪치고 날개를 파닥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래도 녀석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새들은 몇 번이고 다시 돌아와 작지만 갈퀴처럼 날카로운 부리로 그의 손과 머리를 내리찍으며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어느새 담요는 새들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이가 되어 있었다. 그는 담요로 머리를 감싼 후 보이지도 않는 새들을 향해 연거푸 맨주먹을 날렸다. 행여 새들이 쫓아올 수도 있었으므로 간신히라도 방문 쪽으로 걸음을 떼 문을 여는 일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 동안을 어둠 속에서 싸웠을까. 점점 날갯짓이 잦아드는가 싶더니 마침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두꺼운 담요 사이로 빛이 새어 들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 선 채 귀를 기울였다. 건너편 방에서 들리는 겁에 질린 아이의 울음소리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도, 윙윙 허공을 가르는 소리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었다.            (P15-16)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햇빛 아래서 반짝반짝 빛을 발하던 갈색 언덕은 어느새 헐벗고 어두운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동풍은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날로 나뭇잎들을 죄다 쓸어버렸고, 갈라지고 메마른 나뭇잎들은 거센 바람에 밀려 이리저리 흩어진 채 추위에 떨고 있었다. 툭툭, 냇의 부츠가 바닥에 와 닿았다. 땅은 얼음처럼 딱딱했다. 이렇게 갑작스레 추워지기는 처음이었다. 고작 하룻밤인데, 그새 검은 겨울이 내려앉아 있었다.          (P19-20)    

 

놈들이 눈에 들어온 건 그때였다. 갈매기였다. 파도 위, 사방이 갈매기였다. 처음에는 흰 포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수백, 수천, 수만 마리의 갈매기..... 항만에 닻을 내린 거대한 함선처럼 녀석들은 바람을 마주한 채 밀물 때를 기다리며 물마루 골을 따라 솟아올랐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동쪽에도, 서쪽에도 온통 갈매기였다. 냇의 시선이 닿는 곳까지, 빼곡이 대열을 이룬 갈매기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파도만 잠잠했더라면 마치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을 것이었다. 동풍이 세찬 풍랑을 일으키고 있는 덕에 놈들도 해안으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었던 것이다.                       (P28-29)   

  

밖은 온통 암흑이었다. 바람은 더없이 거셌고, 바다에서는 얼음처럼 찬 돌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냇이 문 밖으로 발을 내밀자 산더미처럼 쌓인 새의 시체가 발치에 와 닿았다. 사방이 죽은 새였다. 창문 아래도, 벽도, 온통 죽은 새였고 그것은 자살행위였다.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칠 친 놈들, 목이 부러져 죽은 놈들, 어디를 둘러보든 죽은 새가 눈에 띄었다. 살아 있는 새는 흔적조차 없었다. 물때가 바뀌면서 놈들은 바다로 향한 것이었다. 오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쯤 갈매기들은 바다 위를 날고 있을 것이다.                    (P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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